이재정 신부, 진정한 신앙은 기득권 세력에 맞설 수 있어야

이재정 수석부의장 강연듣기

"역사에서 진정한 화해가 가능한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지역·교파·정치적 갈등 구조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이재정 수석부의장(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은 지난 3월12일 나들목사랑의교회(김형국 목사)에서 열린 기독청년아카데미 공개강좌에서 "모세가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여호수아가 새로운 세대를 이끌고 들어갔던 것처럼, 젊은 세대가 우리 사회 갈등구조 해결의 희망이다"고 강조했다.

   
▲ 민주평통 이재정 수석부의장이 기독청년들에게 동북아 평화와 민족통일을 위해 '통일과 화해'를 이룬 나라들을 연구하라고 충고했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그는 '동북아 평화와 민족통일을 위한 기독청년의 소명'이라는 강연에서 성서가 말하는 평화(샬롬)를 실천할 사람은 기독청년이며, 그들이 민족의 역사와 화해를 이룬 세계사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의장은 우리의 역사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정세를 푸는 열쇠를 성서의 '샬롬'에서 찾았다. 이 부의장에 따르면, 성서가 말하는 샬롬은 기득권으로 발생한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지배층이 400년 동안 한번도 바뀌지 않을 만큼 기득권이 견고하지만 최근 엄청난 혁신이 일어났다"며 우리 역사와 현실에서 어떻게 샬롬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밝혔다.

   
▲ 이재정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뉴스앤조이 주재일

그는 영남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정당이 17대 국회의 과반 의석을 차지한 것을 수백 년 동안 유지한 기득권 세력이 교체된 사건으로 보았다. 또 최근 정부가 행정수도 건설을 추진한 것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심각한 불균형과 갈등을 해소하는 노력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변화에도 기득권은 여전히 견고하고 심각하기 때문에 청년들이 기득권에 맞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법조·언론·종교·학계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주류 세력은 변하지 않고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앞으로 5년 이내에 우려하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이 부의장은 동북아 평화도 결국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느냐, 즉 샬롬을 이룰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우선 그는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라도 남북의 신뢰를 견고하게 다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문은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남한 사람들도 겉으로는 도우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반공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는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북한의 핵무장과 생존을 놓고 북한과 미국 등이 벌이는 논쟁을 분석했다. 이 부의장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평화를 위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려 한다. 반면 북한은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이라고 맞선다. 북한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 문제를 남한과 일본, 중국 등 여러 나라가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공주의 망령에서 벗어나라

"북핵과 '양자-다자회담'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 북한의 논쟁은 복잡한 함수관계가 얽혀있으며, 이는 풀기 어려운 숙제다"고 밝혔다. 그리고 어떻게 동북아에 샬롬을 이룰 수 있을지는 청년들이 풀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그는 독일·남아프리카공화국·베트남·유럽연합 등 역사에 나타난 통합과 조화를 이루거나 이뤄가는 나라들을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이들이 이룩한 성과를 어떻게 한반도와 동북아에 이식할지도 깊은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끝없는 싸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기득권의 논리가 만든 세계와 싸우는 것이다."

다음은 이재정 부의장의 강연 요약문이다.

성서가 말하는 평화, 살롬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이다. 샬롬은 사람과 하나님, 사람과 사람이 함게 사는 길이다. 예수가 마지막 인사를 샬롬이라고 했을 만큼 성서는 샬롬을 강조한다.

그만큼 샬롬을 이루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노예인 히브리를 출애굽시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한 궁극적인 이유는 샬롬이다. 그러나 히브리는 출애굽시킨 하나님을 고백하면서도 암몬, 블레셋과 함께 하지 못했다.

그것은 기득권의 구조와 논리 때문이다. 기득권을 지키려고 만든 명분과 목적 때문에 히브리는 이웃 나라와 갈라졌다. 예수도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와 맞섰다. 성서가 말하는 샬롬은 바로 기득권으로 발생한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을 보면, 농민과 지주의 뛰어넘을 수 없는 갈등이 나온다. 기득권을 둘러싼 다툼은 이내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변했다. 그리고 기득권자의 승리로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우리 사회의 주류를 형성한 지배층은 400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긴 역사에서 중요한 변화를 겪었지만, 주류 세력 내부의 다툼에 불과했다. 그래서 주류 세력의 생존전략은 변신을 잘하는 것이었다. 왕권, 일제의 식민통치, 군부 세력과 끊임없이 야합했다.

이런 점에서 17대 국회의 변화는 엄청난 혁신이다. 영남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정당이 국회의원 과반수를 차지한 꿈같은 변화다. 문제는 정치권의 변화로 그쳤다는데 있다. 법조·언론·종교·학계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주류 세력은 영남(이 말은 단순히 지역만을 의미하지 않는다)을 기반으로 한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 참석자들은 "언제 통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었고, 이재정 부의장은 "앞으로 15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나는 16대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교육문제에서 제일 안타까운 점은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말할 수 없이 심하다는 것이다. 광주교대생 80%가 서울·수도권으로 오려 한다. 수도권이 교육의 기득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문제만이 아니다. 모든 면에서 수도권은 기득권을 쥐고 있다. 조금 지나면 영·호남의 갈등이 아니라,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앞으로 5년 이내에 우려하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행정수도 건설은 수도권의 특권을 다른 곳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수도권으로 쏠린 이익을 골고루 분배하자는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정책이다. 그래서 행정기관뿐 아니라 최고 수준의 병원과 학교가 옮겨가야 한다. 수도권이 특권을 독점했기 때문에 생긴 비수도권의 좌절감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내부의 비극적 불균형 구조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눈을 우리 내부에서 동북아로 돌려보자. 우리 내부가 분열하고 부패해 토대가 흔들릴 때 한반도는 양대 세력의 전쟁터로 변했다. 중국·일본·러시아·몽골 등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대립에 끼어 우리는 평화를 위협받았다. 그래서 한반도의 평화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과 중국, 그리고 미국의 문제다.

최근 미국과 북한은 '6자회담이냐 양자회담이냐'를 놓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미국의 선제공격 가능성이다. 미국은 동북아 평화를 위해 선제공격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며, 언제든지 선제공격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대만·중국·일본 등도 핵 경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리고 과연 이 사태를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묻는다.

북이 두려워하는 것도 미국의 선제공격이다. 그래서 북은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으로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선제공격과 북의 핵 대응 사이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넘어 동북아의 비핵화를 주장해야 한다.

게다가 핵보다 핵 이후의 북한 생존이 더욱 중요한 문제다. 누가 열쇠를 쥐고 있는가. 미국이다. 미국이 경제 제재하면 북한은 살 길이 없다. 미국은 다자회담을 통해 여러 나라가 북의 경제를 책임지길 원한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확실하게 해결해 줘야 한다고 본다. 94년 제네바협정을 통해 케도(KEDO)가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한 일이 뭐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한미공조를 강조한다. 대북정책에 대한 한미가 같은 정책을 펴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미국이 선제공격하면 우리가 지지할 수 있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맥락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유연화정책을 비판했다. 대만과 중국이 전쟁을 벌이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투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노무현 대통령은 본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우선 남북관계를 견고하게 다지는 일이다. 한두 사건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서로 신뢰를 쌓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은 중요하다. 그의 답방은 6·15선언을 완성하는 것이고, 남북 간의 신뢰를 더욱 굳건히 쌓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남한도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겉으로는 북에 빵공장도 짓고 구호물자도 보내 나아진 것 같지만, 속으로는 반공·멸공이 가득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도 우리 내부의 개혁은 필수적이다. 개혁의 핵심은 균형과 조화다. 이를 위해 청년, 특히 기독청년들이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올해는 냉전 60년, 분단 60년, 광복 60년이 되는 해다. 이제 지나간 역사를 보지 않고 우리가 염원하는 하나님나라의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를 위해 여러 사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새로운 독일 모습은 어떤가를 봐야 한다. 통일한 지 14년째 갈등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해야 한다. 베트남의 통일도 눈여겨봐야 한다. 남북이 통합된 이후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야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도 빼놓을 수 없는 사례다. 네덜란드 칼빈의 후예들이 흑인을 몰아내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점령해 '약속의 땅'으로 만들었다. 몇백 년이 지나 이 나라에 흑인이 대통령, 백인이 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통해 과거사를 정리했다.

중국은 문화혁명 이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지금도 몇 가지 미래 모습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유럽공동체(EU)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엄청난 갈등을 겪은 독일과 프랑스 등이 어떻게 화해하고 유럽의 미래를 함께 구상하게 되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유럽 통합의 철학적 기반은 무엇이었는지 연구해야 한다. 이해관계를 어떻게 극복했지 살펴보고, 그런 구조를 동북아에는 가져올 수 없는지 성찰해야 한다.

   
▲ 이재정 부의장과 참석자들은 강연이 끝난 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며 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을 다짐했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역사에서 진정한 화해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우리 내부에도 던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지역·교파·정치적 갈등 구조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과연 교회는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젊은 세대 밖에 없다. 마치 모세가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여호수아가 새로운 세대를 이끌고 들어갔던 것처럼, 젊은 세대가 희망이다. 지난 시대에 극복하지 못한 과제를 뛰어넘을 수 있는 지혜가 젊은이에게 없으면 미래는 없다.

이 끝없는 싸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기득권의 논리가 만든 세계와 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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