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대자보 논쟁'과 부재자투표운동으로 본 기독 대학생의 현주소

"복음주의 선교단체는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들끼리만 모이고 자기들끼리만 즐거운 집단이다."

   
▲ 대학채플(왼쪽), 대학부재자투표운동(가운데), 동성애 관련 토론회(가운데). 이 문제들은 기독 학생이 깊게 개입한 대학 내 논쟁이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선교단체를 바라보는 대학생들의 주장이 아니다. 선교단체 간사와 기독학생들이 선교단체가 게토화된다며 이구동성으로 반성하는 말이다.

선교단체 소속 학생들은 성경 공부와 각종 예배, 소모임 등 한 주에 적게는 2일에서 많게는 5일을 모인다. 모두가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공과 영어는 물론, 취업과 상관없는 일로 매일 모이는 결속력을 가진 대학 내 집단은 선교단체가 거의 유일하다. 학생들은 모일 때마다 학교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논의한다.

그러나 송미령 씨(전 서울여대 기독인연합)는 '위기의 캠퍼스 선교'라는 강연에서 "선교단체는 학생들이 선교단체 회원으로 충실하기를 바란다"며 "선교단체 회원들은 학교와 분리됐기 때문에 이들에게 복음을 소개받은 학생들은 복음의 영향력을 느낄 수 없고 분리된 그들의 모습 때문에 오히려 반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담론에서 스스로 소외되고 있는 게 선교단체의 전반적인 추세고, 설령 학내 논의에 참여하더라도 수구적인 집단으로 평가받았다. 이러한 논쟁과 대립을 거듭할수록 기독인들은 현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꽉 막힌 존재로 규정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1학기 이화여대를 뜨겁게 달군 '대자보 논쟁'이다.

그 해 4월 명상가이자 반전평화활동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틱낫한 스님의 강연회가 이대 강당에서 열린 것이 논쟁의 발단이었다. 이라크전쟁으로 국내에서도 평화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은 때 틱낫한 스님이 학교 방문은 학생들의 높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여성신학자 현경 교수(유니온신학대)가 통역을 맡은 것도 화제였다. 그러나 10여 개의 선교단체로 구성된 기독인연합은 "다른 종교인의 강연회를 예배당으로 쓰는 공간에서 열 수 없다"며 서명운동을 벌였고 총장에게 항의문을 전달했다.

논쟁 과열로 입지 축소되다

이 사건은 학교 측이 유감을 표명하는 메일을 보낸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5월 초 레즈비언 인권운동 동아리인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변날)가 레즈비언 문화제를 개최하면서 본격적인 대자보 논쟁이 벌어졌다. 변날은 동성애자가 된 이유와 레즈비언을 혐오하는 현상에 대한 글과 사진이 담긴 대자보를 전시했다. 그러나 다음날 일부 기독학생들이 주도한 '레즈비언 문화제를 반대하는 모임'(반대모임)이 반박 대자보를 붙였다. 이렇게 촉발된 레즈비언 찬반 논쟁은 거의 매일 새로운 대자보가 올라오며 2주간 진행됐다.

문제는 반대모임의 대응 방식이 상식 이하의 무례한 행동이었다는 점이다. 다른 기독학생들도 이들이 붙인 대자보는 레즈비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다는 평을 했고, 성경 구절을 들어 레즈비언을 비판한 것도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과 대화하는 태도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반대모임은 상대편 대자보 위에 자신의 대자보를 붙이거나, 아예 상대편 대자보와 현수막을 찢었다. 게다가 변날 동아리방에서 침입해 자료집과 포스터, 개인 물품을 훔쳐간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받았다.

당시 기연 회장 전효진 씨는 "동아리방 침입, 대자보 훼손 등은 모두 반대모임의 주축을 이룬 모 선교단체에서 한 일이었다. 그들은 예수가 성전을 정화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학교인 이대를 정화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말이 꼭 필요할 때 침묵

한 단체로 인해 기독교인 전체가 매도당하고 있었지만, 기연은 소속 단체의 의견이 조율되지 않아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자기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진보계열의 기독학생회(SCA)와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한기연)만 레즈비언의 인권을 옹호하고 기독교인의 대응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대자보 논쟁이 끝날 무렵, 축제에서 고사와 영산줄다리기를 하는 문제로 다시 논쟁이 벌어졌고, 총학측은 인터넷 찬반투표를 통해 고사를 촛불행사로 대체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무속 신앙을 깔고 있다는 이유로 영산줄다리기를 반대한 것은 지나친 것이란 여론이 매우 높았다.

이런 논쟁에서 드러난 기독교인은 다른 종교에 관용이 없고, 평화나 소수자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뿐 아니라 대화가 불가능한 집단이었다. 기독교인은 토론보다 자기 주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집단'이었다. 이러한 평가는 이대의 한 선교단체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교회가 한국사회로부터 받는 비판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심각한 반성을 요청한다.

부재자투표운동, 대학가 새로운 정치 물결

선교단체가 대학에서 부정적인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다. 커닝반대운동, 북한대학생돕기운동 등 윤리·통일운동 분야에서 꾸준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작년 총선을 통해 청년정치참여운동의 바람을 몰고 온 대학부재자투표운동은 선교단체의 실천이 빛을 본 경우다.

2002년 6·15지방선거 때, 교신 교단 측 대학생 선교단체인 학생신앙운동(SFC)이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과 함께 대학부재자투표소설치운동을 벌일 때만 해도 이 운동에 주목하고 호응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SFC는 선거관리위원회를 찾아가 대학 내 부재자 신고자 2000명이 확보되면 부재자투표소 설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경희대 고려대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지역 대학 중심으로 부재자투표 참여 대행 업무를 실시했다.

같은 해 12월에 열린 대선 때도 SFC는 포기하지 않고 이 운동을 전개했다. 양상이 상당히 달라졌다. SFC 외에도 총학생회와 YMCA, 기윤실 등이 적극적으로 가세하고 대학생들의 참여도 적극적으로 변했다. 당시 공명선거실천기독교대책위원회 간사로 활동한 김성학 목사는 "SFC가 전국 130개 대학에 골고루 퍼져 부재자 투표신청운동을 묵묵히 전개해 주어 폭발력이 훨씬 강했다"고 평가했다. 학기말이고 일부 대학은 방학기간이라는 어려움에서도 8만 명 이상이 신청했고 7개 대학이 2000명을 넘겼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부재자 투표소는 세 곳밖에 설치할 수 없었다.

작년 총선에서 대학부재자투표운동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SFC 외에도 새벽이슬 죠이선교회 IVF 등 선교단체들이 운동단체들과 공동 사업을 펼쳐 12개 대학에 부재자투표소를 설치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부재자투표운동 초기에는 선교단체가 하는 일이라 덮어놓고 얕잡아 보고 무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사명이라고 여기면 어떤 일이든 우직하게 실천하는 선교단체 본연의 장점이 이러한 주변 여건을 극복하는 힘이 되었다. 또 이 운동을 통해 전국 대학에 퍼져있는 선교단체의 조직망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굉장한 파괴력을 지닌다는 점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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