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 대한 교회 역할 더욱 중요해져…적절한 통합과 분리 필요

   
▲ 사진제공 함께가는공동체교회
이 글을 쓰는 기자에게는 두 가지 장애가 있다. 먼저 다른 사람들보다 눈이 나쁘니 시력 장애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또래 친구들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니 비만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혹여 많은 분들이 기자를 욕할지 모르겠다. 지체장애나 발달장애 등 중증 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을 놀리는 거냐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을 격하하기 위해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장애라는 의미를 폭넓게 생각한다면 기자는 분명 장애인이다. 아니 기자뿐만 아니라 지구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이다. 어떤 사람은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고, 다른 사람은 성격에 장애가 있어 사회생활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장애는 특별한 게 아니라 조금 다른 것

그러나 기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하면 특별하게 생각한다.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야만 장애인이 아니다. 또 남들보다 약간 발달이 늦어 발달장애를 겪는다고 해서 장애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장애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우리도 언제든지 장애를 당할 수 있는 잠재적인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박병우 목사(함께가는공동체교회)와 문연상 목사(함께가는아동발달센터)는 먼저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라고 주문한다. 그동안 많이 들어왔던 이야기다. 그러나 실천이 쉽지 않다.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생각해봐라.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떤 행동이든지 할 것이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방법도 없는 것이다. 장애인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약간 다르다고 생각하고 사랑하면 된다. 그럼 그들이 원하는 게 보인다."

이들은 특히 장애인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한다. 장애인들과 함께 공부하고 어울리는데 교회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교회가 일주일 내내 비워두는 곳이 많고, 재정과 인력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그들은 교회를 최고의 장소로 꼽는다. 많은 교회들이 주저하겠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편견만 버리면 가능한 일이다.

이들은 장애인에게도 예배권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장애인 예배는 따로 드리고 있다. 그것이 마치 장애인들을 생각하는 것인 냥 비장애인들끼리 논의하고 결정한다. 그러나 정작 예배를 드리는 장애인들은 이 논의 구조에 참여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마치 죄인처럼 비장애인들과 떨어져서 예배를 드린다. 이 구조가 고착되다보니 장애인 예배와 비장애인 예배는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장애인에게 예배권을 허하라

기자 역시 이런 생각을 지지했다. 비장애인과 따로 예배를 드리고 교제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좋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문연상 목사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장애와 비장애를 분리하는 것 자체가 자기 합리화라는 것이다. 이들을 교묘하게 나누어 놓고 편한 곳으로 가려는 욕망 때문에 분리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또 누구는 같이 하고 누구는 따로 하는 것 자체가 기준이 애매하다. 장애 정도에 따라 또는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이쪽에서는 장애인 예배를 드릴 수 있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비장애인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얘기다.

"장애인 역시 우리와 똑같은 사고를 한다. 아니 오히려 비장애인보다 더 순수하고 거짓이 없다. 그들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 한다. 학교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특수반이라는 것을 만들어 구분하는데 그것만큼 비교육적인 것도 없다."

이런 말을 하며 이들은 성경의 예를 들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비장애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약자·병자·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이 예수를 쫓아다녔다. 그러나 예수는 한 번도 이들을 꾸중하거나 가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의 교회는 이들을 구분하고 있다. 장애인들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은 채 말이다.

예수는 병자와 일반인을 차별하지 않았다

박병우 목사가 시무하는 함께가는공동체교회는 이미 이 성경 말씀을 실천하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 시끄럽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대뜸 "당연히 시끄럽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의식의 빈약함은 다음 질문으로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럼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가." 빙그레 웃는 박 목사는 "시끄러운 데서 예배를 드려본 적이 한 번도 없는가"라고 오히려 되묻는다.

"많은 교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장애인 예배를 구분하고 있지만, 그것은 조급증에서 나오는 결과다. 좀 천천히 가면 어떠한가. 우리 모두 함께 갈 수 있다면 늦게 가도 상관없는 것이다. 빨리 가서 뭐하려고, 그렇게들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물론 장애인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 두 세배는 힘이 더 든다. 그래도 우리는 함께 가는 것이 좋다."

이런 생각은 문연상 목사 역시 마찬가지다. 문 목사는 3월을 마지막으로 함께가는아동발달센터를 접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있다. 그동안은 지체장애를 가진 아이들만 교육시켰는데, 이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교육시킬 수 있는 센터로 거듭날 예정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든 부분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통합하자는 것은 아니다. 통합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예배나 학교 교육은 분명 같이 해야 한다. 그것부터가 시작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분리가 필요하다. 즉 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 맞는 교육을 연구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통합과 분리가 이루어질 때 우리 사회는 훨씬 더 밝아지고 좋아질 것이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박 목사와 문 목사는 지금까지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말도 했다. 장애인들도 비장애인에게 얼마든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영성이라든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든지 훨씬 더 좋은 것들을 비장애인에게 주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담을 허무는 거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담을 허물었다. 세대를 통합하고 장애와 비장애를 아우르는 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지금부터 시작하자고 말한다. 장애인들이 어색해하지 않고 불편해하지 않도록 준비하고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함께 가는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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