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철학회, 학술발표회 가져…과학과 신앙 사이 간극 좁히기 기대

2005년 3월12일 오후 방배동에서 열린 기독철학회(대표 손봉호) 학술 발표회에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낯익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손봉호, 강영안, 신국원 등 기독교학문연구회 관련 인사들이 여럿 자리를 잡았다. 이 날 주목받은 발표는 장대익(서울대 과학사-과학철학 박사과정)의 ‘아담, 다윈을 만나다: 인간 본성의 진화론과 기독교’였다.

논평을 맡은 최태연 교수(천안대 기독교학부)의 원고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장대익은 적어도 한 가지에서는 한국에서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는 복음주의권에 속한 크리스천으로서 시종일관 기독교의 유신론 신앙과 진화론의 화해 내지 종합을 주장하는 글을 대중적 매체에 발표해온 인물이다.

   
▲ 장대익  ⓒ뉴스앤조이 양희송
동시에 그는 한국에서 머지않아 이 분야에 대한 전문가의 반열에 오를 만한 인물이다. 그는 지금 서울대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 과정에서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으며, 대우학술재단에서 모이는 ‘과학과종교연구회’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의 독특한 점은 복음주의 신앙인이면서 ‘유신진화(Theistic Evolution)’에 대한 확신을 가진 신앙인이라는 점이다.’

 인간 본성과 마음에 과학적 해명 제공

실제로 장대익은 국내에서 진화론의 최고 권위자인 최재천 교수(서울대 생명과학부) 아래서 논문을 쓰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연구자이며, 관련 영역에서 활발한 저술과 번역 ․ 연구 프로젝트를 감당하고 있다. <복음과상황>과는 과거 편집위원으로 인연을 맺은 적이 있고,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에 대한 가장 매서운 비판자로 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 라브리공동체 등에도 간사로 참여하면서 보기 드물게 지적, 영적 중간 지대를 탐색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장대익에 의하면, 현재 학문공동체 내에서는 진화론이 생물학의 기초 패러다임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이것이 인접한 분야에 새로운 자극과 통찰을 던져주며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중이라고 한다. 그동안 제출되었던 다양한 진화론 비판들은 오히려 진화론을 과학적으로 엄정히 다듬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현재로는 진화론의 기본 골조를 흔들 만한 치명적 비판은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았다.

장대익은 최근 진화론이 인간의 본성과 마음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해명을 제공하고 있는데,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이라는 이름 아래 수행되는 이 연구 분야는 종교(특히 기독교)에 던지는 함의와 도전이 적지 않다는 것이 이 날 발제의 주된 내용이었다.

진화심리학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는데, 핵심 주장은 인간의 마음(mind)이 여러 개의 모듈(module)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적응 문제들(adaptive problems)을 만나는데 그런 문제들을 좀더 잘 해결할 수 있는 모듈을 가진 개체가 성공적으로 살아남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 심리가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가설은 다양한 심리학 실험의 결과들을 통해 주장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포괄적응도 이론(inclusive fitness theory), 성선택 이론(sexual selection theory), 양육투자 이론(parental investment theory), 호혜적 이타성 이론(reciprocal altruism theory), 부모와 자식간 갈등 이론(parent-offspring conflict theory) 등을 통해 기존 심리학보다 더 설명력이 있는 내용을 진화심리학자들이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론은 ‘진화 중’

그간 진화심리학에 대해 제기되어온 전형적인 비판들과 그에 대한 응답도 제시되었다. 적응주의(adaptationism), 즉 어떤 진화의 산물을 설명하는데 있어 시험 가능한 가설을 세우는 과정도 없이 ‘이런 형질은 어떤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코는 안경을 받치기 위해 이렇게 진화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논리가 된다.

진화론이 이런 ‘그럴 듯한 이야기(just so story)’를 양산하는 오류는 이제 더 정교한 가설과 검증 과정이 확립됨으로써 적어도 학문공동체 내에서는 극복되고 있다고 한다. 유전자환원주의(genetic reductionism)는 어떤 특정한 형질이 환경과의 상호 작용에 상관없이 유전자에 암호화되어 있다는 입장인데, 이미 진화론자들이 일정 수준의 상호 작용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치명적 비판이 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성선택 이론은 ‘성차별적’이라는 페미니즘적 비판도 제기되었으나, 장대익은 이런 종류의 비판들이 일정 부분은 진화심리학의 전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가운데 나온 것이거나, 아니면 이런 비판을 통해 진화론이 다듬어지고 발전하는 계기를 주었다고 본다. 각각의 비판에 대해서는 반례를 들어 논박하고 있다.

이 논문의 마지막 부분은 ‘진화심리학과 기독교의 만남?’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논평자인 최태연 교수도 지적하듯 장대익은 유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아직은 그렇게 전면적인 만남을 말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윌슨(E. O. Wilson) 같은 이는 인간의 마음은 신과 같은 초월자를 믿게끔 진화했다고 한다. 종교란 마치 동물 집단이 서열 행동을 통해 적응 이득을 얻듯이 하나의 적응 행위라는 것이다.

다른 학자들은 종교적 심리기제는 직접적으로 종교에 관한 적응이 아니라, 다른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라고 본다. 즉 자연 세계를 추론하는 심리기제, 다른 사람의 심리 상태를 추론하는 심리기제, 사람들 간의 관계를 추론하는 심리기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긴 부산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진화심리학자들의 가설은 흔히 종교를 문화 현상으로 다루는 학계 일반의 관행보다 훨씬 더 나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물학적·심리학적 기저 차원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은 기존의 기독교 이해와 많은 부분에서 충돌하고, 이견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은 인간론의 어두운 면—약삭빠르고, 속물적이고, 제한된 존재—을 조명하는 데에는 큰 거부감 없이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대익은 지적했다.

 기독교와의 만남은 “아직…”

질문과 응답 시간에 손봉호 총장(덕성여대)은 장대익의 입장이 환원주의(reductionism) 아니냐고 비판했는데, 이에 장대익은 “나는 환원주의자가 맞다. 그러나 환원주의가 할 수 있는 마지막까지 가보지 않고 그만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전제주의(presuppositionism)적으로 진화론을 재단하고 미리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것은 더 문제라고 본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박희주 교수(명지대)는 신앙인으로서 진화론을 한다면 창조과학 등에 대한 비판만 아니라 진화론 내의 무신론적 요소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비판해야 공정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서 장대익은 “그런 지적은 달게 받겠다. 도킨스(Dawkins) 같은 무신론적 진화론에 동감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내가 그쪽의 연구 방법론에 서 있기 때문에 공유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꽤 있다. 그런 면에서 연구 결과를 가지고 비판하고 반대할 수는 있지만, 전제만 가지고 말하는 것은 내 스스로도 설득력이 별로 없다”라고 대답했다.

결론적으로 장대익은 현 단계에서 진화론의 연구 성과는 기독교계에서 공유하는 생각과 전면적으로 만나기는 힘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완충적 지대로서 자신과 같은 연구자들이 양쪽을 잇는 역할은 꾸준히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기독교 신학 내에서도 이런 과학계의 논의와 소통할 수 있는 신학적 작업들이 나와 과학과 신앙 사이에 가로 놓인 넓은 골을 채울 수 있기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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