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청산 논의조차 안돼…"친일파가 교권 장악해 힘들다"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기장)는 2003년 8월10일 평화통일남북기도주일을 맞아 한국교회 앞에 과거의 죄를 고백한다. 목사였던 할아버지가 일제시절 당시 친일했었다는 고백이다. 조 목사에 따르면, 할아버지인 조승제 목사는 194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31차 총회 때 필승기념선언문을 낭독하고, 이듬해에는 일본이 만든 어용 단체인 '일본기독교조선장로회' 창설에 협력하여 목포지역 의장으로 선임되었다.

이 사건 이후 조헌정 목사가 속한 서울노회는 과거를 회개하는 내용의 헌의안을 상정했지만 총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죄책 고백 선언'이라는 제목의 헌의안은 △기독교인들이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하고, 중일전쟁 · 태평양전쟁 등 일제 침략 전쟁을 지지하고 협력한 죄 △해방 후 분단 상황과 한국전쟁 때 휴전에 반대한 후 북한 정권을 악마시하여 동포까지 적대시하고 그들의 멸망을 염원한 죄 등에 교회가 지지하고 후원했던 죄를 하나님과 민족 앞에 사죄하고 용서를 구한다고 밝히고 있다.

누가 누구를 벌하랴?

최근 몇 년 사이 친일 청산을 비롯한 과거사 청산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 청산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깨끗한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역사의 무서움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말하는 반면 반대측은 과거보다는 미래에 투자해야 한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러나 사회의 이런 움직임과는 달리 한국 교회는 친일을 비롯한 과거청산 문제에 찬성이든 반대든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조헌정 목사의 예에서 보듯 진보적인 교단이라고 알려진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총회장 김동원 목사)조차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비단 기장 교단만의 문제는 아니다. 2004년 각 교단 총회 때 국가보안법 폐지나 사립학교법 개정 등에 대해서는 강한 반대 목소리를 내던 한국 교회가 과거사 청산 문제에 들어가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이승영 목사)는 지난해 친일 청산과 관련해 논평을 발표하고 친일청산 신중론을 주장했다.

이들은 논평에서 친일파 지도자에 대한 비난이 기독교가 민족 종교로 발돋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며, 당사자가 모두 고인이 된 지금 '때늦은 비난'으로 이들의 친일 행위를 드러낸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사실상 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해 반대 입장임을 밝혔다.

장자교단이라고 자처하는 교단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총회 때 이례적으로 국보법과 사학법 등 사회 문제에 대해 반대 성명을 발표했던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총회장 김태범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총회장 서기행 목사)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감독회장 서기행 목사) 등의 교단들도 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다.

한국 교회는 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일까. 한국 교회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힘의 논리'때문이라고 말한다. 해방 이후 교권을 잡은 인사 대부분이 신사참배 등 친일 행적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친일을 청산하자는 주장에 대해 이들은 '누가 누구를 벌하랴'는 논리로 이러한 주장을 무력화시켰다.

김인수 교수(장신대)는 "신사참배한 사람들이 교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친일을 청산하자는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해방 이후 힘의 논리와 정치적인 이해 관계로 인해 친일파가 득세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과거 청산이 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최덕성 교수(고신대 신대원) 역시 힘의 논리에 동의한다. 그러나 최 교수는 교회사를 연구하는 역사가에게 더욱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들이 힘의 논리에 굴복해 편향된 역사를 서술하다보니 문제가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신도가 나서야 할 때

그러면 한국 교회는 과거사를 깨끗하게 청산할 수 없는 것일까. 부끄러운 역사를 감춘 채 후손에게 물려줄 것인가. 이에 대해 이선교 목사(기성·백운교회)는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를 연구한 역사가와 전문가들이 모여 한국교회 인물 가운데 친일한 인사들을 중심으로 책을 펴내자는 것이다.

한국교회 연합 기관임을 자처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총무 백도웅 목사)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대표회장 최성규 목사)는 이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 목사의 주장이다. 각 교단으로부터 계속 재정을 지원받는 한, 친일파 후손이나 그들과 이해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교권을 장악하고 있는 한, 과거사 청산 주장은 묻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목사는 이 문제에 평신도들이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가나 관심 있는 평신도들이 시민단체를 조직하는 것이 좋은 예라고 말하는 이 목사는 과거사 청산 문제는 끈질기고 뚝심 있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과연 한국 교회가 과거사 청산을 통해 새롭게 거듭날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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