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청산위원회 발족, 각 대학으로 확산…언론, 패륜행위 '일축'

일본 우익 잡지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글을 기고해 파문을 일으킨 전(前) 고려대 명예교수 한승조씨. 그의 망언이 촉발시킨, 친일 잔재를 청산하자는 바람이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통과로 인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그리고 이 회오리의 중심에는 대학생들이 있다.

   
▲ '고려대학교 일제잔재청산위원회'가 3월 28일 2시 고려대 인촌 김성수 동상 앞에서 10명의 친일인물 명단을 발표했다. ⓒ뉴스앤조이 김동언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지난 3월11일 기자회견을 열어 '고려대 일제잔재청산위원회'를 발족했다. 잇달아 3월18일에는 연세대학교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가 친일 청산을 외치며 일어났고, 닷새 후에는 서울대학교 미대학생회와 동아리연합회가, 3월25일에는 이화여자대학교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가 각각 기자회견을 열어 친일잔재청산위원회를 발족했다.

고려대, 김성수 등 친일 명단 발표

고려대 총학생회의 경우, 학생대표 10명으로 구성된 청산위원회가 지난 3월28일 1차로 학내 친일 인사 10명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자료에는 김성수(고려대 설립자) 유진오(고려대 2~4대 총장) 등 친일 단체에 몸담았거나 친일 발언을 한 사실이 있는 총장·교수·교우회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 고려대는 한승조씨 망언이 도화선이 되어 총학생회가 나섰지만, 연세대 총학생회는 같은 날(3월28일) 기자회견을 열어 "백낙준 동상을 철거하자는 얘기는 일부 학생들의 감정적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화여대는 총학생회가 빌미를 제공한 경우이다. 총학생회가 만든 학생 수첩에 초대 총장인 김활란 사진과 어록이 '이화인의 뿌리 찾기'라는 이름으로 오른 것이다. 이에 이화여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는 김활란의 친일 행적에 관한 의견을 묻는 공개 질의서를 3월 21일, 23일에 걸쳐 총학생회에 보냈으나 성실한 답변을 얻지 못하였다.

   
▲ 이화여대 친일청산 기자회견이 3월 25일 12시 김활란 동상앞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서울대의 경우, 김민수 교수(미대)의 6년 반에 걸친 복직 투쟁을 끝내고 첫 수업을 한 3월8일에 김 교수가 친일 문제를 제기했던 장발(미대 초대학장)의 호를 딴 '우석홀'을 개관했다. 이에 대해 미대학생회 등 학내 9개 단체가 친일 인물 명단을 발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연세대, "동상 철거는 여론몰이"

이와 관련해 각 언론은 고려대 김성수, 연세대 백낙준, 서울대 장발, 이화여대 김활란 등 학내의 상징적 인물의 동상철거 여부에 관심을 두었다. 하지만 현재 동상 철거는 구호만 나오는 실정이다. 이화여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장유진 위원장(철학과 4년)은 "학교측에서 김활란 동상을 철거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직접 철거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겠는가"라고 대답했다.

이와는 반대로 연세대 총학생회는 동상 철거를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 3월28일 친일 청산 관련 기자회견에서 윤한울 총학생회장(정치외교학과 4년)은 "한 인물의 동상을 철거하는 것은 막연한 반일 감정을 토대로 한 여론몰이에 지나지 않는다"며 "백낙준(초대 총장) 동상 앞에 공적과 과오를 명시한 게시판을 설치할 것"을 주장했다.

유병문 고려대 총학생회장(산업공학과 4년)도 같은 날 2시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성수 동상 철거는 일부 학생들의 주장"이라며 "4월7일 긴급 총학생회를 열어 동상 철거를 포함해 친일 청산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 57% "청산위원회 몰라요"

그러나 학내에서의 이러한 움직임을 일반 학생들은 잘 모르고 있는 형편이다. 학생들에게 적극 홍보하기보다는 학생 대표들이 언론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 중심으로 운동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9~30일 유뉴스가 고려대·연세대·서울대·이화여대 학생 8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6.5%가 학내에서 친일청산위원회를 만들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설문조사 결과, 70%가 넘는 학생들이 친일 청산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친일한 사실이 있더라도 공로를 인정해 평가해야 한다'는 공과론(功過論)에 대해서도 52.2%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 고려대 총학생회를 비롯 각 대학 대표단이 3월30일 오후 1시 일본대사관 앞에서 '친일 청산 대학생운동본부' 건설을 제안했다.ⓒ뉴스앤조이 신철민
한편 고려대 등 전국 7개 대학 학생 대표들은 지난 4월4일 지역별로 '친일 청산 운동본부'를 결성해 4월5일부터 9일, 19일, 30일에 대규모 집회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1천만 명 서명운동과 일본상품 불매운동도 벌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따라서 친일청산운동은 학생 상호간 토론을 통한 활발한 논의보다 일부 학생들의 과격한 투쟁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부 언론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조선일보>는 3월28일자 사설에서 '제자가 스승을 고발하는 대학의 친일 청산'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을 낳은 부모를 제 손으로 심판하는 정치권의 기막힌 행태가 이제 대학가에서 제자가 스승을 고발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며 친일청산운동을 패륜 행위로 몰아가고 있다. <동아일보>는 연세대 총학생회의 기자회견을 언급하면서 '친일 청산 굿판 거부한 연세대 학생회'라는 사설(3월31일자)을 통해 진화 작업에 나섰다.

사회적 시선 곱지만은 않아

해방 60년 만에 대학가에서 불고 있는 친일청산 바람이 더욱 거세게 일어날 것인지, 아니면 패륜 행위로 몰려 일부 과격한 주장으로 매도당할 것인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여전히 친일 청산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난 대학생들의 움직임에 대해 각계의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일 청산은 수십 년간 누려온 유무형의 이익을 포기할 수 있는지에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학생들은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교수들이나 각 영역에 지도층으로 들어간 기성세대의 경우, 친일 청산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특히 친일 인사의 공로를 인정하는 것은 한편으로 그들 자신이 수혜자였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것밖에는 안된다. 일본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정부에 주문하고 독도 지키기에 열 올리기 전에 일제의 왜곡된 유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모습부터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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