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대립 퇴색... 기독학생 사회참여 인식 눈떠

2005년 3월, 대학가에는 꽃이 핀다. 약 33만 명에 달하는 대학 신입생들이 캠퍼스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 부정시험과 일부 교사들의 내신 조작 등 해 마다 불거지던 입시 문제는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대학가는 새 단장을 하고, 신입생들은 밀려 들어왔다.

신입생들 때문에 덩달아 바빠지는 것은 교직원 만이 아니다. 기독 대학생들과 학생선교단체 간사들도 3월이 가장 바쁘다. 이화여대, 성균관대, 한국외대, 서울대 등 서울지역의 10여 개 대학은 올해도 각 학교의 기독학생연합회(기연) 주최로 '기독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기독 OT)을 시행했다. 80-90년대에는 주로 총학생회가 담당하던 행사였으나, 요즘은 기독 학생들끼리 오리엔테이션을 갖는 경우가 많아졌다. 반면에 학교 단위의 행사에서는 학생들 모으기가 쉽지 않다.

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우선 대학의 기본 구성 단위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학과' 단위가 아니라 '학부' 단위로 모집을 함으로써 과거에는 20-30명 혹은 많아야 50명 선이었던 학과 단위의 교제권이 사라지고, 200-500명까지 이르는 대형 학부로 입학해서 학원 강의 듣듯이 A반, B반 등으로 수업을 듣는다. 1-2학년 과정을 마칠 무렵 전공을 선택하게 되는데, 인기학과로 몰리는 학생이 많아서 또 한번의 미니 입시경쟁을 치르기도 한다.

서울대의 경우, 2004년 초 인문대학의 전공 결정시 300명 가운데 180여명이 영문과와 중문과를 지원했고, 나머지 120명이 14개 학과에 나누어 지원했다. 최종적으로 어떤 학과는 1명, 어떤 학과는 3명의 학생만 들어와 학과간의 인기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이화여대도 비슷하게 몇 년간 인문학부의 중국어 전공 지원자가 전체 320명 가운데 200명에 이를 정도가 되어 2004년 일학기부터는 지원자의 점수 순으로 잘라 학과간 정원을 조정한 사례가 있다. 학부제는 애초 취지대로 학제간의 폭넓은 공부를 장려하기 보다 학과간 서열화를 조장하는 애물단지로 쉽게 전락하였다.

여기에 날로 가열되는 취업경쟁으로 인해 도서관에는 토익(TOEIC)이나 토플(TOEFL)을 공부하는 영어책 아니면, 사시.행시.교원임용고시를 비롯한 각종 고시책으로 가득 한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요즘은 남학생들의 군입대 휴학 외에도 해외 어학연수로 휴학하는 사례가 굉장히 많아졌다. 학과공부 외에 대학생활을 구성하는 중요한 한 축인 동아리 활동에서도 과거의 학술-이념 동아리는 거의 퇴색했고, 실용적 목적과 개인적 취향에 따라 다양화 되고 있다. 학생들의 관심이 다양화하고, 예전과 같은 남성중심적 풍토가 사라져가는 것은 긍정적이다. 서울대의 경우, 총학생회장 선거에 여학생 후보 두 팀이 각축을 벌여서 최초의 여성 학생회장을 배출했다. 서울대 기연은 내리 3년째 여학생이 대표를 맡고 있는데 이렇게 여성 리더십이 부각되는 것은 이제 별스럽지도 않은 풍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기독학생들이 설 자리

대학가의 변화가 눈부신 가운데, 기독학생들은 비교적 느린 템포로 살아가고 있다. 학생선교단체의 대학선교 패러다임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전도와 양육의 방법론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부분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목소리들은 90년대 중반부터 일찍이 터져 나왔으나, 그에 대한 대응은 한참 늦은 감이 있다.

그 동안 대학선교를 보수와 진보의 양측으로 분류해서 보던 시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진보측에 해당하는 학생운동이 거의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한 학교의 회원수가 한 자리수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는 의미 있는 운동을 하기가 힘든 상황이 되었다. 보수적 그룹에 해당하는 이들은 주로 복음주의 학생선교단체의 회원들인데, 이들이 앞으로 과거의 진보측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복음의 사회적 실천과제를 어떻게 수용해내는지에 따라 분화하면서 차별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학생선교단체는 전국적 조직과 간사인력, 후원구조 등을 갖고 있어서 안정적인 활동이 가능했던 반면, 대학가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 자주 지적되었다.

반면에 9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한 기연은 대학생들의 자발적 연합운동으로 주목할 만하다. 느슨하나마 일년에 두 번 정도 학생대표들이 만날 수 있는 전국적 네트워크도 있고, 학원복음화협의회 같은 연합기구가 이를 후원함으로써 부족한 활동역량이 보완되고 있다. 97년 연세대 총학생회에 기독학생들이 당선된 이래 해마다 주요 대학에서 기독학생들이 총학생회에 도전하거나, 당선되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아직은 학과나 단과대학 단위의 하부구조가 취약해서 연임을 하는 사례는 없었고, 주로 비운동권 학생들과 전략적 연대를 통해 당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편으로는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상층부 권력을 쥐겠다는 과욕으로 비판 받을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대학가의 탈이념화 상황 속에서 복음주의적 배경의 학생들이 과거와 달리 정치나 사회적 책임의 필요성을 체득할 수 있는 장이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외에 아직 그다지 대중 조직화 되지는 않았지만 기독학생들 가운데서 정치사회적 이슈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 흐름과 직접 결합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반전평화, 통일, 환경, 여성문제 등을 다루는가 하면 직접 정당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사회 참여도 원론보다 각론, 이론보다 실천을 먼저 경험하면서 거꾸로 자신의 입장을 세워나가는 경향이 엿보인다. 2005년 대학가의 판도는 이런 지형도 위에서 펼쳐진다. 기독학생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로드맵을 제시할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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