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게를 되찾아야 한다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찌어다.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 5:1~2).

1. 설교가 목회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목회자에게나 설교는 중차대한 무게의 사역이다. 한국의 목회자들은 주일설교 외에도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그리고 모든 교회 내 모임에서 간략히 드리는 예배순서에서도 빠지지 않고 설교를 한다. 그러다보니 한 주일에 10번 이상 서로 다른 내용으로 설교해야 하는 경우도 빈번히 생긴다. 서구 교회의 목회자들은 이런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사역량을 들으면 놀란다. 대체로 주일 설교 외에 부담이 그리 크지도 않거니와, 부목회자나 평신도 설교자가 있는 경우 번갈아 가면서 설교하기 때문에 한편 한편의 설교에 상당한 시간과 공을 쏟아 부을 수 있다. 연구하고, 준비한 흔적이 역력히 느껴지는 설교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2. 한국 목회자들은 설교의 양 자체가 질리도록 많다보니, 질적 수준을 관리하는 문제에서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설교를 위한 자료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해 진다. 설교 요지를 제공하는 서비스, 목회자의 설교를 다루는 잡지는 출판계가 불황이라도 버텨낸다. 예화를 주제별로 정리해 놓은 데이터베이스를 구하는 신학생들도 적지 않다. 가끔씩 신학교에는 자료광이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에서 긁어모은 엄청난 양의 자료를 보면서뿌듯한 자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3. 문제는 정보의 양(糧)이 아니라, 질(質)이고, 이를 가공하는 방식에 있다. 가장 나쁜 경우는 설교의 표절이다. 지방의 한 교회 목사는 서울의 유명한 교회 목사의 설교를 거의 그대로 자신의 것 인양 설교 해오다가 귀 밝은 교인들에게 들통이 났다. 본문의 분석이나 구성이야 참고를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예화를 마치 자신이 직접 겪은 이야기인 것처럼 전한 부분은 목회자로서 심각한 신뢰의 문제를 야기했다. 그는 결국 그 교회를 떠나야 했다.

4. 설교의 감동을 증가시키기 위해 예화나 사실관계를 마음대로 가공하는 경우도 있다. 80년대 말 학생운동을 하다가 큰 회심을 경험한 자기 교회 대학생의 사례를 예화로 사용했던 한 목사는 그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하느라 원래는 있지도 않은 세부 사실을 덧붙여서 설교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으나, 정작 그 자리에 있었던 당사자는 자신의 이야기가 하나의 소설로 각색되는 것을 보면서 쓴웃음을 짓고 자리를 떴다. 은혜와 감동이란 명목아래 사실관계가 뒤바뀌거나 미화되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인가.

5. 목회자의 말이 액면가대로 받아들여지기보다, 평가절하되는 경향은 무심히 봐 넘길 사안이 아니다. 흔히 일반 언론에서도 불교스님들의 말은 한 구절 한 구절 새겨가며 의미부여를 하는 반면, 목사의 말은 요약정리 하는 식으로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말의 무게를 달리 받아들이는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침묵수행은 과거 수도원 전통에서도 중요한 영성훈련으로 받아들여진다. 오늘날 교회는 말의 홍수를 만났으나, '홍수에 먹을 물이 없다'는 경구가 실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한국교회는 어떻게 목회자의 말의 무게를 되찾아 올 것인가.    

6. 말은 인간 상호간의 소통수단이다. 그러나, 목사의 말은, 특히 설교는 두 세계를 동시에 향하여 던져지는 말이다. 사람들을 향하면서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된 인간이 발하는 떨리는 음성이다. 말의 액면가가 떨어졌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떨림이 모자라기에 발생하는 현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말을 많이 함으로써 해소될 문제가 아니라, 말을 적게 함으로, 아니 오직 말을 삼감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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