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라칭어 추기경이 교황(베네딕트 16세)으로 선출되었다. 서거한 요한 바오로 2세의 최측근으로 이미 그의 장례식을 집전하여 세계인의 눈에 익숙한 그를, 이번에 가톨릭이 새 교황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여러 모로 예견된 것이었다. 남미나 아프리카 출신의 교황이 탄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일부 있었으나, 그러기에는 이번에 가톨릭이 맛본 인기(?)가 너무도 강력한 것이어서 그것을 이어나갈 계승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4월18일자 <타임>은 새 교황의 자격으로 '스타성(star quality)'을 우선 꼽았다. 바티칸은 전임자 요한 바오로 2세의 대중적 인기를 지속시키려 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분쟁 지역마다 찾아가 평화를 호소했고, 과거 가톨릭 교회의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그런가 하면 사회윤리적 문제나 교리 해석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여 중심축을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권위 없는 시대에 권위를 확보하는 법을 보여주었다. 

새 교황은 전임자의 최측근이었다. 따라서 베네딕트 16세가 보여줄 행보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보수적 교리 해석을 통해 가톨릭 교회의 단결을 호소하고, 분쟁에 적극 개입해 평화를 주창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 즉 전임자의 대중적 인기를 후광삼아 기왕에 잡은 세계인의 이목을 지속적으로 감동시킬 것이다. 종교적이기는 거부하지만 여전히 영적 해갈을 호소하는 현대인에게는 이번에 일어난 일련의 거대한 종교적 상징 체계의 매혹은 매우 강렬한 것이었으리라. 

근대인이 더 이상 종교적 신비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 머리를 믿기 시작하면서 종교는 급격하게 힘을 잃었다. 후기 근대에 이르러 종교에 부여되었던 일말의 권위조차 해체당할 위기를 맞이했으나, 최근 윤리적이거나 영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사람들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확실한 보증을 얻기 원한다. 이에 가톨릭의 접근 방식은 주효했다. 신앙적 보수성, 그러면서도 사회적 사안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의 표명(다만 표명!), 흔들리는 현대인에게 그만큼 확실해 보이면서 안정적인 행동 양식은 없을 것이다.

신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교황의 존재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개신교인들은 혹시 이번 교황의 서거와 선출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무시하거나 외면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대 종교가 어떻게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를 살피는 일에 유익한 사건이었다. 솔직히 최근 개신교의 난장판을 생각하면, 저 동네처럼 한 사람 똑똑하게 내세워 일렬로 줄서기하는 것이 사회적 영향력 확보에 있어서는 유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신앙적 보수와 사회적 진보, 그 사이

   
▲성석환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신앙적 보수와 사회적 진보, 그것도 보수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회적 진보를 흉내내는 한국 개신교의 수많은 안정지향 세력이 선택할 방식은 바티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득권을 공고히 하면서도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욕망, 자기 혁신은 없으면서 대외적 이미지만 개선하려는 정치세력화은 어설픈 자기 포장에 불과하다. 이제 속 보이는 구호나 연대는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

<복음과상황>은 이른바 복음주의권 지성인(!)들이 보는 잡지이기에, 우선 복음주의자임을 자처하시는 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이다. 이제는 복음주의니 무슨 '주의'니 하는 말에 연연하지 말고, 세력화 내지는 향방 없는 결집에 손을 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신앙적 보수를 고수하면서 사회적 진보를 향하는 길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 길이 만약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주류 콤플렉스'의 발현이라면 차라리 바티칸을 배우라. 교황을 대중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는 그들의 세련됨을 배운다면, 혹시 한국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하시라! 사람들은 망가진 한국 교회와 그대들을 구분하지 않음을.

성석환 / 목사 · 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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