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제공동체 설립자 로제 수사 사망 / 수만 명 청년들과 함께 호흡한 생애 기려

   
▲ 빈민가의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로제 수사는 인도나 브라질의 아이들을 떼제 공동체로 데려와 함께 생활했다. ⓒAteliers et Presses de Taize
프랑스의 떼제공동체(Taize Community) 설립자인 로제(Roger) 수사(90)가 지난 8월16일 저녁기도회 중 정신질환자로 알려진 여인의 칼에 찔려 사망했다. 장례식은 8월23일 있었고, 그의 시신은 떼제공동체 내의 교회에 안치되어 많은 추모객들이 다녀가고 있다. 온라인 상으로도 추모의 사연을 남기고 있다.(www.taize.fr)

전후 유럽을 구원할 공동체의 소망

로제 루이 슈츠-마르소(Roger Louis Schutz-Marsauche)는 1915년 5월12일 스위스 프로방스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샤를 슈츠(Chrales Schutz)는 개신교 목사로 일찍 신학공부를 시작해 베를린, 파리를 거쳐 스위스로 온 인물이다. 어머니 역시 프랑스 출신으로 개신교 집안에서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였던 로제는 특히 유럽사회가 끊임없는 분쟁 가운데 놓여있던 역사의 한복판을 통과하면서 인류의 평화, 특히 신구교로 나뉜 기독인들의 화해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는 특히 로잔과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 루터가 종교개혁 이전에 가졌던 내적 고뇌에 접하게 되고, 기독학생회 활동을 통해 젊은이들과 폭넓게 교류하였다. 그리고 수도원 전통과의 만남을 통해 전적으로 기도와 묵상에 바쳐진 삶을 꿈꾸면서 공동체의 구상을 심화시켜 나갔다.

1940년 가을 로제는 전쟁으로 황폐화 된 프랑스로 들어가 떼제(Taize)란 작은 동네에 정착했다. 그는 거기서 나찌 독일의 박해를 피해 피난하던 유대인들을 숨겨주었고, 전쟁 후에는 독일군 포로들을 돌보았다. 이 일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1949년에는 수도공동체가 설립되었다. 개신교인들 중심으로 시작된 이 공동체는 곧 가톨릭 신자들이 참여하면서 신구교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곳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공동체는 그 이후부터 공동생활, 독신, 단순한 생활을 서원한 종신 수사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수십 개국 출신으로 이루어진 이 공동체는 그러나 웃음과 배려가 있는 소박한 공동체이기도 하다.

화해를 위한 열린 공동체

   
▲ 80년대 중후반 공동체운동과 경배와찬양운동을 하던 그룹을 통해 떼제 공동체가 한국에 알려졌다. ⓒAteliers et Presses de Taize
떼제 공동체는 매주 세계로부터 찾아오는 방문자들을 맞이한다. 어떤 때는 6천 명이나 몰려오기도 한다. 떼제 공동체 주변에는 텐트와 침낭을 들고 찾아오는 젊은이들을 쉴 새 없이 만날 수 있다. 이들은 한 주간 단위로 준비된 공동체의 예배와 생활 과정에 참여한다. 하루 세 번의 기도회와 성경연구와 토론이 있고, 나머지 시간은 주로 개인의 묵상을 위해 사용된다. '화해의 교회'라고 불리는 전체가 예배드리는 공간과 공동체 주변의 오래된 교회는 개인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늘 열려있다.

떼제의 예배는 단순하다. 라틴어와 여러 언어로 불리는 독특한 떼제 찬양들을 반복해서 부르고, 여러 나라 말로 성경을 낭송한다. 그리고 기도가 드려지고, 침묵의 시간이 있다. 붉은 휘장과 작은 촛불, 단순하지만 성스러운 찬양 속에서 30분 남짓 진행되는 예배에 젊은이들은 먼 길을 찾아와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한국의 개신교권에 이 공동체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서였다. 80년대 중반 신학교를 중심으로 공동체운동을 하는 이들이 먼저 서구교회의 전통 안에서 수도공동체이되 현실세계와 유리되지 않고 젊은층과 호흡하는 사례로 주목하였다. 그러나 떼제 공동체를 소개할 만한 책이나 자료가 주로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었기에 폭넓은 관심을 얻지 못하는 가운데 있었다.

그후 80년대 후반부터 폭발적으로 확장되던 경배와찬양운동에서 떼제의 찬양을 부르고, '침묵기도' 훈련을 소개하면서 대중적으로 이 공동체의 존재가 알려졌다. 스위스의 라브리 공동체나 독일의 부르더호프 공동체 등과 더불어 유럽 배낭여행 때 들를만한 곳으로 알려지기까지 했다. 현재 떼제에는 한국인 수사가 있고, 국내에는 1979년 가톨릭 김수환 추기경의 초청으로 떼제의 형제들이 들어와 사역을 하고 있다.

청년과 함께 하는 '신뢰의 순례'

떼제 공동체의 가장 널리 알려진 사역은 '신뢰의 순례'(Pilgrimage of Trust on Earth)이다. 이것은 세계의 도시를 순회하며 매년 연말에서 1월1일까지 4~5일간 일정으로 열리는 젊은이들의 모임으로 그동안 파리(2002), 리스본(2004년) 등지에서 개최되었고, 금년 말 제28회 행사는 12월28일부터 1월 1일까지 밀라노에서 열릴 예정이다.

로제 수사는 신뢰의 순례가 필요한 이유를 2004년 리스본 모임 때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가 지금 온 대륙의 젊은이들과 함께 신뢰의 순례를 해 나가는 것은 평화가 얼마나 시급히 필요한지를 자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음의 물음에 답하려고 노력할 때 평화를 이룩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사는 곳에서 신뢰를 간직하고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이해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순례에는 보통 수만 명이 운집하는데, 그 도시의 가정에서 민박을 하거나, 텐트를 치고 지내면서 매일 정해진 시간의 전체 예배와 다양한 워크숍을 갖는다. 무신론의 땅이 되어버렸다고들 하는 유럽의 대도시에서 수천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운집하는 행사가 열리는 것은 경이롭다. 로제 수사는 매년 이 때를 즈음하여 '떼제 편지'를 쓴다. 평화, 화해를 중심으로 서너 페이지 남짓한 분량으로 쓰여 지는 이 글은 5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한 해 동안 떼제 공동체와 세계 각지의 떼제 모임에서 묵상자료로 사용된다.

평화와 화해를 위한 절실한 몸짓

그는 개신교인이지만 교황 요한23세의 초청으로 제2차 바티칸 회의에 참석했고, 가톨릭과 친밀한 관계 가운데 지내왔다. 테레사 수녀가 유럽에 왔을 때 떼제 공동체를 찾은 적 있고, 영국 성공회 대주교가 방문하기도 했다. 가톨릭이 강한 프랑스에서 신구교를 잇는 그의 존재는 매우 독특한 것이다.

그는 특히 빈곤 문제와 아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는데, 떼제 공동체는 실제로 인도의 빈민가, 브라질의 길거리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매일 기도회 시간이면 종신서원을 한 떼제의 수사들이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는 가운데 로제 수사가 아이들과 함께 맨 나중에 입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 세계에 만연한 불의와 아픔을 위한 기도에 늘 이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한 상징으로 이 아이들은 떼제의 한 식구가 되어 있다.

이제 떼제 공동체는 그 설립자의 예기치 않은 충격적 죽음으로 슬픔 가운데 있다. 그러나 공동체의 사역은 이미 로제 수사가 8년 전에 지명한 알로(Alois) 수사를 통해 이어지게 된다. 전쟁과 살육의 시대였던 20세기를 온 몸으로 통과해 온 한 영혼의 순례자가 숨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 앞에 한 원로 수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주님의 친구들의 죽음은 주님이 보시기에 너무나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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