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몇 살 때 체력장 연습을 하는데 100미터를 달리는 나를 향해 담임 선생님의 뜨거운 꾸중이 운동장을 쩡 하고 울리며 날아왔다. “장난하냐!” 분명 나는 힘껏 달리고 있었는데…. 낯 뜨거웠지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두고두고 생각났다. 학교 다니던 내내 그토록 의미 없이 삼키던 것들(과목들)의 가치를 어렴풋이 깨닫게 한 실마리가 된 사건이고 유일한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면 좋은 학벌이 세상살이에서 유리한 출발점에 서게 한다는 인생관과 초년시절의 점수 비중 높은 과목의 학습 기반이 부실하면 좋은 학벌을 보장하기 힘들다는 경험에 부모님과 대부분 선생님의 암묵적 공감과 공조가 있었다. 다른 인생관으로 살 건지, 다수 기성의 경험을 존중할 건지 선택한 적 없이 이끌리다 거기에서 헤어 나와 일단 원점에 서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김수연 (기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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