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연 아름다운마을 수련실장 (사진제공 기독청년아카데미)
“그런 거 모르고 살면 좋겠다. 넌, 공부해라.” 유년 시절 바느질 숙제를 하다가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다. 학교숙제라고 해도 더 듣지 않으셨다. 근데 정말 ‘그런’ 숙제는 잘 못 해도 성적에서 손해 본 적 없고 학교생활에 암초가 되지 않았다. 운동회는 내게 지옥이었다. 열심히 안 해도 뭐라는 사람 없다가 동네방네 손님 초대해 종일 체육을 하니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손바닥 같은 운동장 안에서 뱅뱅 도망 다녔던 것 같다. 일 년에 그날 하루 괴로운 것 빼고는 달리기 못해도 국․영․수 잘 하면 학교에서 떳떳했고 선생님께 인정받고 친구들과도 별 어려움 없었다. ‘수학’은 ‘실과’나 ‘체육’과는 엄연히 급이 다른 것을 그때쯤 이미 안 것 같다.

열 몇 살 때 체력장 연습을 하는데 100미터를 달리는 나를 향해 담임 선생님의 뜨거운 꾸중이 운동장을 쩡 하고 울리며 날아왔다. “장난하냐!” 분명 나는 힘껏 달리고 있었는데…. 낯 뜨거웠지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두고두고 생각났다. 학교 다니던 내내 그토록 의미 없이 삼키던 것들(과목들)의 가치를 어렴풋이 깨닫게 한 실마리가 된 사건이고 유일한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면 좋은 학벌이 세상살이에서 유리한 출발점에 서게 한다는 인생관과 초년시절의 점수 비중 높은 과목의 학습 기반이 부실하면 좋은 학벌을 보장하기 힘들다는 경험에 부모님과 대부분 선생님의 암묵적 공감과 공조가 있었다. 다른 인생관으로 살 건지, 다수 기성의 경험을 존중할 건지 선택한 적 없이 이끌리다 거기에서 헤어 나와 일단 원점에 서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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