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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노동 시대와 그리스도인
[237호 특집 출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라면 가게 사장 <4천 원 인생>을 읽다
[237호] 2010년 06월 25일 (금) 15:33:39 조영권 youngkcho2001@yahoo.co.kr

목회자로 교회에서 사역했던 나는 현재 라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다. 라면 가게를 운영하던 교회 동생의 도움을 받아 기술을 전수받고 라면 장사에 뛰어들었다. 인생을 진공 상태에서 살 수 없듯 생명을 유지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성스러운 미션에 참여하면서 다른 선택권을 주장하지 않고 이 길을 택했다. 정크 푸드라고 생각해 가능하면 먹지 않았던 라면, 아이들을 혼내서라도 먹이지 않으려 했던 라면을, 이제는 한 그릇이라도 더 팔려고 맛을 고민하고 있다. 

가게를 연 후 맥도널드 햄버거와 스타벅스 커피는 내 돈을 내고 사 먹어 본 적이 없다.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영적인 은혜가 넘쳤지만 재정적인 은혜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반 3개월은 발바닥이 아파서 걷기가 힘들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9시 15분쯤 퇴근할 때까지, 노동이 기도라는 마음으로 주방을 수도원이라고 생각하며 수도사의 밥상을 차렸지만 손은 자꾸 갈라지고 허리의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에 아르바이트생 한 명을 3시간 동안 고용한다. 그리고 힘들게 일을 시킨다.

힘든 사장, 더 힘든 노동자

자본주의를 깊숙이 해부한 것으로 일부가 인정하는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이윤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한다. 투자한 것에 비해 돈 벌기가 어려워진다. 현대 그룹을 일군 고 정주영 회장이 처음 사업하던 시절처럼, 쌀 집 하나 내서 떼돈을 벌던 시대는 지나갔다. 강남이 막 개발되기 시작하던 때처럼 갈빗집, 자장면집 하나로 한몫 잡던 시대도 지나갔다.

이젠 모두가 작은 이윤을 놓고 남들 보다 더 투자하는 것으로 승부를 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필수적인 것 하나가 있다. 노동 관리다. 스스로 노동 시간을 최대한 연장하든지 아니면 피고용인들의 노동력을 쥐어짜 내 감소하는 이윤을 상승시켜야 한다. 영업은 늘 해야 한다. 식당을 내고 30일 영업을 하지 않으면, 놀토(휴일인 토요일을 이르는 신조어. 두 번째, 네 번째 토요일이다)에 쉬고, 일요일은 안식일이니 교회 간다며 쉬고, 각종 공휴일에도 쉬는 것은 자멸의 길이다. 엄청난 금액의 월세는 영업을 하든 안 하든 꼬박꼬박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장은 노동자에게 임금을 선심 쓰며 충분히 주어서는 안 된다. 최저 생계비 선상에서 기본급을 정해야 합리적인 관리를 하는 게 사장이다. 일단 고용을 했으면 최대한 써먹어야 한다. 재료와 기계는 그 양과 사양대로만 쓸 수 있지만 사람은 쥐어짜면 짤수록 계속 나온다. 병들어 아플 때까지는 계속 압박할 수 있다.

그러한 노동자의 현실을 체험으로 묘사한 책이 <4천 원 인생>이다. 시사 주간지 <한겨레 21>의 기자 4명이 각기 다른 노동 현장에 한 달간 취업해서 일한 경험과 얻은 정보를 노동자의 시각에서 써냈다. 2009년 9월에서 12월까지 ‘노동OTL’이라는 기획 연재 기사로 <한겨레21>에 실렸던 내용을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기자 정신을 발휘해 고된 노동 현실에 맞짱을 뜬 그들은 피곤의 쓴맛을 토로한다. 임지선 기자는 갈빗집에서 일한 지 열흘째 되는 날 입안이 헐고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였다고 고백한다. 굳은살이 박이기는 마트에서 하루 종일 양념 불고기를 판매한 안수찬 기자의 발바닥도 마찬가지다. 가구 공단에 취직한 전종휘 기자는 팔에 힘이 빠져 나르던 합판을 내동댕이치더니, 타카를 잘못 쏴 엄지손가락에  25mm짜리 타카핀이 박히는 사고를 당한다. 임인택 기자는 파견 노동자들이 하루를 못 버티고 나가떨어지는 석유난로 제조 공장에서 하루 종일 내려다보고 작업하며 자신의 머리 무게를 원망하는 엽기적인 시간을 경험한다. 사람이 적든 많든, 목표량을 달성해낼 때까지 공장 컨베이어 벨트는 돌아간다. 노동 OTL!!!

노동 OTL! 비정규직은 더 힘들다

네 명의 기자가 한 일은 모두 다르지만 이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목격한다. 식당 아주머니들의 세계, 마트 정육 코너 직원들, 가구 공단 이주 노동자들, 공장 생산직 노동자 세계 모두 비정규직의 불안정성이 자리 잡고 있다. 고용의 불안! <88만 원 세대> 저자 박권일은 이 책을 추천하는 글에서 ‘비정규 노동’을 ‘불안 노동’이라고 바꾸어 쓴다. 안정성이 없는 노동자들의 삶은 책의 곳곳에서 배어난다. 최저 생계비 선상에서 야근을 끊임없이 하면 130~150만 원의 수입을 올리지만 잔업이 줄면 83만 3180원이 찍히는 월급 통장을 바라보아야 하는 40대 여성 가장. 야근을 하면 160~170만 원의 수입이지만 밤 시간을 포기하지 않으면 130만 원을 받는 20대 청년에 이르기 까지, 먹고사는 데만 올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들, 아니 우리의 모습을 그린다. 자녀의 대학 등록금 440만 원을 만들기 위해 하루에 8시간 137.5일을 노동해야 하는 부모들이 우리 주변에서 살아간다.

첫 번째 이야기를 풀어 놓은 임지선 기자. 그가 첫 번째 직장인 갈빗집을 떠나 옮긴 곳은 감자탕집. 시급 3571원이다. 그의 부적응은 퇴근 시간에 나타난다. 초보 종업원답게 하루 열두 시간을 일한 후 혈당이 부족해 집에 가는 발걸음을 옮기기가 힘들다. 단 것이 먹고 싶어 사먹은 플레인 요구르트의 가격은 4800원이다. 식당 종업원이 먹기에는 지나치게 고급스런 아이템이다. 피로를 풀기 위해 휴일에 사우나에 간 비용은 7000원. 후회가 밀려온다. 고급 사우나에 가서는 안 된다. 목욕탕에 가든지 집에서 씻어야 한다. 목욕 후 햄버거가 당겨 먹은 ‘버거킹 와퍼’ 매운 맛은 하나에 5300원, 세트 메뉴로 시키면 6900원이다. 식당에서 잔뼈가 굵은 아줌마들은 상상도 못할 소비다. ‘벌기는 어렵고 쓰기는 쉽다’(54p).

노동 관리 3단계?

현대 자본주의는 인력을 3단계로 구분하여 관리한다. 첫째, 소수의 노동자에게만 정규직이라는 면허를 주고 사장에게 협력하게 한다. 둘째, 때에 맞추어 고용했다가 손쉽게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을 만든다. 셋째, 유휴 인력으로 남겨진 실업자가 있다. 실업자가 없으면 임금이 한정 없이 올라가서 적정 이윤을 창출할 수 없다. 그러니 노동자들을 쉽게 실업자로 만들었다 손쉽게 고용하기를 반복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저항하면 해고하고 삶이 불안해서 참는 자들에게는 고강도의 노동을 시킨다.

한국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이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은 자본주의 순항의 결과이자,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의 완성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다. 사실상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대다수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고용을 유연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비정규직 고용 불안의 확대는 노동조합의 무력화, 노동 강도 강화, 통제의 강화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대안을 묻다

책을 읽다 보니 후반부에 독자 대표와 네 기자들의 대담이 실려 있었다. <한겨례 21> 연재 기사를 읽은 많은 독자들이 기자들을 향해 노동자들의 대안은 무엇이냐고 물었던 것 같다. 먹고사는 것이 힘든 비정규직에게 정치는 대안이 아니다. 안수찬 기자가 마트에서 만난 노동자 중 한 명은 제대 후 투표한 기억이 없다. 다른 노동자는 어차피 일하느라 투표하러 갈 시간도 없다고 한다. 기자의 판단에 의하면 ‘정치가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들은 한번도 한 적이 없다’(133p). 대학원까지 나온 기자 형님이 그들에게는 더욱 손에 와닿는 인생의 대안이란다. 그 정도일까?

행복의 조건과 교회 공동체

독자라고 해서 노동 현장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까. 공중의 나는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보호하시는 예수를 생명의 주인으로 받아들인 나는 어떠한가. 이 책을 읽은 독자가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대안을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물을 것이다. 생산직 노동을 체험하면서 ‘나는 아침이 두려운 9번 기계였다’고 표현한 임인택 기자가 공장 노동자이자 독거 노총각으로서 한 달간 생활하며 정한 ‘행복의 조건’ 5가지가 있다.

1. 화‧목요일은 무조건 야간 잔업을 빠진다.
2. 일주일에 한 차례 과일과 고기를 사 먹는다.
3. 주방과 욕실이 딸린 집에서 산다.
4. 한 달에 한 차례 연극이나 영화를 본다.
5. 한 달에 한 차례 도서관과 수영장에 간다.

참 소박하다. 내가 생각해도 이 정도는 돼야 정상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영성과 체력을 관리하고 상식과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을 확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이 있다.

이 대목에서 즐거운 생각을 해 본다. 우리가 생각해 볼 대상의 범위를 좁혀 나와 내 주위로 한정해 보자. 만약에 교회가 정말 공동체로서 작동한다면 이 정도 삶의 조건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탱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수요 예배에 함께 참석하고 주중에 하루쯤 저녁 시간에 서로 교제할 수 있도록 과감히 빠져 나오는 게 불가능한 일일까. 잔업을 100% 채워야 확보되는 생활비 중 일부를 서로의 돌봄과 품앗이로 채우는 것은 꿈같은 일인가. 화폐로 가능한 생활의 일부를 공동체의 힘으로 극복해 보는 것이다. 교회가 한 달에 한번 문화생활을 지원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도서관도 함께 만들 수 있다. 수영장이 안 되면 자전거라도 타러 갈 수 있지 않은가. 예배를 준비하듯 행복의 한 요소를 가꿀 수 있다.

우리 시대 노동 현실을 제대로 알려 주는 <4천 원 인생>을 권한다. 그러나 현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먹고사는 게 참 힘들다’는 깊은 한숨으로 연결되는 것은 반대한다. ‘먹고사니즘’은 우리의 영혼을 파괴한다. 대안은 그리스도와 성령의 공동체란 이름으로 이미 우리 가운데 있다. 누군가는 비약이 지나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소박하고 즐거운 상상이 더욱 필요한 때다.

조영권 youngkcho2001@yahoo.co.kr

조영권 님은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라면파티2를 운영하고 있다. 나들목교회에서 2008년까지 전임사역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홍은 가정교회 목자로 섬긴다. 가정교회 식구들과 지역 공동체를 세우는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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