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호 이슈 기획] WCC 총회를 보는 세 개의 눈_WCC 총회 ‘참여자’의 고언

WCC 총회 ‘참여자’로서 던지는 고민과 질문
나는 NCCK와 WCC에 대해 여전히 기대를 품는 사람이다. 에큐메니컬 정신과 연대 활동을 통한 변화의 한 걸음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나의 글은 이런 전제에서 시작된다.

그럼 이제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WCC 10차 부산 총회를 유치하고 기획하여 준비하는 한국교회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는 마태오의 복음서 6장 21절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가장 큰 관심사에 우선적으로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인다. 그러니 현재 부산 총회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 어디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한국교회의 관심사를 눈치 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보고 느끼기에 부산 총회의 준비는 물론 앞으로의 진행 과정도, 수고하는 이들의 노력이나 기대하며 참여하는 이들의 애정과는 별개로 많은 고민거리를 갖게 한다.

이런 고민은 WCC 부산 총회를 반대하기 위해 자신들을 ‘의인’이나 ‘남은 자’인 것처럼 자처하는 입장과 다르다. 그들이 WCC를 ‘배교 집단’으로 매도하며 반대하기 위해 동원하고 있는 왜곡과 불안, 공포 마케팅의 저열함과는 분명히 입장을 달리 한다. 그들은 세계 기독교회의 대다수가 참여하고 있는 WCC의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고민과 갈등의 오래되고 깊은 맥락을 살펴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순결한 무지’로 무장한 일부 신자들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신학적 입장과 신앙으로 포장된 이해관계를 강화하고 구축하는 데 더 집중하는 것 같다.

나는 그들과는 다른 질문과 고민으로 부산 총회를 바라보며 ‘참여’하고 있다. 현재 부산 총회를 주도하는 교단들은, NCCK는 물론 한국 기독교에서 나름 진보이거나 개혁적인 신학과 신앙고백을 지향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들이 모여 준비하고 있는 부산 총회가 그런 가치 지향에 걸맞게 준비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첫째, 부산 총회는 그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 교회의 존립 근거인 선교적 정신과 태도를 잘 유지하고 있는가?

둘째, 부산 총회에 동원되는 수사(修辭)를 살펴보면, 이번 총회가 한국교회의 자부심을 위해 화려하게 준비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화려한 만큼 세심한가? 세심한 만큼 배려하고 있는가? 배려하는 만큼 스스로 청빈하게 운영하는가?

셋째, 교회와 사회의 소수자로서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빼앗긴 자로 존재해 온 어린이, 청소년, 청년이나 젊은 신자들이 있다. 이들의 목소리와 현실을 나누고 대안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넷째, 대다수 세계 교회에서 문제가 되는 성소수자(LGBT)를 비롯한 새로운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고민을 나누는 자리와 기회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다섯째, 7년에 한 번 만나 단순히 세계 기독교가 이 정도의 세(勢)가 있음을 과시하는 보여주기 행사가 아니라면, 새로운 7년을 맞이하기 위해 세계 기독교 간, 작게는 한국 기독교 간 협업(co-working)이 가능한 장으로 준비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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