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호 거꾸로 읽는 성경] 사무엘상 9:1-25을 중심으로

딕셔너리닷컴(Dictionary.com)에 따르면 ‘비극적 영웅’은 보통 성품이 좋다. 재앙을 당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우발적인 판단이나 실수가 외적 상황과 맞물려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결과로 되돌아온다.1) 이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사울은 구약 성경에서 가장 비극적인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사울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특히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의 삶이 오늘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너무나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성경은 절대로 사울을 단순한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즉 사울은 철저히 나쁘기만 한 인물이 아니다. 그의 생애를 모티브로 한 소설 《캐스터브리지의 읍장》에 등장하는 주인공 헨처드처럼 사울은 선과 악, 영웅성과 비열함을 모두 가진 인물이다. 독자들은 사울의 선하고 영웅적인 모습을 보면서 그가 조금 더 분발해주기를 응원하다가도, 그의 믿음 없고 비열한 모습에서 죄인의 씁쓸한 밑바닥을 목격한다.

앞으로 필자는 비극적 영웅, 사울의 인생 여정을 추적하려 한다. 첫 시간인 오늘은 왕이 되기 전 사울의 이야기다. 그 무렵의 그를 ‘청년’ 사울로 부를 수 있는데, 사무엘서 저자는 그를 처음 소개하는 문맥에서 “준수한 소년”이라고 사울을 칭한다(삼상 9:2). 하지만 왕 되기 전의 사울에 대한 사료는 많지 않다. 유일한 사료는 사무엘상 9장과 여기저기 분산된 몇몇 성경 구절이다. 따라서 성경 본문 정독과 당시 상황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청년 사울의 모습을 유추해 가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왕 되기 이전의 사울이 어떤 성품의 소유자였으며, 어떤 삶의 고민을 품고 살아갔는지 등을 알게 될 것이다.
 
착하고 잘생긴, 순수했던 청년사울 (삼상 9:1-4)
사울의 기본 인적 사항부터 알아보자. 그는 베냐민 지파 사람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베냐민 지파의 마드리 가문에 속한 사람이다(10:21). 아버지는 “기스”라 불리는 자였고, 성경은 그를 “유력자”라고 소개한다(9:1). 사울의 아버지가 유력자로 불린 이유는 그가 마을(기브아)을 창립한 기브온의 후손이었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다2). 마을 창립자의 직계 후손이었던 기스는 비교적 넓은 토지를 유업으로 받아, 농업으로 부를 축적한 재력가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사울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당시의 첨단 농업 경영을 배웠을 것이다. 이런 배경은 사울로 하여금 날마다 생계를 걱정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 즉 마을과 사회, 나아가 민족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잠시 후 살펴볼 본문의 후반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사울이 기브아에 거주했다는 사실도 청년 사울의 성품과 비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청년 사울과 관련해 이 마을이 중요한 이유는 당시 그곳에 블레셋군의 주둔지가 있었기 때문이다(삼상 10:5). 기브아는 본디 이스라엘 영토임에도 블레셋 군인들이 점령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울은 날마다 블레셋인들의 약탈과 억압을 목도하면서 하나님의 언약 민족에 대한 가슴 아픈 묵상을 이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사무엘상 4:12에 등장하는 “베냐민 사람”이 사울이었다는 유대 랍비들의 해석이 옳다면, 사울이 과거 블레셋과의 전쟁에도 참여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블레셋 군인들이 자신의 마을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바라만 보아야 했던 청년 사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어떤 측면에서 기브아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있었던 서울의 용산과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일제 총독부 건물을 바라보면서 민족의 운명을 아파했던 조선의 애국 청년들처럼, 사울도 기브아에 설치된 블레셋 군인들의 영문을 바라보면서 언약 민족의 미래에 대한 가슴 아픈 기도를 이어갔을 것이다.

한편 사무엘서 저자는 청년 사울을 소개하면서 그의 외모를 비교적 자세히 적는다. “(사울은)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삼상 9:2) 사울이 앞으로 민족을 블레셋인의 손에서 구원할 지도자가 될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실제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고대 사회에서도 지도자의 외모는 그의 자질을 가리는 중요한 척도였다. 따라서 훤칠한 키와 준수한 외모는 사울에 대한 긍정적 지표로 작용한다.

사무엘상 9:3~5을 보면, 사울은 마음씨까지 착한 청년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속된 말로 부유한 아버지, 잘 난 외모에, 마음까지 착했던 것이다. 그의 선한 마음씨는 아버지에 대한 순종적 태도에서 예증된다.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사울에게 암나귀를 찾으라고 명했을 때, 사울은 두말없이 순종한다. 그리고 베냐민 지역과 에브라임 지역을 두루 다니며 성실히 임무를 감당한다. 이는 당시 지도자들의 아들과 크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예물을 도적질했고, 성전에서 일하는 여인들과 동침했다(삼상 2:12-16, 22). 사무엘의 두 아들도 아버지와 달리, 뇌물을 받아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삼상 8:2-3). 엘리와 사무엘의 아들들은 모두 아버지의 가르침에 불순종했다. 반면 사울은 순종한 아들이었을 뿐 아니라 자신보다 아버지를 염려할 줄 아는 마음도 지닌 듯하다. 도망간 암나귀를 찾아 헤맨 지 3일째 되던 때, 이제는 아버지가 걱정하실까 염려하여 집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한다.

이처럼 청년 사울은 거의 모든 면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자질을 충분히 갖춘 자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논의한 사울에 관한 긍정적인 지표들은, 부정적인 지표들과 혼재되어 있다. 사울의 비극적 결말을 잘 아는 성경 저자는 그의 미래를 암시하는 세 가지 힌트도 본문에 심어 놓았다.

첫째, 사무엘상 1:1에서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베냐민 지파 사람임을 두 번씩이나 강조한다. 사사 시대 말의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영적 혼돈과 도덕적 타락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되었다. 특히 기브아(사울의 고향)에 살던 베냐민 사람들은 동족 형제를, 그것도 레위인의 첩을 윤간하고 살해한 자들이었다. 혹독한 대가를 치룬 후에도 그들의 나쁜 평판은 여전히 당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사울이 이런 베냐민 지파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분명 부정적 요소다. 사울이 대권에 꿈이 있었다면 더욱 그렇다. 베냐민 출신의 왕은 미래가 그리 밝은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둘째, 잘생긴 외모와 큰 키도 사울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 암시가 될 수 있다. 우선 사울의 큰 키로 번역된 히브리어 가보아(g?b?a?)는 한나의 찬양시(삼상 2:1-10)에서 “교만”으로 번역되고(3절), 그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로 언급된다. 사울의 외모도 이후의 이야기에서 인간의 그릇된 선택과 연관되어 언급된다. 외모를 보는 인간들은 사울 혹은 사울과 같은 자(삼상 16:6-7 참조)를 왕으로 선택하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키 작고 볼품없던 다윗을 왕으로 예선하신다(삼상 16:1). 이처럼 사울의 잘 생긴 외모와 큰 키는 고대 사회에서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이상적인 자질 중 하나를 형성하지만, 이후 이야기 전개에서 사울의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는 문학적 복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5~10절에 기록된 사울과 사환 사이의 대화도 사울의 리더십에 대한 부정적 암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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