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호 커버스토리]

I. 다시 묻는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에드워드 핼리트 카(Edward H.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이면서 과거와 미래의 대화라고 규정한다. 역사가는 과거의 사실로부터 일련의 교훈을 도출하는데 그 근거가 이상적 미래사회에 대한 선이해라고 말한다. 미래사회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전망을 가질 때 과거의 사료(史料)로부터 의미심장한 교훈이 도출된다는 말이다. 카에 따르면,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현재에 비추어 과거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고, 과거에 비추어 현재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며,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위한 교훈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5장 “역사의 진보”에서 카는, 역사 서술에 있어서 과거에 대한 어떤 건설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신비주의나 냉소주의에 빠지게 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김택현 역, 165쪽). 카는 여기서 역사의 의미는 종말론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관철되는 것이라고 믿으며 역사의 의미가 내세관 같은 데 있다고 믿는 기독교역사가(니콜라이 베르자예프, 라인홀드 니이버, 아놀드 토인비 등)들을 신비주의자로 힐난하는 한편, 역사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으며 원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건들의 연속이라고 믿는 역사냉소주의자도 비판한다. 특히 예수님의 재림을 통한 역사의 완성을 너무 신봉한 나머지 역사 진보의 중간단계를 설정하지 않고 종말론적인 태도만 견지하는 기독교역사관에 대한 카의 비판은 서구 기독교유신론의 역사관 이해가 얼마나 빈곤한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물론 카의 기독교역사관 이해는 불충분하고 정확하지도 않으나 그동안 주류적, 타계주의적 기독교역사관의 불철저한 역사의식을 질타하는 목소리로 귀 기울일 만하다. 카는 기독교-유대역사관이 목적론이긴 하지만 충분히 역사내적인 진보목표를 제공하지 못해 종말론적인 신비주의로 흘러갔다고 비판하면서, 역사 진보의 목표를 역사내적인 현실목표로 설정하는 소위 세속적인 의미의 목적론적 역사관을 주창한다. 카는 5장 말미에서 역사내적인 진보의 목적을 설정한 기독교역사가 알렉시스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의 견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토크빌은 신학적인 역사관을 견지했지만, “평등의 발전”을 역사적 진보의 기준이라고 말했다는 점에서 카의 주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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