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호 권서]

1.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개인적으로 참 굵고 드센 물살이 휩쓸고 지나갔다. 교회의 희망을 생각했고, 교회의 절망을 보았으며, 그럼에도 그 희망이 남았을까 희망하여 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권서들을 만났다. 한 달에 며칠씩 그들의 사역에 대해 보고한 글을 읽었고, 읽을 때마다 그저 보고서 문체에 갇힌 ‘사람’의 실종이 안타까워 막막해 하거나 때로는 짜증을 부렸다. 디테일한 지식의 부족 탓이지만 그 앙상한 지식의 뼈대만 가지고 100년을 거슬러 올라 그들의 마음에 내 마음을 포개어 보려고 무던히도 몸부림했고, 마음의 아귀가 맞지 않아 삐거덕거릴 때마다 그 시대의 편린들을 찾아 오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보면 겨우 마음 한 조각이 겹쳐지는 순간이 나타났다. 그 순간이 내게는 유일한 끈 같았다. 그 끈을 부여잡고 한 땀 한 땀 글을 엮었다. 무엇 하나 날렵하고 무르익은 게 없는 터라 글발은 어기적거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스물두 번의 글을 납품하듯 송고했다. 

2년이 흐른 지금, 나는 더욱 아득한 막장에 이르렀다. 내가 그린 권서들의 이야기가 어쩌면 통째로 거짓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져버렸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세계가 펼쳐졌을 가능성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그 세계가 어떠하든 서로 어긋난다는 사실만으로 이 스물두 편의 글은 쓰레기가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픽션일지라도 진실을 담아낸다면 더욱 가치 있는 글이다. 그러나 픽션과 팩트를 겸한 ‘팩션’의 틀에 담은 글이면서 사실도 진실도 담아내지 못했다면 이것이야말로 쓰레기일 것이다. 어쩔 것인가? 나는 픽션의 테두리를 끌어들여 사실을 죽이고, 팩트의 조각들을 끼워 맞추느라 진실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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