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호 세상 읽기] ‘땅콩 회항’ 조현아와 박근혜 대통령

권력의 오만
힘을 가지면 그 힘을 쓰고 싶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그 힘의 가치는 달라진다. 생살여탈권을 가진 권력자가 사형수를 살려준다면 그것은 생명을 향한 권력이 된다. 링컨 대통령이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 반대는 잔인한 권력이 된다. 이런 예는 들지 않아도 너무나 많다.

권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것이 어떻게 행사되는가에 따라 살게 되는 사람과 죽게 되는 사람의 수는 많아진다. 최근 박근혜 정권 내부의 권력 암투나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된 조현아의 기내 난동사건은 모두 권력자가 자기 권력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압살한 장본인이다.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던 인물이니만큼 그 권력의 물리력은 대단히 강도가 높았다. 박정희의 부당한 정치에 맞서는 일은 그래서 목숨을 거는 일이 되었다. 인간의 목숨을 쉽게 짓밟고 죽이는 권력이었으니, 얼마나 살벌한 대통령이었는지는 되풀이할 필요도 없다. 인혁당 사건 관계자들을 모두 하루아침에 사형장으로 보내 죽인 권력자였으니, 그의 권력은 무소불위하게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 무소불위한 권력이기에 박정희는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힘이 강하면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여긴 그였기에 만사에 무리를 했고, 그 무리가 하나하나 쌓여 결국 자신을 향한 칼날이 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만하고 잔혹한 권력자일수록 자신의 권력이 영원할 것처럼 믿는다. 그러나 그 믿음이 거꾸로 함정이 되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박탈하고,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대가를 치른다. 
예수의 비유 가운데, 포도원의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까지 죽인 사건은 포도원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차지하려던 자들의 잔혹함과 죄를 보여준다.(마 21장)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자기의 힘을 과시한 일들이 자신들의 죄의 증거가 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아들까지 죽이면 모두가 벌벌 떨고 무서워 꼼짝 못할 줄 알았지만, 결국 주인은 이들을 모두 제압하고 포도원을 경작할 농부들을 교체해버리고 만다. 역사의 주도권은 이렇게 바뀌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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