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호 커버스토리] ‘1년에 한 달 가족여행’ 다니는 한슬·한결이네 가족

 

   
▲ ⓒ복음과상황 오지은

 

“Everyone needs a ‘Third Place’ to take a break.”(누구나 쉼을 위한 ‘제3의 장소’가 필요하다.)

사무실 인근에 새로 생긴 카페에 나붙은 문구다. 출퇴근길 직장인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간판을 자주 흘깃거릴 만큼 감성적으로 와닿는다. 이 문구를 살아가는 가족이 있어 인터뷰를 요청하려고 간만에 페이스북을 뒤적이니, 때를 맞춘 듯 그들은 이미 일상을 떠나 ‘제3의 장소’에 가 있었다. NGO단체에서 일하는 김종철(공익법센터 어필 대표변호사)·박진숙(에코팜므 대표) 부부와 딸 한슬(중3), 아들 한결(초5)이가 그들이다. 한 달여 간 ‘멈춤’(break)의 시간을 보낸 부부를 만난 건, 여행에서 돌아온 지 나흘 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인터뷰는 지난 2월 5일, 동교동 카페바인에서 있었다.

- 페이스북 보니, 이번 여행을 “가족여행 3탄”이라고 했던데…..
김종철(이하 김)  한슬이가 중학교 가던 해에는 온 가족이 제주도로 내려가 한 달간 지냈다. 그게 첫 한 달간 가족여행이었다. 지금 한슬이는 중3으로 더 예민한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한 달을 온전히 딸하고 같이 지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박진숙(이하 박)  이런 말 하면 남편은 싫어하겠지만, 남편이 평소 워낙 죽어라 일하는 사람이라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다. 아빠와 아이들이 심정적으로는 가깝지만, 물리적으론 같이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한 달 여행하기’ 3년차가 되니까, 그 사이에 애들이 컸다는 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크면서 여행의 질과 역동이 달라진다. 처음 제주도에서 한 달 지낼 때는 그저 어렴풋한 동지애를 느꼈던 정도라면, 이번에는 넷이 함께 공동참여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모두가 함께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 김 변호사는 자신을 “일벌레”라고 했다. 어느 정도인가?
  평소 퇴근을 해도 일을 집으로 가져가서 계속 일한다. 우리 업무 시스템이 사무실뿐 아니라 어디에서든 온라인에 접속만 하면 일을 할 수 있다. 자료들이 모두 클라우드에 있고, 의사소통은 페이스북으로 하고, 일이 진행되는 내용은 에버노트에 정리해서 올린다. 말 그대로 ‘유비쿼터스’(ubiquitous, 어디서나 가능한) 시스템이다. 내가 평소 집에 와서도 애들 재워놓고 계속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어쩌면 일중독…,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내가 말할 땐 극구 아니라더니, 자기 입으로 ‘일중독’ 인정하는 거 처음 듣는다.(웃음)
김  일중독은 일을 장악하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어필의 연구월(1개월 안식월) 제도는 일중독에 대한 일종의 해독제가 되어준다. 내가 없어도 조직이 잘 돌아갈뿐더러, 없으니까 더 잘 돌아간다.(웃음) 어필의 문화는 안식월 맞은 동료를 일에서 확실히 배제시킨다. 철저하게 쉬게 하는 것이다.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어떤 연락도 하지 않고, 업무에 대한 어떤 것도 공유하지 않는다. 온라인 접속도 모두 막아버린다. 그러다 보니 이 기간을 통해 하나님과 동료를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나 없으면 안 된다는 환상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리고 일을 자기 의도대로 끌고 가려고 하는 권력욕에서도 벗어나게 한다.

  남편은 일 자체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는 일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겨서 더 그런 것 같다. 게다가 업무의 양이 많다 보니 브레이크가 잘 안 걸린다. 과로에 대한 제동을 스스로 걸지 못하는데, 그 역할을 한 달간의 안식월이 해준다. 그런데 남편의 좋은 점은 일을 할 때 완전히 몰입해서 하다가도 쉴 때가 되면 금세 모든 걸 내려놓고 확실하게 논다는 거다. 나는 쉬고 놀면서도 한편으론 일을 걱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남편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몰입도가 높아서 놀 때는 언제 정신없이 일했냐 싶게 완전 신나게 놀고, 일할 때는 또 언제 놀았냐 싶게 일에 몰두한다.

- 박 대표는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하는 ‘심부름꾼’ 역할을 맡았다고 했다. 예약은 언제 한 건가?
  작년 9~10월에 끝냈다. 네 명이 잘 수 있는 가족룸을 잡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중요한 초기 예약이나 계획은 내가 맡았지만, 나머지 일정은 현지에서 함께 의논하면서 정했다. 일정을 바꾸거나 새로 결정할 경우, 가족회의를 통해 아이들에게도 결정권을 주고 함께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하니까 아이들이 여행의 주체로 들어온다는 점이 좋더라. 각자 자기 짐을 알아서 꾸리는 건 당연한 거고.

  현지에서 시내를 돌아다닐 때도 만날 시간과 장소만 정한 뒤 각자 움직이곤 했다. 자기들끼리 돌아다니는 걸 겁낼 줄 알았는데, 좋아하더라. 각자 알아서 쓰라고 용돈을 주면 더 좋아하고.

  적은 액수인데도 자율적으로 알아서 쓰게 하니까 좋아하더라.

  태국이나 라오스의 유명 관광지에는 관광객을 위한 이벤트가 많다. 그걸 다 따라다니는 건 힘든 일이다. 비용도 문제고. 한결이는 아웃도어 스타일이라 그런 걸 좋아하지만, 계속 할 순 없어서 관광지별로 한 번 정도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전거 빌려 타거나 도보로 동네를 한가로이 오가면서 게으르게 지냈다. 일상에서야 아이들이 늦게까지 늘어져 자고 슬리퍼 신고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 게 참기 힘든 일이지만, 거기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고 또 그렇게 해보니 좋더라. 늦게 일어나면 늦게 일어나는 대로, 쫓기지 않고 그냥 그 흐름대로 지냈다.

- 현지의 세부 일정은 사전에 계획하지 않았다는 얘긴가?
  그렇다. 여행의 전체 루트는 미리 짰지만, 세부 일정은 현지에서 결정했다.

  우리 부부나 아이들 컨디션도 고려해야 하고 소요 비용도 감안하다 보면, 세부 계획까지 짠다는 게 무리지 싶다. 현지를 막상 가보면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것들도 있고, 변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  현지의 골목이나 작은 가게들이 의외로 소소한 재미가 있다. 단체나 어르신들 여행은 주로 명소를 돌아다니는데 반해, 우리는 주로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우리 부부끼리, 아이들끼리, 부자(부녀)끼리, 모녀(모자)끼리 둘씩 짝을 지어서 돌아다니며 노는 것도 좋고, 여행 안내서에 안 나오는 맛있는 식당을 찾는 재미도 있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우리만의 여행을 만드는 거다.

- 이번 가족여행을 통해 자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게 있나?
  한슬이는 어릴 때 아토피가 있어서 내가 항상 등을 긁어줘야 잠이 들었다. 그 기억이 많이 남아 있는데, 사춘기 되고 나서는 그걸 못하게 하더라.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한번은 엄청 심하게 아토피가 올라왔다. 20시간 내내 버스를 타고 이동했을 때였는데, 한슬이가 밤에 아빠를 찾으면서 등을 긁어달라고 하더라. 등이 가려울 때마다 아빠를 찾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한결이와는 자전거가 큰 매개가 되었다. 원래 자전거를 탈 줄 몰랐는데, 자기가 5학년인데 늦게 배우는 게 창피하다면서 한국에서는 배우려들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서는 자전거를 금방 배우더라. 내가 자전거를 가르치면서 했던 말이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페달을 계속 밟아야 한다”였다. 그런데 웬만큼 잘 타게 되자, 이번에는 “자전거를 잘 타게 되면 브레이크를 잘 밟는 것, 안전하게 멈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주었다. 당시 그 말이 우리 여행이나 일상과 연결되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외부 활동을 좋아하는 한결이와 달리, 나는 차분히 걸어다니면서 아기자기한 것들, 예를 들면 수공예품 같은 걸 구경하기 좋아한다. 그런데 한결이하고 둘이서 여행지 시내를 그러고 다니니까 금세 울상이 되더라. 원래 그런 줄은 알았지만 이번 여행에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 3일째 되던 날, 왕복 30킬로미터 되는 비포장 길을 일반 자전거를 타고 갔다. 목적지가 폭포였는데, 거기는 기어가 달린 MTB 자전거로만 다니는 길이었다. 헬멧도 창피하다고 해서 안 쓰고, 그냥 보통 자전거를 끌고 둘이 갔는데 말 그대로 모험이었다. 산을 세 개나 넘어야 하는 그 길을 오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나가는 차량이나 라이더들 사이에서 한결이를 에스코트하는 것밖에 없었다. 기어 없는 자전거를 끌고 온 사람은 우리 둘밖에 없었고, 길이 얼마나 험하던지 타이어가 펑크 나서 몇 킬로미터는 그냥 걸어서 끌고 왔다. 그런 역경을 함께했다는 게 뿌듯하고 가슴이 벅차오른 시간이었다.

  가족 안에도 눈에 보이는 경계들이 있지 않나. 아빠가 사춘기 딸의 등을 긁어주는 건 일반적이지는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엄마가 아니라 굳이 아빠를 불렀다는 건, 유년기의 마음이, 그때의 우정이 살아난 게 아닌가 싶더라. 여행이 아니면 아이들과 아빠가 그렇게 밀도 있게 서로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그걸 보면서 나도 ‘한슬이 아빠’ 같은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거기서 아이들에게 아빠 점수를 물었더니, 99점 이상이라고 답하더라. 그런데 정작 엄마의 남편으로서는 그보다 더 낮은 점수를 매겼다.(웃음) 또 여행 중간에 내 생일이 있었는데, 한슬이가 카드에 “1년에 한 달 여행을 같이 다녀줘서 고마워. 내가 크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라고 썼다. 이런 표현을 한 건 처음이다. 덤덤하게 넘어갔지만 속으로는 엄청 감동 받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이 어려움을 더 잘 이겨내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프로드로 강행군을 한 한결이도 그렇고, 20시간 버스를 타면서 온몸에 전에 본 적 없는 두드러기가 나고 고열에 시달린 한슬이도 마찬가지다. 숙소비용을 줄이려고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이동할 때 버스를 이용했는데, ‘슬리핑 버스’라기에 침대도 있고 와이파이도 되고 화장실까지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현지인들은 바닥 짐칸에 타고 그나마 관광객들은 의자에 앉아 가는데 언제 빨았는지도 모를 담요를 덮으라고 주는 것이었다. 그 담요에 진드기가 있어 그랬는지, 아니면 장시간 이동의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심각한 전신 두드러기에다 고열이 나고 변비에도 시달렸다. 속으로 걱정이 돼서, 여행 괜히 왔다는 생각 안 드냐고 물어봤다. 근데 전혀 아니라는 거다. 속으로 많이 놀랐다.

아이들을 믿는다 하면서도 내가 항상 조급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그때 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달란트를 찾고 개발하고 꽃피우겠지 하고 생각하는 한편, 지금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 시간이 무의미하게 그냥 지나가버릴 거라는 조급함이 있었던 거다. 그러니까 부모로서 불안하고, 그 불안이 아이들에게 잔소리나 화로 표출되곤 한다. 나보다 훨씬 아이들을 믿어주는 아내와 달리, 나의 조급증은 여전히 숙제다. 이 조급증이 어디서 오는 건지, 아마 일에 몰두하느라 평소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닐지…. 한 달 동안 날마다 옆에 붙어서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까 조급증이 확 줄더라. 아이들을 가끔 보면 어떤 점이 자랐는지 잘 안 보이지만, 오래 함께 있으니 긍정적인 점들을 많이 발견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게 보였다. 그런 점에서 긴 시간 함께하는 여행이 좋았다.

- 여행은 누구나 바라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쉽사리 실행하지 못한다. 우선 한 달간의 여행에 드는 비용이 그렇고, 아이들의 공부도 고민거리 아닌가.
  한 달 여행 간다니까, 친정엄마도 ‘애들 학원은 어쩌고 여행 가냐’ 하시더라.(웃음) 원래 학원을 거의 안 보내지만, 방학 때는 더 안 보낸다. 쉬어야 하는 시간이잖나. 한슬이는 지가 보내달래서 수학학원 하나 보내고, 한결이는 검도장 다닌다. 줄인 사교육비를 여행 경비에 보태서 항공료와 숙박비 등 전체 비용의 50%만 모으면, 나머지 50%는 4인 가족 한 달 생활비를 여행 기간 동안 쓴다고 보면 된다. 이번 여행의 경우, 내가 쓴 책에서 나온 인세로 항공료와 숙박비가 거의 충당이 되더라. 나머지는 우리 가족 한 달 생활비 들고 나간 거고.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그것보다 아이들이 배우는 게 100배는 더 많다. 가족 전체로도 그렇고. 교육관에 관한 이야기라 조심스러운데, 아이들에게 평생을 잘 살아갈 힘을 길러줘야 하는 게 교육 아닌가? 그런데 사교육은 대학에 잘 들어갈 수 있는 힘만 길러주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학 들어간 20살 이후엔 어떻게 살 건가? 그때도 계속 품에 안고, 주위에서 늘 맴도는 캥거루맘, 헬리콥터맘이 되어 일일이 다 챙겨줄 건가? 우리는 가족여행이 아이들에게 평생 살아갈 힘과 지혜를 길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슬·한결이네 가족여행 경비 내역
 여행지  동남아 여행(라오스, 태국 북부 등)
 인원/기간: 4명 / 30일
 항공료 : 240만 원
 숙박비:  150만 원(1박 5만원 기준/가족룸 혹은 트윈룸 2실) *부모님 3일 숙박비 포함
 식비: 약 90만 원(1일 3만원)
 교통비:  50만 원(도시 간 이동 및 시내)
 체험비:  50만 원(트레킹, 카약킹 등)
 ▶ 총비용 = 약 600만 원

※“이 정도 비용이면 중급 정도의 품위를 지키는 여행이 가능하다.”(박진숙)

- 여행 중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여행의 근육이 필요하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여행 지도도 접는 방법이 있다. 그날 여정에 해당하는 면이 바로 앞으로 오게 하고, 다른 면들, 예를 들면 가장자리의 광고면 같은 건 접어서 안쪽으로 넣어야 하는 거다. 찾아가려는 곳이 바로 눈에 딱 들어오게 접는 방식이다. 구입할 때 접힌 대로 가지고 다니면 한 번에 펼쳐서 찾기가 힘들다. 이런 것도 여행을 다니면서 터득하게 된 것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싸울 일도 많다. 과거에도 둘이 여행을 함께 다니면서 적잖이 싸웠다. 신혼여행을 배낭여행으로 갔는데, 그 아름다운 프라하에서 둘이 엄청 싸웠다.(웃음) 이번에도 웬만큼 자아가 생긴 십대 둘을 데리고 갔으니 왜 싸울 일이 없었겠나.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우리가 현지인이 아니니까 딱 맞아떨어지지 않고 틀어지는 일이 생긴다. 불평하고 원망하려고 들면 왜 건수가 없겠나. 저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고 하고 싶은 것도 다르지 않나. 그런데도 거의 싸운 일이 없다. 여행을 계획하고 예약한 사람에 대한 감사함, 함께하는 서로에 대한 고마움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그런 부분도 있다.

  처음부터 여행의 원칙을 정했다. 잔소리 하지 말자, 불평/비난하지 말자.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같이 해결해나가야지, 불평하고 비난부터 하면 전체 분위기가 꼬여서 문제 해결도 어려워진다. 여행 중에 ‘비난 모드’가 될 뻔한 적이 있는데, 금세 ‘협력 모드’로 전환되었다. 여행을 함께 다니다 보니, 불평/비난에서 협력 분위기로 전환되는 게 빨라지더라. 이런 것들이 다 여행의 근육이 붙어 그런 거 아닐까 싶다.

- 혹시 여행 중에 멈춤의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나? 쉼을 위한 여행이 피로와 스트레스를 더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여행 중에 한슬이가 몸이 많이 아팠다. 나는 놀러 나가고 싶은데 누군가 아프다면 충분히 짜증 날 수도 있는 상황 아닌가. 그때 우리는 모두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숙소가 여유 공간이 있고 좋았다. 여기서 가족여행의 팁을 하나 얘기하자면, 숙소를 잡을 때 여유 공간이 있는 곳을 고르라는 거다. 숙소 건물에 휴게실도 있고, 묵는 방에 테라스도 있어서 서로 여유를 가질 (제3의) 공간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우리는 한슬이가 아팠던 2박3일 정도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모두 쉬었다. 그렇게 일행 중 누군가 아프거나 혹은 마음이 울적해지는 경우, 모두 여행의 속도를 늦추고 그냥 가만히 숙소에서 죽 때리는 게 필요하다.

- 두 분 다 직장에 1개월 안식휴가제가 있다. 어떻게 시작된 건가?
  우리는 그것을 ‘쉼과 성장의 달’이라고 부른다. 에코팜므를 시작하고 3년 지났을 때였다. 직원들이 이 직장에 고마워하면서 일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부터 고마운 마음으로 직장생활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NGO 형편에 급여를 풍족하게 올려줄 여건은 안 되고, 휴가를 넉넉하게 가지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침 ‘어필’에서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비슷한 시기에 시작하게 되었다. 시행 초기에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나는 나대로 우리 스태프는 스태프대로 서로 ‘대표가 자리를 비우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다. 이젠 적응이 돼서 다들 편하게 받아들인다. 안식월을 하고 나니까, 정말 다들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더라. 마침 우리 스태프가 가족 병구완을 했어야 했는데, 부담없이 한 달 휴가를 썼다. 결혼할 때도 한 달 쉬기도 하고. 현재 전임 직원 세 명에게 이 제도를 적용한다.

  어필도 시행한 지 2~3년 정도 된다. 소속 변호사 4명이 모두 적용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어필을 시작할 때부터 재밌게 일해야 한다 생각했다. 난민이나 이주민 인권 같은 심각한 일을 하기에 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일에 대한 창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그 일환으로 안식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렇게 해서 한 달 안식월을 통해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자양분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사무실 전체에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

- ‘직장생활의 고마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멈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시기가 있었나?
  에코팜므를 시작하고 1년에 50회 행사를 하면서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했다. 3년을 그렇게 하니까 너무 지치더라. 스태프들도 불평을 하고, 나도 3년만에 기쁨이 사라졌다. 아이들에게도 미안했다. 바쁘긴 한데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닐까, 이렇게 올인하는 게 답이 아니구나 싶었다. 근무일수를 주5일에서 주4일로 줄이고, 대외 행사도 20회로 축소하고, 주말에도 일을 하지 않았다. 일을 줄이려 애쓰기 시작하면서, 뭘 자꾸 하기보다 하지 않는 게 대표 역할 아닐까 생각했다. TV 프로에서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행복하다”면서 전 직원을 해외여행 보내는 일본의 어느 기업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이주 여성을 돕는 일을 하는 우리가 먼저 행복해야 그들도 행복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 과정에서 한 달 휴가제를 생각했다. 그후로 스태프들 표정이 달라졌다. 전에는 희생한다는 생각에 너나없이 우울해지기도 했는데, 이젠 에코팜므가 나를 위해 애써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지금은 주3일 근무제로 전환하여(물론 급여도 조정했다), 출퇴근 시간도 없애고 체크도 하지 않는다, 주간회의가 있는 날 하루만 다같이 출근하고 다른 날은 알아서 자기가 정한 날 나오고 나머지 하루는 재택근무를 한다. 노동의 강도를 줄이고 자율성은 늘려서 만족도를 높이려 한 거다.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지만, 기독교NGO들이 먼저 일하는 방식을 일반 단체와 다르게 차별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래도 NGO에서는 줄 수 있는 게 적지 않나. 그러니 이런 제도가 있으면 일과 직장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한국은 스트레스가 높은 사회다. 다들 열심히 사는 사회라 그렇다. 그렇기에 좀 덜 열심히 살고, 덜 책임지는 삶을 살아보는 게 중요하다. 삶의 속도를 확 늦춤으로서 여유를 갖게 하고, 동료들에게 리더십과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건, 전체적으로 봐도 손해 보는 일은 아니다.

- “안식월 시행 초기엔 불안했다”고 했는데, 그게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내가 모든 일에 간여하거나 너무 몰입해서 아등바등 일하다 보면, 자신이 한 달간 자리를 비우면 일이 어떻게 굴러갈지, 역학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불안해하는 거다. 그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게 아니지 않나. 담임목회자들이 교회를 쉽게 못 비우는 것도 그런 측면이 있지 않을까? 권력은 어떤 일을 자기 의지대로 관철시키는 힘인데, 어느새 내가 하는 일 자체가 권력이 된다. 그런데 안식월은 나 자신도 모르게 권력에 중독되어가는 때에 해독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 둘 다 한 단체를 만들어서 대표를 맡고 있으니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단체는 나 없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 어느 정도 있다.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간다는 게 처음엔 서운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데 내가 없을 때 다른 스태프가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가진다. 처음엔 ‘어떻게 해요’ 하던 사람이 지금은 그런 말 안한다. 나 없어도 잘 한다.

  내가 없으니까 더 잘 돌아가더라.(웃음)

  그게 참 신기한 경험인데, 하나님께서 일하셨던 거구나 하는 확신이 생긴다. 서로 간의 신뢰도 강화된다. 확실히 내가 자릴 비워도 어떻게든 굴러간다.

- 여행을 자주 꿈꾸면서도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가정과 개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네덜란드 라브리공동체에서 간사 훈련을 받을 때, 거기 간사들이 돈을 절약하고 모아서 여행을 많이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하자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아내가 쓴 책의 인세 덕을 좀 봤다. 그런데 인세는 갈수록 줄어들 거니까 이제는 여행비를 미리 저축하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사실 안식, 여행 이런 이야기할 때 송구한 마음이 있다. 우리는 직장의 안식월 제도나 아내의 인세 수입 같은 여건이 어느 정도 따라주지만, 애당초 여건이 안 되는 분들도 있지 않나.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제도적으로 쉬게 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경의 ‘안식일’에 담긴 뜻이 바로 그것 아닌가. 가족이든 종이든 심지어 동물까지도 쉬게 하라는 것 말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 기업가나 단체 대표의 경우, 구성원들이 충분한 쉼을 누릴 수 있게 제도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확대해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한 달간 통째로 비우는 건 쉽지 않겠지만,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의 연차나 휴가를 잘 활용하면 최소 2주 이상 20일 정도는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NGO 일을 하는 우리 부부가 다른 이들에 비해 쉴 수 있는 여건이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다. 내 생각으로는 ‘가고자 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 날짜 정하고, 예산을 짜고, 전체 경비의 최소 50%를 모은 다음에는 무조건 비행기표를 예매해야 한다. 그때부터 진짜 갈 수 있는 거다. 그 다음엔 숙소 예약이다. 그럼 끝이다.

  비행기표 끊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실상 이번에 안 가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돈 걱정도 되었고. 그런데 환불 수수료를 생각하니까 그게 또 아까워서 취소할 엄두가 안 나더라. 일찌감치 표를 끊어놓고 여행에 대해 준비하고 생각하다 보니 그것 자체가 또 여행이었다.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를 미리 알아보고 공부하는 것도 여행일 텐데, 이번엔 중간쯤 하다 다 못 끝내고 갔다. 내년엔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부 여행’을 충분히 하고 갈 생각이다.
  여담이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결이는 여행안내서 맨 끝에 나오는 간편 회화 중에 “얼마예요?”하고 “비싸요” 두 문장만 외우더라. 그러더니 현지 가서 물건 값 흥정을 제일 잘했다. 아무튼 몇 달 전부터 준비하면서 예산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여행비 저축에 동참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가족 모두가 여행의 주체가 되게 하는 거다. 

문득 이 가족이 언제까지 ‘1년에 한 달 가족여행’을 계속해나갈지 궁금해졌다. 이번 여행에서 한슬 양은 “스무 살이 넘어서도 계속 같이 다닐 것”이라고 했다는데, 정작 박 대표는 “한슬이가 대학생이 되면 넷이 함께 다니긴 어렵지 않겠냐”며 “최대 4년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날 이들은 내년 가족여행을 위한 저금통부터 만들어 “동유럽 여행을 위한 저금통”이라고 써붙였다.

진행 정리_옥명호 편집장 lewisist@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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