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호 시사 프리즘]

   
▲ 사진: 박정경수 제공

민주화에 대해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직은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였던 시절에 멀리 대학가에서 우리집 창가까지 날아온 최루탄 냄새가 전부입니다. 그 불편하고 고약한 냄새가 대학생 형 누나들이 하는 데모 때문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사실 그 데모가 왜 일어났으며 최루탄이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르고 그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그 고약한 냄새가 사실 사람을 향해 발사되기도 하는 무기라는 사실도, 그 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쳤는지도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된 것이죠. 1987년 6월 9일,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대학생 이한열에게 경찰이 최루탄을 얼굴을 향해 발사했고, 결국 그 학생이 사망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그 학생의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불편했던 그 냄새가 코가 아닌 제 기억과 양심을 찔렀던 것도 아마 그 사실을 알게 되었던 그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제 최루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1998년 무최루탄 원칙을 선언했던 당시 경찰청장 이무영은 최루탄을 “과거 군사독재와 권위주의의 정부 아래서 국민의 손과 발을 묶고 입을 막아온 폭압정치의 도구이자 통제의 상징”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최루탄이 얼마나 위험한 무기인지는 우리의 경험과 기억이 모두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국내 어디에서도 독재와 억압의 도구였던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는 마당에, 이상하게도 여전히 몇 공장에서 꾸준히 최루탄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적지 않은 양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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