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호 거꾸로 읽는 성경]

‘믿음’에 대한 혼선 : 거품인가, 결핍인가
‘믿습니까?-아멘!’의 공식이 어째 이즈음 시들해진 것 같다. 예배 시간에 설교자에 의해 청중의 적극적인 반응을 유도하며 분위기를 달구던 이 상투적 표현이 점점 남세스럽거나 아니면 어색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물론 일각에서는 ‘할렐루야-아멘’의 구호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듯한 환상의 도가니가 여전히 성업을 이루고 있을 게다. 그러나 그동안 시대가 많이 변한 것만은 틀림없다. 새롭게 부상한 신세대 젊은이들은 그러한 획일적인 구호 속에 자신의 신앙적 주체성을 저당 잡히는 분위기를 은근히 불편해하는 눈치다. 21세기의 문화적 감각 속에 그처럼 군중심리에 호소하는 자기도취적 수사가 아무래도 구닥다리 취향처럼 느껴질 터이다.

이렇게 특정 구호에 응하여 거기에 기계처럼 빤한 외마디 복창으로 대꾸하는 선동적 분위기는 1970년대 이후 군부독재시대에 잘 어울렸다. 그러나 현 시대를 주도하는 집단들은 이미 민주주의의 영양을 넉넉히 취하여 내밀한 개인성의 영역을 가꾸어온 사람들이다. 믿음이란 것이 그렇게 우렁찬 구호 한마디에 화끈하게 응답한다고 단숨에 자라날 리 없고, 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고 있는 믿음이 식어버린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대체로 그 정도의 상식적 감각이 공유된다는 전제 아래, 이제 진중하게 대체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따져보는 게 좋겠다.

일각에서 믿음의 거품을 지적하는 것은 온당하다. 이른바 ‘산을 옮길 만한 믿음’(막 11:23)을 예수께서 직접 언급하신 바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합리적 상식을 취하여 자력으로 애쓰다가 이루지 못하는 것들이 죄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권능을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리라는 신앙적 거품을 조성해온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믿음의 열렬한 기대치와 실존의 남루한 응답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그것을 봉합하는 각종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의 자가당착적 결과에 민망해하거나 황당해하는 현상이 종종 발생한다.

가령 하나님을 바라고 기대하는 담대한 믿음의 승리를 더욱 열나게 부르짖다가도 그런 믿음 없이도 대단한 성공을 이루는 사람들 앞에 서면 괜스레 초라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라는 구호로써 성공 결여의 현실을 정당화해보지만 그 외면상의 당당함 이면에 자리한 초라한 현실의 지속을 인간의 욕망이 오래 견뎌내지 못한다. 대단한 성공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일상의 순탄한 갈무리와 넉넉한 삶의 조건은 누구나 당연히 바라는 바이기 때문이다.

한편 전통적인 믿음지상주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선한 자의 고통과 악인의 형통하는 삶의 현실 앞에 적절한 신정론적인 응답을 내놓기가 군색해진다. 가령, 세월호에 승선하여 익사한 많은 불쌍한 생명들 중에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 학생도 있었고 구원받아 나오던 중 선실에 갇혀 있는 친구를 구하러 되돌아갔다가 사망한 학생도 확인되었다. 이들의 기도와 결단에 작용한 믿음은 순정하고도 희생적이었지만 승리와 성공이란 결과와 무관하였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치병과 치유의 기적에 작용한다는 담대한 믿음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말기 암 상태에서 산속에 들어가 혼자 고군분투하면서 생식과 생태적인 삶의 버릇을 키우던 중에 말끔히 치료받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기도원에 들어가 오로지 믿음만 의지하며 금식 기도하다가 의사의 판정일보다 더 빨리 죽기도 한다. 물론 히스기야처럼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한 결과 불치의 병이 치유되었다는 간증도 여전히 넘쳐난다. 대체 성서의 믿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전수하였기에 이런 일관되지 못한 혼선이 생겨나는 것일까. 믿음의 기도는 무조건 응답받는 것일까. 그렇지 못한 경우는 믿음이 부족한 탓일까. 그렇다면 충분한 믿음의 분량은 어떤 수준이며, 그것을 판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각설하고 성서가 가르치는 믿음이란 게 정말 이런 종류의 것일까. 동일한 믿음의 어휘에도 다양한 맥락에 따라 그 세부적 용례가 다르다면 그 다양한 개념들은 어떻게 파악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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