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호 무브먼트 투게더2]

   
▲ 부교역자들이 체감하는 경제적 사정

왜 ‘부교역자’인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은 교회가 신앙공동체일 뿐 아니라 사회의 일원임을 강조하며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란 주제를 제기해왔다. 그에 따라 2011년에는 ‘지역공동체와 함께 하는 교회 운동’을 전개했고, 2012년에는 유엔이 정한 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협동조합 운동을 교회에 소개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했으며, 2013년에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핵에너지의 위험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교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을 찾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한편 기윤실은 몇 해 전부터 사회적 책임에 관한 국제표준인 ‘ISO 26000’을 한국교회에 접목해보려는 시도를 해왔다. ISO 26000은 기업뿐 아니라 정부, NGO, 노동조합, 비영리단체 등 사회와 환경에 영향을 주는 모든 조직에 포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지침으로, 인증이 필수는 아니지만 국제사회의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으므로 어느 정도 강제력을 갖고 있다. ISO 26000의 핵심주제는 조직 거버넌스·인권·노동 관행·환경·공정 운영 관행·소비자 이슈·지역사회 참여와 발전 등 7가지다.

성서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함”(마7:3)을 질책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교회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말씀임이 틀림없다. 기윤실이 여태껏 제기했던 ‘지역공동체’ ‘협동조합’ ‘핵에너지’ 등의 주제는 교회가 대외적으로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 영역이다. 이제는 눈을 돌려 교회 내적으로 바로잡아야 할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ISO 26000의 7가지 핵심주제 중에서 교회에 시급히 적용해야 할 것으로 인권과 노동 관행을 꼽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부턴가 교회는 시민사회로부터 인권과 노동권의 사각지대라는 눈초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상근하며 일하는 분들, 즉 교회에서 인권은 물론이고 노동권도 보장받아야 할 분들은 목사, 전도사 등 부교역자와 행정·관리·음악·방송 등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있다. 그런데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그 대상을 부교역자로 한정하기로 했다. 상대적으로 부교역자들에게 응답을 받는 것이 더 용이하기도 했고, 기이하게도 인권과 노동권 개선을 위해 접근해야 하는 방식을 두고 부교역자와 직원들 사이에 온도 차가 있었다. 이번에는 못했지만 조만간 교회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인권과 노동권 문제도 반드시 짚어 보려 한다.

한국교회 부교역자의 생활 및 사역 현황

기윤실은 2014년 12월 8일(월)부터 2015년 1월 11일(일)까지 35일 동안 전국의 개신교 교회 소속 부목사, 전도사 등 부교역자를 대상으로 온라인을 통해 '한국교회 부교역자의 생활 및 사역현황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눴는데 하나는 사례비, 주거형태, 보험가입 여부 등 생활과 관련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교회에서의 청빙, 고용, 근무, 사임 등 사역과 관련된 것이었다.

애초 응답자가 500명 정도 모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만에 500명을 넘어섰다. 무서운 속도(?)로 들어오는 응답과 그 내용들을 보면서, 그동안 부교역자들이 할 말은 참 많았는데 기회가 없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최종적으로 1,105명의 응답이 들어왔고,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949명으로 추려졌다. 

이번 설문조사는 처음으로 부교역자의 생활과 사역 현황을 조사하여 발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전국의 부목사, 전도사들 중에서 임의로 설문대상을 뽑은 것이 아니기에 조사로서는 한계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서 억울한 일을 당한 부목사, 전도사들이 집중적으로 응답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49명의 응답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며 연령·지역·직임·교단 등에 있어 한국교회의 현실을 반영할 정도의 균형을 이루었다. 요컨대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분명히 한국교회에 존재하는 현상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교회 부교역자들의 생활과 사역 현황에 관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 청빙계약서 필요 여부

1. 경제적 사정

첫째, 부교역자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교역자의 월평균 사례비는 각각 전임 부목사 204만 원, 전임 전도사 148만 원, 파트타임 전도사 78만 원이었다.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절대 넉넉하지 않을 것이다. 부교역자의 55.7%가 현재 사례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고, 64.2%는 경제적 사정이 매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부교역자들은 사택을 제공받으니 괜찮지 않으냐고? 물론 그런 경우라면 한결 경제적 부담이 덜할 것이다. 그러나 사택을 제공받거나 전·월세 비용 일체를 지원받는 경우는 전임 부목사의 57.7%, 전임 전도사의 39.1%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주거비용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파트타임 전도사의 94.6%는 주거와 관련된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는데, 마치 교회가 이들에게는 당연히 주거지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듯했다.

다음으로 교회에서 4대보험이나 목회자연금 관련 지원이나 혜택이 있는지 물었다. 소득이 적은 사람일수록 보험이 있어야 만일에 대비하고, 연금이 있어야 노후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부교역자의 73.6%는 교회에서 4대보험이나 목회자연금과 관련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4대보험의 경우 일반 직장에서는 반드시 가입하게 되어 있고 이를 어길 시 처벌을 받을 만큼 가장 기본적인 복지로 인식되고 있는데, 부교역자의 대다수는 그런 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담임목사의 사례비는 월평균 395만 원으로 전임 부목사의 사례비에 거의 2배에 가까웠다. 평균이 395만 원이라면 그보다 더 많이 받는 담임목사도 있을 것이다. 물론 직임과 역할의 차이가 있겠지만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사례비 차이가 2배 정도 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생각해볼 일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담임목사의 사례비가 얼마인지 모른다고 한 응답이 전체의 17%였고, 전임 부목사도 11.5%나 모르고 있어 ‘재정투명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2. 신분의 불안정성

둘째, 부교역자들은 사역의 불안정에 힘겨워하고 있다. 부교역자로 임명될 때 사역과 관련된 계약서를 쓴 경우는 6.3%에 불과했고, 나머지 93.7%는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아마 교회에서 일하는 데 계약서를 쓴다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분위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 부임하고 나서야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아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한 달을 일한 뒤 사례비를 받고 나서야 자신의 사례비가 얼마인지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대개 부교역자의 임기를 1년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래서인지 연말이 되면 은연중에 부교역자 중 누가 교회를 옮기지 않는지 궁금해진다. 실제로 1년 만에 교회를 옮기는 부교역자도 있고, 교회를 옮기지 않는 부교역자는 1년 더 있나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연말이 아니더라도 교회를 옮기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스스로 새로운 교회를 찾아 옮기는 경우도 있지만, 하루아침에 나가라고 통보를 받기도 한다. 부교역자의 53.4%는 스스로 사임하고 새로운 교회를 찾았다고 응답했지만, 19.5%는 갑작스럽게 통보 받았다고 했다. 부교역자의 평균 임기는 2.9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사역기간과 내용이 불안하니 부교역자가 목회자로서 소신 있게 맡은 바 일을 다하기보다는 인사권을 가진 담임목사나 당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소위 ‘튀는 부교역자’는 담임목사나 선임 부목사에게 불려가 핀잔을 듣기도 하고, 시정하지 않으면 교회를 사임하게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부교역자의 79.3%는 사역과 관련된 계약서가 있으면 좋겠고, 평균 4년 정도는 사역 기간이 보장되었으면 좋겠다고 응답했다.

3. 비인격적 대우

셋째, 부역자들은 인격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부교역자에게 자신의 삶을 주관적으로 정의해달라고 하고 그 답을 비슷한 범주로 묶어보니 ‘종, 머슴, 노예’라고 대답한 것이 10.8%로 제일 많았다. 이어서 ‘계약직, 비정규직’이라는 대답이 8.1%, ‘담임목사의 종, 하인’이라는 대답이 5.5%, ‘소모품, 부속품’이라는 대답이 5.2%였다. 긍정적인 대답은 찾기 어려웠다. 앞서 말한 바대로 이번 설문조사가 온라인을 통해 응답자를 모집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응답이 한쪽으로 크게 치우쳤을 수도 있지만 이 정도로 극단적인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 부교역자를 향한 비인격적 대우는 분명히 한국교회에 존재하고 있는 부끄럽고 가슴 아픈 현실이었다.

실제로 몇 가지 사례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큰 교회에서는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부교역자들이 담임목사 앞에서 ‘엎드려뻗쳐’를 한다는 이야기, 모 신학교에서 어느 큰 교회 담임목사가 교회 전도사인 학생이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쌍욕을 하면서 달려들어 ‘날라차기’를 했다는 이야기, 어느 교회에서 구역장 모임 출석률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구역담당 목사와 사모까지 교인들 앞에서 두 손을 들고 있으라며 벌세웠다는 이야기 등 차마 교회에서, 목사와 전도사들 사이에서 일어났을까 싶은 일들이 폭로되었다.

부교역자들에게 개선되어야 할 부분을 물었을 때 ‘담임목사의 권위적인 언행을 근절해야 한다’는 대답이 22.9%로 가장 많았고, ‘부교역자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대답이 12.8%였다. 복수응답이 가능하도록 하고 사역 향상을 위해서 필요한 조치를 묻자 ‘사례비 인상’이 67.3%, ‘전문성 향상의 기회 제공’이 63.9%, ‘목회 역할의 구체화’가 45.6% 순으로 응답했다.

사실 설문조사 결과가 그렇게 새롭거나 충격적이지 않았다. 그동안 막연히 그럴 것으로 우려했던 바가 수치로 증명된 것이다. 다시금 말하건대 이것들은 한국교회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일들이다.

앞으로 할 일들

이번 설문조사는 많은 기독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많지 않았지만 꽤 매서운 악평을 들었다. 그리고 예상컨대 수많은 부교역자들의 성원이 있었으리라!

세상 모든 문제들이 그렇겠지만, 한국교회에 존재하는 그것들도 단편적이지 않다. 부교역자의 인권과 노동권 문제 역시 잠깐 생각해봐도 수많은 사안들과 결부되어 있다. 담임목사와 일부 당회원들이 교회의 모든 권한을 사실상 독점하는 문제, 이 바닥에서 한 번 찍히면 재기가 불가능한 패거리 문화의 폐해, 담임목사가 되면 다 보상받을 수 있다는 성공주의, 목회자 후보생들의 수요와 공급 법칙이 깨져버린 문제, 도시교회와 농촌교회 그리고 대형교회와 미자립교회 사이의 극심한 빈부 격차,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기 위한 교회세습 문제 등이 그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기를 풀려다 보면 저기가 엉켜버린다. “한국교회에 부교역자를 청빙할 수 있는 교회보다 그렇지 못한 교회가 더 많다”는 볼멘소리가 가슴 아프게 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어 그 틈을 벌려야 할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우선 기윤실이 늘 잘하는 ‘가이드북’을 제작해 배포하려고 한다. 한국교회에 부교역자의 생활 및 사역환경을 개선하는 데 관심이 있지만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였던 교회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는다. 가이드북이 교회 안에서 그러한 논의를 시작하게 만드는 부싯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청빙계약서 표준안’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압도적으로 많은 부교역자들이 청빙계약서를 쓰지 않고 있으나, 대다수의 부교역자들이 그것을 원하고 있다. 청빙계약서를 만들어 기윤실 후원교회들부터 선언적으로 작성하고 한국교회에 동참을 부탁한다면 머지않아 좋은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무엇보다 기득권을 내려놓는 담임목사들의 동참을 기대한다. 아무리 담임목사가 교회를 대표하여 많은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전임 부목사보다 두 배 이상의 사례비를 받는 것은 청빈의 삶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다행히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기득권 포기를 주장하고 실천하는 젊은 담임목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또 알다시피 부양가족의 수에 따라 사례비를 책정하는 등 대안을 실행하는 교회들도 이미 있다.

이것은 왜 안 된단 말인가?

부교역자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기윤실의 존재 목적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하고 당분간 매달리려 하는 것은, 그리고 이번에는 못했지만 교회사무 직원들의 인권과 노동권 문제도 반드시 제기하려는 이유는 이것이 현대사회의 일원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이며, 타협할 수 없는 ‘상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발 문제 제기에 그치지 말고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는 어느 응답자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왜 안 된단 말인가?

구태여 덧붙이자면, 이번 설문조사를 진행하면서 동료 기독활동가들로부터 “부교역자라는 말 대신 기독활동가를 넣으면 딱 우리 이야기다”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들었다. 어쩌면 인권과 노동권 문제가 한국 개신교계 곳곳에 광범위하게 번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성서의 질책 앞에 또 한 번 쑥스러워진다.

박제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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