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호 시사 프리즘]

   
▲ 2007년 우리은행 개성공단 지점에서 은행 업무를 보고 있는 필자(오른쪽). 왼쪽은 북한 직원. (사진: 윤환철 제공)

이상하지 않은가? 서로를 ‘제재’한다면서 두들겨 패는 대상이 같다니. 개성공단은 남북한 어느 한 쪽에 묶어두기 어려운 제3의 정체성, 남북의 작은 ‘통합체’를 형성해가고 있었다. 굳이 ‘기능주의 통합론’(경제협력이 정치·사회적 통합으로 확산된다는 이론)을 들고나오지 않더라도, 남북한을 통합하려 한다면 당연히 한솥밥을 먹는 연습을 해야 하고, 그 확장판이 통일 상황이다. 여타의 남북관계는 북측 간부들이나 특권층을 피상적으로 만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공단은 매일 5만3천여 노동자들과 우리 측 중소기업인들이 일과와 목표를 공유하는 장이었고, 그 이면에 남북의 부양가족과 납품업체까지 생각하면 통합의 심도는 훨씬 큰 것이었다.

‘개성공업지구’는 2000년 8월 협의를 시작한 이래 우여곡절 끝에 2007년부터 운영에 들어갔고 남북이 포격을 주고받는 전쟁 상황에서도 용케 살아남았었다. 남북 경협의 ‘옥동자’로 불리기도 했지만, 형편은 부모에게 학대받는 사생아 같았다. 70년을 넘기고도 서슬이 퍼런 적대관계의 그늘 아래서 함께 기업을 꾸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북측 노동자와 남측의 관리자들이 마음을 맞추고 생산성을 높이기까지 내부의 남북갈등을 넘어서야 했고, 외부의 남북갈등으로 애먼 펀치를 십여 년간 얻어맞아야 했다.

처절하게 생존해 온 남북 통합의 시금석이자 첫 ‘통합체’의 숨통을 또 다시 박근혜 정권이 끊어버렸다. 그 자체로도 충격이었지만, 내세운 이유도 납득할 수 없었다. ‘제재’도 말이 안 되고 핵개발 비용도 말이 안 된다. 제재라면 상대방이 괴로워서 행동을 교정해야 하는데 그럴 이유가 없고, 핵은 공단 이전부터 개발해 오던 터 아닌가. 박근혜정권의 지난 시간들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정부 내에서도 반대의견이 ‘묵살됐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1차 피해자인 경영자들은 ‘정부가 미쳤다’고 했을까. 분석가들은 이면의 ‘한미동맹’을 지목하는데, 그건 더 심각한 주권 문제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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