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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배당’은 기본소득의 싹입니다
[304호 사람과 상황] 불평등 해소 나선 ‘흙수저 정당’ 녹색당 하승수 공동대표
[304호] 2016년 03월 02일 (수) 11:10:00 오지은 기자 ohjieun317@goscon.co.kr
   
▲ ⓒ복음과상황 이범진

2년 전 복상에서 커버스토리로 다뤘던 ‘기본소득’은 국내에서도 더 이상 낯선 의제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걸었다가 축소 시행 중인 중앙정부의 기초노령연금 건에 이어 성남시가 1월 20일부터 실험적으로 시작한 청년배당 정책은 그 대표적 예다.

성남시는 3년 이상 거주한 만 19~24세 청년을 대상으로 연 100만 원 어치의 지역화폐 혹은 전자화폐를 지급할 계획이고, 올해 우선적으로 만 24세 청년 1만1천3백 명에게 당초 계획의 절반인 50만 원을 분기별로 12만5천 원씩 지급한다. 연령과 거주 조건만 만족하면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지자치 단위 기본소득인 셈이다. 최근엔 국내 IT 기업가인 다음(Daum) 창업자 이재웅 씨가 트위터에 미국 벤처캐피탈 회사가 기본소득 연구를 지원하는 사례를 설명하며 미래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유일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을 꼽고, 기본소득을 당론으로 채택해온 녹색당을 언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확실히 기본소득은 이제 일부 지식인과 활동가끼리 공유하는 개념이 아니다. 청년배당을 받은 성남시 청년들이 온·오프라인에 속속 올린 후기가 기사화되기도 했고, 한편으론 예상대로 ‘포퓰리즘 비난’이 일었다. 완전 현금으로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에서는 문제되지 않는 점이 청년배당에서는 왜 문제가 되는 걸까? 다소 선정적인 비난 발언(“현금깡”)이 매스컴을 거쳐 여당 대표 입에서까지 나왔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어쨌든 기본소득이 점차 손에 잡히는 현실이 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와 관련해 ‘기본소득 로드맵’을 갖춘 정당인 녹색당 하승수(48) 공동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본래 변호사로 시민운동을 했고, 현실 정치보다는 풀뿌리민주주의생활을 꿈꾸던 그는, 곧 있을 20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는 현업 정치인이다. 총선을 두 달 남긴 상황에서 이야기는 ‘흙수저’(원외) 정당의 눈으로 보는 국내 정치 구조의 문제로까지 나아갔다. 국회가 선거구 획정을 하지 않아 하 대표는 그때까지도 후보 등록조차 못한 채 (선거위원회 제지에) 언론 기고도 중지당한 상태였다.

― 성남시가 실시한 ‘청년배당’의 사회적 의미를 우선 묻고 싶다. 이를 두고 ‘기본소득 실험’이라고 표현하셨더라.
정치적 지지도 얻으면서 지역경제 순환에 기여하는 정책이다. 정치인인 이재명 시장이 받아들여 정책으로 실행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사람들이 좋아할 정책이지만, 새로운 시도라는 위험부담 때문에 선뜻 나서기 어려움에도 시도를 했다. 기본소득 연구를 쭉 해온 분들이 설계 과정에서 참여했다. 모델을 만들 땐 고려 사항이 많지만, 시행 자체는 간단하게 된다. 대상자에게 차별 없이 나눠주면 되니까. 기본소득을 현실정치로 끌어오는 맹아 내지는 계기 역할을 성남시가 했다. 덕분에 외국의 움직임과 맞물려서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기본소득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엔 일부 지식인과 운동가 안에서 통용되는 담론 차원이었다면 이젠 대중운동으로 가능하다. 국가 정책으로 입안할 물꼬가 트인 셈이다. 성남시가 시작한 걸 국가적인 의제로 끌어 올리는 역할을 녹색당이 해야 한다.

― 청년배당 후기가 온라인상에 꽤 많다. 시청으로 들어온 감사 편지가 기사화되기도 했다. 반신반의하던 청년들도 반응이 좋은 것 같더라.
청년들이 조건 없이 무언가를 받는 경험이 한국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조건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만 했는데, 액수는 크지 않아도 청년배당은 신선하고 중요한 경험이다. 지금 청년들 상황을 ‘수저론’이 보여주지 않나. 시작부터 불평등한 사회다. 기본소득은 인간이 모두 평등한 권리를 기본적으로 누려야 한다는 전제에서 자연 자원은 물론 인위적 자원들도 공유재에 포함하여 일정 부분 권리를 모두에게 나눠주는 개념이다. 소위 흙수저 청년들은 당장 하루 살기가 급급해서 미래를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받으면 최소한의 생존을 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이 생긴다. 모든 국민도 마찬가지다. 자존심을 팔지 않아도 된다. 

― 이미 예상했겠지만, 소위 보수 진영에서 포퓰리즘 비난이 들끓는다.
지역구 개발 공약으로 뉴타운 선전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포퓰리즘이다. 부동산 투기 심리에 편승해서 땅값 집값 올려 표만 얻으면 그만이라는, ‘나쁜 포퓰리즘.’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겨 사회를 더 나쁜 방향으로 가게 만들고 파괴한다. 기본소득이 인기영합주의일수도 있다. 돈 나눠준다 하면 다 좋아하니까. 그런데, 우리 사회 공동체를 살리는 길이라면 포퓰리즘이라도 뭐 어떤가. ‘헬조선’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한국사회는 약자는 물론이고 국민 대다수가 언제 벼랑 끝으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아간다. 인생의 가능성이 닫히고, 전환점을 찾을 수 없는 중에 기본소득이 인기를 얻는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생활자금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방증이 아닌가? 분명 나쁜 포퓰리즘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청년배당으로 지급된 성남사랑상품권이 온라인상에서 할인 거래되고 있다며 ‘현금깡’ 비난도 나왔다.
그 논리로 따지면 부정부패 사건에 단골로 등장하는 백화점 상품권부터 없애야 한다. 문화상품권을 비롯한 모든 상품권을 없애야 하지 않겠나? 더구나 그런 문제는 세상 어디에나 있다. 청년배당에 대해서만 이 부분을 비판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제대로 된 비판은 안 나오고 유치한 얘기만 나오는 것 같다. 특히나 청년들에게 공짜로 돈을 나눠주면 문제가 생긴다는 식의 전제를 깔고 반대하는 분들도 있다. 청년들을 비주체적인 존재라 가정하는 거고, 폄훼다. 기초노령연금에 대해서는 월 20만 원씩 현금 지급될 때 나오지 않았던 비판이다. 혹시 녹색당이 주장하는 월 40만 원을 받는다 쳐도, 최소한의 비빌 언덕 정도지 생활하기에 충분한 금액도 아니다. 청년들이 바보도 아니고 모두 일을 그만두진 않는다.

― 지자체가 사실상의 화폐를 발행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역시 제대로 된 비판이 아니다. 이미 성남시 외의 다른 지자체들도 상품권을 발행해왔고, 지역상품권은 그동안 지역경제를 순환시켜 살리는 방안으로 꾸준히 이야기되어 왔다. 제주도도 그렇고, 농촌지역들도 지역상품권을 활성화하려 노력해왔고, 또 필요한 일이다. 지역화폐는 지역자치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강화군도 지역주민들에게 상품권을 할인 발행하여 지역에서 사용하게 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비판을 제대로 하려면 청년배당보다 더 효과적인 정책이 무엇인지 제시하면서 토론으로 가야 한다. 근거 없는 비판들은 결국엔 자취를 감추고, 청년배당은 점차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을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게 되면 더 현실 가능한 수단을 만드는 쪽으로 가게 될 거다.

― 작년에 녹색당은 기본소득 전국 순회강연을 열었다. 기본소득 개념에 대한 시민들의 체감온도는 어떠했나?
당론으로 기본소득을 채택한 작년 3월 이후로 외부적으로 기본소득을 알리고, 당 내부에서도 정책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듣고자 노력해왔다. 기본소득이 기존의 복지, 농민운동, 장애인운동을 하는 분들의 우려를 해소하고, 우리 삶에 실질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될지 이야기해가는 과정이었다. 지금 녹색당의 기본소득 로드맵은 그분들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된 초안이다. 앞으로도 객관적 수치와 계속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갈 계획이다. 강의를 비롯해서 기본소득을 알리려는 노력을 여러 가지로 해왔는데 아주 대중적이진 않더라도 시민들의 이해도나 공감도는 꽤 높아졌다. 핀란드나 스위스 국민투표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고, 성남시 청년배당도 시작되면서 이젠 시민들도 관심을 갖는다. 녹색당사로 전화를 걸어온 어떤 분은 “거기서 기본소득 나눠주는 거냐” 묻더라. 졸업시즌에 맞춰 각 대학교 앞에서 ‘기본소득 통장’(홍보물)을 나눠주려는데, 2월 후엔 관심도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기존의 일자리 정책으론 답이 없음을 대부분 느낄 거다. IT 기업가들은 더 빨리 현실을 파악하는 편인데 다음 창업자인 이재용 씨도 기본소득을 유일한 대안으로 꼽았다. 이대로 가면 당연히 일자리는 줄고, 그 문제를 해소할 방법은 묘연하니까.

― 녹색당의 한국형 기본소득 로드맵을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재원확보가 한 번에 이뤄지기 어렵고, 사회적으로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계별로 시행하는 국가적 기본소득 모델이다. 1단계는 만 15~29세 청소년·청년, 장애인, 농민, 노인에게 먼저 지급한다. 또한 현재 기본소득이 기존의 모든 복지를 대체할 수는 없기에,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인 경우는 ‘기본소득+보충급여(부가급여)’를 받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최저임금 현실화, 주거기본권 보장, 상가임차권 보장과도 함께 가야 한다. 40~50대는 ‘나는 왜 못 받나’ 생각할 수 있지만, 자녀와 부모가 받게 되어 양육과 부양 부담이 줄면 자연스레 혜택이 돌아간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많은 문제가 풀린다. 지금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 중인 한국사회에서 40~50대의 큰 고민이 부모 부양이다.

― 1단계 시행만으로도 실제적인 체감효과가 있겠다.
그렇다. 청소년기 청년기의 최소한의 안정성이 보장되면 그 아래 연령대까지도 영향을 받는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경쟁의 압박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방임되고 있다. 부모가 어려서부터 쥐어짜서 억지 경쟁을 시키지 않아도 기초적인 생활을 보장할 수 있다는 예측이 되면, 삶이 바뀔 수 있다. 1단계 로드맵은 직간접적으로 모든 연령대에 영향을 주고, 전 연령대로 확대되면 삶이 더 바뀐다.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이미 노인 70%는 기초노령연금이라는 이름으로 받기 시작했다. 장애인, 농민은 숫적으로는 그리 많은 인구가 아님에도 현 장애인 연금이 상당히 부실한 실정인데, 실은 기본소득 관계없이 장애인과 농민에겐 이미 현금 소득이 보장됐어야 한다. 한국 정도 경제규모의 나라에서 장애인 연금이 이렇게 보장 안 되기도 참 어렵다. 또 시장 개방으로 인해 농가소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농민들은 계속 대출하고 빚만 늘어난다. 예산이 많이 책정되어도 건물 짓고 도로 닦는 식으로 집행한다. 직접적으로 농가에는 돌아가지 않는다. 아마 기본소득 1단계가 시행되고 청년들까지 받게 되면 사회 자체가 확 바뀔 거다. 그 영향은 다른 연령대에도 미쳐서 결국 보편적인 기본소득까지 갈 수 있다.

― 과연 정치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
원래 세상의 큰 변화라는 게 안 될 것 같은 일을 되게 만든 역사 아닌가. 필요하고 가능하면 되게 만들어야 한다. 기본소득은 철학적 정당성을 담보하는 주제로, 모든 공유재와 심지어 우리의 소득 역시도 사회공동체가 있음으로 가능한 것으로 본다. 그러니 많이 버는 사람은 그만큼 세금도 많이 내야 하는 게 의무고, 모든 사회 구성원은 이런 공유재에 대한 일종의 배당을 받을 권리가 있다. 경제학자들도 실현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치적 실현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나 한국의 정치 구조에서. 되게 만들어야지, 자연과학적 가능성을 논할 건 아닌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점점 패배주의, 냉소주의가 강해져서 담론도 왜소화된다. 결국 꿈을 잃는 게 문제다. 기본소득이 꿈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다른 정당에서 기본소득 의제를 받아 실현하려고 한다면?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다른 당들도 받으면 좋겠다. 다만, 어떤 철학을 갖고 설계하느냐에 따라 정책으로 나오는 모양새는 달라질 수밖에 없기에 녹색당의 기본소득과는 차이가 생기지 않을까. 녹색당은 생태적인 관점에서 ‘불평등 완화’를 원칙으로 한다. 그러니 투기적인 소득, 생태파괴 행위에 대한 과세, 부유층의 탈세에 대해 세금을 제대로 걷어서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는 안을 갖고 있다. 반면 어떤 당은 간편하게 간접세 올려서 정책을 추진하자고 할 수도 있다. 이건 실제로 유럽에서 나오는 주장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이란 보편적인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가치와 철학에 따라 실행은 다양한 그림으로 나올 수 있다. 어쨌든 다른 정당들이 기본소득을 받아들인다면 제대로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을까 한다. 녹색당이 상당한 정치적 세를 얻으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 한국 정치에서 “녹색당이 정치적 세를 얻으면” 뭐가 달라지나?
현 대한민국 국회는 힘의 균형면에서 간단히 말하면 양당제 혹은 유사양당제 모양새다. 이런 정당 구조는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는 것을 차단한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자리만 다투는 ‘권력정치’만 무한반복 된다. 곧 시민들의 혐오와 무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다양한 정당이 경쟁하는 정치구조인 유럽의 스위스, 핀란드는 직접 민주주의가 강화되는 추세다. 직접 참여를 보장하지 않고는 유권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니까. 시민들이 서명해서 다양한 법안을 내고, 국민투표까지도 간다. 시민 참여를 보장하면서 더 다양한 의제가 사회에서 논의된다. 결국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길은 다양한 정치 세력이 대의제 안에서 경쟁하고, 그러면서 점차 직접 민주주의가 강화되는 데 있다. 이런 맥락에서 1987년 이후 한국 정치가 지체 현상을 빚는 것은 다당제 구조, 즉 정치적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득권정당 경쟁 구조가 지속되는 동안 새로운 가치나 정책을 이야기할 틈이 없었고, 정치는 다뤄야 할 의제를 못 다뤘으며, 시민들의 정치 참여와 관심도 점점 사라졌다. 변하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지 않아도 권력을 장악할 수 있으니 권력다툼만 벌어지다가, 결국 ‘헬조선’이 되기까지 정치가 왔다. 다당제로 가는 촉매 역할을 하는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녹색당이 작더라도 한국의 닫힌 정치 구조에 균열을 내는 역할을 할 거다. 의미 있는 정치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 이번 선거에서 3%의 지지율을 얻으면 원내정당이 된다.
한국에서 지지율 3%는 상당히 중요하다. 국회의원을 만들 수 있고, 대선 결과를 좌우하는 투표율이다. 의미 있는 정책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비율이다. 국회 의석수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분위기, 정치적인 힘에서 중요한 정책들이 만들어진다. 녹색당이 사회적으로 3%의 지지를 받는다는 건, 그만큼 탈핵, 기본소득 등 현실적인 변화에 정치적인 힘이 실린다는 의미다. 20대 총선에서 지지율 3%를 넘겨 국회에 진입하는 게 절박하다. 당을 떠나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절박하다고 생각한다. 정책적인 변화도 중요하지만 정치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목소리가 드높다.
절망스러운 마음이 이해된다. 그런데 그럴수록 더 정치가 우리 삶에 악영향을 미친다. 어느 시점에서는 그 악순환의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를 혐오하고 무관심하면 그 정치가 우리에게 흉기로 돌아온다. 우리 삶은 정치와 떼놓을 수가 없다. 그게 녹색당을 만든 이유 중에 하나다. 나조차도 정치에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정치가 우리 삶을 더 파괴하는 걸 막아야겠다, 한 번쯤 ‘삶의 정치’를 만들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창당에 참여했다. 그런 분들이 녹색당에 많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원외정당으로서 녹색당은 온몸으로 불평등을 겪는 청년과 유사한 처지 같다.
정당에도 수저론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중인데, 녹색당은 흙수저 정당이다. 우리 당은 금수저, 다이아몬드수저로 오르는 게 목표가 아니라 수저 구조를 깨는 게 목표다. 이번 총선에서 녹색당 후보 중에 나도 이계삼 씨도 일간지 정기 기고를 해오고 있었는데, 선거위 제지로 못하게 막혔다. 원내정당들은 약 800억 원 규모로 지급되는 국가 예산으로 선거를 치르고, 원외정당들은 당비로 100% 선거를 치르는 불평등한 출발선에 서 있는 마당에 글로 정치적인 주장을 펼 수 있는 기회마저 차단당했다. 우리나라는 선거법이 복잡하고 까다롭게 되어 있고, 돈 안 드는 선거운동은 거의 못하게 되어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 수준이 아니고, 녹색당 같은 소수 정당들은 암벽타기를 하는 격이다. 최근 영화 〈히말라야〉를 보니까 상황이 열악해도 아무튼 올라가긴 가더라. 녹색당은 베이스캠프에서 시작해 두 차례 선거를 치르며 중간 중간 캠프를 만들어 왔다. 이젠 절벽 위까지 올라갈 수 있는 기회 정도는 마련된 것 같다. 어쨌든 올라가야 기득권 구조와 싸울 수 있으니 열심히, 꾸준히 올라가려 한다.

― 기득권 구조를 깬다는 말의 의미는?
우선 다당제 환경을 만들고, 선거제도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도 없애야 하고. 최근 KBS 〈다큐1〉에서 스웨덴 정치를 다룬 걸 봤다. 스웨덴 국회의원은 그 나라의 평범한 노동자와 같다. 대중교통으로 출근하고, 우리나라처럼 보좌진 수행 같은 건 없다. 기사 딸린 세단을 타고 출근하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권위의식 없고, 누가 의원이고 비서관인지도 구분하기 어렵다. “입장의 동일함”만이 같은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법을 생각하게 만든다. 특권 의식을 갖는 순간부터 이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보통의 시민과 자신을 달리 여기게 된다. 스웨덴 국회에서 쓰는 돈이든 의제든 100% 투명하게 기록되고 보관·관리된다. 국민 세금으로 엉뚱한 짓을 할 생각을 애초에 차단당한다. 그런 국회가 복지국가 스웨덴을 만드는 거다. 스웨덴의 국민들은 행복하게 살고, 공적인 책임을 위임 받은 국회의원들이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 과로를 한다. 녹색당도 국회에서 그런 정치 개혁을 이루고 싶다. 선거제도 개혁과 함께 국회의 모든 특권을 깨고,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곧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제 기득권 챙기기에 급급하지 않고 사회 공동체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구조적 환경이 된다. 의제도 중요하지만 정치 구조를 바꾸는 게 녹색당의 중요한 과제다. 물론 일단 들어가기부터 해야겠지만.(웃음)

― 스웨덴 국회의원의 과로 이야기를 들으니, 정치인이란 실상 많은 걸 포기하는 길이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녹색당은 어떤가.
녹색당은 개인 차원에서 돈은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걸 당비로 운영하고 선거도 치른다. 희생이 큰 건 시간인데, 아쉽지만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잃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더라도, 사회가 이대로 가서는 나와 내 가족도 제대로 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녹색당은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들 때문에 만들어진 정당이니까 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런 절실함에서 나 같은 사람도 정치에 뛰어든 것 같다. 기본소득만 다룰 수도 없다. 탈핵, 생명권, 동물권, 농업 먹거리, 주거권 등 문제는 계속 생기고 다룰 주제가 많다. 주제별로 선거 본부를 꾸리고 있다. 이번 4월 총선도 중요하지만, 어차피 길게 바라보고 있다. 지속가능하려면 몇몇이 주도해서 갈 수 없고, 지금처럼 당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함께 가야 한다.

   
▲ 사진: 하승수 페이스북

― ‘절실함 때문에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어떤 면에선 나라는 사람이 마치 사회적인 명분만 따라 산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소소한 일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녹색당에서 일하게 될 줄 전혀 몰랐는데, 그렇게 됐다. 인생에서 몇 번의 큰 전환이 있었다. 가장 최근엔 교수를 그만둔 게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이었다. 제주대학교에서 4년을 생활했는데, 내가 택한 직업 중에 제일 나랑 맞았다. 게다가 안정직이고. 후회하지 않느냐고 많이들 묻는데, 가끔 아쉬울 땐 있지만 후회는 안 한다. 아쉬운 건 제주도라는 섬의 아름다움, 지금도 가끔 연락하는 제자들과의 관계, 그리고 돈이다.(웃음) 좋은 건 진정한 행복, 삶의 의미를 오히려 찾고 있다는 것? 대학을 그만둘지 말지 고민할 땐 교수하다 그만 둔 리 호이나키의 책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 본래 풀뿌리민주주의에 뜻을 두었던 걸로 안다.
내가 ‘풀뿌리파’라서, 지역 풀뿌리민주주의를 구상하며 대안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교수직을 그만둘 땐 귀촌, 귀농을 생각했다. 아마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아니었으면 녹색당 활동은 안 했을 거다. 풀뿌리 민주주의로 국가적 지구적 문제까지 가는 덴 한계를 느꼈고, 정치의 중요성을 절박하게 느꼈다.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정당 조직 없이는 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하게 됐다.

― 정치 활동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포기하는 선택인데.
그래도 지금 내 판단이 맞는 거 같다. 일상의 행복은 언제고 또 누릴 시간이 있을 거다. 지금도 절박함은 계속되고, 현장으로 갈수록 사람들을 만날수록 더 강해지고 피부로 전해진다. 정말 사회가 이대로 계속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커지고, 같은 생각을 하는 좋은 분들도 만나게 된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살자는 분들. 당원들과 교류하면서도 배우는 게 많다. 지금은 녹색당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내년이면 내 나이도 50세다. 인생의 5학년 땐 내가 살고 싶은 삶도 살게 되면 좋겠다. 한국사회가 고령화되어서 사회운동도, 정치판에도 나이 많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녹색당이 잘 되서 나라도 빨리 은퇴하면 얼마나 좋을까. 귀촌해서 지역 활동도 하고, 농사도 배우고 싶은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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