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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보다 ‘신앙인으로서의 삶’이 먼저입니다”
[306호 레드레터 크리스천] ‘해방신학의 아버지’ 구띠에레스 신부와 함께한 한 주
[306호] 2016년 04월 22일 (금) 15:17:26 이유진 선교사 goscon@goscon.co.kr
   
▲ 사진: 이유진 제공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편지입니다.”

이 말은 지난해 4월,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이하 해방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구스따보 구띠에레스(Gustavo Gutiérrez) 신부가 한 말이다. 그의 모국 남미 뻬루(Perú)의 수도 리마(Lima)의 한 학교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서 들은 내용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표현이었는데, 평범할 수도 있는 그의 말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4개월 후, 나는 구띠에레스 신부가 이끄는 ‘신학 코스’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프로그램으로 올해로 45회 째다. 45년 세월 동안 쉼 없이 이어져 온 셈이다. 해마다 당시의 역사·문화·정치 상황을 반영해 중심 주제가 정해지는데, 이번 주제는 “신앙과 역사 변혁: 정치 차원의 복음”(Fe y transformación de la historia: Dimensión política del evangelio)이었다.
 
이 주제 아래 모인 약 60명의 참석자는 (리마에서 약 2시간 거리인) 차끌라까요(Chaclacayo)의 한 수양관에서 7일간(8월 2일~8일) 합숙을 했다. 이 신학 코스는 1970~80년대만 해도 뻬루 각지에서 모인 수백 명의 참가자로 성황을 이루었고, 4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꾸준히,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서 여전히 생명력을 뿜고 있었다. 이 글은 구띠에레스 신부와 함께하는 한 주간의 신학 코스에 참여한 경험을 중심으로 써내려간 것이다.   

첫날, “만남”
8월 2일 일요일 오후 4시, 출발 장소에 모여 버스를 타고 도착한 수양관은 척박한 사막인 리마 경치와 대조될 만큼 아름다운 자연과 정돈된 정원을 배경으로 한 곳이었다. 

저녁 식사 후 바로 이어진 첫 모임은 참가자와 스태프가 모두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다. 나와 한 프랑스인을 빼고는 이 코스의 참가자 모두 뻬루 각지에서 모인 이들이었다. 60여 명의 참가자 가운데 개신교도는 나 혼자였다. 유일한 개신교도라는 소수 입장이 되다 보니 긴장이 되었다. 모임을 이끈 구띠에레스 신부는 매의 눈으로 한 명 한 명 관찰하는 것 같았는데, 소개 내용에 포함되어야 할 것 중 하나가 이번이 ‘몇 번째 참여인가?’였다. 대개는 나처럼 ‘처음’이었던 반면, 자신은 ‘45번째’라고 해서 좌중을 폭소케 한 신부님이 눈길을 끌었다. 물론 이번 코스에 스태프로 참여하는 그는, 이번이 45회이니 구띠에레스 신부와 처음부터 함께해 온 동역자인 셈이다. 이번에는 비교적 적은 수가 모인 거라는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60명 넘는 참석자를 일일이 소개하는 것도 특별했고, 어색한 분위기를 녹이는 구띠에레스 신부 특유의 유머도 인상적이었다. 왠지 오랜 역사책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쯤에서 해방신학이 나오게 된 당시 뻬루의 역사 배경을 간략히 언급하면 좋을 것 같다. 잉까제국이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1532년, 스페인의 침략 이후 약 300년간 식민지배를 받은 뻬루는 1821~1824년에 독립한다. 그 후 근대국가의 기초를 이루기까지, 영국과 미국의 이해관계와 국경 분쟁, 군사정권과 독재를 겪으며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1965년부터는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게릴라전이 일어나 급속히 확산되었고, 1968년에 집권한 벨라스꼬 알바라도(Velasco Alvarado) 군사정권이 농지 개혁, 교육 개혁과 같은 급진 정책을 시행하면서 경제적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이에 더해 산악지대로부터 대도시로의 대이동이 진행, 도시빈민층, 제도화된 폭력, 억압과 불의, 빈부 격차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생겨났다(당시 생겨난 극빈층은 2013년도 기준 뻬루 도시의 16.6%, 지방의 53%를 차지하며 여전히 심각한 사회문제로 남아있다).

이러한 1960~70년대의 사회 현실 한가운데서 해방신학이 나오게 된다. 극빈층이 대부분인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떻게 전할지, 신학이 무얼 할 수 있을지를 사유하게 되면서 새로운 방법의 ‘신학하기’를 시도한 것이 바로 해방신학이다. 실천과 삶을 위한 신학이 되기 위해 인문학과의 대화와 통합을 시도한 이 신학은 1971년에 구띠에레스 신부가 《해방신학》이란 책을 내면서 세계 신학계에 파장을 일으켰고, 이는 아프리카신학, 여성신학, 인디오신학, 민중신학 등이 나오는 데 영향을 미쳤다.

   
▲ 휴식 시간에 참가자들과 대화 중인 구띠에레스 신부.(사진: 이유진 제공)

둘째 날, “신학이란 무엇인가?”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8시, 아침 식사를 알리는 종소리를 시작으로 8시 45분에 모두 모여 찬송 1, 2절을 부르고 성서를 읽고 잠시 침묵한 후 대표기도, 그리고 찬송 3, 4절을 이어 부르는 간결하지만 경건한 예배를 드렸다. 

이날 뒤늦게 합류한 4명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9시에 구띠에레스 신부의 첫 강의가 시작되었다. 말씀이 어찌나 논리정연하고 빠른지 주의를 흩뜨릴 여지가 없었다. 단숨에 깊은 내용을 나누셨는데, 87세의 고령이 무색할 만큼 에너지와 열정, 카리스마가 전해졌다. 나는 그동안 이 분의 책을 여러 권 읽어 봤으나, 직접 듣는 강의의 깊이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예컨대 ‘가난’에 관한 설명이 그러했다. 

“가난에는 ‘실제 가난’(pobre real)과 ‘정신의 가난’(pobre espiritual)이 있습니다. ‘실제 가난’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화폐가치로만 측정할 수 있는 물리적·양적 가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실제 가난이란 사회 안에서 하찮게 여겨지는 사람들, 피부색이나 인종, 성별 등으로 인해 무시당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반면 ‘정신의 가난’은 ‘실제 가난’에 처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헌신하는 사람들, 다른 이에 의존해 자신의 행복이 결정되는 사람들의 가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산상 수훈에 나오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지요.”

‘가난’을 ‘창피한 처지(scandalous condition)로서의 가난’과 ‘영적 어린아이(spiritual childhood)로서의 가난’으로 나누었던 절랭(A. Gelin)의 《야훼의 가난한 이들》(The Poor of Yahweh, 1964)을 소개한 《해방신학》의 설명이 더욱 뚜렷해졌다. 그러니까 2007년 브라질의 아빠레씨다(Aparecida)에서 열린 ‘제5차 라틴아메리카 주교단 총회’(Ⅴ Conferencia General del Consejo Episcopal Latinoamericano y del Caribe)가 세계화 시대에 새로운 얼굴로 나타나는 가난의 모습을 ‘이민자, 난민, 노인, 학대받는 여성, 장애인, 성매매에 동원되는 어린이 등’으로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과도 맥을 같이하는 정의인 것이다.

전체 강의가 끝나자 신학자인 스태프들의 인도로 소그룹 토론이 이어졌다. 강의와 연관하여 생각할 주제를 줬고 참가자들의 질문도 있었다. 첫날은 종일 구띠에레스 신부의 지도로 “예수 따르기와 역사 변혁”(Seguimiento de Jesús y transformación de la historia)이라는 주제로 강의와 그룹 토의, 그리고 전체가 모여 질문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이번 코스의 ‘입문’ 정도인 강의라 하였으나, 신학과 철학, 역사학, 사회학, 언어학 등을 넘나들며 깊고도 밀도 있는 내용이어서 그때 느꼈던 신선한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존의 사고의 틀이 깨지는, 당연시 여겼던 것들이 파괴되는 순간이었다. 

오후 강의에서는 ‘하나님 나라’ ‘복음’ ‘은혜로 주어지는 소망’ ‘가난’ 등의 기독교 핵심 주제에 관한 설명이 있었다. 구띠에레스 신부는 신학은 “은혜로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그로 인해 이웃에게 헌신하게 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깊은 연구”이며, “신앙에 관한 이해이자 지성”이라고 정의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고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상호 작용에서 나오는 게 바로 신학입니다. 신학은 예수를 따르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는 신학의 역사를 살펴볼 때 기원전 4세기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신학에 미친 영향을 간과할 수 없듯, 11세기에 스페인으로 들어온 아랍철학이 신학에 영향을 준 것을 언급하며 13세기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에 사회과학을 들여온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것이 해방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신학이란 현실을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관점으로 현실을 바라볼지,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취할 수 있을지, 이들에게 있는 소망을 어떻게 해석할지에 관한 것이지요.” 

셋째 날, “뻬루의 정치·사회 구조 살펴보기”
오전엔 “뻬루 정치 상황 분석과 조망”(La situación política del Perú: Análisis y perspectivas)이란 제목으로 사회학자의 강의가 있었고, 오후에는 “정치의 자비”(Caridad Política)를 주제로 정치분석가의 강의가 이어졌다. 이 정치분석가는 ‘나만 생각하는 것이 가난’이라고 했다. 그래서 (소수 입장이나 무엇이나) 풍성해지고 다양해지는 것이 “가난의 반대말”이라고 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옛 잉까제국 언어였던 께추아(Quechua)어로 <까치까니라끄미>(나는 아직 살아있다)라는 영화를 함께 보고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영화는, 아마존 정글과 안데스 산지, 그리고 태평양 해안을 따라 형성된 사막에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수십 개 종족이 한 나라를 이루어 살아가는 뻬루에서 몽골의 후예로 추정되는 (우리네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아마존 정글의 한 여인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로 시작한다. 영화는 다양한 소수민족이 저마다 고유의 음악을 통해 뻬루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 '신학 코스' 참가자들과 함께. 중앙의 지팡이 짚은 이가 구띠에레스 신부. (사진: 이유진 제공)

넷째 날, “뻬루 현장 이야기”
전날 뻬루의 정치와 사회 구조라는 큰 그림을 보았다면, 이날은 아마존 전문 인류학자와 안데스 전문 인류학자, 그리고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세 사람의 연속 강의를 통해 현장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2014년 뻬루 정부는 아마존 지역을 극빈층으로 선포하며 “그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포함시키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마존에서 사는 이들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에게 먹을 게(숲) 있고, 건강한데 왜 우리를 가난하다고 하느냐.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포함되는 게 아니라 ‘존중’이다.” 

옛 잉까의 후예. 역사 속 큰 획을 긋고 사라진 왕국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유럽의 식민화 과정에서 잉까제국의 문화와 언어가 거의 멸절되다시피 했기 때문에(1580년 에스파니아가 식민지배를 위한 제도인 부왕령[副王領]으로 잉까제국의 언어 중 가장 많은 수였던 께추아어를 금했다) 수 세기가 지난 최근에 와서야 사라진 잉까제국에 관한 연구가 일어나는 실정이다. 그러나 옛 잉까제국의 수도였던 꾸스꼬(Cusco)나 마추 삑추(Machu Picchu)를 비롯한 안데스 산지를 다니다 보면 뻬루의 해안 도시에서 만나는 혼혈인, 메스띠쏘(mestizo, 인류학에서는 혼혈의 대상에 따라 여러 명칭으로 구분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일반적으로 그 모든 혼혈을 총칭해서 ‘메스띠쏘’라고 쓴다)들과는 생김새도, 관습도, 언어도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옛 왕국은 ‘사라졌지만’ 왕국의 소멸로도 ‘사라지지 않는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안데스 전문 ‘인류학자’에게서 인류에 관해 배우는 강의를 ‘신학 코스’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독특하게 느껴졌는데, 이 점이 바로 해방신학의 특색인 것이다. 신학은 일반학문과 만날 수 없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인문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학하는’ 고민을 이어가는 것 말이다.

오후 강의는 “나, 주가 의를 이루려고 너를 불렀다”(Yo, el Señor, te he llamado para la justicia)란 주제로 한 신학자의 강의를 들었다. 

다섯째 날, “해방신학, 삶으로의 초청”
다시 구띠에레스 신부의 강의로 돌아왔다. 해방신학이 말하는 ‘해방’이라는 개념에 대해 사회적, 개인적, 그리고 영적인 차원으로 설명하고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해방의 사회적 차원이란 강압이나 강제, 억압받는 환경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을, 개인적 차원이란 내적 차원의 작업으로서 마음이 바뀌는 것으로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방의 영적 차원이란 하나님이나 이웃과 끊어진 관계를 야기하는 죄를 고백한 후 용서받는 것을 의미했다. 이에 덧붙여,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인위적으로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눴지만 “이 모두가 하나”라고 했다.

강의 후 가진 소그룹 토의 시간에 우리는 우리 삶의 터전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복음을 실천하며 산다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에 대해 나눴다. 날이 갈수록 우리의 토론도 무르익어갔다. 코스의 중반기로 접어들며 강의 내용이 깊어지자 소그룹 토의도 활기를 띠었고 서로 더욱 마음이 열리고 우정도 뜨거워지는 듯했다. 제한된 시간이었지만 소그룹 토의를 통해 각자 나누는 얘기를 듣다 보니, 자신이 속한 교구에서 다들 책임을 맡고 있는 평신도 사역자들이었다.  

이날 점심 후 구띠에레스 신부와 잠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 강의 중인 구띠에레스 신부. (사진: 이유진 제공)

- 해방신학이 나오기까지 어떤 배경이 있었나요?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두 가지 상황을 맞습니다.  하나는 급속도로 도시화하면서 도시 빈민이라는 심각한 사회문제였고, 또 하나는 가톨릭교회의 변화를 위해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가 열린 일이지요. 이로 인해 라틴아메리카의 ‘빈곤’ 문제를 신학적으로 고민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해방신학이 나오게 됩니다.”  

- 해방신학이 나온 1950~1960년대에 개신교와 교류가 있었는지요?
해방신학은 처음부터 가톨릭과 개신교가 함께했습니다. 해방신학은 가톨릭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현실’, 즉 절실하고도 실제적인 삶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라는 동일한 현실 속에서 신앙에 관해 고민하던 개신교도들도 함께 활동했습니다. 물론 가톨릭 신부의 수가 더 많긴 했지만 개신교 신학자들도 우리의 친구였습니다. 해방신학은 당시 상황에 관해 신앙적인 고민을 하던 신학자, 인문학자, 활동가 등 모든 이들의 개념을 정리한 것입니다. 당시에 함께했던 개신교 신학자들로는 훌리오 싼따 아나(Julio Santa Ana), 호쎄 미게스 보니노(José Míguez Bonino), 엘싸 따메스(Elsa Tamez), 마우리씨오 로뻬스(Mauricio López)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해방신학보다 중요한 것이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삶이 먼저 있어야 하고, 신학은 그 삶을 신학이라는 언어로 설명해주는 2차 활동이어야 합니다.

부연하자면, 해방신학이 나오게 된 사회 배경은 뻬루만이 아닌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공통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지방과 빈민가에 밀집된 집단적인 극빈층의 증대, 억압과 불의, 제도화된 폭력, 구조적 불의, 빈부 격차 등이었다. 또 하나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인데 이는 라틴아메리카 가톨릭교회의 변화를 이끈 중요한 사건이었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 정립을 위해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결의 내용을 약 4세기가 지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쇄신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라틴어로 봉헌하던 미사가 각 나라의 언어로 봉헌되기 시작했고, 단죄하던 개신교도들을 ‘분리된 형제’로 순화했고, 사회적 불의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항하는 교회의 예언자적 사회책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였다. 

이러한 가톨릭교회 내부의 변화 분위기에 앞서, 1955년에는 브라질의 ‘히우 지 자네이루’(Rio de Janeiro,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최초로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Conferencia Episcopal Latinoamericano)가 열렸다. 라틴아메리카 주교들이 자신들의 대륙 상황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1968년에 꼴롬비아의 메데인(Medellín)에서 ‘제2차 라틴아메리카 주교단 총회’(Ⅱ Conferencia de CELAM)가 열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한 라틴아메리카 주교들이 유럽과 선진국 중심의 의제가 자신들의 상황과 맞지 않아 그 모범을 따를 수 없음을 알게 되자 공의회가 제시한 ‘세상 안의 교회’와 ‘교회의 쇄신’이라는 관점을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경제·사회 현실에 맞게 적용하고자 했다. 그렇게 주교와 성직자뿐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와 대표들이 폭넓게 참여한 이 회의가 해방신학의 태동을 도운 것이다.

이날 오후에는 “헌신된 신앙을 위한 사목과 정치”(Pastoral y Política: Por una fe comprometida)라는 제목으로 전직 대학 교수인 한 신부님의 강의가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영화 <오스까 로메로>(Oscar Romero)를 구띠에레스 신부의 간증과 함께 보았는데, 1980년 3월 24일 로메로 추기경이 암살된 뒤 3월 27일 장례식이 열린 엘 쌀바도르(El Salvador)의 쁘로비덴씨아(Providencia) 성당에 자신도 있었다며, 당시 모인 군중들이 무참히 총살되던 공포와 충격의 현장을 이야기해주셨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3일간의 강의를 바탕으로 목요일은 삶의 영역에서의 ‘실천’에 관한 강의와 이를 실천하다 순교에 이른 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까지 들어가며, 순차적으로 우리는 이제 우리네 삶으로의 부르심을 의식하게 되었다.  

   
▲ 구띠에레스 신부와 필자. (사진: 이유진 제공)

여섯째 날, “우리들 이야기”
이날은 매우 뜻깊은 일정의 연속이었다. 오전에는 닷새간의 배움을 기억하며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위해 한 신학부 교수이자 신부님이 이론적인 설명을 하셨다. 그동안의 강의가 주로 논리적이고 냉철하게 지성을 써야 하는 작업이었다면, 이날 강의는 부드럽고 따뜻하며 푸근히 안으시는 하나님의 모성애가 느껴졌다. 강의 후에 이어진 대 침묵 시간에는 각자 자유롭게 장소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강의실 밖 아름답게 정돈된 자연으로 나가자 모든 곳이 우리를 평온히 내면으로 향하게 했다.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종소리를 따라 우린 예배당에 모였다. 단순하지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예쁜 천 장식을 가운데 두고 모두가 둘러앉아, 묵상하는 동안 받은 은혜를 나누었다. 이어서 소그룹 별로 한 주의 강의를 통해 결단한 바를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차례대로 발표했고, 함께 찬송했다. 떡과 잔도 함께 나누고 자발적인 참여로 기도했다. 고국을 떠나 외국인들과 예배를 드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예수를 구주로 고백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음을 열고 ‘형제·자매’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은 참 특별한 경험이다. 예배 의식의 마지막 순서로 서로를 격려하며 모두와 인사를 나누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구띠에레스 신부가 나를 부르시더니 오후에 참가자들이 간증하는 순서가 있을 텐데 내게도 순서를 부탁하셨다. 갑작스레 20분의 간증 시간이 주어졌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드디어 오후 3시, 간증의 시간이 왔다. 간증을 맡은 이는 모두 4명이었고 나는 두 번째 순서였다. 나는 외국인에다 유색인종, 서구인이 아닌 아시아인에다 미혼 여성이라는 비주류에 속한 처지였다. 게다가 한국에 대한 정보 부족이나 왜곡으로 인해 오해의 말을 듣기도 하던 터였다. 나는 다른 참가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대학원에서 배운 한국 근대사 중 몇 가지 사건을 설명했다. 아울러 소심하고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뻬루에까지 오게 된 개인사와 그 과정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인도와 도전, 그리고 개인적 고뇌 등을 나누었고, 구띠에레스 신부님이 당부하신 ‘헌신’에 관한 부분을 말하며 마쳤다. 

간증 순서가 끝나고 구띠에레스 신부가 일부러 나에게 다가와 꼭 안아주셨다. 그리고 여러 참가자들의 공감과 격려의 인사를 받았는데, 한 친구는 “고통은 뻬루만의 현실이 아니라는 것, 그 고통을 통해 하느님은 그분의 길로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마지막 날, “각자 삶의 자리로”
마지막 날, 구띠에레스 신부가 일주일간의 모든 강의를 종합하여 정리해주셨다. 지난 한주간 쉴 틈 없는 매일의 일과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쉬는 동안도 스태프들이 모인 방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소그룹 토의 때 나온 의문은 다음날 강의를 통해 바로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 짜인 강의 스케줄도 우리의 이해 수준과 상황에 맞추어 조정되는 듯했다. 해방신학은 규정되고 닫힌 신학이 아니며 현실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역동하는 열린 신학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간 내내 그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각 분야의 전문가를 비롯해 사역 현장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퇴소할 즈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다문화 가정의 증가가 ‘단일 민족’의 신화를 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상호 존중’은커녕 ‘나와 다른 타자’를 인정하는 것이 곧 내가 소멸되는 것일까 두려워 ‘과연 옳은 길인지?’ 의심하거나 사유해보지 않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기 바쁜 우리의 태도는 사회의 역동을 막고 생명을 파괴한다.

소멸되지 않는 힘
‘가난’이라는 문제에 직면하여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불의한 ‘사회 구조의 문제’임을 밝혀내고, 유럽 중심의 이론이 라틴아메리카 정황과는 맞지 않음을 주장하는 해방신학의 결기에서, 소멸되지 않는 어떤 ‘힘’을 느낀다. 누가 아무리 경제 지표를 따라 라틴아메리카를 ‘제3세계’라고 부른다고 해도 결코 소멸될 수 없는 힘 말이다. 반면 경제적 부를 달성하고도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상대를 짓밟아야 내가 산다며 쟁투하는 우리와, 여전히 가난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지만 나와 다른 타인을 존중하며 들을 줄 알고 살필 줄 아는 저들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신자유주의, 개인주의, 성공 지상주의, 물질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막힌 담을 헐고 둘을 하나로 만드시는(엡 2:14) 그리스도의 사역에는 아랑곳없이 높디높은 벽을 쌓은 채 서로 다투는 우리의 이웃 사랑이 진정 사랑일까? 나만, 우리 가족만, 우리 교회만, 우리나라만 잘 되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일까?

우리 안의 문제는 우리 안에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방신학에서 강조하듯, 가난한 이를 우선적으로 선택할 때 그들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비로소 만날 수 있고 우리의 ‘곧은 목’(신 9:6)이 꺾이고 ‘굳은 마음’(겔 36:26)이 부드러워지는 비밀이 숨어있는 것 아닐까. 내가 아닌 남에게 시선을 돌리고 그를 향해 마음을 열 때, 치유도 일어나고 그리스도의 사역에도 제한 없이 동참하는 기회가 열려 하나님을 더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중요한 주제, ‘가난한 이’가 우리에게 누구인가. 나와 우리는 자신의 가난을 깨닫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라고 명하시는데 우리에게 이웃은 누구이며 나는 그들에게 선한 이웃인가? 우리를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고후5:14)의 강력에 우리 또한 사랑으로 답해야 하지 않을까?


이유진
1998년부터 라틴아메리카 곳곳을 누비며 장·단기 선교사로 활동했다. 한국에서 기독교역사학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뻬루 기독교 역사’ 관련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뻬루 현지 연구소와 신학교 등을 찾아다니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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