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호 은수연의 네버엔딩Q]

   
▲ ⓒ신정원

“쾅” “똑똑” “덜컹” “쾅” “딸깍”. 이건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닙니다. 제가 요즘 공중화장실을 사용하기 전 의식처럼 하는 행동들이 내는 소립니다. 일단 들어가서 계단이나 복도 쪽으로 나 있는 문을 열어두고는 일일이 다 두드려봅니다. 이상하게 닫혀 있는 건 일부러 열어봅니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면 바깥에 문을 아예 걸어 잠급니다. 그러고 나서야 볼 일을 겨우 봅니다.

이뿐 아닙니다. 자주 넘는 야트막한 뒷산을 넘기 전, 우산이나 양산을 한 손에 꺼내듭니다. 일부러 접이식 양산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똑딱이로 고정 후, 손잡이를 최대한 길게 쭈~~욱 잡아뺍니다. 그 상태에서 한 번 공중을 향해 휘휘 저어봅니다.

하루는 저도 모르게 주문을 걸듯 “걸리기만 해봐라” 속삭입니다. 순간 슬픔이 몰려옵니다. 산책하기 좋은 뒷산이 어쩌면 칼침 맞을지도 모를 곳이 되었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뒷산을 오를 땐 이제 지난 달 있었던 ‘수락산 살인사건’이 떠오릅니다. 이른 새벽 부지런히 건강을 위해 산책하던 60대 여성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산책길에서 발견됐습니다. 가해자가 현장검증을 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보는데 유가족들은 오열하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반면, 가해자는 마스크조차 쓰지 않고 담담하게 재연하는 모습이 너무도 대조적이었습니다. 괴로운 표정, 죄책감을 느끼는 ‘찡그림’조차 없는 그의 무표정이 저는 무서웠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저는 자주 가던 뒷산을 넘으려면 멈칫하게 됩니다. 아마 당분간은 못 다니지 싶고, 혼자는 더더욱 못 다닐 듯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혼자 화장실 갔다가, 혼자 산책을 갔다가 칼침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공감 되시나요?

“자업자득”이라고요?
며칠 전 〈PD수첩〉을 봤습니다. “치안강국 대한민국, 여성은 왜 범죄의 표적이 되었나?”라는 제목으로 ‘강남역 살인사건’과 부산에서 있었던 ‘묻지마 폭행사건’ 등을 다루었습니다. 프로그램이 자료화면으로 보여주는 짧은 폭행이 벌어지는 동영상은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났습니다. 아무 일 없이 길을 걷던 할머니와 20대 여성, 그들을 있는 힘껏 몽둥이로 수차례 가격하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렸습니다. 그 상황을 모면했던 한 야쿠르트 아주머니는 그 당시를 생각만 해도 몸살이 난 것처럼 아프다고 했습니다. 피해자들 역시 그 사건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다고 합니다.

저는 그 짧은 동영상을 보는 것만도 힘든데, 그 강렬한 폭력이 길을 걷는 것과 같은 일상에 ‘훅’하고 들어온 그녀들은 앞으로 어떻게 길을 걸을 수 있을지 괜스레 걱정이 됩니다. 더군다나 PD의 질문에 답하는 가해자의 말은 더 분노하게 합니다.

“할머님 직접 폭행하신 건 기억하시죠?”
“네.”
“피해를 당한 게 있어요? 여자들한테?”
“많죠.”
“무슨 피해당했어요?”
“앞에 와가지고 오만소리 다한다고.”
“피해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아직도 미안한 것 없어요?”
“네, 없습니다. 나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들이니까 내가 반성할 이유가 없죠.”

담당 PD는 마지막까지 피해자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가해자에게 던졌습니다. 끝까지, 그에게서는 욕 나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렇지, 당연히 맞을 짓을 한 거지.”
“자업자득.”

미친 놈, 죽일 놈, 사형제도는 역시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의 몽둥이질에 할머니는 쇄골뼈와 갈비뼈가 나갔고, 피해자 두 분 다 병원에 입원해 계신 것을 보니 더 화가 납니다. 잘못 맞았으면 머리가 깨져 죽을 수도 있었던 겁니다. 정말이지 그 매 맞는 동영상을 보면,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섭니다. 도대체 그 할머니와 20대 여성의 ‘자업자득’이란 무엇일까요? 제발 그 가해자나 ‘자업자득’의 중한 처벌을 받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피해자인 그녀들의 두려움에 완전 공감되어 텔레비전을 보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이 두려움에 휩싸여가는 이는 저뿐만이 아닙니다.

혼자 못 가는 곳, 화장실
“이제 여자는 혼자 화장실도 못 가?”
“이래서 어디 화장실 가겠냐? 난 강남역 이제 무서워. 강남역 가믄 일찍 오게 되더라구.”
“만약에 내가 화장실 들어가서 문 딱 열었는데 거기 남자가 칼 들고 서 있다 찌른다고 생각해봐, 끔찍해. 그 노래방에서 놀던 여자들도 그때 딱 갔음 죽는 거잖아.”
“혼자 어케 돌아다녀?”

지하철에서 20대로 보이는 여자 둘이 흥분한 듯 주고받는 대화를 듣습니다. 슬픕니다. 강남역 추모 공간에 가봐야겠다 마음을 먹고, 일부러 강남역을 찾았습니다. 서울시 시민청으로 추모글이 옮겨졌다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작은 마음들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도 하고, 학원을 다니느라 오가기도 했던 익숙했던 공간에 ‘묻지마 살인’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덧입혀져 어색합니다. 1인 시위를 하는 분, 안타까운 마음에 들러 그곳을 서성이며 마음을 남겨놓고 오는 분들, 다양한 모습으로 이곳을 찾아옵니다.

23살 때의 저를 떠올려봅니다. 여전히 해보고 싶은 것 많던 여대생 시절, 여기 저기 여행도 다니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도 하고, 한창 피부도 맑고 투명했던 만큼 세상 보는 눈도 그랬던 저를요. 누가, 왜 찌르는지도 모르는 칼을 맞고,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 가족들은 어떤 마음일지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매스컴은 “이례적인 추모”라는 표현을 씁니다. 전문가들은 ‘두려움, 분노’의 공감이라고도 합니다. 집단적으로 ‘묻지마 살인’, 또는 ‘여성혐오’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의 공감대가 형성된 듯 보입니다. 우리 사회가 안 좋은 일들로 안 좋은 감정만 연대를 이루어가는 것 같아 또 슬픕니다.

그런데 알고 계시나요? 화장실을 가고 싶은 욕구는 에이브러햄 매슬로라는 학자가 말한 인간의 욕구이론 중에서 가장 기초적 욕구 중 하나입니다. 숨쉬고, 먹고, 자고, 입는 등 우리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 요소들이 포함된 단계로 ‘생리적 욕구’라고 합니다. 사람이 하루 세 끼 밥을 먹는 것, 때마다 화장실에 가는 것, 그리고 종족 번식 본능 등이 이 단계에 해당합니다.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에 따르면 욕구는 행동을 일으키는 동기요인이며, 인간의 욕구는 낮은 단계에서부터 그 충족도에 따라 높은 단계로 성장한다고 합니다. 1단계는 앞에서 말씀드린 생리적 욕구로 먹고 자는 등 최하위 단계의 욕구입니다. 2단계는 안전에 대한 욕구로 추위·질병·위험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욕구입니다. 3단계는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로 어떤 그룹에 소속되어 애정을 주고받는 욕구입니다. 4단계는 자기존중의 욕구로 소속단체의 구성원으로 명예나 권력을 누리려는 욕구를 말합니다. 5단계는 자아실현의 욕구로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발휘해 자기가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취하려는 최고 수준의 욕구라고 합니다.

매슬로의 이론을 바탕으로 지금의 사태를 이해한다면 1단계 욕구뿐 아니라 2단계 욕구까지 깡그리 무시당하고 무시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회를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집니다. 생리적 욕구조차 해결이 어려운데 안전은 무슨 안전, 여성들은 너도 나도 호신용품을 준비하고 낯선 사람을 의심하게 됩니다. 매슬로의 말대로라면 우리 사회는 3단계로 넘어가는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애정과 소속, 자기존중, 자아실현은 너무도 멀고 먼 이야기 같습니다. 너와 내가,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결국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것은 무엇일까 곰곰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가 숨쉬고, 먹고 마시고, 먹고 마신 걸 편하게 배설할 수 있었면 좋겠습니다. 안전하게 화장실도 가고, 뒷산도 산책하고 싶습니다. 일상의 공간, 일상의 시간 속에 ‘훅’ 치고 들어온 이 ‘두려움’에 공감이 되시나요? 아니면 그녀들의 두려움을 강 건너 불구경하고 계신가요?

너무 겁이 나서, 살고 싶어서 오늘도 공중화장실 갈 걸 참고는 집까지 뛰고 있는 한 여자로서 정말 궁금합니다.


은수연(필명)
9년간의 친족 성폭력 생존기를 담은 책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저자로, 2013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했다. 여행 작가, 하숙집 주인, 세련된 할머니, 드라마 작가, 밥집과 카페 주인 등 나이에 안 맞게 해보고 싶은 게 무지 많으며, 성실한 남편 만나 예쁜 딸이랑 아들 낳아 소박한 아줌마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 서울에 많고 많은 혼자 사는 30대 여성 중 하나다. 복음과상황 2013년 5월호 “편들고 싶은 사람”에 인터뷰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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