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말복을 넘긴 편집마감 한창 때, 찌는 더위가 시나브로 누그러짐을 느낍니다. 밤에 창문을 열어 놓고는 제법 밤바람을 느끼며 잠을 청하노라니, 기후 문제가 점차 심각해지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계절은 스스로 들고날 시간의 이치를 아는 듯 ‘우주의 섭리’가 참 오묘합니다. 정도를 모르고 방종을 떠는 건 아직도 요존 우리 인간들뿐인가 싶어 우울감도 함께 몰려옵니다.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운행의 섭리에 기어코 닿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아프게 파고 듭니다.

지금 한국사회 면면을 들여다보면 더 구체적으로 통증이 느껴집니다. 나라 전체가 열병으로 앓는 것만 같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통증은,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입니다. 정부의 급작스런 결정 및 발표 이후,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사드의 효용성 및 국내외적 부작용에 대한 숱한 문제제기에 정부는 앵무새마냥 ‘북한 핵·미사일 방어용’이라는 점만을 거듭 내세우고 있습니다. 나라 안팎의 보도를 보면, 사드가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의 핵심 요소라는 점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우리 정부와 국방부만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입니다. 국내 군사 전문가들은 그 군사 기술적 측면에 대한 설명에 덧붙여 한·중, 한·러 외교 마찰과 그로 인한 긴장상황을 우려하며 ‘출구 전략’을 세우라고 거듭 읍소하고 있습니다.

이런 거시적인 불안과 동시에, 당장 인체에 위해한 레이더파가 일상생활 반경에 들어오게 생긴 인구 5만의 성주 주민들은 생계와 일상의 위기를 느끼며 벌써 죽을 지경입니다. 지난 광복절에 성주 주민 900여 명이 자원하여 집단 삭발식에 나섰습니다. 성주뿐 아니라 사드 배치는 한반도 어디에도 안된다고 하면서요. 인구가 꽤 되는 지역에 내년까지 사드 배치를 완료하기란 정부 생각만큼 쉽지 않으리라는 예측이 그나마 위안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지금 이 땅 구석구석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혐오 정서에 기반을 둔 어둠 속으로 퇴보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난민 혐오 정서와 국가주의가 낳은 결과나 다름없는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를 비롯하여 여기저기 극우 민족주의 정서가 득세하고, 국지적이고 무차별적인 예측불가능의 테러가 더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9월호 기획은 이런 나라 안팎의 상황 속에서, 꽉 막힌 현재의 터널을 뚫고 한 줄기 빛이라도 찾으려는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 시대 어른들과 스승들의 예언자적 목소리를 “사람과 상황”(한완상)에서부터 커버스토리(박영신·전성은·서일웅·강경민)까지 연이어 무거운 심정으로 들어보았습니다. 이 시대 징조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귀가 한국교회, 아니 저 자신부터 제발 열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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