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호 김기석 목사의 욥기 특강 21] 욥 40~41장

안녕하십니까? 지난 호에서 보았던 것처럼 욥은 마치 폭포처럼 쏟아지는 하나님의 질문 앞에서 유구무언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자기가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는 고통 속에서 발설했던 말들이 부질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겁니다. 비트겐슈타인이 그랬다지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언젠가 인터넷을 통해 본 영상이 떠오릅니다. 어떤 여인이 잔디밭 위에 누워 있습니다. 여인을 비추는 카메라가 점점 높이 올라가고, 카메라의 시선이 아스라히 높아질수록 여인의 모습은 점점 작아져 나중에는 아예 보이질 않습니다. 그 영상을 만든 이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내 존재가 무한한 세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알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이 장대한 우주 앞에서 우리는 거의 티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로서는 죽고 사는 문제가 다른 이들에게는 하찮은 문제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 불일치 혹은 불균형이 우리 삶에 비애감을 안겨줍니다. 자기의 무력함과 작음을 절감한 욥은 비애로부터 벗어났을까요? 아직 그렇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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