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최종편집 : 2017.3.21 화 16:33
기사검색
   
> 뉴스 > 교회 | \'그 교회\' 이야기
     
[제11화] 그들의 ‘새해’를 묻다
['그 교회' 이야기]
[314호] 2016년 12월 28일 (수) 14:59:27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연말은 교회를 떠나고픈 이들이 가장 자연스레 ‘질서 있게’ 퇴장(?)할 수 있는 기회다. 그동안 만난, 그러니까 교회를 떠날까 말까 고민하던 이들은 공통적으로 “올 연말까지만 다녀 보고…”라는 말을 했었다. 교회에서 맡은 임무, 교인들과의 관계, 떠났을 때의 파급력을 고려해 교회를 떠나더라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새해를 앞둔 연말에 떠나겠다는 얘기였다.

문득, 그들이 계속 교회를 다니고 있는지 궁금해져 연락을 돌렸다. 그들은 떠났을까, 남았을까? 연말연시, 가장 떠나기 좋은 ‘기회’를 잡았을까, 흘려보냈을까?

강 전도사, B 교회를 떠나다
지난 4월호(“‘독’과 ‘약’은 한 끗 차이”)에 소개했던 강스데반 전도사. 두 교회를 다녔던 그는 B 교회를 그만두었다. A 교회를 가면 위로받고 회복되는데, B 교회를 가면 핍진해진다던 그였다. B 교회를 그만두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고, 나도 바라던 바였다. 그는 성도가 교회를 떠나는 것에 대하여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주눅 들 필요도 전혀 없다고 했었다. “교회를 떠나면 욕 먹을까봐 계속 다니는 성도들도 있는 것 같다” 했더니 그는 “교회가 조폭도 아니고 성도가 교회를 떠나는 것을 두고 뭐라고 하면 안 되지요” 하고 말했었다. 인터뷰 당시 그의 마음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B 교회도 사실 첫인상은 참 좋았어요. 위로와 격려, 재미가 있는 공동체였는데 사람들이 많이 떠나고 지금 같이 삭막한 분위기가 되었어요. 지금은 B 교회에 가는 게 무서워요. 일단 편하지 않고, 전혀 진실하지 않아요. 바둑 고수들만 남아있는 기분이랄까? 요즘도 계속 고민해요. 내가 왜 굳이 여기를 나와야 하나.”

그럼에도 그가 B 교회를 계속 다녔던 이유는 ‘여지’ 때문이라고 했다. ‘독’처럼 느껴지지만, ‘약’으로 변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하는. A 교회에서 받았던 사랑을 B 교회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했었다. 그는 3년의 세월을 그렇게 꾹꾹 참으며 ‘약’을 만드는 추억을 만들었고, 2016년까지로 그 사역은 일단락되었다.

“좋은 기억만 간직하려고요. 교인들께 참 감사해요.”

‘독’한 상황들은 다 잊고, ‘약’으로만 기억하겠다는 다짐. 그 다짐이 가져다주는 평온함이 전해졌다. 물론 그 평온은 교회를 떠나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단락’ 맺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이들의 너그러움 같은 것. 그의 한 교회 섬김을 응원한다.

‘안식년’ 떠나는 K 목사
2월호(“가족 같은 교회”)에서 ‘김일성주의’에 빠진 목사와 목사 가족의 이야기를 꺼낸 K 목사는 얼마 전 심장이 심하게 조여 응급실에 갔었다고 했다. 인터뷰했을 당시에도 “밤에 자려고 누우면 심장이 두근거린다”며,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던 얘기가 기억났다. 의사도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스트레스와 피로”가 원인일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화를 주고받았었다. 이번에도 심장 이상의 명확한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그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졌기 때문에 아픈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그는 뒤늦게 폭로를 결심하고 교회 개혁의 용기를 낸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한때나마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한 이들의 고통을 멈추게 하고 싶어요. 요즘도 계속 전화가 와요. 흐느끼며 울죠. 가슴이 너무 아파요.”

그는 그 자신의 신앙과 배척되는 교회에서 수년 동안 ‘부교역자’로 일했다. 일가패권주의의 교회를 다니면서 심신이 지치지 않았을 리 없다. 어쨌든 그는 이번에 실신 상태를 경험한 후로 큰 결심을 했다. 새해에는 외국으로 가 공부를 더 하기로 했다. ‘공부’는 명분이고 실제로는 ‘쉼’을 얻고자 함이다. 기회가 잘 맞아떨어졌다. 일종의 안식년을 갖기로 한 것이다. 지금도 많은 부교역자들은 자기 배반을 강요당하고, 최저 임금보다 못한 돈을 받으며, 인권 사각지대로 몰린다. 교회도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는 그들은 이 땅 어디에서 쉼을 얻을까? 자려고 누우면 심장이 아파 잠을 잘 수 없었다는 K 목사처럼, 그들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자연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신대원 6수생, 합격은?
8월호(“어느 신대원 ‘6수생’ 집착일까? 소명일까?”) 소개한 권준광 씨와 다시 대화를 나눈 날은 12월 11일. 그가 시험 본 신대원 합격 발표가 있기 하루 전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떨어질 것 같다”는 말을 쉽게 꺼냈다. “경쟁률이 계속 줄어들고 있으니, 경쟁률이 1:1이 될 때까지 계속 도전하면 되지 않겠어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합격 여부가 무척 궁금했으나 따로 연락을 하진 않았다. 합격 여부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새해부터 학부 때 전도사로 일했던 교회에 다니기로 했다. 담임목사님과 교인들이 그를 ‘다시’ 전도사로 부른 것이다. 신대원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그가 전도사로 와주었으면 했다는 것이다. 그는 “누군가 필요한 곳이지만, 아무도 안 간다면 제가 가아죠” 하며 웃었다. 5개월 전 했던 말과 똑같았다.

“어디든 가고 싶어요. 급하게 뭘 할 수는 없을 거라고 봐요. 저와 비슷한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거죠. … 방향이 맞는다면 6수 이상 더 오래 걸리더라도 가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그에게 신대원 입학은 “나중에 선교 후원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자격” “주류 편승의 기회”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굳이 그런 곳이 가볼 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번에도 불합격이면 이제는 그를 말리고 싶다. 그의 말처럼 방향만 맞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0원’ 부부는?
한편, “‘0원’의 힘을 보여준 부부”(2016년 7월호)는 새해에도 변함없이 ‘진실한 신앙 공동체’를 추구하며 살아갈 예정이다. 다만, 지금 형편에 매달 월세 50만 원을 내는 것은 역시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곧 이사를 간다고 한다. 이들에게서 무척 보람 있으면서도 부담스러운 소식을 듣기도 했다. 교회를 찾던 어느 ‘가나안 성도’가 복상에 나간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찾아와 그 교회의 성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사가 거짓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세요” 하고 당부의 인사를 했다.

3년여 ‘가나안 성도’ 생활을 접고 교회와 목사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H 씨(2016년 6월호)도 ‘분명 지쳤을 것’이라는 내 예상을 깨고 여전히 교회를 잘 다니고 있다. 예배드릴 공간이 없어서 오후 늦은 시간에라도 예배 공간을 내어줄 교회를 물색하고 있다. 

교회를 떠나기로 하다
고백하건대 나도 2016년을 채우고 교회를 떠나려고 결심했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한 살 아기를 데리고 편도 한 시간 거리의 교회에 다니는 것은 무척 큰 노동이었다. 아기는 교회에 열심인 엄마 아빠를 둔 덕(?)에 주일만 되면 종일 교회에 있어야 했다. 낮잠을 잘 수 없었던 아기는 집에 돌아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새벽까지 엄청 서럽게 울어댔다. 교회는 좋은 곳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아내는 일이 아기에겐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낮 동안 사람들과 어울리며 잘 지내는 듯 보였으나, 아기에게는 그것이 ‘감당할 수 없는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나도 그랬다. 겉으로는 감당하는 척 교회에 다녔으나 아니었다. 크고 작은 상처들, 극복한 줄 알았지만 불쑥불쑥 올라오는 슬픔과 분노에 왕왕 무너져 내렸다. 떠나고픈 마음은 매주 더 커졌다. 특히 피곤한 날이면, 아기가 밤새도록 우는 날이면 ‘역시 교회는 집 앞에 있어야 해’ 하며 결심을 굳혔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럼에도 교회를 떠나지 않기로 했다. 결정이 초기화된 데에는 순전히 한 은퇴 장로님 때문이다. 언제나 가냘프고 거친 손으로 먼저 내 손을 잡고 흔들며 빙그레 웃으시는 분이다. 몇 달 전,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셨다. 아들이 병상에 있는 2년여 동안 ‘기도제목’ 한 번 여쭙지 못한 것이 큰 후회로 남는다. 그러면서도 그분이 주는 아기 장난감들은 넙죽넙죽 잘도 받았다. 아들이 죽기 얼마 전, 한 잡지에 ‘평범한 아버지’로서 그분의 인터뷰가 실렸다.  

‘방바닥을 손이 터져라 내려치며, 내가 먼저 갈란다고, 내가 먼저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소. 내가 너무 사랑해서 그른가. 우리 아가 어떡하나… 참말로 젊었을 때 더 바르게 살 것을, 내 지은 잘못만 자꾸 떠올려 빌고 또 빌고. … 사람덜이 내 노래 들으면 참 좋아들 하는데, 요즘 노래를 못 부르오. 우리 아기 저러고 있으니 어찌 노래가 나오겠소? 언제라도 구성지게 노래할 날, 꼭 오기만 기다리오. 내 이야기 들으신 분들, 우리 아기 위해 기도해주소. 간곡히 부탁드리오.’ 

우리 교인인데 이런 이야기를 ‘직접’ 듣지 못한 것도 죄송했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마흔두 살 ‘아가’를 위해 기도를 해달라는 이 대목에서 나는 무너졌다. 장로님의 구성진 노래를 꼭 다시 들어야겠다는 오기 같은 게 생겼다. 4년 넘게 매주 변함없이 악수를 청하는 장로님을, 앞으로도 더 보고 싶다.

함께 가는 길
SNS에서 ‘아기를 낳고서야 집 앞에 쌓인 눈을 쓸게 되었다’라고 고백한 글을 보았다. 나도 아직 가족주의를 넘어서지 못해서 ‘나의 아기’를 매개로 해야만, 공감 센서가 켜지는 부족한 사람이다. 페이스북은 4년 전쯤, 교회를 옮기려고 한참 고민했던 그때 내가 마주쳤던 한 추억의 장면을 끄집어내준다. 새벽 3시쯤 함박눈이 오던 어느 날, 한 교회 앞을 사찰집사로 보이는 분이 빗자루를 들고 눈이 땅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빠른 동작으로 눈을 쓸고 계셨다. ‘천국은 이런 집사님들이 가는 거구나!’ 홀로 감탄하다가 도저히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뒤돌아 그분께 걸어갔다. 그리고 “집사님 때문에 이 교회가 복을 받았네요” 하고 용기 내어 말했다. 그분은 나를 술 취한 사람 대하듯 철저하게 무시했다.(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정말로 취해서 비틀비틀하던 날이었으니까.) 그분이 어떤 마음으로 교회 마당을 쓸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간절한 기도제목을 안고 새벽예배에 나올 ‘가족’들을 위해서였을 거다.

교회를 떠나든지, 남든지, 만들든지 ‘그 교회’를 향한 불안한 여정은 계속되고, 선택의 순간은 매번 우리를 곤란하게 할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를 두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고민하는 이들은 모두 ‘함께 가는 길’, 동행에 관한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단순히 함께 예배드리고, 구역 모임을 하고, 또래 모임을 하는 느슨한 형태의 어울림이 아닌, 낭떠러지에서 내 손을 붙들어 줄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감당치 못할 일을 겪느라 신음하는 이가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했다.

새해를 맞아 교회를 떠난 사람, 돌아온 사람, 고민 끝에 남은 사람 등 모두를 응원한다. 다만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이냐?”라는 예수의 질문에 실천으로 답하는 이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관련기사
· [제1회] 제자인가, 테러리스트인가?· [제2화] 가족 같은 교회
· [제3화] ‘트라우마’의 반대말· [제4화] ‘독’과 ‘약’은 한 끗 차이
· [제5화] ‘짜릿한 순간’에 대하여· [제6화] 그 사람을 통해 그 교회를 보다
· [제7화] ‘0원’의 힘을 보여준 부부· [제8화] 어느 신대원 ‘6수생’ 집착일까? 소명일까?
· [제9화] 구질구질한(?) 관계로 엮이는 교회· [제10화] ‘무한한 대양’으로 가는 길
ⓒ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복음과상황 기사제보 광고문의 제휴안내 오시는길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506-10 산성빌딩 104호 우)120-836 | 전화 : 02-744-3010 | 팩스 : 02-744-3013
발행인 : 김형원 | 이사장 : 김병년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형원
Copyright 2008 복음과상황.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con@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