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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권력에 취한 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싸움이란다
[314호 성경으로 보는 세상만사] 시골 할아버지가 ‘젊은 파수꾼’들에게 3
[314호] 2016년 12월 28일 (수) 15:14:48 전성은 교육인, 전 거창고 교장 goscon@goscon.co.kr

얘들아, 어떻게 지내고들 있니?
이젠 편지를 그만 써야 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시골 할아버지가 자꾸 잔소리 한다고 할까봐서. 그런데 지난 6차 촛불집회(12.3)를 보고 정말 감격스럽기도 했고, 또 감격한 나머지 너희들이 혹여 성경에서 눈을 떼는 일이 있을까봐 염려스러워 다시 이 글을 쓴다. 늙으면 주책이라고 슬프면 슬퍼서 한마디 하고 기쁘면 기뻐서 한마디 하고 그런단다. 이해해주렴.

촛불집회를 보며 출애굽기를 떠올리다
6차 촛불집회를 보면서 성경 출애굽기가 생각나더구나. 우리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말은 출애굽기가 그 근원이란다.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구원기’라고 이름을 붙여도 된단다. 좀 길게는 ‘하나님의 인류 구원기’라고 불러도 되지. 출애굽기는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시는지 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에 한 번 있었던 이야기도 아니고, 다가오는 미래에 있을 이야기도 아니란다. 아주 먼 옛날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바로 그때 시작하셔서 수천 년을 이어오시고 지금도 하고 계시며 앞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하실 ‘인류 구원’의 이야기가 바로 출애굽기란다. 그러니 ‘현재완료진행형’인 셈이지. 아마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류를 다 구원하시고 오실[再臨] 거다. 그 사랑의 예수님이 아직도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오실 수 있겠니.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 인류가 다 구원받을 때까지 오시지 마세요” 하고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달리 말하자면, 예수님을 빨리 오시게 하려면 우리가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되지 않을까 싶구나.

자 그럼 다시 출애굽기 이야기로 돌아가자. 구약성경 출애굽기 5장에서 12장까지를 펴놓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품고 읽어보렴.

- 하나님은 왜 처음부터 이집트 사람들의 맏아들과 짐승들의 첫 새끼들을 죽이는 재앙을 내려, 단 한 방에 바로를 굴복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출해 내지 않으셨을까?
 
- 왜 그렇게 열 번씩이나 재앙을 내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질질 끄셨을까? 

자, 다 읽었겠지? 그러면 할아버지하고 함께 다시 읽어볼까? 하나님이 왜 열 번씩이나 재앙을 내리면서 시간을 끄셨는지 생각하면서 말이야.

모세: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백성을 내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 하셨습니다.(5:1, 새번역)

바로: 그 주가 도대체 누구냐? 누군데 나더러 그의 말을 듣고서, 이스라엘을 보내라는 것이냐? 나는 그 주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니, 이스라엘을 못 보낸다.(5:2, 필자 번역)  

이 대화의 핵심은 아래와 같은 바로의 대답에 있단다.

“나는 주를 모른다. 그 주가 누구인지 모른다. 네가 말하는 그 주가 도대체 있기는 하냐? 또 있다고 한들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나더러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흥, 기가 막혀서.”

‘내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바로 자신이 들어줄 수 없는 이유가 ‘주(主)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바로의 대답이 타당하다고 인정하신 하나님은 ‘좋다. 그러면 내가 주구인지를 가르쳐주겠다’라고 반응하신다.

하나님: 그러나 나는, 바로가 고집을 부리게 하여 놓고서, 이집트 땅에서 표징과 이적을 많이 행하겠다.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않을 때에, 나는 손을 들어 큰 재앙으로 이집트를 치고, 나의 군대요 나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겠다. 내가 손을 들어 이집트를 치고, 그들 가운데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어 낼 때에, 이집트 사람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7:3~5, 새번역. 이하 인용 성구는 모두 ‘새번역’임)

하나님은 이집트 사람들 또한 사랑하신단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인지, 누가 참 하나님인지를 알게 하는 것(6:3~7)이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구출해 내시는 목적 가운데 하나였지. 단지 자기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시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던 거야.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은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 억압하는 사람들에게도 당신이 참 주님이심을 알게 하는 것이었지. 하나님은 양쪽 모두 사랑하시기 때문이란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고집덩어리로 만드셨던 거야.

바로 왕 및 권력자들의 특징
하나님은 다짜고짜 재앙부터 내리시지 않았단다. 먼저 하나님의 능력의 표징(miraculous signs)을 보여주셨다. 지팡이가 뱀이 되는 표징(7:10)을 보여주신 거지.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바로가 고집을 부리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자 첫 재앙을 내리셔서 강물이 피로 변하게 하신다(7:20). 그래도 바로가 고집을 부리면서 그들의 말을 듣지 않자 두 번째 개구리 재앙을 내리시지(8:6). 그런데도 또 고집을 부리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단다.

이렇게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계속해서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이 이어지지. 그러나 재앙이 지나가고 나면 그때마다 바로는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고 말을 듣지 않았잖니.(8:19, 32; 9:7, 12, 35; 10:20, 27) 하나님이 이렇게 아홉 번이나 거듭 기회를 주셨단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이집트 양국 백성들이 모두 당신을 알게 하시려는 뜻이었단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지.

여덟 번째 재앙을 당하고 나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드디어 바로의 신하들이 바로에게 권한다. “언제까지 이 사람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함정이 되어야 합니까? 이 사람들을 내보내서 그들의 주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임금님께서는 아직도 이집트가 망한 것을 모르고 계십니까?”(10:7)

그래도 바로는 그 말을 듣지 않는단다. 그것이 권좌에 앉은 자의 특징이거든. 망해도 망한 줄 모르고 참모들의 조언도 충언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 권력이라는 술에 취한 자들의 모습이란다. 촛불 시위 한 번으로 국민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지.

바로의 고집은, 한밤중에 하나님이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들”(all the firstborn in Egypt)을 모두 치셔서 바로의 맏아들로부터 감옥에 있는 포로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까지 모두 죽음을 당할 때까지 꺾일 줄 모른단다. 이를 두고 출애굽 기자는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고집스럽게 하셨다라고 말한다.(14:8) 그리고 그렇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자손과 이집트 사람들 모두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는 목적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거창고등학교 교목이신 유보성 목사님은 그동안 박근혜 게이트와 여섯 번의 촛불집회를 지켜보고 이렇게 희망을 이야기했단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지배체제들은 강고한 고집으로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온갖 계략을 꾸미고 있습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출애굽사건에서 바로가 그랬듯이 억압하는 힘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고집을 피웁니다. 그러나 고집을 피우면 피울수록 무엇이 드러나느냐 하면, 폭력과 권력과 금력을 축으로 한 지배와 억압이 얼마나 못된 것이지, 얼마나 가짜이고 거짓인지, 얼마나 죄악이고 반인륜적인 것이고 야만인지가 계속 노출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지배체제의 허상을 국민으로 하여금 그 폐부까지 들여다보며 염증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과서가 아닌 ‘광장의 참여민주주의’라는 역사적인 춤을 통해서 우리 국민을 일깨우고 교육하는 것입니다. 이 면이 바로 이 황당한 정국 속에서도 우리가 희망을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열 번째 재앙을 당하고서야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내보낸다. 그렇다고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란다. 너희도 알다시피 바로는 곧바로 군대를 보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시 잡아오려고 하지 않았니. 그러다가 바로의 온 군대가 홍해에 수장된 다음에야 비로소 출애굽에서 바로의 이야기가 끝난단다.

“내가 바로의 고집을 꺾지 않고 그대로 둘 터이니, 그가 너희를 뒤쫓아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와 그 군대를 물리침으로써 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니, 이집트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14:4)

“그러나 나는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병거와 기병들을 전멸시켜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기병들을 물리치고서 나의 영광을 드러낼 때에, 이집트 사람은 비로소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14:17~18)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
출애굽기는 하나님이 얼마나 인류를 사랑하시는지 잘 보여주는 이야기란다. 억압하는 사람에게는 벌을 내림으로써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은 억압에서 구출해 내심으로써 하나님이 주님이심을 알게 하시는 이야기,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자 선한 사람들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동시에 악한 사람들의 하나님도 되시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잊으려야 잊을 수 없도록 하나님이 직접 극본을 쓰시고 연출하시고 상영하신 교육영화 같은 이야기지. 모세도, 바로도 모두 조연이고 오직 하나님이 주연이시란다.

구약성서 기자들은 출애굽기를 그렇게 읽었단다. 함께 이사야서 19장을 한 번 볼까? 출애굽 사건이 있은 후 수백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이집트 사람들은 하나님이 참 주님이심을 모르고 있었지. 그래도 하나님은 이집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집트가 회개하고 하나님이 참 주님이심을 깨닫게 하려고 마침내 벌을 내리기로 작정하셨단다. 그리고 자기의 종 이사야에게 그 계획을 알려주어 선포하게 하시는데, 바로 그 예언이 이사야 19장이다. 1절에서 15절까지 하나님이 이집트에 벌을 내린다고 알리신 다음, 16절 이하에서 벌을 주는 목적을 말씀하신단다.

그 날이 오면,
이집트 땅의 다섯 성읍에서는 사람들이 가나안 말을 하며,
만군의 주님만을 섬기기로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 …
그 날이 오면,
이집트 땅 한가운데 주님을 섬기는 제단 하나가 세워지겠고,
이집트 국경지대에는 주님께 바치는 돌기둥 하나가 세워질 것이다.
이 제단과 이 돌기둥이,
만군의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 계시다는 징표와 증거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 곳 백성이 압박을 받을 때에,
주님께 부르짖어서 살려 주실 것을 간구하면,
주님께서 한 구원자를 보내시고, 억압하는 자들과 싸우게 하셔서,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을 이집트 사람에게 알리실 것이며,
그 날로 이집트 사람은 주님을 올바로 알고,
희생제물과 번제를 드려서, 주님께 예배하고,
또 주님께 서원하고 그대로 실천할 것이다.
주님께서 이집트를 치시겠으나,
치시고 나서는 곧바로 어루만져 낫게 하실 것이므로,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주님께서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실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이집트에서 앗시리아로 통하는 큰길이 생겨,
앗시리아 사람은 이집트로 가고
이집트 사람은 앗시리아로 갈 것이며,
이집트 사람이 앗시리아 사람과 함께 주님을 경배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앗시리아,
이 세 나라가 이 세상 모든 나라에 복을 주게 될 것이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 나라에 복을 주며 이르시기를
“나의 백성 이집트야, 나의 손으로 지은 앗시리아야,
나의 소유 이스라엘아, 복을 받아라” 하실 것이다.
(사 19:18~25)

당시 이집트는 갈그미스 전투에서 유다의 왕 요시아를 죽게 한 나라이고, 앗시리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나라로 서로 원수의 나라들이었다. 그런데 원수의 나라들이 하나가 된다니! 아, 놀라운 사랑의 경륜이여! 두려운 인내의 경륜이여! 그 사랑과 인내가 당신의 아들 예수를 우리를 위한 제물이 되게 하셨다! 사도 바울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지.

“나는 복음〔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 1:16)

여기서 ‘그리스 사람’은 이스라엘 이외의 모든 민족을 가리킨단다.

‘말 바꾸기’는 권력에 취한 자들의 특기
다시 바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바로가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동안 누가 제일 고통을 받았을까? 그건 보나마나 백성들일 거다. 이집트의 모든 물이 피로 변해 마실 물이 없어지자 백성들은 강 주변에 우물을 파야 했지(7:24). 그러나 물이 피로 변한 첫 번째 재앙 때 바로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지. 우물을 파더라도 부하들과 노예들이 팠지 자기가 직접 팔 일이 없었으니까. 권력이 부패하고 독단적이 되면 죽어나는 것은 바로 국민들이란다. 힘없는 국민들만 죽어나지 권력과 돈을 쥔 사람들은 끄떡도 없단다. “이번에도 바로는 이 일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발길을 돌려서 궁궐로 들어갔다.”(7:23)

두 번째 개구리 재앙 때 비로소 관심을 보였는데,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줄 터이니 주께 기도하여 개구리를 없애달라고 했지.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개구리를 없애주자, 한숨을 돌린 바로는 마음을 바꾸어 못 보내 주겠다고 다시 고집을 부리는 것 아니겠니.(8:15) 네 번째 파리 재앙을 겪고 나서는 바로의 마음이 조금 변하는 조짐을 보였단다. 바로는 모세에게 광야로 백성들을 데리고 나가 하나님께 제사드리도록 허락하면서 “그리고 너희는 내가 하는 일도 잘 되도록 기도하여라”(8:28)라는 부탁까지 하지.

모세가 기도하여 파리가 다 없어지자 바로는 다시 마음을 바꾸어 고집을 부린단다. ‘마음 바꾸기’야말로 권좌에 앉아 권력의 맛을 본 자들의 특기지. 그런데 그들의 마음 바꾸기는 실은 ‘말 바꾸기’란다. 그들이 마음을 바꾸는 일은 없다. 권좌가 위태롭다 싶으면 국민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다가 위기가 지나가는 것 같으면 말을 바꾸는 거란다. 일단 위기를 넘기고 보자는 술수로 마음을 바꾸는 척하는 거지 사실은 말만 바꾸는 것이지.

권력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야. 알고 보면 하나님만큼 많은 권력을 가지신 분 세상 어디에 있겠니.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을 이랬다저랬다 하시는 분이 아니야.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그 마음이 변치 않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 그러나 권력에 눈이 멀거나 권력의 맛에 취한 자들에게는 국민의 고통과 슬픔, 아픔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게 마련이란다. 권력은 통제되지 않으면, 그 맛에 취한 자들을 눈멀게 하고 귀먹게 하고 가슴을 돌덩이로 만들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되게 하는 마약 같은 무서운 독이란다. 권력이 반드시 시스템과 제도를 통해 통제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거지. 이 사실을 꼭 기억해 주면 고맙겠구나. 그래서 너희들이 앞으로 만드는 세상은 권력이 시스템과 제도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고, 그 시스템과 제도는 법으로 보호되어 만에 하나 깨뜨릴 경우 엄격하게 벌을 받는 세상을 열어가기를 바란다.

촛불집회는 하나님이 ‘노’ 하신 사건
하나님은 엄격하게 죄를 묻고 벌을 내리며 회개를 촉구하는 분이란다. 그래서 하나님은 재앙의 강도를 점점 높여가시지. 회개는 다름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되는 일, 곧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일이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이집트 사람들뿐 아니라 바로까지도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기 전에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는 마술을 보여주어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재앙의 강도를 높여가며 무려 열 번씩이나 기회를 주시는 분이야. 바로의 마음을 고집불통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의도가 다름 아닌 사랑이라고, 출애굽 기자와 수백 년 뒤 그 이야기를 읽는 구약의 기자들이 고백한단다. 이에 대해 유보성 목사님은 이렇게 설교하셨지.

“물이 피가 되는 첫 번째 재앙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재앙인 이집트의 모든 짐승이나 사람의 맏배를 쳐서 죽게 하는 재앙까지, 재앙의 농도를 점층적으로 강화시켜나가면서 재앙을 통해서 탈출시킴으로서, 힘과 지배체제로 약자를 못살게 구는 것이, 가해자인 바로와 그 편에 섰던 애굽 백성에게는 얼마나 망령된 행실인지를 깨달아 항복할 때까지 끌고 가시고, 그 억압에 억눌리는 피해자에게는, 힘으로 약자를 누르고 노예로 부려먹는 행실이 얼마나 죄악된 것이고 치가 떨리는 일인지를 가슴깊이 새겨지도록 하는 교육을 양쪽에 다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 이 재앙과 구출 드라마의 핵심은 이집트 바로나 억압을 받다가 탈출하는 이스라엘 양쪽 모두에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리고 세우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에서 바로와 이집트 백성은 누구일까? 계속해서 유보성 목사님은 이렇게 얘기한단다. 조금 길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가르침이니 귀 기울여주려무나.

“한국 사회가 두루 발전하는 데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장애가 무엇이었습니까?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 박정희 군사정권과 공화당,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민정당, 이명박·박근혜로 넘겨진 한나라당·새누리당. 이런 정권과 정당이 한국근현대 정치사의 주류가 되어 내려왔습니다. 이승만 세력으로 나라를 세운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곧 친일 세력의 득세와 미군정 세력의 역할을 강화하는 소위 반민족 우익세력의 득세가 우리나라 현대사의 주류집단으로 자리잡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 한국현대사의 주류가 된 정치세력은… 한국 사회의 모든 부문을 그들 정치의 노선을 따르도록 길들이고 구축해나갔습니다. 그러니 한국 사회의 경제는 재벌 중심이고 특혜와 밀실에서 조종 야합 뒷거래 통제의 방식으로 경제구조가 철저히 평등과 분배 정의 쪽이 아닌 불평등과 소수 대기업만 사는 경제구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육정책은 그들 정책에 순응하고 그들 정책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길러서 그들만의 리그를 강화하는 사람들을 인재라면서 길러서 세상에 내어놓는 교육정책으로 갔습니다. 언론은 철저히 이런 주류정치의 선전도구로 전락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경제정책이 옳다는 선전을 해주었고, 그들의 정치적인 견해가 정답이다는 논설을 써주었고, 그들의 교육정책이 올바른 교육정책이라고 선전해 주었습니다. … 해방 이후 모든 공직·관직사회 공무원들의 체질을 다 그들 체질과 같아지도록 채색해놓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정치가 아무리 엉터리 같은 짓을 해도 막무가내로 지지하는 이른바 콩크리트 지지층이 상존하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뭔가를 하고 먹고살려면 그들 편에 서고 그들의 체질을 닮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촛불집회는 바로 이러한 한국의 현대판 바로체제와 그 추종세력에 대해 하나님께서 온 국민을 통해 ‘노’(No) 하시면서 회개를 촉구하시는 사건으로 유 목사님은 읽으신 거지. 정말 그렇단다. 하나님이 가장 센 단 한 방의 재앙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열 번이나 강도를 높여가며 재앙을 내리신 이유는 인류를 가르치고 회개시키시려는 목적이었단다. 우박 재앙이 있은 후에 모세는 이렇게 말하지. “이것은 온 세상이 우리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임금님께 가르치려는 것입니다.”(9:29)

너희 ‘젊은 기독인’을 통해 보이는 꿈이 있단다
권력의 술에 취한 자들은 이 세상과 권력이 자기들의 것인 줄 안단다. 온 세상과 권력은 하나님의 것인데 말이야. 이를 깨닫지 못하면 끝내는 홍해 바다에 수장되고 마는 운명을 맞이할 텐데도 그 사실을 모른단다. 그래서 회개하기는커녕 고집을 부리고 위기를 모면하려는 얄팍한 꼼수나 쓰면서, 점점 더 커지는 국민들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단다. 이집트의 바로가 그러했고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은 일이 진행되고 있지 않니?

지금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촛불의 싸움은, 박근혜와 그를 둘러싼 세상 그리고 권력이 자기들의 것인 줄로 아는 세력들과 판단력이 마비되어 죽으나 사나 그들 편에 서서 표를 찍어주는 콘크리트 집단이 눈 뜨기를, 그들이 회개하기를 촉구하는 싸움이란다. 선량한 민주시민도 자기 성찰과 반성을 통해 정의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우고, 힘을 가진 사람이 힘을 가지지 못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정의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뼛속 깊이 새기는 기회로 삼자고 촉구하는 싸움이란다. 이건 누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란다. 오직 하나님이 이기시는 싸움인 거지. 바로체제와 콘크리트 층이 하루아침에, 재앙 한 번에 회개하는 것이 아니란다. 우리 또한 하나님이 출애굽 사건에서 보여주신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살아야 한단다. 알겠니?

그러니 너희 젊은 기독인들의 사명은, 권력과 돈이 성공의 척도인 줄 알고 그것들을 가지려고 죽을 둥 살 둥 달려가는 세상을 향해 “No!”라고 외치는 거란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뿌리다”라고 외치며, 너희들의 삶으로 하나님을 이 세상에 보여주는 일이란다. 혹시 ‘제가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아요? 저는 그럴 만한 사람이 못 돼요’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구나. “괜찮아. 걱정하지 마.”

왜냐고? 하나님이 너희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지.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요엘 2:28)

이 할아버지는 믿는단다. 촛불집회를 보면서 내 사랑하는 젊은 파수꾼들이, 이 할아버지 세대보다 얼마나 더 훌륭한지. 너희를 통해 하나님이 어른 세대에게 하시는 말씀이 들린단다. 너희를 통해 하나님이 ‘정의가 강같이 흐르는 세상’을 여시는 것이 보인단다. 너희를 통해 이집트 사람들이 앗시리아 사람들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하나 되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한 세상’을 열어 가시는 모습을 본단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라! 하나님이 이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출애굽을 연출하고 계시는 구나! 아멘!    

2016년 12월 7일 새벽, 거창에서
살날이 길지 않은 할아버지가. 


전성은
서울대 농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65년 거창고 교사를 시작으로 2006년 교직에서 물러나기까지 41년간 지방 읍내의 학교에서 ‘지천명(知天命)의 교육’에 일생을 쏟았다. 샛별중학교 교장, 거창고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으며, 참여정부 시절에는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한 바 있다. 퇴직 후에도 교육 정책 및 교사 교육에 관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활발히 이어오고 있으며, 국제성서연합회 세계성경번역센터 한국 편집인으로 성경 번역에도 매진해왔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는 ‘교육론’ 3부작인 《왜 학교는 불행한가》 《왜 교육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가》 《왜 교육정책은 역사를 불행하게 하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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