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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학자, 종교개혁 500주년을 되새기다
[315호 연중기획]
[315호] 2017년 01월 31일 (화) 11:08:02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 소장 goscon@goscon.co.kr
   
 

〈복음과상황〉에서 종교개혁 500주년 기획 연재를 존경하던 박득훈 목사님과 함께하자고 제안했을 때 나는 기쁘고도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 주제를 다루기에 적절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신교를 아끼고 사랑하는 평소 내 마음가짐으로 배우고 생각하려 결국 수락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천주교가 한반도에 소개된 시점부터 신앙을 받아들였던 첫 세대를 선조로 모시고 있다. 박해를 피해 도망 다니며 옹기를 굽고 팔던 내 조상들은 산골에서 살고 있었다. 친가, 외가, 처가 모두 천주교 집안이다. 그런 집안에서 자란 내가 개신교계 대학인 연세대 철학과를 다녔다. 그 시절 채플은 재미있었고 기다려졌다.

독일 마인즈 대학교에서 성서신학을 공부할 때에도 개신교 성서학자들로부터 성서 강의를 자주 들었다. 교회 일치와 대화를 깊게 생각한 유학 시절이었다. 남미 엘살바도르에서 해방신학을 배울 때는 자유와 해방을 위한 개신교와 가톨릭의 공동 노력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16세기 가톨릭에 대한 일부 정보를 통해 21세기 가톨릭을 폄하하는 개신교 사람들을 목격하는 일은 내게 무척 곤혹스럽다. 물론 개신교에 관한 부적절한 정보로 개신교를 폄하하는 가톨릭 사람들을 보는 일도 괴롭다. 누구 탓일까? 신학적 식견과 양식이 부족한 일부 목사와 신부들의 잘못된 설교 탓이다.

넓고 깊은 차원의 종교개혁
평범한 가톨릭 신학자로서 나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심정으로 보고 있다. 우선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쁘게 축하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것을 알아보는 깊은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영적 시선을” 나는 잊지 않는다. 종교개혁은 가톨릭을 뒤흔들었고 반성시켰다.

그러나 서글픈 생각도 사라지지 않는다. 성서학자의 눈으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보면 기쁨이 앞서고, 해방신학자의 눈으로 보면 슬픔이 앞선다. 종교개혁을 막지 못한 가톨릭의 잘못과, 종교개혁을 제대로 못한 개신교에 대한 아쉬움이 겹친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종교개혁은 개신교만의 일인가? 종교개혁은 개신교에만 의미 있는 사건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은 가톨릭과 인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가? 나아가 종교개혁은 불교와 이슬람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가? 아니다. 그럼에도 종교개혁은 흔히 개신교만의 일로 여겨지고, 개신교인들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대다수 가톨릭 신자들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고 있다. 불자들은 먼 산 보듯 남의 일처럼 여긴다. 일부 깨어있는 사람들만 종교개혁을 좀 더 넓고 깊은 종교적 사회적 차원에서 보려고 한다.

논의에 앞서 ‘종교개혁’이라는 단어를 짚고 넘어가자. 종교개혁이라는 단어가 불교, 이슬람교 등 이웃 종교에 불편한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리스도교만 종교에 해당한다고 우길 수는 없지 않겠는가. 루터, 칼뱅 등이 불교와 이슬람교의 개혁을 주장한 바는 없다. 종교개혁보다 ‘그리스도교 개혁’이란 용어가 어떨까. 그 용어도 여러 이유로 흔쾌하지 않다면 ‘개신교 운동’이란 용어는 어떨까. (이 글에서는 편의상 ‘종교개혁’이란 용어를 그대로 쓰겠다.)

또한 한 가지 질문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교 분열을 원하셨는가?’ 11세기 초반 그리스도교가 동서 지역으로 분열된 이후 16세기에 다시 개신교와 가톨릭으로 분열되었다. 종교개혁은 개신교의 출발이자 그리스도교의 또 다른 분열이다. 그리스도교 분열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긍정적 의미를 찾는 작업은 교파마다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분열은 인류 분열의 상징이요 아픔이다. 사람이 그리스도교를 갈라놓은 것이지 하나님이 그리스도교를 분열시키지 않았다.

자체 개혁에 실패한 가톨릭교회
중세 서방교회의 기본 패러다임은 국가가 교회에 선사된 것이라고 한스 큉은 지적한다. 전제군주적 교황교회로서 가톨릭이 권력기관처럼 운영된 것이다. 교회의 군대화, 성직자중심주의는 전제군주적 교황교회와 함께 중세 가톨릭의 특징이었다. 말하자면 가톨릭은 그리스도교에 전제정치를 도입한 원죄를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한 매력적인 대안으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1182-1226)를 꼽을 수 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는 가난이라는 해답을 가톨릭에 제시했다. 1209년 막강한 인토켄티우스 3세 교황과 가난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가 만났지만,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청빈 운동의 매력을 가톨릭은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소중한 개혁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종교개혁 전후에 한참 진행되었던 유럽의 남미 정복과 선교가 가톨릭의 자체 개혁을 가로막은 점도 있다. 유럽에서 뺏긴 성도와 영토를 남미에서 그 몇 배로 보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회 운영에서 가난이라는 해답을 놓친 가톨릭교회는 신학 분야에서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라는 새로운 빛을 만났다. 대학과 수도원에서 신학 교육을 강조한 도미니크 수도회도 13세기에 나타났다. 교육 중심지로서 수도원을 대체하며 새로이 등장한 대학과 학문을 중심으로 토마스 아퀴나스는 서양에서 황제, 교황 이외의 제3세력의 대표자라고 말할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성의 빛과 신앙의 빛은 둘 다 하나님에게서 온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신학에서 이성의 매력은 가톨릭에서 권력의 힘에 눌리고 말았다. 그렇게 토마스 아퀴나스는 당시 가톨릭에서 자리 잡지 못했다. (그가 보편적 스승으로 가톨릭에서 존중받기 시작한 것은 사후 600년이 지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이었다. 그럼에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실상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가톨릭 신학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 가톨릭 안팎, 철학 교재들에서 유행하고 있으나 그것은 오해일 뿐이다.) 종교개혁 이전의 두 번의 자체 개혁 기회를 가톨릭은 결국 놓치고 말았다.

무슨 메시지일까. 아무리 훌륭한 소수의 사람이 출현해도 조직으로서 교회의 추락을 막기에 부족하다는 뜻 아닐까. 아씨시 프란치스코의 가난,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간 이성이라는 매력적인 개혁 방안은 결국 가톨릭교회의 권력에 짓눌리지 않았는가.

‘가톨릭 자체 개혁’의 경과와 평가
종교개혁에 대한 가톨릭의 반응을 독일 신학계에서는 “Gegen-reformation”이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적절하게 옮기기 쉽지 않다. ‘반대-종교개혁’? 나는 ‘가톨릭 자체 개혁’이라고 번역하고 싶다.

마르틴 루터가 1517년 종교개혁의 깃발을 내걸었다. 종교개혁의 정확한 시작과 동기는 학자마다 다양하다. 요한 후스(1370-1415) 처형, 후스 전쟁(1420-1431), 에라스무스(1469-1536)와 인문주의, 츠빙글리(1484-1531)와 재세례파, 칼뱅(1509-1564)과 제네바 종교개혁, 헨리 8세(1509-1547)와 영국의 교회 분열 등 종교개혁 전후의 역사적 과정을 여기서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특별히 가톨릭이 종교개혁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전후를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보자.

‘가톨릭 자체 개혁’은 15세기 콘스탄츠 공의회와 바젤 공의회의 주요 의제 중 하나였다. 교황 측에서 ‘머리와 지체부터 개혁’(reformatio in capite et membris)을 실현하려 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 교황들은 그것을 관철할 종교적 능력이 부족하였다. 교황보다 공의회를 우위에 놓은 추기경들을 교황들은 두려워하기도 했다. 독일 황제 카알 5세와 교황 클레멘스 7세(1523-1534)의 정치적 갈등도 자체 개혁의 반대급부였다.

1545년 12월 13일 시작된 트리엔트 공의회는 한동안 무엇을 다루어야 할지도 일치되지 않았다. 황제에게는 가톨릭 자체 개혁, 가톨릭과 개신교의 재일치가 중요하였다. 교황은 교리 문제를 주로 다루고 싶었다. 1546년 1월 22일에야 개혁과 교리를 함께 다루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1546년 4월, ‘오직 성서’라는 종교개혁가들의 주장에 대응하여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서와 전승’이라는 신앙의 두 가지 원천을 대치시킨다. ‘거룩한 전통’(성전:聖傳, Traditio)도 ‘같은 경건함으로’(pari pietatis affectu)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은총’을 말하며 타락한 인간 본성이 완전히 손상되었다는 종교개혁가들의 주장을 배척하고, 인간 영혼에는 언제나 내재하는 상존 은총(常存恩寵, gratia habitualis)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1551년에는 성체의 실체 변화(實體變化)가 명백하게 선포되었다.

두 번째 천년기에서 가톨릭에 가장 중요한 공의회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다. 이 두 공의회를 모르면 가톨릭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한마디로 ‘가톨릭은 개신교와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한 공의회였다. 그 요지는,  가톨릭은 개신교와 상당히 다르며, 그래서 개신교를 종교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시기 가톨릭의 자체 개혁은 남미 정복과 선교, 예수회의 발전 등으로 크게 요약된다. 개신교의 요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가톨릭이 따로 살길을 찾아 나선 셈이다. 이런 흐름은 프랑스혁명을 맞이하고 계몽주의를 거치고, 두 차례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도 지속되었다.

누구도 이단으로 판정하지 않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59년 1월 25일 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갑자기 소집했다. 그는 이렇게 선포했다. “공의회는 먼저 가톨릭 자체의 공간에서 교회 내 생활을, 재일치의 길을 방해하는 옛 편견과 장애에서 해방시키고 또 거기에 새 정신으로 기초를 놓음으로써 그만큼 일치를 더 준비시키고자 한다.” 공의회에 안으로는 자각을 준비시키고, 밖으로는 비가톨릭 그리스도인에 대한 개방을 명확한 목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아죠르나멘토’(aggiornamento)라는 단어로 표현되었다.

이 단어는 시대에 대한 적응뿐 아니라 가톨릭 사고방식의 완전한 변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권력과 교회가 밀접히 결합되었던 콘스탄티누스 체제의 극복, 반(反) 종교개혁으로 가득한 낡은 사고의 극복, 현대의 질문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조직으로 변화 등을 한꺼번에 노린 거대한 전망이었다. 교황청 대학들과 교황청 기관에서 우세하던 로마 중심의 신학 경향을 넘어, 남미 아시아 등 제3세계 신학을 받아들이는 문제도 포함되었다. 가톨릭이 과거로 후퇴하느냐 미래로 전진하느냐 갈림길에 선 것이다. 한마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이 개신교와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정의한 공의회였다.

이후 미사에서 라틴어 대신 모국어가 도입되었고, 성서의 자국어 번역이 격려되었다. 성전(聖傳)에 대한 성서의 우월함이 인정되었다. 인간에 대한 구원 사업을 더 잘 수행하기 위해 국가적 방법을 동원해도 된다는, 콘스탄티누스 이래로 지속되어온 가톨릭 내부의 지배적 생각을 최종적으로 포기하였다. 유대교(Judaism)에 대한 가톨릭의 박해를 사과하였고, 유대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약속은 포기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개신교도 가톨릭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인정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발표한 16개 문헌에 새로운 교리는 하나도 없다. 아울러 누구도 이단으로 판정하지 않은 최초의 공의회였고, 모든 선의의 인간과 사상과 대화하는 열린 공의회였다. 가톨릭은 이제 새로운 교리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려는 것이었다.

16세기 가톨릭 같은 21세기 개신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시대의 징표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유명한 문구를 만들었다면, 제2차 남미 주교회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선사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사회적 정치적 사랑이라고 나는 또 표현하고 싶다. 사회적 정치적 사랑이라는 용어는 정서적으로 낯설고 신학적으로 받아들이기 꺼려지는 용어일 수 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적절한 용어 중 하나 아닐까. “사랑은 사회적 정치적 사랑이 되며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모든 행동으로 드러난다.”

바울과 루터의 고뇌는 이것이었다. “죄로 가득한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수 있을까?” 해방신학의 고뇌는 이것이다. “불의로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 사랑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교황 회칙 《찬미 받으소서》 마지막에 실린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권력과 재산을 소유한 이들을 깨우쳐 주시어 무관심의 죄를 짓지 않게 하시고”라고 강조하고 있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가장 많이 고뇌를 했고 바울은 죄의 문제로 더 고뇌했다. 21세기 인류에게 있어 ‘죄’가 더 문제인가 ‘불평등’이 더 문제인가? 죄가 아니라 불평등의 문제가 21세기 인류 최대의 난제로 그리스도교 앞에 등장했다. 죄가 불평등을 낳는가, 불평등이 죄를 낳는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겠다. 불평등이 죄를 낳는다고 나는 고백한다. 이런 시대에 가톨릭은 어떻게 할 것인가?

1962년 교황 요한 23세는 “가톨릭의 답답한 창문을 활짝 열어 시원한 공기가 들어오게 하라”고 말했다. 1980년대 어느 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당 문을 활짝 열어 사람들이 마음대로 들어오게 하라”고 말했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당 안에 갇혀 있지 말고 세상으로, 고난의 현장으로 나아가라”고 선언했다. 현대 가톨릭의 자세와 모습을 잘 드러낸 언급이었다.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은 지금 우리 시대에는 없다. 21세기 가톨릭은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과 크게 다르다. “우리는 말씀과 성사(聖事)의 낡은 대립을 오래전에 이미 극복하였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은 많이 변화했는데,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거나 인정하기 싫어하는 가톨릭 신자들은 여전히 많다. 또한 가톨릭은 많이 개혁되었는데, 가톨릭을 보는 개신교의 눈은 별로 변화되지 않은 것 같다. 21세기 개신교는 16세기 가톨릭 같기도 하다. 오늘 개신교가 이런 말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종교개혁이 가톨릭에 준 영향
만일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지금 가톨릭은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유럽 정치사에서 소수 정파의 하나로 기능하며 민망한 꼴을 반복하고 있지 않을까? 성직자를 교회와 동일시하며, 교회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잘못을 여전히 범하고 있지 않을까?

종교개혁은 성사를 통하지 않고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새로운 방법을 그리스도교에 제시했다. 왜 가톨릭은 성서를 모국어로 번역할 생각을 진즉에 하지 못했을까. 성서를 읽고 연구하는 것이 기도처럼 중요하다고 왜 유대교처럼 진즉에 강조하지 못했을까. 만일 진즉에 이런 개혁이 진행되었다면 서양 고대부터 문맹이 크게 사라졌을 것 아닌가. 그랬다면 학문과 문화가 더 빠르게 진보하고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여성의 지위가 훨씬 빨리 존중받는 세상이 오지 않았을까.

중세에 가톨릭 내부에서 심하게 벌어졌던 은총에 대한 논의를 개신교는 새롭게 무대에 올렸다. 은총의 ‘전달 방식’에 치중한 가톨릭에게 하나님 자신이 은총 자체라는 점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개신교의 만인제사장설은 성직자중심주의에 물든 가톨릭에게 새롭게 하느님 백성을 보는 눈을 선사해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직 성서, 오직 은총, 오직 믿음’이라는 종교개혁가들의 표어보다도 만인제사장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사실 가톨릭 신학에도 성서, 은총, 믿음에 대한 강조는 종교개혁 이전에도 있어 왔다. 다만 그것을 가톨릭 자체 개혁의 신학적 프로그램으로 삼지 못했을 뿐이다.

교회나 성직자보다 개인의 중요성을 인정한 점을 종교개혁의 공헌으로 칭찬하고 싶다. 성도는 하나님의 잊혀진 백성이었다. 평신도의 중요성을 가톨릭은 20세기 들어서야 겨우 조금씩 깨닫는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직자중심주의를 악이라 규정하고 비판하지만 한국 천주교회는 애써 그 소리를 주목하지 않는다. 성직자중심주의는 한국 천주교 사제들에게 금과옥조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만인제사장설은 한국 개신교에서도 시들해진 것 같다. 오히려 성도 사이의 계급 구조가 자리 잡은 것 같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이제는 무엇에 저항할 것인가?
개신교의 아름다운 주장을 가톨릭은 부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가톨릭의 자정 능력은 부족하였다. 오묘한 섭리인가. 유대인이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아 이방인에게 하나님 말씀이 전해졌고, 유대인은 그런 이방인을 보며 유대교의 본질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고 바울은 로마서에서 설명하였다. 가톨릭이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아서 개신교에게 하나님 말씀이 전해졌고, 가톨릭은 그런 개신교를 보며 가톨릭의 본질을 다시 깨닫게 되는 논리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분열을 이렇게 비유해 보면 어떨까. 형에게 항의하며 새살림을 차린 아우를 형은 격려와 기도로 축복하였다. 언니에게 항의하며 독립한 여동생이 잘살기를 언니는 진심으로 바랐다. 그런데 새살림이 그리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형과 언니는 자책할 수밖에 없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입니다.” 서로 미안하고 서로 멋쩍다.

루터가 지금 다시 온다면 종교개혁에 만족할까?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까? 루터가 부패한 가톨릭에 저항하여 종교개혁을 시작했다면, 오늘 한국 개신교는 무엇에 저항하여 종교개혁을 다시 시작해야 할까? 지금 개신교와 가톨릭에 새로운 종교개혁이 필요하다.

하여 외람되게 몇 가지 제안하고 싶다. 첫째, 한국 개신교는 개신교 자신에게 저항하라. 종교개혁 정신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지금 한국 개신교의 현실에 강력 저항하라. 둘째, 한국 개신교는 부자와 권력자에게 저항하라. 개신교와 가톨릭은 그리스도교 역사상 거의 단 한 번도 부자와 권력자에게 저항한 일이 없었다. 한국 개신교와 가톨릭은 자유와 해방을 위한 민족의 운명에 제대로 동참한 적이 없었다. 셋째, 개신교 운명을 목사가 아닌 성도에게 맡겨라. 21세기는 성도 시대, 평신도 시대다. 개신교 운명을 목사가 아닌 성도에게 맡겨라. 가톨릭 운명을 신부가 아닌 평신도에게 맡겨라.

가톨릭이 전제정치를 그리스도교에 소개한 원죄를 지었다면, 개신교는 자본주의를 그리스도교에 소개한 원죄를 지었다. 전제정치는 권력자의 행복을 주장하지만, 예수는 힘없는 어린이들의 행복을 선언한다. 예수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했지만, 자본주의는 부자는 행복하다고 선언한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누구에게 저항해야 하는지 명백하지 않은가. 개신교와 가톨릭은 자기 자신에 깊이 침투한 반(反) 복음 정신부터 버려야 한다.

11세기 쾰른의 성 부르노가 세운 카르투지오 수도회를 두고 이런 말이 전해진다. “카르투지오 수도회는 개혁된 적이 없다. 결코 변질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Cartusia numquam reformata, quia numquam deformata.) 이런 말을 개신교가 듣게 되기를!

‘작은 교회, 저항하는 교회’ 운동
한국 개신교에 ‘작은 교회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다. 작은 교회일 뿐 아니라 저항하는 교회를 강조하는 박득훈 목사님의 말씀이 참으로 반갑다. 규모가 관건이 아니라 저항 정신이 먼저다. 그런 점에서 ‘작은 교회 운동’이라는 용어보다 ‘저항하는 교회 운동’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저항’은 개신교를 드러내는 바로 그 단어다. 저항 없이는 개신교도 없다. 저항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개신교다(Protesto, ergo sum). 개신교는 원래 저항하는 사람들 아닌가. 저항하지 않으면 아직 개신교가 아니다. 저항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직 개신교 성도가 아니다. 예수 공동체는 저항하는 교회의 원조다. 저항 영성을 상실한 한국 개신교의 모습이 내게는 그 어떤 면보다 안타깝다. 저항을 버리고 순종을 택한 개신교는 종교개혁을 배신한 것이다.  

서울 대형 교회의 장로는 우리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배층에 속한다. 그들은 교회를 매개로 정치, 경제 각 분야에서 인맥의 중심 역할을 한다. 대형 교회 장로는 종교적 지위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이기도 하다. 개신교 신자는 사회 최상위 부문에서 압도적 비율을 차지한다. 최근 촛불 민심은 사회 지배층에 대한 탄핵이기도 하다. 대형 교회와 장로들은 여기에서 제외될 수 없다.

대형교회에 다니면 심리적 위로와 안정을 느낄지 모르겠다. 그러나 예수는 대형교회에 없다. 대형교회는 이단보다 더 나쁜 집단이다. 권력화된 대형 교회와 사회 지배층인 장로는 사회악이다. 예수를 제대로 믿으려면 대형 교회를 떠나야 한다. 대형 교회를 떠나 작은 교회를 찾으시라 권한다. 대형교회 때문에 개신교가 무너지고 있다. 한국 개신교에 “대형교회 떠나기 운동”이 생겼으면 좋겠다. ‘작은 교회 운동’은 “대형교회 떠나기 운동”과 동전의 양면이다. 작은 교회 운동만 하고 대형교회 떠나기 운동을 하지 않으면 절반만 한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반대하는 세력을 폭로하고 그들과 싸웠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면서도 싸우지 않는다면, 예수를 절반만 따르는 셈이다.

앞서 언급했으나 개신교의 만인제사장설은 아무리 보아도 멋진 사상이다. 그런데 장로 계급이 출현하여 만인제사장설을 실천적으로 무너뜨렸다. 가톨릭에는 성도 사이의 평등이 있는데, 개신교에는 성도 사이의 계급이 뚜렷이 있는 것 같다. ‘종신’ 장로라니? 개신교 성도들은 마치 다단계 회사의 구성원처럼 직급과 권리가 차별되어 있다. 종신 장로는 마치 기업의 대주주처럼 평생 회사를 쥐고 흔드는 것 같다. 종신 장로직은 한국 개신교에서 모든 악의 근원이 된다. 종신 장로직은 당장 없애라.

종교개혁은 가난한 사람들 눈으로
종교개혁은 주로 교파 차원에서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의 종교개혁은 부자에게 유리한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리한가를 따져 물으며 나아가야 한다. 종교개혁은 그리스도교의 이익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종교개혁의 참된 판단 기준이다. 그래야 종교개혁이 예수를 계승하는 것이 된다. 예수의 관심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종교개혁은 개신교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주제는 개신교에서 실컷 논의되어 왔다. 종교개혁은 가톨릭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주제 역시 가톨릭에서 자주 논의되어 왔다. 종교개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주제는 그동안 논의된 적이 없다. 인류 70%를 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는 종교개혁이라면, 그런 종교개혁을 어디에 써먹겠는가? 개신교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종교개혁이 잘 이루어진 것인지 그리스도교 학자들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묻자. 개신교와 가톨릭이 지금 잘하고 있는지를 우리끼리 물을 게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묻자. 그들이 그리스도교를 가장 정확히 알고 있다.

분열된 그리스도교라는 현실 앞에 나는 무기력한 신학자다. 문제는 아는데 답은 모르는 우둔한 신학자로서 나는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해 매일 기도할 뿐이다. “신학자들은 교회와 신학이 복음화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고 신학이 탁상공론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개신교와 가톨릭 모두에게 새로운 종교개혁이 필요하다. “교회 일치를 위한 노력은 주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며 교회 일치 운동은 인류 가족의 일치에 이바지한다.  
 

김근수
가톨릭 성도신학자.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광주가톨릭대학에 입학, 2학년 때 독일 마인즈 대학에 유학하여 신약성서를 전공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보는 예수’를 주로 공부하다가 ‘예수를 보는 가난한 사람들’을 연구하기 위해 남미 엘살바도르 UCA 대학에 유학했다. 해방신학의 대가 혼 소브리노(Jon Sobrino)에게 해방신학과 기독론을 배웠다. 서양철학사, 4복음서, 해방신학에 관심이 있으며 종교 간 대화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제주시에서 가족과 살고 있다. 《슬픈 예수》 《행동하는 예수》 《교황과 나》를 썼고, 《해방자 예수》 《희망의 예언자 오스카 로메로》를 번역하였다. 공동 집필로 《교황과 98시간》 《쇼!개불릭》 《지금, 한국의 종교》가 있다. 〈가톨릭프레스〉  초대 편집인이었고 해방신학연구소를 만들어 소장으로 있다. 팟캐스트 “쇼!개불릭”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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