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서 예수까지 - 필립스 성경: 마태, 마가, 누가, 요한 / J. B. 필립스 / 김명희 옮김 / 숨숨 펴냄 / 12,800원

“내가 이 작업을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인 1941년이었다. 당시 나는 공습이 심했던 런던 남동부의 교구에서 사역했고, 주로 내가 섬기는 회중과 청년회를 위해 성경을 번역했다.”

존 버트램 필립스(J. B. Phillips) 목사가 그리스어 성경을 현대 영어로 옮긴 필립스역 성경의 개정판(1972) 서문에 쓴 글이다. 그가 나치의 공습이 치열한 전시 상황에 성경 번역에 매진한 건,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거나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회중과 (특히) 청년들이 성경과의 ‘소통’을 누리게 하려는 열정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C. S. 루이스의 격려”에 힙입어 번역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번역본은 여러 출판사들로부터 거절을 당하다가 마침내 출간 기회를 얻는데, 이 출판사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1942)를 최초로 펴낸 곳이라는 사실에서 다시 루이스와의 연결점이 엿보인다. 번역·출간 후에도 필립스는 “친절한 벗들”의 도움으로 꾸준히 번역을 수정하고 오류를 바로잡아 마침내 완역본(신약)을 출간(1960)했으며, 12년 뒤엔 “전혀 새로운 역본”인 개정판(1972)을 내놓는다.

그로부터 44년이 지나 필립스역 복음서의 한국어판 《예수에서 예수까지》가 이제 우리 손에 들어왔다. 《메시지》(복있는사람)가 촉매 역할을 톡톡히 해준 덕에 성경 ‘중역’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누그러진 이 즈음, 가독성 높은 단행본 편집틀로 나온 이 책은 경전 같지 않은 편집 덕분에 덜 엄숙하고 더 친근하게 펴보게 된다.

《매일성경》(성서유니온) 본문에 따라 요한복음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깔끔하고 산뜻하게 읽히는 번역은 오롯이 역자와 편집자의 공일 터다. 뒤이어 나올 복음서 영한대역본, 사도행전-서신서-요한계시록을 묶은 《예수에서 교회까지》와 영한대역본이 기다려진다. 출간 후기에 나오듯, 필립스역 한국어판이 성경과 ‘오늘’의 소통을 위한 ‘새로운 추격’이 되기를….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 ‘현재’와 성경이 만나려면 늘 새로운 추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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