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세계 / 김채린 지음 / 새물결플러스 펴냄 / 15,000원

그림 속 숨겨진 ‘세 번째 세계’를 조명한 책이다.

“… 그림은 역으로 그 시대와 모든 것, 그러니까 당대의 문화, 종교, 철학, 정치, 사회, 과학을 가로지를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그림의 본성이다. 어떤 그림이든, 적어도 미술사에 포함되어 있는 그림들이라면 모두 그 시대와 역사를 품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10쪽)

정신적 세계와 물리적 세계, 그리고 인간은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 세계의 끝에는 그림이 존재한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세계를 보기 위하여 그림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여섯 명의 작가가 남긴 그림을 통해 특정한 세계와 인간 본성을 넘나든다. 중세와 근현대의 세계를 고루 다루며 그림 속 시대와 역사, 그리고 비밀을 드러낸다. 특별히 두 번째 장에서는 ‘인생의 8할이 종교개혁’인 화가 한스 홀바인(1497-1543)의 그림 <무덤 속 예수의 시신>(1521, 1522 수정)을 소개하는데 무척 흥미롭다.

“이 그림이 충격적인 이유는 너무나도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죽음이 도착한 몸과 … 벌어진 입과 헝클어진 머리카락, 온기가 빠져나간 피부,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과 발.”(63쪽)

이 그림에는 경건함도 없고, 부활의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죽음 그 자체를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그림을 보기 위해 1867년 스위스 바젤에 들렀다. 그림을 보고는 얼음처럼 굳어져 간질 발작이 일어날 듯한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그때의 영감(?)은 《백치》(1869)에 스몄다.) 홀바인은 겉멋에 찌든 당시의 교회를 향해 종교개혁적 메시지를 최대한 충격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아가, “그림 속 예수의 손가락을 유심히 살펴보자. 죽음으로 인해 움직임이 멈추어진 손가락은 묘하게도 세 번째 손가락만 길게 뻗어 있고 … ‘Fuck You’라는 욕의 제스처인 이 손동작은 공교롭게도 고대 그리스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 수백 번 붓질한 손가락을 아무 생각 없이 그려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홀바인이 교회에 날리는 손가락이 아니었을까?” (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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