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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먹지 않아도 괜찮은 나라
[316호 스무 살의 인문학]
[316호] 2017년 02월 22일 (수) 17:05:07 김희림 철학을 좋아하는 20대 인문학도 goscon@goscon.co.kr

새 나라의 새 어린이
누구나 먹지 않는 음식이 있습니다. 김밥에서 꼭 오이를 빼는 사람이 있고, 해장국에 들깨가루를 꼭 넣는 사람과 절대 넣지 않는 사람이 나뉘듯 말입니다. 취향의 세계란 참으로 오묘하고 복잡다단하지요. 그래서 다른 이의 취향을 존중하고 내 취향을 존중받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자주 있습니다. 제게도 결코 먹지 않는 음식이 있는데, 그 음식을 먹지 않는 제 취향이 존중받는 것은 이제껏 상당히 고단한 일이었습니다. 그 음식은 바로 ‘김치’입니다. 저는 김치를 먹지 않습니다. 김치찌개나 김치찜은 그럭저럭 먹습니다. 조리된 김치는 먹으나 유독 ‘생김치’만큼은 결코 먹지 않는 저의 독특한 취향의 기원은 어디일까요?

   
▲ 김치를 먹고 안 먹고가 개인 취향으로 인정되는 나라, 한 사람의 고유한 취향을 거대집단에 맞추려 하지 않고 계발하도록 돕는 정치와 그런 나라를 꿈꾸는 건 어불성설일까. (사진: CC BY Nagyman/위키피디아)

냉장고와 더불어 ‘김치 냉장고’까지 구비해야 하는, 밥과 김치만 있어도 끼니 해결이라는 대한민국에서 김치를 멀리하는 것은 쉽게 볼 수 없는 일입니다. 이 기이한 취향은 유치원을 다니던 7살 때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속한 ‘착한 반’ 담당 선생님은 제가 아직도 참 좋아하는 분입니다. 수업 시간마다 손을 번쩍 들고 대답하는 저를 무척 아껴주셨고, 유치원을 졸업할 때 제게 중학생 필독도서였던 《돌도끼에서 우리별 3호까지》라는 한국 과학에 대한 책을 선물해주기도 하셨습니다. 그 책은 아직도 서가 한편에 꽂혀 있지요. 그러나 그를 떠올릴 때 결코 좋지 않은 추억이 하나 따라 떠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는 점심시간마다 잔반 남기는 것을 잘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골고루 잘 먹어야 ‘새 나라의 새 어린이’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셨지요. 기억을 더듬어보면 저는 입이 짧은 아이였습니다. 점심시간마다 마지막까지 남아 먹기 싫은 음식이 담긴 식판을 붙들고 앉아 있던 기억이 선명하니까요. 그런데 선생님은 제가 김치를 먹지 않는 것을 유독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은 매일 김치 조각을 든 젓가락을 제 입 앞에 내밀고 있었습니다. 저도 고집이 셌는지 그럴수록 먹지 않았고, 우리의 힘겨루기는 그렇게 꼬박 1년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 트라우마 덕에 저는 지금까지도 김치를 거부하게 되었지요.

“니 한국인 아이가!”
여전히 존경하는 7살 때의 선생님이 왜 그렇게 김치를 먹이는 일에 집착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이후 겪은 10여 년간의 공교육 생활을 통해서입니다. 제가 다닌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여느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급식 시간에 잔반 남기지 않는 교육을 많이 시켰습니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을 잘 알고 구별하는 취향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학교에서 맛과 음식에 대해 가르쳐야 할 일이겠지만, 사실상 학교에서는 배급된 양을 정해진 시간 안에 입에 다 쑤셔 넣어야만 한다는 것만 가르칠 뿐입니다. 김치를 못 먹는 저는 급식에 매일 나오는 김치를 감당하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슬쩍 양도하거나 심지어 몰래 버렸습니다.

돌이켜보면 괴로움뿐인 급식 시간의 정점은 급식실을 ‘순찰’하던 선생님들이 제가 김치를 먹지 않는 장면을 포착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제게 김치를 먹을 것을 수차례 당부했습니다. 다른 음식은 남겨도 김치는 못 남기게 했습니다. 7살 때의 트라우마를 서술할 언어가 없던 초등학생 시절의 저는 그 폭력적인 당부에 저항할 수가 없었고, 급식 시간이 다 지날 때까지 어찌할 줄 모르고 앉아있던 기억이 뚜렷합니다. 생각해보면 희한한 일입니다. 10년 이상의 긴 공교육 체제에서 만난 많은 선생님들이 어떻게 그리 일관되게, 유독 김치를 먹을 것을 그렇게나 강조했을까요?

답은 사실 간단했습니다. 수십 명의 선생님들이 제시한 한 가지 분명한 제안에 그 이유가 명백히 드러납니다. “니 한국인 아이가. 한국인이면 김치를 묵어야지!” 마법과도 같은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인이 아니라면 제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저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열린 2002년 월드컵의 그 열기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제국의 탱크가 십대 여성들을 짓밟고 있지만, 모든 이들이 동그란 것이 네모난 것에 들어가기만을 외치던 디오니소스적인 축제. 유년 시절 제가 목도한 월드컵은 분명 시민과 사회가 소거된 국민과 국가의 것이었습니다.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서
그런데 제가 어찌 김치를 단호히 거부할 수 있었겠습니까? 한국인이 아니기는 싫었습니다. 나트륨 범벅의 배추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대 중국 신화의 치우천왕이 그려진 핏빛 옷을 입고 내가 태어난 나라 이름을 외치는 무리에서 탈락한다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주의의 망령만큼이나 정신분석학적인 트라우마도 그 힘이 강력했습니다. 저는 기어코 김치를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늘 고민했습니다. 왜 나는 김치를 먹는 게 이리도 힘들까? 저들은 왜 김치를 먹을 것을 강요할까? 그리고 그 강요의 이유는 왜 김치보다도 역겨울까? 제가 국가와 구조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은 초등학교의 급식실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조금 더 굵은 머리통을 들고 입학한 중학교에서 그 고민을 더 구체적으로 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영어 시험 성적이 좋아 모두 앞에서 상장을 받는 날, 떨리는 마음으로 순서를 기다리는데 여느 때처럼 ‘국기에 대한 경례’ 시간이 되었습니다. 순간 저는 당황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무척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미국’말을 잘해서 상을 받는데 이게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할 일인가? 그날 저는 흰 바탕의 천을 바라보며 손을 가슴팍에 얹는 행위를 처음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어색했지만, 편안했습니다.

김치와 관련해 겪은 제 유년 시절의 고통과 고민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희미하게 깨달은 것은 시간이 지나 민족주의니 국가주의니 하는 말을 알고 나서였습니다. 그 말들은 제게 민족과 국가의 실체를 물었습니다.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한민족과 대한민국의 일부가 아닌 나를 상상할 수 없었는데, 그 일부에 소속한 나를 서술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지갑 속의 주민등록증이 나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만들어주는 것일까요? 그런데 우리는 왜 한국에 이민 온 외국인들을 한국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강력한 혐오를 표출할까요? 국적 변경이 보장하지 못하는, 순혈주의에 기반을 둔 민족 정서 때문이 아닌가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민족과 국가는, 그러나 뚜렷한 물질적 실존을 양산합니다. 그에 소속된 무수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개성을 지우고 균질성을 부여하기 위해 국가라는 거대 기계는 신화를 제작·감독합니다. 우리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는 보편적인 신화가 전부가 아닙니다. 한민족은 모두 같은 피가 섞였다는 의문투성이인 순혈주의와 차라리 그보다는 솔직한, 머리카락과 눈동자 등이 ‘한국인다운 외모’를 가져야만 한국인이 될 수 있다는 외모주의도 다분히 신화적입니다. ‘김치를 먹어야 한국인’이라는 식사와 음식 취향에 대한 균일한 통제도 물론 신화적이고요.

그래서 신화는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신화는 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내의 모든 사람을 포섭하고, 그 자신을 스스로 신화화합니다. 한국인은 좋은 것이고 한국인이 아닌 자신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국가주의의 신화적 힘은 제가 거친 수많은 선생님들로 하여금 제게 김치 섭취를 강요하도록 만들었습니다. 7살 때의 유치원 선생님이 졸업 선물로 ‘돌도끼에서 우리별 3호까지’라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과학사를 다룬 책을 선물해주시며 새 나라의 새 어린이가 되라고 당부하신 것은 사실 전혀 어색한 것이 아니었던 게지요. 제가 수료한 많은 공교육 기관은 제가 뚜렷한 민족적 정체성을 갖추도록 교육했습니다.

그래서 신화는 차별화의 담론입니다. 김치를 먹고 태권도를 하며 한복을 입는 이미지를 우리에게 계속 상기시키면서 국제정치의 시대에 한민족의 고유성을 붙들고 있을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 민족적 가치가 허구적이고 무용할 수 있다는 공포는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치와 태권도와 한복이 강대국에서 인정받는 것에 엄청난 희열을 느끼지요. ‘우리’가 허구적이고 ‘우리의 것’이 무용(無用)하다는 공포가 극복되는 순간이니까요. 그래서 민족주의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일수록 민족의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그 독립성을 외부로부터 인정받고 싶어서 애씁니다. 한민족인 제가 김치를 거부했을 때 교사들은 어쩌면 김치라는 음식 아래 그들이 가르치는 차별화된 한민족 신화가 허구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공포를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참 복잡하게도 이야기했습니다. 제게 김치는 그저 절인 배추가 아니고,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싫어하는 음식 하나쯤 안 먹는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김치를 먹지 않는 것은 국가주의의 미시적인 폭력의 표상입니다. 김치를 먹어야 한국인이라는 협박을 겪었고, 한국인이라고 불릴 권한의 박탈을 협박으로 느낀 제 유년 시절의 공포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이런 종류의 협박을 겪고 공포를 느꼈을 것입니다. 집단의 신화적 담론을 좇기 위해 취향이 결정되고 부정당한 경험들 말입니다.

김치를 먹지 않아도 괜찮은 나라
지난해 말부터 펼쳐진 장대한 정치 드라마의 연장선에서, 올해는 어느 시기가 되었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것입니다. 여러 정치인들이 언론과 방송에서 자신의 정치철학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피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이면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자연스럽게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나라를 꿈꾸(어야 하)는가? 기존 정치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는 어떤 정치인가? 어떤 정치인이 정치를 잘 할 수 있는가? 아니, 애초에 정치란 무엇인가? 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인가?

만약 제가 좋은 나라와 정치에 대한 지극히 소박한 관점을 말할 수 있다면, 저는 김치를 먹지 않아도 괜찮은 나라를 말하고 싶습니다. 서양고전 정치철학사의 천재적인 사상가들의 정치철학을 인용하면서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 따위 싹 죽이고, 김치를 먹지 않아도 괜찮은 나라를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김치를 먹지 않아도 괜찮도록 하는 정치가 좋은 정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취향을 거대 집단의 이익에 맞추도록 강요하지 않고 그의 고유한 취향을 인정하고 계발하도록 돕는 나라에 살고 싶습니다. 민족과 국가라는 미명 아래 실존이 갈피를 잃는 나라에 살고 싶지 않습니다.

누구나 먹지 않는 음식이 있습니다. 김밥에서 꼭 오이를 빼는 사람이 있고, 해장국에 들깨 가루를 꼭 넣는 사람과 절대 넣지 않는 사람이 나뉘듯 말입니다. 취향의 세계란 참으로 오묘하고 복잡다단하지요. 저는 그 오묘하고 복잡다단한 취향이 민족과 국가에 의해 이념적으로 균질해지는 세상을 거부합니다. 신화라는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와 차별화된 담론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개인이 구조를 넘어설 수 없고 특수가 보편을 억누를 수 없는 노릇입니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벗어나도 우리는 또 다른 신화를 만나고 그를 이데올로기화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어차피 모종의 신화의 지배를 받을 것이라면 공동체에 억눌려 있던 개인의 삶이 조금 더 조명을 받고, 개인이 겪는 미시적이고 구조적인 고통이 더 주목받는 나라를 꿈꾸는 신화의 노예가 되고 싶습니다. 먹고 싶지 않은 것을 먹지 않는 나라를 망상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먹지 않는 음식이 있으니까요. 당신은 무엇을 먹지 않나요? 왜 먹지 않습니까? 무언가를 먹고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통을 겪은 적은 없으신가요? 당신의 취향이 근본적으로 부정당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같이 먹고 싶지 않은 것을 먹지 않아도 괜찮은 나라를 꿈꿔봅시다. 그것이 비록 또 하나의 신화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신화를 좇으며 우리의 식탁과 혀끝은 더 행복할 것입니다.

 

김희림
장차 전문성과 대중성, 다양성을 겸비한 인문학자를 꿈꾸는 스무살 인문학도. 머리 아픈 철학책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시끄러운 베이스 기타 연주를 즐기며, 비폭력·반전·반핵을 지지하면서 삼류 무협영화 ‘덕후’를 자처한다. 아버지인 김기현 목사와 함께 ‘로고스서원’을 꾸려나간다. 경희대 철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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