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호 사람과 상황] 전병욱 목사 성범죄 피해자 박은영(가명) 씨의 고백

▲ 박은영 씨는 인터뷰를 수락한 직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고 했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한 여성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언뜻 비쳤지만 차분해 보였다. 눈짓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나눈 후, 차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박은영 씨는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한 피해 교인 중 한 사람이다.

전 목사가 삼일교회 여성 교인들을 상대로 벌여온 성범죄 사실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한 피해 교인이 MBC 〈PD수첩〉에 성추행 제보를 하면서부터다. PD가 여러 경로로 탐문에 나서 전 목사의 성추행이 여러 명의 여성들에게 다양하게 행해져 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본격 취재에 들어가자, 비공식적으로 교회 안에서 전 목사 징계와 사임 유도의 과정이 있었다. 전 목사는 (2년간 수도권 내 목회 금지 조건으로, 성 중독 치료비 1억 원을 포함한 13억4천5백만 원의 퇴직금을 받고) 2011년 11월 삼일교회를 사임했다.

그러나 1년 6개월만인 2012년 5월 홍대새교회를 개척, 지금도 공식적으로 목회중이다. 삼일교회 교인들이 전 목사가 소속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평양노회 측에 그의 면직 청원서를 계속 제출해왔으나 모두 기각된 ‘덕분’이다. (예장 합동총회 평양노회 재판국은 2016년 1월 31일 공직정지 2년, 강도권 정지 2개월을 선고했으며, 2016년 9월 29일 열린 제101회 정기총회에서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된 재판을 열지 않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현재 삼일교회 교인들로 구성된 ‘치유와공의’ TF팀이 전 목사의 실질적인 징계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전별금반환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애초 본지는 전병욱 성범죄 피해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지면에 담아 연재하려 했으나 예상대로 접촉이 쉽지 않았다. 하여 가능한 선에서 피해자가 연결될 때마다 인터뷰하기로 했다. 박은영 씨는 오랫동안 전병욱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삼일교회 권대원 집사를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은영 씨는 전 목사의 홍대새교회 개척 이후 만들어진 ‘전병욱 목사 진실을 공개합니다’ 네이버 카페에 자신이 당한 일을 A4 용지 7장 분량의 글로 썼다. 카페 편집팀이 전병욱 사건을 책으로 엮은 《숨바꼭질》에도 담겼다. 2004년 첫 번째 추행을 시작으로 이후 반복되어 온 행위들을 구체적으로 적고, 오랫동안 혼란스럽고 괴로워하는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20대 시절 전부를 삼일교회에 헌신하고 리더까지 했던 은영 씨는 피해자들 중에서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말한 경우다. 사건이 드러난 지 7년째 접어들었음에도 은영 씨의 ‘말’은 여전히 먹먹했다. 아직도 미해결 상태인 사건에 대한 원통함과 아픔과 슬픔 등 여전히 피해 당사자에게 집중되어 있는 고통이, 말을 하는 사이 사이에 복받칠 때마다 은영 씨는 목이 메고 눈물을 쏟았다. 그가 잠시 말을 멈추면, 나는 가끔씩 빛을 반짝이는 그의 소박한 목걸이로 시선을 옮겼다. (인터뷰에는 ‘치유와공의’ TF팀의 신창조(36) 씨가 동행했다. 인터뷰이의 나이와 직업은 밝히지 않는다.)

― 전병욱 씨에게 당한 일을 처음 말한, 그러니까 카페에 공식적으로 상세하게 글을 쓴 것은 어려운 결심이었을 텐데요. 어떤 마음이었나요?
글을 쓰기 오래 전부터 가까운 간사님, 그리고 언니한테는 이야기했었어요. 언니가 나를 보호한다고 항상 같이 다녔고요. 쓰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진실에 힘이 더 실리지 않을 거라면서 용기를 내보라고 언니가 옆에서 권유했어요. 며칠을 괴로움에 신음했고, 쓰면서도 많이 울었어요. 그 일들을 다시 떠올리는 것도 괴로웠는데, 쓰고 나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어요.

― 무엇이 가장 고통스러웠나요?
맹목적으로 전 씨를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진실은 이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어서 글을 썼거든요. 어떤 반응이 오겠다는 예상을 할 겨를조차 없었고요.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충격 그 자체였어요. 응원도 물론 많았지만 나를 비난하는 댓글들에, 전화까지 오는데, 생전 느껴보지 못한 상처였어요. 그 글을 읽고 댓글 달 정도의 관심 있는 분이면 분명 교회 다니는 사람일 텐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심지어 삼일교회 교인들이 나에게 “사모님도 좀 생각해야지” “그 딸들이 불쌍하지 않냐” 하면서, 평소에 연락 한 번 안 하던 사람들이 글을 내리라고 전화를 하더군요. 홍대새교회로 간 사람도 있고요.

―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까지요?
사실을 알면서도 설교가 좋다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내가 글을 쓴 사람이라고까지 밝혔는데도 ‘진실이 무엇이든 재미있는 설교를 듣겠다’며 전병욱 목사를 따라간 친했던 동생이 하루는 밤에 갑자기 이상한 문자를 보내온 적도 있고요. ‘연예인들이 댓글만 보고도 자살을 하는 이유가 있구나’ 생각했죠. 아픈 심정이 어마어마했어요.

― 꽤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전 씨가 범죄를 저질러 왔음에도, 너무 늦게 드러난 것 같은데요.
당시 삼일교회에서 그의 존재감은 엄청났어요. 한국교회 청년 부흥을 이끄는 너무나도 대단한 존재였고, 누가 건드리거나 그 잘못을 감히 공론화할 수 없게 하는 카리스마와 힘이 있었습니다. 혼자 교회의 모든 설교를 다 할 만큼 본인도 에너지가 넘쳤고, 모든 장로와 목사들이 떠받들었고요. 저도 그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입장에서 목사를 존경하는 부분이 있었고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설교를 들으면 정말 훌륭한 믿음의 사람인양 보였거든요. 죄를 짓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설교하는 대로 그걸 자신의 가시로 알고 계속 후회하고 반성하면서 돌이키려고 하는 줄 알았죠.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고요. 저 자신이 괴로우면서도 ‘다신 안 그러려고 노력하겠지’ ‘설교를 저렇게 하는 사람인데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도 괴롭겠지’ 생각하면서, 죄에서 돌이키기를 바랐어요.

― 담임목사가 그런 지경인데도 교회가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었나요?
제가 처음 삼일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게 2000년대 초였어요. 당시 삼일교회 청년부는 지방에서 상경한 애들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순박한 분위기였어요. 세련되고 번지르르한 사람도 없고 소박하고 좋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교회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죠. 사람 수를 세는 건 항상 있었던 일이지만, 건물 B관이 새로 생기면서부터는 더 심해지면서 1부에 몇 명오고 2부에 몇 명이 왔느냐가 완전히 경쟁이 붙었어요. 자원봉사로 섬기는 교회 간사님들을 회사에서 실적 스트레스 주듯 쪼기 시작했어요. 시스템적으로 반항하기 어려웠고요. 저도 리더로 정말 열심히 했죠. 힘에 부칠 정도로요. 직장 일도 있고 개인 일도 있는데 새벽예배 못 가면 눈총을 받고, A관이 아니라 B관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이유로 야단을 듣고, 갈수록 더 이상해진 거 같아요. 교회 자랑처럼 2부 새벽기도부터 줄을 세우는 건 예전부터 있긴 했지만, 2010년 즈음에는 충분히 기도할 수 있는 공간과 여유가 있음에도 지하철 숙대입구역까지 줄을 세우더라고요. 심지어는 새벽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밤새 텐트를 쳐 놓고 기다리는 일을 교회가 조장하기까지 했어요. ‘정말 잘못되고 있구나’ 싶었어요. 그때가 직장 때문에 지방에서 교회를 오갈 때인데 ‘이건 아니다’ 생각했죠. 그런데요, 이게 내부에 오래 있는 사람은 그저 신앙적 열심이라고 생각하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아요. 다 그 안에서 젖어 있으니까요.

   
▲ 전병욱 성범죄 사건을 보도한 <뉴스타파> 갈무리 화면

― 그래도 피해 사실에 대해서는 가까운 간사님에게도 알렸다고 했는데, 아무런 대응이 없었나요?
네. 사건이 더 커지면 교회를 흔들게 될까 봐, 연약한 성도들이 떠나게 될까 봐, 교회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사실이 그랬어요. 내부에서 누가 갑자기 나서서 문제시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전 씨가 누군가의 엉덩이를 주무르고, 터치하는 정도가 좀 심한 것 같아도 이미 사람들이 많이 봐온 것들이었으니까요. 전 씨는 사람마다 정도와 수위를 다르게 죄를 저질러 왔었어요. 처음에 강하게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한테는 오히려 더 화를 발끈 내면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단락을 짓고 넘어 가고, 순진하기만 한 자매들한테는 막 나가고…. 처세술이 교묘했어요. 누가 그 사건을 언급하면 전 씨가 당사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분위기였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자매는 오히려 이단에, 꽃뱀으로까지 몰렸던 거 아시죠? 저도 처음엔 헷갈렸어요. 그때 피켓이라도 들고 교회 앞에 서 있었다고 한들, 누구 하나 관심 갖고 보지도 듣지도 않았을 건데,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혼자 나설 수가 있었겠어요. 힘없는 저는 기도할 뿐이었죠. 마치 전 씨가 없으면 삼일교회도 없는 것처럼, 삼일교회가 곧 전 씨였습니다. 부목사들도 오히려 피해자인 자매들에게 교회에서 나가라고 했고요.

― 부목사들이 오히려 나가라고 했다고요?
교회에서 그래도 약간의 용기가 있는 자매들이 부목사님들한테 상담을 했었거든요. 그랬는데 “네가 그냥 떠나라”는 반응이었다고…. 제가 더 빨리 교회를 떠나지 못한 것을 사무치게 후회해요. 아예 그 교회를 가지 않았더라면….

― 카페에 글을 올리고, 일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삼일교회를 바로 떠나지 않으셨죠?
카페가 생기고 나서 뭔가 일이 진행되던 상황에서 교회 농어촌 선교에 갔어요. 나도 회복을 해야 하지만 우리의 사명이 선교니까…. 그렇게 섬기는 중에 하나님이 치유해주시기를 바라기도 했고요. 그런데, 선교지에서 부목사가 설교 중에 (전 씨 사건을 해결하는 것과 관련해서)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 그 자리에 피해 교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요?
카페 글을 읽었으면 제가 썼으리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피해 교인들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비난하면서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시는 거니까 ‘그런 짓’ 하지 말라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침묵하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그때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어요. 다른 부목사님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 입장이리라 생각이 들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나 말고 어떤 피해 자매들이 거기에 같이 있었는지는 몰라요. 정말로 더 이상은 못 다니겠더라고요. 우울증이 많이 심해졌고, 그 이후에 서울을 아예 떠났어요. 하던 일은 다 접고요.

― 그렇게 교회를 떠나고 상담 같은 것을 받아본 적은 있나요?
교회에서는 한국여성의전화 쪽으로 후속 처리를 넘겼어요. 그런데 믿지 않는 분이 하시다 보니 면담하면서 그간의 상황을 이야기해도 신앙의 측면에서 어떤 힘의 관계로 그런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게 되는지를 전혀 이해 못하시더라고요. 교회 다니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다니기도 어려웠죠. 알아보니 기독교인이고 상담하는 곳이 있던데 그분이 너무 바쁘기도 하고, 치료도 받을 기운이 있어야 하지 저 혼자 멀리까지 왔다갔다 할 여력이나 의욕이 없어서 못했습니다.

   
▲ 2016. 9. 26-29. 합동 총회가 열린 충현교회 마당에서 삼일교회 TF팀과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전병욱 목사 치리 및 목회자 성범죄에 관한 법 제정 촉구시위를 했다. (사진: 교회개혁실천연대 홈페이지)

― 2012년에 카페에 쓴 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괴로움 중에도 삼일교회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썼던데요. 이런 과정 중에 신앙이 흔들리진 않던가요?
사람들이 실망스럽지 하나님께 실망한 게 아니니까…. 당시엔 흔들리지 않았는데,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어요. 아직도 전 씨는 공식적으로 교회를 차려서 강단에서 설교를 하고 있고요. 제 신앙은 예전처럼 복음에 불붙은 열정은 없어졌어요. 선교를 가거나 그런 건 전혀 못하겠고요. 교회에서 가만히 예배를 드리는 정도에요. 사랑이 식어지고 미혹당하는 영혼이 많아진다는 말씀이 있는데, 나도 그 중 한 명 같아서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파요. 이전엔 교회에서 한 영혼이라도 챙겨주고 싶었어요. 충만한 마음이 샘솟고, 길을 다니다가도 전도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고갈되고, 그럴 힘이 없어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졌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기도도, 그 사건에 대해서는 뭐라고 설명조차 못하겠어요. 떠올리기도 싫어서 묻고 지내는데 그렇다고 잊히지도 않죠. 하나님한테 ‘나 너무 힘들다’라고, 하나님이 알아서 해달라는 말밖에 안 나와요.

― 새로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어떤가요?
이름도 빛도 없이 섬기시는 어른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그래도 예전처럼 열심히 섬겨보려고 노력했는데요, 제가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밝은 모습만 보이려니 진짜 제 모습이 아니더라고요. 마치 내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은…. 울어야 할 때는 울어야겠다 싶어서 맡은 일은 다 내려놓았어요. 그 사건이 있기 전엔 교회 안에서 안내 집사님들처럼 생글생글 웃으면서 사람들을 챙기고 다녔는데 지금의 저는 그러질 못해요. 꾸민 모습 같거든요. 내가 그 사건 피해자인 건 지금 교회 안에서는 아무도 몰라요.

― 본래는 교회야말로 어떤 아픔이고 허물이든 함께 나누는 공동체인데요. 그 일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 답답하진 않나요?
그렇죠, 교회는. 지금 목사님은 말씀대로 가르치시려고 부단히 연구하시고,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시는 좋은 목사님이세요. 제가 이야기를 한다면 교회 식구들도 같이 아파하며 많이 위로해줄 거 같아요. 그런데 사람의 위로라는 건 한계가 있더라고요. 하나님께만 위로받고 치유받고 싶어요.

   
▲ 인터뷰에는 ‘치유와공의’ TF팀의 신창조(36) 씨가 동행했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그때를 다시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게 여전히 고통스러워 보이네요.
요청이 또 오면 응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이전에도 두어 번 인터뷰를 한 적이 있고, 거의 묻어두고 있던 차에 이번 인터뷰 요청을 바로 수락했는데요. 그런데 다시, 인터뷰하기 직전까지 계속 힘들고 고통스럽더라고요. 전 씨한테 당한 것 자체가 괴로워서라기보다도 그 이후로 계속 너무 복잡한 심정이에요. 그때 우울증이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았고…. 전 씨가 공식적으로 피해 자매들에게 사과하지 않았고, 그가 치리되지 않은 상태로 저를 비롯해서 피해 자매들의 상처가 해결될 수가 있을까요? 합동 총회에서 전 씨를 치리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 온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어요. 전 씨가 지금 삼일교회TF팀에서 진행하는 민사 재판에서 제 이름과 함께 피해 자매들 이름을 들먹이고,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억지 주장을 늘어놨다고 하는데, 정말 역겨운 일이에요. 그 이야기를 듣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 전 목사를 내버려두는 교회나 목사님들에게 할 말이 있으신가요?
아직도 전 씨가 억울하게 쫓겨난 것으로 알고, 피해 자매들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어떤 목사와 소개팅을 한 친구가 하는 말이, 그 목사도 전병욱 성범죄 사건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믿고 있다고 해요. 교단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교단에서 책임을 묻고 제대로 해결을 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요? 그런데 전 씨를 그대로 내버려둠으로써, 사실이 사실 아닌 걸로 만들어 버렸어요. 또 다른 범죄를 양산하는 거지요. ‘이 정도’ 목사는 ‘그래도’ 된다는….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요? 교회는 장사 터가 아니잖아요. 사회생활 하면서, 전 씨에게 당한 일을 겪은 적이 없어요. 어떻게 멀쩡해 보이는 교회들이, 하나님 일 한다는 목사님들이 이럴 수가 있나요? 총회 목사님들, 노회 목사님들,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덮어주시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걸 원하실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전 씨가 저지른 일들보다 비교적 수위가 낮은 죄들도 사회에서는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되어 있는데, 교회가 어떻게 전 씨의 극악무도한 범죄 행위들을 방관할 수가 있습니까? 정의가 하수 같이 흘러야 할 교회가 이렇게 썩어가고 있는 게 정말 부끄럽습니다. 당신들 자녀 일이 아니니 별 생각이 없으신 걸까요. 복음의 문이 막히는 것에 대한 책임을 못 느끼는 걸까요? 너무나 어이가 없고 실망스럽습니다.

― 교회 안에서 유사한 상처를 받은 성도들도 있을 텐데요.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처음부터 문제가 생겼을 때, 무엇이든 말할 수 있어야 했어요. 지금까지 교회가 성도 입을 막아왔어요. 교회가 흔들리지 않게, 말하지 않는 게 덕이라고 계속 들어왔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젠 말하는 것이 옳다고 봐요. 누가 잘못 행동해도 지적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하니까 교회가 썩어가는 거겠죠. 목사 잘못이라고 다 덮어주는 게 아니라 성도들이 지켜보고,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인터뷰 정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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