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호 반디마을 한몸살이]

공동체의 거점과 멤버십의 원리
결혼을 앞 둔 형기가 신혼집을 구하지 못해 난처해하고 있었다. 마냥 기다리고 있기만 수 개월 째, 뾰족한 수가 없으니 답답할 만도 했다. 돈이 많았으면 매매든 전세든 널린 게 집인데 뭐가 걱정이겠냐만, 후원 모금으로 사는 간사라 통장에 잔고는 없고 적금도 큰 금액이 아니었으니 선택의 폭이 매우 좁았다.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는 뻔한데 전세 물건이 없었다. 그 아파트로 말하자면 15년 된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아파트로 경주와 포항 사이에 끼어 있어 19평형 전세금이 3천만 원 정도였다. 저렴해도 너무 저렴했기에 가진 건 뚝심밖에 없었던 형기가 필사적으로 기다리는 것이었다. 보태줄 건 말밖에 없던 내가 혹시나 해서 제안을 했다. “그러지말고 이 아파트에 살고 싶은 사람인데 전세 내실 거면 연락달라고 집집마다 전단지를 붙여보는 건 어때?” 내 제안이 그럴 듯했던지 형기는 전단지를 붙이고 다녔고, 이내 마음에 드는 집에서 연락이 와서 볕 좋고 층수 적절한 집에서 신혼 둥지를 틀게 되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훗날 이 성지 같은 아파트는 우리 공동체의 거점이 되었고 마치 다윗의 아둘람처럼 저마다 사정이 하나둘은 있을 법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결혼을 앞둔 커플, 출산이 걱정되는 부부, 육아에 지친 가정, 앞날이 막막한 싱글들…. 형기가 아파트 철문에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던 날로부터 3년여 만에 10가구가 넘어섰다. 이 뜻밖의 호응은 우리가 공동체의 거점을 정할 때 염두에 둔 한 가지 원칙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재력을 감안할 때 안 갈 수는 있어도 못 갈 곳은 아닌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함께 살아보자고 해놓고 상대가 도무지 쫓아오지 못 할 부유한 곳으로 이주한다면 이는 상대를 절망케 할 뿐 아니라 이후에 형성될 공동체 역시 부유한 자들만의 모임이라는 한계 안에 갇힐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주거지는 낮은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흘러들어와 고일 만한 곳이 우리의 주거지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공동체의 입지 조건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 멤버십에 대한 원리다. 누가 우리의 멤버가 될 것인가? 출발점에 서 있었던 네 가구(3가정+1인)는 멤버가 되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자유’에 두었다. 넘나드는 것이 자유로운 공동체가 과연 공동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게다가 뚜렷한 이상의 동의와 헌신의 결의 없는 자유로운 생각의 개체들이 어떻게 하나가 되어 공동체라 불리게 될까? 많은 의문들이 해결되지 않았지만 남들이 기대하는 그 무엇이 되기보다 개인의 행복을 우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선택에 별 죄책감은 없었다. 이타적 삶을 포기한 것도 자기부인의 구도자의 자세를 버린 것도 아니었다.

너무 이상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자유는 오히려 이타적 삶과 헌신의 진위를 가리는 시금석이며 열정의 동력이라 생각했다. 완전히 자유로운 개별자의 헌신이야말로 세상이 감당치 못할 것이 되는 건 아닐까? 역설적으로 바울 역시 갈라디아에 쓴 편지에서 십자가의 희생의 값을 지불했으니 다시는 누구의 종도 되지 말라고 경고한 후 사랑으로 서로에게 종이 되라고 권면한다. 자유로운 종은 자의로 진 짐이 고되지만 행복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행복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풍요로우신 주님은 우리 삶을 넘쳐 흐르게 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말 그대로 쥐어짜서 흐르는 게 아니라 ‘넘쳐서’ 흐르기를 기대했다.

사람은 언제 변하는가?
헌신과 자유에 대한 나의 오랜 경험도 이런 결정에 한몫을 했다. 선교단체 간사 시절 내 마음은 조급했다. 학생들은 4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머물다 갈 것이고 4년의 경험으로 평생을 뒤흔들 가치를 마음에 새겨줘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1학년 때 복음에 대한 기초를 정립하고 2학년 때 심화되어 3학년 때 리더가 되면 4학년 땐 세상의 리더가 될 포부가 생기길 기대했다. 이에 따른 훈련은 체계적이었고, 헌신의 정도를 체크하는 리스트도 명료했다. 예를 들면 리더의 조건으로 일주일에 개인 묵상 4회 이상, 아침기도회 참석 3회 이상, 수련회 필참, 회비완납 등의 구체적인 항목들이 있었다. 학생들은 순종적이었고 이런 조항에 별 저항감 없이 헌신적이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딱 그만큼만 헌신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졸업 이후에 지금까지 헌신했으니 그 정도면 되지 않았냐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단계적 훈련, 그게 생각대로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시 경험은 이런 훈련의 한계를 깊이 깨닫는 과정이었다. 나는 이런 단계적 훈련 무용론자가 아니다. 삶은 동의와 결심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삶은 습관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단계적이고 지속적인 훈련은 좋은 습관을 만들어 준다. 선한 의도가 선한 결실을 맺도록 습관이 지탱하는 것이다. 다만 사람은 대학 4년이라는 시공간에 가두어 생각하기엔 너무나 존귀하고 복잡한 존재다. 그래서 대학생 선교 사역 현장에 있을 때 나의 최대 관심사는 사람이 언제 어떻게 변하는 가에 대한 것이었다. 원리가 파악되면 그에 맞게 커리큘럼을 짜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13년 사역을 마감하며 내린 결론이 사람은 자기가 바뀌고 싶을 때 바뀐다는 것이었다. 삶에 도전을 해오는 내용과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개인의 자유의지 사이의 역학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신학적 견해에 따라 경중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선택을 존중하시니 이에 준하여 생각해볼 때 사람은 우리 뜻대로 안 된다는 게 확실하다. 사역자로서 허탈하기 그지없는 결론이다. 그럼 사역자로서 우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먼저 겸손해야 했다. 하나님의 주권 앞에 고개 숙여야 했고, 타인의 선택 앞에 너그러워야 했다. 그들이 변하려고 할 때 그들의 이웃이 누구인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순간이 오기까지 우린 진리를 말하고 말한 대로 살며 그들 곁에 머물러야 했다. 후회가 많았던 만큼 이후의 공동체는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그에 따른 기다림이 삶의 자세가 되어야 마땅하다 생각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는 다소 무심해 보이는 태도 안에 자유라는 노른자가 존재한다고나 할까? 그것이 정확히 어떻게 정의되고 무엇에 적용될지도 모른 채 공동체는 유금리 166-11번지에 자리를 잡았고 ‘이게 맞나?’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아파트에는 아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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