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호 3인 3책]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모세오경 / 김회권 지음 / 복있는사람 펴냄 / 2017년 개정 증보

아쉽게도 내가 재학하던 기간에는 김회권 교수의 모세오경 강의가 개설되지 않았다. 2012년 가을학기에 그 과목이 개설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청강을 요청했다. 그때 강의의 주교재가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나온 《하나님 나라 신학의 관점에서 읽는 모세오경》이었다. 강의 중에 김 교수는 몇 차례 책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잡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묶은 것이어서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복있는사람에서 나온 이 책은 김 교수가 지난해 안식년을 이용해 초판본을 개정·증보한 것이다.

1천5백여 쪽에 이르는 이 방대한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이 책뿐 아니라 김 교수가 쓴 거의 모든 책들 제목에 붙이는 수식어인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그의 눈에는 “하나님 나라”라는 안경이 씌어져 있다. 물론 그 안경은 그가 임의로 쓴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연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의 눈에 최적화된 것이다. 그는 모세오경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하나님 나라라는 관점에서 읽어 낸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킨다.

김 교수는 오경뿐 아니라 성경 전체의 서두에 해당하는 창세기 1장의 창조기사와 관련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하늘을 창조하신 것 자체가 하늘에 하나님의 보좌를 세우신 사건이며 땅을 창조하신 것 자체가 땅에 정권을 세우신 행위다.” 하늘에 보좌를 세우고 땅에 정권을 세우는 것은 우주에 대한 통치 행위다. 한데 그 통치가 인간의 거듭되는 반역으로 인해 좌절된다. 역사 시대에 들어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라는 한 인물을 택하신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통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성장시켜 나간다. “그의 순종은 하나님 나라를 지상에 펼치는 도구이며, 그가 맛보는 구원은 그 자체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확장하고 심화하는 계기가 된다.”

출애굽기는 하나님이 세상에 자신의 통치를 매개할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만들어가시는 초기 과정을 묘사한다. 레위기의 희생제사 규정들 역시 하나님의 통치 의지를 드러난다. “레위기는 죄 사함을 통한 하나님의 다스림을 증거한다.” 민수기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가는 광야에서의 훈련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신명기 법전이 드러내 보이는 유일신 이데올로기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강력한 표현이다. “그것의 근본적인 주장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급진적인 요구이며 이스라엘을 향한 모든 다른 신들의 예배 요구에 대한 전적인 거부이다.”

물론 모세오경이 오직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설명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체 내용의 근간임은 분명하다. 김 교수는 오경을 “이스라엘 역사의 압축파일”이라고 부른다. 그 압축파일이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다스리고자 하신다는 것이다. 어느 의미에서 하나님의 통치는 구원보다 중요하다. “인간 구원과 온 피조물의 구원도 하나님의 통치의 일환이며 하나님의 다스림의 관철이다.” 나는 뒤늦게 김 교수에게서 성경 읽는 법을 새로 배웠다. 그 전까지 나의 관심은 “구원”이었는데 그에게서 배운 후로는 “하나님 나라”로 바뀌었다. 톰 라이트가 말한 “신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난 셈이다. 이 책은 나의 그런 전환을 도왔던 책들 중 하나다.

 

김광남
숭실대에서 영문학을, 같은 학교 기독교학대학원에서 성서학을 공부했고, 책을 쓰고 번역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 《아담의 역사성 논쟁》등 다수가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한국 교회, 예레미야에게 길을 묻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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