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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습, 맘몬에 자아를 빼앗긴 결과지요”
‘종교권력과 교회 세습’ 주제로 박사논문 쓴 설훈 목사
[319호] 2017년 05월 24일 (수) 14:59:15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 논문의 내용을 ‘쉬운 말’로 다시 들어보고자, 4월 25일 성공회대 식당에서 논문을 쓴 설훈(42) 목사를 만났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한국교회의 단골 이슈 ‘교회 세습’. 이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이 나왔다. <한국 개신교회의 종교권력과 교회 세습에 대한 비판적 고찰>(성공회대학교, 2017)로, 교회 세습을 주제로 다룬 최초의 박사 논문이다. 논문은 교회 세습이 성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음을 입증한다. 한발 더 나아가, 겉으로 드러나는 교회 세습 현상뿐 아니라 그 너머의 ‘종교권력’ 속성을 다양한 틀로 분석한다.

논문의 내용을 ‘쉬운 말’로 다시 들어보고자, 4월 25일 성공회대 식당에서 논문을 쓴 설훈(42) 목사를 만났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회 세습을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왔다. 심지어 세습하는 목사를 부러워했다. 그는 “그동안 교회권력에 매몰된 저 자신에 대한 뒤늦은 자각과 분노의 표출”이라며 논문을 쓴 동기를 밝혔다. 논문은 그의 ‘회심’에 따른 응답이었다. 

― ‘교회 세습’을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삼았습니다.
저는 최근까지 교회 세습의 영향력 속에서 지내왔습니다. 어릴 때 다닌 교회는 세습이 이뤄진 대형교회였고, 목회를 하는 가까운 친척 중에도 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를 세습한 분이 계십니다. 부교역자 생활도 교차 세습을 한 어느 대형교회에서 했습니다. 교회 세습은 저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전혀 부당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부러웠던 적도 있어요. 목회의 대(代)를 잇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나아가 성서적 근거를 가진 은혜로운 계승 절차라는 생각마저 했었죠.

― 갑자기 돌변(?)하신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겠네요.
3년 전 세월호 참사였습니다. 당시 안산의 대형교회 부목사로 고등부를 담당하고 있었거든요. 3명의 친구가 세월호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고등부 아이들은 친구의 죽음 앞에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오열했어요. 그 아이들을 보며 목회자로서 제가 얼마나 부족한지 절절하게 깨달았죠. 더 참담했던 것은 교회들의 태도였어요. 아이들을 위로하기보다는 물질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모습 속에서 분노와 절망을 느꼈습니다.

― 어떤 모습에 실망하셨나요?
기본적으로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죠. 교단 차원에서 수십억 원 성금이 모였어요. 그 돈으로 치유센터를 세운다면서 교회들이 서로 자기네가 맡겠다고 싸워요. 아이들이 얼마나 상처받았고,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고 이권에만 정신이 팔린 거죠. 교회 차량 운행하다 보면, 교인들이 거리에 있는 노란 리본 다 떼었으면 좋겠다고 해요. 안산 지역이 공단이 많잖아요. 다들 힘겹게 살아가는 분들이라 그런지, 자기처럼 가난하던 유족들이 보상받아서 집 산다는 헛소문에 예민하게 반응하더라고요. 더 미워하고 싫어하는 분위기가 퍼졌어요.

교회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이유가 사람이 아닌 물질이 주관심 대상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스스럼없이 권력의 횡포를 저질러 왔으며, 그 정점이 바로 교회 세습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교회권력 횡포의 정점이 바로 교회 세습이다?
교회권력은 공교회성을 훼손하고 교회를 사유화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 교회를 대물림하죠. 많은 이들이 교회 세습이 나쁘다고 하는 데 나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왜 나쁜지 말하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세습을 작동시키는 기재인 종교권력에 대해 논해야 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성공회대 김은규 교수님께서 종교권력에 대한 성서적 연구를 오랫동안 하셨기에 제 논문의 근거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 논문은 그동안 교회권력에 매몰된 저 자신에 대한 뒤늦은 자각과 분노의 표출로 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학술 차원의 응답이지만, 맘몬에 찌든 교회권력과 결별하는 ‘회심기’이기도 하네요. 본격적으로 논문에 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종교권력을 욕망하는 것과 세습의 관계를 더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종속된 권력도 시간적 제한이 있습니다. 이 유한한 권력을 무한한 권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세습입니다. 종교권력을 지속하려는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는 중세시대 로마 가톨릭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독신 사제직으로 세습할 자녀가 없었지만, 조카나 사생아를 낳아 권력을 이어가게 했습니다. 종교성이 강할수록 세습은 정당화되기 쉬워요. 불멸, 영생, 부활, 윤회 등 종교의 핵심은 영원한 삶입니다. 권력자는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신도들이 계속 숭배하게 합니다. 세습한 교회 목사들이 강단에서 아버지의 제스처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이 그 같은 맥락이에요. 김정은이 김일성의 모습을 따라 하고, 박근혜가 어머니의 올림머리를 고집하는 것도요.

― 세습을 모든 권력욕의 속성이라고 봐도 될까요?
제가 논문에서는 종교권력이란 범위를 교회로만 국한했지만, 사실 재벌권력과 독재권력도 종교권력입니다. 재벌도 유사한 종교성을 가지고 있어요. 회장과 그의 가족을 신격화해서 찬양하고 숭배합니다. 독재권력은 또 어떻습니까? 숭배를 넘어 광신적입니다. 북한의 독재자에 대한 찬양이나 얼마 전 ‘태극기 집회’만 봐도 종교성이 얼마나 강한지 확인할 수 있잖아요. 이러한 종교권력이 영속성을 가지려고 세습으로 귀결됩니다. 이런 종교권력들은 자기 자신은 없어지고 그 속에 지위와 물질로 대변되는 ‘권력’이 자아가 됩니다.

― ‘자기 자신이 없어지고 지위와 물질이 자아가 된다’는 표현이 무섭습니다. 오늘날 세습 교회들의 속성인 듯합니다. 
종교권력의 속성은 개체의 본질적이고 고유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이고 계량적인 기준을 통해 이름을 부여합니다. 지위와 물질을 기준으로 이름을 붙여요. 생각해보세요. ‘50명 목사’ ‘100명 목사’ ‘1,000명 성도’와 같이 교회의 크기와 교인 수에 따라 목사의 이름과 지위가 결정됩니다. 대부분 교단 총회장은 교인 수가 많고 큰 교회 목사들입니다. 중심에서 밀려난 작은 교회 목사는 당연히 큰 교회 목사를 부러워하고 어떻게 해서든 교회를 크게 만들어 자신의 몸값을 높이고자 합니다. 이렇게 목사가 숫자놀음을 하게 되면 교인은 가격을 매기는 물적 수단으로 전락하고야 말죠. 목사는 교인의 헌금 액수에 따라 ‘10만 원짜리 교인’ ‘100만 원짜리 교인’으로 구분하고 차별 관리에 들어가게 되고요. 결국 교회 안의 직분도 액수에 따라 결정되기 십상입니다. 더 큰 문제는 신자유주의 가치관의 영향으로 교인들 또한 자신의 고유성을 부인당하고 가격이 매겨지는 것에 대해 무감각하고 심지어는 스스로 더 높은 가격이 매겨지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 역시 헌금 많이 해서 장로가 되길 바라고 큰 교회 신자라는 것을 자랑하며 권력의 틀 안으로 매몰됩니다. 교회 매매가 성행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 "종교권력의 키워드는 명확합니다. 바로 '독점'입니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결국 그런 속성들이 교회 세습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시는 거군요?
이러한 기준으로 교회의 기득권층이 형성되고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모든 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회 세습도 한결 수월해지게 됩니다. 명성교회를 보세요. 마치 담임목사는 원하지 않았지만, 장로들이 부자(父子) 세습을 간곡히 요청하여 마지못해 세습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나리오를 구성해 교회 세습을 진행시키잖아요. 장로들 역시 담임목사와 지금까지 이루어진 이권이나 특혜가 새로운 담임자로 인해 소멸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세습에 동조하는 것이죠. 이렇게 담임목사와 장로들 간의 권력 독점은 교회를 더욱 비상식적인 방향으로 끌고갈 수밖에 없습니다.  

― 종교권력 욕망을 철학적, 역사적, 사회과학적, 신학적으로 고찰하셨습니다. 이를 꿰뚫는 하나의 ‘키워드’를 찾을 수 있을까요?
종교권력의 키워드는 명확합니다. 바로 “독점”입니다. 자신의 권력은 확장하면서 나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을 경쟁자로 인식하고 배제하는 것입니다.

― 관련해서 성서 속 예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중앙 성소’의 독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나안 정착 이후 땅 분배와 맞물려 지파시대가 시작되었고 각 지파 간 충돌 또는 정치적 결탁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절대적 권력을 행사한 지파는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 지파시대에는 힘의 균형으로 인해 권력이 지방으로 분할되어 있었죠. 그러나 ‘다윗-솔로몬’ 왕조 때에 이르러 새 수도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정치, 행정, 종교, 군사가 집중됨에 따라 중앙 성소의 집중화를 위해 지방 산당과 성소는 철폐되고 금지되었습니다. 국가로부터 선택받아 중앙 성소로 입성한 제사장들은 승승장구했으나 지방 산당·성소의 성직자들은 무허가 성소로 전락한 제사장으로서 수입도 줄어들고, 결국 성소를 닫고 성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권력의 핵심으로 편입한 소수의 중앙 성소 성직자들은 기득권에 대한 우월감과 그 자리를 독점하기 위해 지방 성소의 레위인들이 제사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했어요. 중앙 성소 제사장들의 권력 횡포로 인해 지방 산당·성소의 제사장들은 더 이상 제사장 구실도 할 수 없었던 겁니다. 이는 다수의 레위인들의 제사장 기능을 마비시킴으로써 소수였던 기득권 세력의 독점적 지위를 획득하고 신분의 우위를 취하려는 정치적 탄압이었습니다. 그 결과, 제사장직의 모든 부분에서 지방 성소 레위인들이 제거되고 제사장들의 종으로 전락합니다.(민 3:9) 이로 인해 제사장의 자리에서 좌천된 레위인들은 당장 생계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성전 도우미로 격하되었어요.

   
▲ "세월호 참사 때 아이들을 위로하기보다는 물질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교회 모습 속에서 분노와 절망을 느꼈습니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성서에서는 좌천된 레위인들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나요?
구약성서에서는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숭배를 가르치고 그 벌로 제사장 직분에서 쫓겨나 비천한 직책을 맡게 되었다고 말합니다.(겔 44:6-14) 에스겔은 이렇게 ‘격하된 제사장’과 ‘순수한 제사장’을 대립시켜 놓았고, 순수한 제사장들을 ‘사독의 후손들’이라고 불렀습니다.(겔 44:15) 그들만이 유일한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이며, 예루살렘의 제사장들만이 직무를 수행할 권리가 있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사실 좌천된 레위인들보다 중앙 성소의 제사장들이 왕의 권력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해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우상숭배를 일삼았습니다.

― 생소한 해석입니다….
학계에서는 비주류에 해당하는 해석이죠. 신학교도 교회권력과 연결되어 있어서 교회가 싫어하는 신학 내용들은 잘 알려지지 않지요. 김은규 교수님의 책 《구약 속의 종교권력》(동연)을 통해 자세히 접할 수 있을 겁니다. 유대교 제사장들이 친제국주의였다는 것, 다윗의 왕정 정치를 옹호하고자 최선을 다해왔다는 설명 등이 담겨있습니다.

― 사무엘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긍정적으로 많이 해석하는데요. 종교권력 관점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가요?
종교권력의 관점에서 사무엘을 살펴보면 사무엘은 권력지향적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주변 국가의 잦은 침입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느슨한 지파중심체제의 한계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이스라엘 민족은 야웨 중심의 고립적이고 파편화된 족장 국가에서 개방된 단일 국가 형태의 왕권체제로 전환을 꾀했습니다. 강력한 왕권체제하에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면 주변 국가들과 동등한 외교를 통해 공생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겠지요. 더불어 가나안 정착 초기부터 집권해왔던 제사장 중심의 오래된 기득권 세력을 교체하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을 중심으로 한 기존 기득권 세력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느슨한 지파체제를 유일하게 연결해주는 수단인 종교제의를 주도하여 권력을 유지했던 입장에서, 개방성을 가진 왕정체제로의 변화는 그들의 입지를 좁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개방정책은 타종교와 다양한 문화의 유입을 의미하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강력한 요구를 사무엘이 막을 수는 없었고 거기에 권력을 세습하려 했던 자식들의 부정부패도 한몫했습니다. 사무엘은 시대적 상황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는 자신의 종교권력과 기득권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왕정체제의 모습을 가진 섭정 국가를 도모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로 인식하며 대변할 꼭두각시 왕이 필요했으며 그렇게 낙점된 자가 바로 사울이었고, 사울은 사무엘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인지도가 확장되어가자 사무엘과의 갈등이 야기되었고 결국 사울에게 종교적 폐위를 선포하고 또 다른 꼭두각시 왕 다윗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사무엘의 권력욕이 확인됩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섭정을 통해 계속해서 유지하고자 했던 거죠. 결국, 사무엘과 사울의 권력 갈등은 오히려 다윗에게 양 날개를 달아준 셈이죠. 이처럼 사무엘이 왕권체제의 기틀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제 견해는 그 의도가 선했다고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거예요.

― 논문에 사독계열 관련 언급 중 “강한 권력을 등에 업고 겉으로는 야웨의 이름으로 내면에는 권력의 야망으로 이스라엘을 백성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라는 표현이 오늘의 종교권력들을 수식하는 말 같은데요. 시대가 변해도 결국 그 종교권력의 본질은 같은가 봅니다.
사독계열은 솔로몬 시대 이후 오랜 기간 제사장직을 독점하고 종교권력을 유지했기 때문에 구약의 제사장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기까지 360년 동안 다윗 가문에는 21명의 왕이 통치했는데, 이 기간에 제사장은 18명으로 모두가 사독계열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출신인 사독은 자신과 같은 출신인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을 옹립하여 왕으로 세우고 그 세력을 더욱 확대해 종교권력의 독점시대를 열게 됩니다. 왕이 된 솔로몬은 사독계열에게 모든 종교적 지위를 부여하고 중앙 성소의 제의권을 독점하게 하였고 사독계 제사장들은 왕의 결정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룩한 명분을 만들어 나갔죠. 그들 종교권력의 본질은 후에 유다가 멸망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을 때에도 변하지 않아요. 페르시아의 지원을 업고 성전을 재건하며 신권 독점에 집착하지요. 페르시아 행정부도 속국들에 대한 자치 정책으로 나갔기 때문에 옛 이스라엘 지역의 대제사장 질서를 복원시켜주고 기득권을 줌으로써 백성들을 통제하는 것이 용이할 것이라는 계산을 했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는 성전과 제의에 에스겔, 에스라, 느헤미야라고 부르는 사독계열 제사장들이 주도하는 신권 정치의 복원에 경제적인 지원을 했던 것입니다. 사독계열은 페르시아가 하나님의 뜻으로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다스린다는 정당화와 고레스 왕을 칭송하는 친페르시아 사상을 곳곳에서 드러내요. 또한 반제국주의적 성향의 무리들을 탄압하고 소외시키는 종교적 작업을 수행하고요.

― 어떤 ‘종교적 작업’이 있었나요?
대표적인 예로 사독계 제사장들이 돌아와 종교적 순수성 회복이라는 명제 아래 친페르시아 성향이 아니었던 기존 거주민들이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을 문제 삼아 정죄하고 이혼을 강요한 것입니다. 왕권이 바뀌어도 심지어 국가가 달라져도 세습 권력을 지향하는 사독계 제사장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에 잇대어 기득권을 지키려 몸부림쳤어요. 이러한 사독 가문은 종교권력을 세습하며 솔로몬 이후 기원전 175년까지 약 800년 긴 세월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사독계열의 독점 권력을 사두개파가 이어가게 되죠.

   
▲ 설훈 목사는 한신대에서 종교학과 신학을 공부했고, 협성대 신대원을 졸업해 감리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다양한 신학을 접했고, 최근 '새로운 목회'에 도전하고 있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신약의 사두개파가요?
사두개파라는 이름 자체가 사독 가문 후손이란 의미를 담고 있죠. 역사적 근거는 없어요. 귀족 가문이 모여서 사두개파로 규정되었다고 하는데요. 그 사람들이 자기네가 사독 가문의 힘과 지위를 이어받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대제사장 신분을 공고히 하려고 나선 겁니다. 신약의 종교권력은 마치 경매장을 방불케 해요. 돈을 많이 갖고 오는 사람이 대제사장으로 임명되는 식이었어요. 대제사장의 지위를 가진 이들은 제국에 더 많은 재물을 상납하기 위해 백성들을 압박하기 시작했고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제국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백성들에게 각인시킵니다. 구약의 세습 권력보다 더 타락했다고 할까요?

― 권력 다툼, 기득권 쟁탈의 관점에서 새롭게 읽히네요.
오늘날 한국교회 상황이 앞서 언급한 구약의 중앙 성소 제사장의 독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한국교회 역시 중앙의 엘리트 중대형교회 목사와 변방에서 생계에 허덕이는 미자립교회 목사로 구분됩니다. 대형교회 목사들은 그들만의 패거리를 형성하여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으려 하며, 그것의 가장 뚜렷한 현상이 바로 교회 세습입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내몰린 미자립교회 목사들은 목회보다는 생계 전선에서 허덕이며 중앙 성소로 진입하고 싶어 하지만,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장벽의 한계를 절감할 뿐이며 이러한 악순환은 교회 세습으로 인해 더욱 굳어지는 거죠.

― ‘교회 세습 반대’ 주장이 특정세력의 기득권을 지키는 일에 ‘악용’되기도 하잖아요.
제가 2년 정도 감리교본부 출판국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 세습을 사회적 문제로 부각시킨 ‘감리교세습금지법’ 역시 그때 상정되어 통과되었고요. 겉으로 보면 세습을 반대하는 그룹은 교회를 개혁하려는 건강한 그룹이고 세습을 지지하는 쪽은 종교권력을 탐하는 그룹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데요.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모두 종교권력을 점유하기 위한 정치적 이권 싸움이었습니다. 본부의 권력을 장악한 기존 세력이 그 점유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세습’이라는 이슈를 이용한 측면이 다분했습니다. 교계 안팎으로 선한 결과를 이루었지만, 동기 자체가 선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 ‘세습 반대’도 중요하지만, 왜 반대해야 하는지를 더 명확하게 드러내야 할 필요성이 있겠어요.
니체가 “단세포도 권력을 탐한다”라고 했잖아요. 권력은 누구에게나 생존 본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권력을 성취하게 되면 빼앗기지 않고 지키려는 강한 의지가 발동합니다. 세습을 반대하는 것이 세습한 교회와 목사를 향해 비판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사무엘이 그랬듯이 그 자리에 앉게 되면 누구라도 권력지향적 인물로 바뀌기 마련입니다. 비판을 넘어서 교회가 사유화되지 않고 공공성을 회복하는 바르고 건강한 교회론이 확산되고 정착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 논문에 교회와 재벌의 세습을 비교한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의 대형교회와 재벌은 그 DNA 구조가 비슷해요. 해방 이후 일본인이 남기고 간 재산을 미군정이 몰수했고, 이 재산이 10년에 걸쳐 한국인에게 재분배되잖아요. 이때 혜택을 받은 기업이 현재의 삼성, 현대, LG, SK, 두산, 한진, 한화, STX(쌍용), 효성, 롯데 등입니다. 불하(拂下)받은 적산(敵産)이 이들의 ‘성공 신화’ 기반이었던 거죠. 한국교회도 일본인 조합교회, 신도, 천리교의 재산을 불하받았죠. 토지나 가옥을 거의 무상으로 양도받아 교회나 신학교의 재산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적산 자본 취득으로 한국교회는 거대 종교권력이 되었고, 이런 경험이 한국교회가 물질주의에 빠지게 된 배경 중 하나입니다. 교회와 재벌, 이 두 집단의 공통점은 그렇게 축적한 자본을 세습한다는 거예요. 서로 닮았어요. 교회는 자본 운영을 기업화하고, 기업은 대물림을 신성시(종교화)하며 복종체계를 강화해요. 두 집단 모두 사유화하면 안 되는 것을 독점적 사유 자본으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 교회가 세습을 할 때 교인들이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경우가 대다수잖아요. 교인들 뜻인데 왜 밖에서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논리가 표면적으로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재벌들 논리도 똑같지요. 우리 기업을 우리 마음대로 하는 데 무슨 상관이냐고요. 공공성을 상실한 말들이라 생각해요. 교회가 사유화되고 세습을 하거나 값을 매겨 거래되는 이유는 공교회성을 상실하고 물적 세계관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잡을 방법은 반대 방향으로 가면 되겠지요. 교회가 남과 나를 구분하지 않고, 신자와 비신자를 차별하지 않고, 모두를 끌어안고자 할 때 공공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교회를 제외하고 많은 교회들은 공교회보다는 자본을 축적하고 세력을 확장하기 용이한 파벌 중심의 사유화된 교회를 지향합니다. 그리스도가 드러나기보다는 내 교회 담임목사가 더욱 과시되고 다른 이웃교회를 압도할 힘을 기르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 되었죠. 이런 현실에서 개 교회의 세습을 반대하거나 부당한 결정을 뒤집기는 불가능합니다. 한국교회를 병들게 만드는 교회 세습, 개교회주의, 메가 처치 현상 등 모든 것이 이기적 단절로부터 파생된 현상입니다. 한국교회는 연대하고 화합하는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렸어요. 그저 내 교회, 내 가정, 내 자녀가 우선시되고 그것이 우상이 되었죠. 이런 상태로는 하나님과 연합도 이루어지지 않아요.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내가 그 안에 그가 내 안에 거하는 것이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상호침투)의 하나님이신데요. 상호 내재적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과 연대가 일어나는 교회 공동체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성별, 학력, 지역 등 모든 계층구조를 없애고 평등한 공동체를 지향하고, 평신도들은 ‘객체’가 아니라 ‘주체자’ 또는 ‘행위자’로 서야겠지요. 어쩔 수 없이 ‘평신도’라는 말을 썼지만, 목회자와 평신도라는 구분은 성서적이지 않습니다. 레오나르도 보프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는 사도성이나 제도성보다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즉, 목회자의 권위는 사도 전승이 아니라 평등한 신앙 공동체로부터 비롯되어야 합니다.

― 물질을 많이 가진 대형교회들이 세습을 더 시도하는 경향이 있나요?
1993년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잡지인 <크리스천 월드>에서 발표한 자료에 보면 성도 수가 많은 순으로 50위권 내에 한국교회가 19개나 됩니다. 23년이 지난 현재, 이들 19개 교회 중 자녀에게 세습을 완료한 교회가 8개이며, 아직 은퇴 전이지만 세습을 모색하고 있는 교회도 2-3곳 정도입니다. 거의 절반 가까이 세습을 했거나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형교회들이 얼마나 권력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지요. 세습에 가장 큰 영향은 바로 돈입니다. 저도 가진 게 없으니까 이런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큰 교회 목사였다면, 저도 단호하게 세습을 거절하지 못했을걸요.

― 잘 알려지지 않지만, 중소형교회들도 세습을 많이 하지요?
그렇습니다. 이제는 중소형교회들도 세습 대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어요. 그만큼 목회 현장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교회 세습이 규모에 상관없이 확대되는 이유는 첫째로 목회자 수급의 불균형 때문입니다. 교육부에 정식 인가를 받은 신학대학원이 57곳이에요. 여기에서 배출되는 졸업생 수는 수만 명에 달하고요. 그에 비해 교회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둘째로 교단 차원의 은퇴 준비가 미흡합니다. 대다수 교단이 목사의 은퇴 이후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실정입니다. 그러니 가장 확실한 은퇴 준비는 세습밖에 없는 거죠. 셋째로 보상주의가 만연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자신이 일구어 놓은 업적이라는 생각에 세습을 통해 보상받고자 합니다. 세습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가 양적 성장을 멈추고 감소세로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이 중소형교회까지도 세습하게 만드는 거죠.

― 목사님은 한신대에서 종교학과 신학을 공부했고, 협성대 신대원을 졸업해 감리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박사학위는 올해 2월에 성공회대에서 받은 거고요. 다양한 신학을 접하셨을 텐데요. 신학의 차이가 목회의 차이로 이어지는 것 같나요? 
요즘에는 다들 생존이 문제에요. 목사들이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말해요. “어느 신학교를 나와도 목회는 순복음으로 해야 먹고살 수 있다”라고요. 진보적이라는 교단의 교회들도 신유치유집회 많이 하고요. 그래야 살아남으니까요. 큰 교회가 무엇을 하면 그대로 따라가는 분위기죠. 교회가 클수록 교파의 색은 없어져요. 다 똑같아지죠.

― 목사님의 목회 여정이 궁금해지네요.
모교회 교육전도사로 첫 사역을 시작했어요. 신대원 졸업 후엔 경기도 연천 최전방 지역 시골교회 담임 전도사로 부임했어요. 그때가 2002년 7월입니다. 노인 20여 분과, 이혼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할머니들이 키우는 아이들 10여 명이 전부였어요. 5년간 울고 웃으며 농촌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다음 목회는 인천 덕적도에 있는 교회였어요. 섬마을의 작은 교회였죠. 서포리해수욕장 근처라서 휴가철에는 관광객들로 인해 예배당이 꽉 차기도 했어요. 동료 목회자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기도 했고요. 시간상 여유가 있어서 당시에 한신대학교에서 〈한국 개신교단의 엠블럼 연구〉라는 제목으로 종교사회학 논문(석사)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와 주말부부로 지내는 게 무척 어려웠어요. 3년 만에 섬에서 나와 감리교본부 출판국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출판국이라 해서 고상한 일인 줄 알았는데, 고단한 일이었어요. 밤 11시가 되어야 집에 왔죠.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던 2년이었습니다. 이후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안산의 교회에 있었고요.

― 목회를 하면서 박사 논문을 쓸 여유가 있었나요?
안산의 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를 하던 아내도 세월호 참사에 대응하는 교회의 민낯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거든요. 좌절감에 빠져 교회를 나왔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전환점이 필요했어요. 아내는 학교를 휴직하고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학교 근처인 세종시로 이사했고, 저도 그곳에서 교회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파트타임이라서 시간 여유가 있었어요. 논문도 쓰고, 이웃들과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어 대표로 섬기며 우리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도 했고요.

― 다음 목회의 계획은요?
사실 대형교회의 부교역자 제안이 와서 고민했었어요. 그런데 아내가 부교역자가 교회를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너무 잘 아니까, 저에게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가난하게 살더라도 개척해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자고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어느 목사님 가정과 함께 예배드리며 건강한 교회를 준비하고 있어요.

― 동료 목회자들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지인 중 부교역자 하다가 은퇴하는 담임목사에게 1억 3천만 원 주고 담임목사로 가는 이가 있어요. 그 은퇴하는 분은 나름대로 깨끗하게 목회했다는 생각이 있어서 몰래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일반적으로 목사님들 모이면 일상적으로 이런 이야기들 해요. 물려받을 교회가 있냐, 얼마 주면 어느 교회 갈 수 있다더라, 너는 아버지 교회 물려받으면 되겠다 등등.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면 ‘너만 잘랐느냐’ 매도당하기 십상이지요. 그런 분위기입니다. 저는 아내가 교사이기 때문에 저를 지킬 수 있었는지도 몰라요. 생활하기에는 부족해도 굶지는 않을 수 있었잖아요. 만약 다른 분들처럼 당장의 생계가 걸려 있었다면, 두 가지 길밖에 없었을 겁니다. 부조리를 구경하며 큰 교회 부교역자로 계속 남아있거나, 대출을 받아서라도 돈 주고 갈 수 있는 담임 자리가 있으면 갔을 겁니다.

 

※ 설훈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은 복음과상황 홈페이지를 통해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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