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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가 기억하는 대로
[320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사막에서 연어낚시〉(2011)
[320호] 2017년 06월 28일 (수) 15:01:48 최은 영화연구가 goscon@goscon.co.kr
   
 

이 일은 돈이 아주 많은 한 사람의 비전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멘 어느 부족의 왕자 무하메드 이븐 자이디 바니 티하마(아미르 웨이키드)가 부동산 투자컨설팅회사인 피츠해리스 프라이스의 해리엇 쳇우드 탈보트(에밀리 블런트)에게 한 사업을 의뢰합니다. 자신의 조국 예멘에서 연어낚시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어요. 가능성을 타진하고 프로젝트를 추진할 전문가로 어류학자 알프레드 존스(이완 맥그리거)가 지명되었습니다. 〈길버트 그레이프〉(1993)와 〈쵸콜렛〉(2000)으로 유명한 스웨덴 감독 라세 할스트롬의 〈사막에서 연어낚시〉는 영국의 작가 폴 토데이의 소설 《Salmon Fishing in the Yemen》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원작에서처럼, 영화는 해리엇이 알프레드에게 보내는 의뢰 메일로 시작합니다.

왜 하필 ‘낚시’였을까?
학자의 지식과 양심으로, 알프레드는 이 황당한 프로젝트에 동참할 수 없었습니다. 회유성 어류인 연어의 산란과 서식에는 산소가 풍부하고 차가운 물이 필요한데, 홍해와 아라비아해에 인접한 예멘은 열사(熱沙)의 땅이니까요. 직장상사 서그든(콘리스 힐)이 두 배의 연봉으로 회유와 협박을 동시에 해대지 않았다면 끝까지 거부했을 텐데요.

국립해양원의 서그든은 외무성과 총리의 국정홍보실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었습니다. 마침 아프가니스탄에서 모스크 폭발사건이 발생하면서 중동 관련 훈훈한 기사가 필요하던 참에 국정홍보실장 맥스웰(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이 예멘 왕자의 연어 프로젝트를 ‘낚게’ 된 겁니다. 게다가 영국의 낚시 인구가 2백만이나 된다고 하니, 낚싯대를 든 총리 사진이라도 띄우면 지지율 상승은 물론 다음 선거 전략에도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의류나 낚시도구, 캠핑 장비 등 관련 산업의 중동 수출도 활발해지겠지요. 이 모든 혜택을 세금 한 푼 들어가지 않게(이 점이 정말 중요합니다! 알프레드의 임금까지 피츠해리스 프라이스가 제공하니까요) 자비를 들여 제공하겠다는 ‘기름 왕자’가 나타났으니, 영국 정부로서는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초기 착수 비용만 최소 오천만 파운드(약 750억 원)에 달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런데 왕자는 왜 이런 무모한 일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기로 한 걸까요? 다른 취미나 스포츠가 아니고 왜 하필 ‘낚시’였을까요? 무하메드는 총 대신 낚싯대를 들고 강에 몸을 맡긴 사람들과 고요한 조국의 풍경을 상상합니다. 낚시는 몇 시간 또는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비효율적인’ 활동이었지만, 그것은 또한 인종과 계급이나 재산과 무관하게 공평한 기다림이었고, 언젠가 보상받을 거라는 ‘믿음’이었습니다. 무신론자인 알프레드에게 무하메드는 낚시가 왜 ‘믿음’일 수밖에 없는지, 과학과 합리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선지자였죠.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비용도 덜 들고 훨씬 덜 까다로운, 그러니까 고인 물이나 강에서 얌전히 나고 자라는 다른 어종은 안 되는 것이었을까요?

   
   
   
 


역행: DNA가 기억하리라는 ‘믿음’
잘 알려져 있듯이 연어는 치어 때 강에서 살다가 바다로 나가서 성체가 되면 알을 낳으러 강을 거슬러오는 회유성 어류입니다. 바다에서도 편한 삶은 아니겠지만, 연어의 귀향길에는 훨씬 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요. 연어의 습성을 잘 아는 맹금류나 곰(물론 그 중에 최고는 인간 낚시꾼들이겠죠) 등이 중요한 길목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 아니라, 폭포를 거슬러 어렵게 도달한 고향에서 산란을 마치면 곧 죽음을 맞기 때문입니다. 연어의 사체는 또 너구리나 독수리의 먹잇감이 되고 강 주변 토양을 비옥하게 하므로, 연어의 여정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답니다. 영화에서 스코틀랜드의 연어 1만 마리를 중동으로 보낸다는 계획이 2백만 영국 낚시인들을 분노로 들끓게 한 배경에는 생태계 교란이라는 중대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반면, 예멘에서도 이 프로젝트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연어의 습성과 연어낚시를 통해 왕자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서방세계에 대한 무슬림들의 오랜 반감과 상처를 자극하여 오히려 테러를 유발하게 되었어요. 바로 이 점이 원작에서는 훨씬 강조가 됩니다. 영화의 왕자 무하메드가 동족의 몰이해에 분개하는 ‘나홀로 선지자’라면, 원작에서 족장 무하메드는 자신이 이 일로 인해 죽게 될 것을 알고 있는 진정한 선구자였어요. 마치 강물을 거슬러 죽으러 가는 연어처럼 말이지요.

할스트롬의 영화가 이 절묘한 희생의 유비를 해피엔딩과 맞바꾼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점입니다. 영화는 또한 원작이 고집했던 알프레드와 해리엇의 희생, 즉 로맨스의 희생마저도 제거해버렸거든요. 원작에서 남성이었던 홍보실장이 ‘워킹맘’ 맥스웰로 바뀌었지만 매번 육아와 가사에 정신없는 독하고 억척 같은 모습일 뿐이고, 알프레드의 아내 메리는 자신의 경력과 일에 집착하다가 결국 버림받게 된 것도 내심 불편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저에게 볼 만하고 옹호할 만 했다면, 그것은 연어의 회귀와 알프레드의 삶, 즉 과학과 믿음과 낚시를 연동하는 영리한 이미지들 때문입니다. 군인인 해리엇의 애인이 아프간 작전 중 실종되자 해리엇이 상심하여 두문불출하고 있을 때, 알프레드는 갑자기 행인들의 이동 방향을 거슬러 해리엇의 아파트로 찾아갑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카메라 시선 덕에 그는 물살을 거슬러가는 한 마리 연어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연어 프로젝트와 알프레드-해리엇의 로맨스는 동시에 전환점을 맞게 되지요.

한편 환경단체와 낚시인들의 반대로 인해 연어 포획이 불발되자 맥스웰은 양식 연어를 사들이자고 제안합니다. 무하메드도 알프레드도 원하던 일은 아니었어요. 양식장에서 자라 돌연 사막에 이송된 연어들은 과연 원래 고향을 찾아 헤매느라 내려갈까요, 강물이 흘러내려오는 예맨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갈까요? 불투명한 결과를 놓고 알프레드는 믿음을 발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연어들을 ‘믿어보기로’ 했어요. 정확하게는 존재의 근원을 찾아 위로 향하는, 그들의 DNA를 믿기로 한 거지요. 힌트를 제공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일상의 단조로움과 관성을 거슬러 떠나온 아내 메리의 말이었습니다. “당신은 6개월만 지나면 나에게 돌아와 받아달라고 무릎 꿇게 될 거야. 그게 당신의 본성이고 DNA야.”   

뜬금없이, DNA를 묵상하며 숙연해졌습니다. 알프레드가 그랬던 것처럼요. 다행인 건, 우리는 그리스도의 DNA를 이식받았다는 사실일 겁니다. 그래서 사막 한 가운데 떨어져 어디로 가야 할지 당황스러울 때조차도 물의 냄새를 맡아내는 재주가 세포의 가장 작은 단위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거라고, 믿어보기로 합니다. 그런 세포의 힘들이 모여 한 번도 안 가본 길을 향해 물살을 거스르고 세대를 이어가는 거겠지요. 알을 쏟아낸 껍질까지 내어주는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메시지도 물론 잊지는 말아야 해요.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고(영화예술학 박사),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했다. 영화 연구자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와 사회》(공저),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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