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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가라앉히는 3가지 방법
[321호 쪽방동네 이야기]
[321호] 2017년 07월 20일 (목) 16:09:40 이재안 부산 동구쪽방 활동가, 풀꽃강물교회 전도사 goscon@goscon.co.kr

우즈벡 고려인 리슬라브 씨를 기린 일본 연수
6월 13일, 일본 기타큐슈(北九州) 지역에 왔다. 홈리스 지원 교류를 위한 4박 5일의 일정이다. ‘이주민과함께’ ‘반빈곤센터’ ‘동구쪽방상담소’가 함께한다.

첫째 날은 고쿠라교회 서남기독회관 1층 역사관에서 보내고 있다. 조선인 강제 징용의 아픈 이야기를 가슴으로 본다. 온몸으로 그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낸 재일동포 2, 3세들의 삶에 주님의 은총이 있기를 기원한다.

   
▲ 일본 홈리스와 상담 중. (사진: 이재안 제공)


6월 15일 일본 연수 3일 차, 기타큐슈 고쿠라역 근처 야시장 길, 심야 12시를 넘어 노숙하시는 일본 분을 만났다. 통역 선생님의 도움으로 소통은 원활했다. 부산대학병원 공공의료팀 정신보건사회복지사 김 선생님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신데, 언제나 상냥하고 친절하게 상담에 응하신다. 자립지원센터 직원의 말에 따르면 기타큐슈 시에 60명 정도가 노숙을 하신단다. 도시락 세트를 두 개 전달하고 간단히 담소를 나누고, 근처를 20분 정도 돌아보니 홈리스 두 분이 숲속 공원에서 주무시고 계신다. 모기가 무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6월 19일, 간담회 마지막 날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이곳 교회의 주문홍 목사님은 “인연은 쉽지 않다”며 “다음 기회에는 젊은이들을 보내 달라”고 하셨다. 앞으로도 이런 교류를 통해 서로에게 희망과 도전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셨다. 무엇보다도 (1월호에 소개한) 우즈벡 고려인 리슬라브 씨의 의료·장례 지원을 통해 만나게 된 단체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부산에서 실제적인 협력을 이루기를 바랐다.
이어서 새벽 3시 넘은 시간까지 서로 담소를 나누었다. 연수 중 현장에서 보고 겪은 것을 다시금 회상하고 서로의 고충과 앞으로 협력할 방향, 그리고 보고회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지역 시민단체와 이주민 활동단체, 정부의 지원을 받는 노숙인시설이 상호 협력하여 이주민 홈리스를 지원한다는 계획은 생각만으로도 보람차다.

하늘 위를 내려다본다
지난주 일본 연수를 다녀온 뒤 피곤한 몸이라 며칠 쉬고 싶다. 연수 현장 중 하나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NPO호복관의 이사장인 오쿠다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의 추모관이다. 교회 교인들과 무연고자분들을 위한 추모관이다. 앞으로 추진해야 할 일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고 온 느낌이다. 우측 아래 동그란 물체는 유골을 합장하는 커다란 단지의 뚜껑이다.

   
▲ 유골을 합장하는 커다란 단지의 뚜껑. (사진: 이재안 제공)


부산 동구의 고독사 기사가 연일 화제다. 내가 일하는 동네다. 구청 통합사례관리 직원들이 무척이나 바빠졌단다. 문의 전화도 여러 통 온다. 때마침 걸려온 전화는 술에 취해 자살하겠다는 분이다. 전화 통화 후 5시간 정도 지나, 바쁜(?) 일정을 마친 후 혹시나 해서 갔더니, 목에 나일론 끈을 두어 바퀴 감은 채로, 옆에는 새로 산 횟집용 칼이 두 자루 놓여있다.

잠을 쿨쿨 자고 계신다. 살짝 깨우니 귀엽게도 쑥스러워하신다. 정신을 차리라고 하고 근처 식당에서 불고기 백반 먹고, 그분이 밥값 내시는 바람에 나는 근처 단골 전통찻집에서 차를 대접하고 수다를 떨었다. 이렇게 사는 하루하루가 행복 아닌가.

우리 주님 저어기 아래에 계실 뿐. 나도 아래에서, 하늘 위를 내려다본다. 페이스북에 한마디 날렸다.

‘별거 없어요. 사회적 가족이 촘촘한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죠.’

평생 잊지 않을 하루, 막걸리 청년
6월 25일, 밤늦게 마산에 사는 교회사 박사 과정의 전도사를 만나 대화하던 중에, 전화 몇 통이 급히 왔다. 부산 B병원 응급실이란다. 순간, 아이쿠나, 피곤하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40여 분 운전을 해 병원에 도착했다. ‘그 녀석’이 술을 먹고 뻗은 모양이다.

새벽 2시 22분, 병원 응급실. 막걸리와 소주를 잔뜩 마시고 응급실로 실려 왔단다. 7080에서 처마셨단다. 무려 3차까지…. 최고봉이다. 오늘이야말로 극한의 정점을 찍는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한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너무너무 실망스럽다. 그의 어머니가 27살인 이 친구를 집에서 쫓아낸 이유가 있다. 충분히, 당연히 그럴 만하다. 속 타는 내 마음도 모르고 링거 맞으며 쿨쿨 잘도 잔다. 코까지 곤다. 귀싸대기 한 대 날리고 싶다.

지난 2월 1일에 만났으니 알고 지낸 지 6개월이 채 안 되었다. 평소 생활은 1루타 정도는 되는 청년이다. 그러나 기대가 큰 나머지 이런 사고가 터지면 무척 화가 난다. 옆자리에서 페이스북에 글이라도 쏟아내야 나도 화가 풀린다. 

예수여 오직 함께하소서. 나의 화를 들어주소서. 링거를 다 맞고 고시텔에 데려다주고 집에 오니 주일 아침, 7시다.

환난에서 소망까지
지난주 예배 때 나눈 로마서 5장 1절에서 8절을 다시 묵상하며 한 말씀 나눈다. 타자의 유익을 위해 죽어가는 삶이 사랑의 삶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길을 따르는 삶이다. 타자가 이기적으로 욕망하는 것을 채워주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상호 성숙을 위해서다. 타자를 위해 죽어가는 삶은,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 없고 미화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게 평탄하게 되는 일이 없다. 단박에 쉽게 된다는 기대는 망상에 가깝다. 오늘날 미디어는 쉽고 빠른 길이 있다고 부드럽게 우리를 세뇌한다. 그 공격 앞에서 우리는 우직하게 환난을 인내하고 연단 받으며 소망을 찾아가야 한다. 인간의 삶이 참 행복한 삶이 되려면 그래야 한다. 6월의 마무리도, 한해의 반절도, 삶과 죽음의 인생 가운데에 작은 십자가의 길, 그 흔적들을 일구는 한 주가 되길 기원한다.

슬픔을 가라앉히는 세 가지 방법
7월인데 아직까지 지난주의 그 화가 풀리지 않는다. 동생뻘 전도사가 3주 전에 선물해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누가 사람이냐》다. 표지에 “사람은 하늘과 땅이 서로 얽혀 짜내는 매듭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스트레스 지수가 팍팍 올라가니 책 읽기도 힘들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책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뒷부분을 먼저 보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붙들고 씨름했던 코츠크의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 “슬픔을 가라앉히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는 것이요. 또 하나는 침묵하는 것이요, 마지막 하나는 그 슬픔을 노래로 바꾸는 것이다.” (161쪽)

울고, 침묵하고, 슬픔을 노래로 바꾸고. 헤셸 특유의 시적 산문으로 기록된 이 책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노래였다.

왠지 모르게 이번 공동예배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3주 만에 학교 기숙사에서 온 아들 정현이는 삼촌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좋은지 표정이 그윽하다. 그런데 우리 멤버들은 참 힘들다. 오랜 정신질환 문제로 삶의 일상성이 깨어지면 기도로도, 말씀으로도, 찬양으로도 회복되기 어렵다.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수시로 전해오는 전화로도 마음이 무겁게 억눌리는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더 힘이 들까. 그저 버티며 기다릴 뿐이다.
그럼에도 고등학생 시절 복싱하며 신앙을 가지려 했던 민중 씨. 기도 대신에 시를 노래한다. 서른여섯의 생애를 살다가 간 빈민운동가 김흥겸의 시다.

민중의 아버지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 짤린 하나님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 먹은 하나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 당한 하나님
그래도 당신은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하나님 당신은 죽어버렸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계실까
쓰레기 더미에 묻혀버렸나 가엾은 하나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 당한 하나님
그래도 당신은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울고,
침묵하고,
슬픔을 노래로 바꾸고.

 

이재안
잠자리 눈물만큼의 정(情)이라도 찔끔찔끔 나누며 살아가는 작디작은 풀꽃강물교회 식구이며, 부산 동구지역을 중심으로 ‘혼살이’ 아저씨 아줌마 할매 할배들과 찌지고 뽁고 욕먹고 욕하며 살아가는 40대 유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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