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최종편집 : 2019.3.12 화 20:53
기사검색
   
> 뉴스 > 말씀 | 올곧게 읽는 성경
       
인자와 함께 ‘시온에 선’ 144,000의 정체
[321호 올곧게 읽는 성경] 한국교회로 배달된 요한의 편지 7(계 14장)
[321호] 2017년 07월 20일 (목) 16:21:32 정재훈 용인 덕성교회 전도사 goscon@goscon.co.kr

세계에서 가장 큰 소리가 나는 악기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꽹과리라고 한다. 일제는 우리의 음악을 비하하면서도 꽹과리 소리에는 민감했다고 한다. 의병의 역사가 깊은 우리나라에서 민중을 불러 모으는 데 꽹과리만큼 좋은 악기도 없었을 것이다.

계시록은 요한복음의 빛과 어둠의 대비처럼, 소리로 피아를 구분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단순화하면, 하나님의 편은 큰소리가 나지만 마귀의 편은 소리가 없다. 뜻은 있으나 소리가 나지 않는다. 

시온에 모인 성도
‘시온’이라는 주제가 신약 안에서 다루어질 때는 두 가지 표현이 공존함을 유의해야 한다. ‘시온’과 ‘시온 산’(히 12:22, 계 14:1)의 병존이다. 신약은 구약과 달리 시온에 대한 포괄적인 신학 성장은 보이지 않는다. 일곱 번 정도의 언급에서 다섯 번이 구약의 직접 인용이다. 나머지 두 곳(히 12:22, 계 14:1)만이 의미 있는 독립적 진술이다.

두 본문은 매우 유사하다. 그 공통점은 주와 주의 사람들이 시온에서 회합을 가진다는 것이다. 다른 점은 히브리서는 시온에 모인 성도에게조차 불순종에 대한 경고가 주어지는 반면 계시록은 경고가 불필요한 듯 불변의 신앙이 전제되어 있다(히 12:25, 계 14:1-5). 살아있는 성도에게 경고가 불필요한 경우는 없다. 그러니 어린 양과 시온에 함께 선 성도(144,000)의 정체는 순교로 자기 신앙의 불변함을 이미 증거한 천상의 성도일 가능성이 높다. 누구도 산 자의 순교를 확언할 수 없는 것처럼 아직 순교의 반열에 오르지 않은 우리가 서로를 향해 144,000의 계수 안에 들었는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계시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명백한 증거다.

계시록은 주님과 완벽한 주의 백성이 처음 시온에 ‘서 있다’는 것을 신약 중 유일하게 증거한다. 보라! 이제 그들에게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문제는 그 노래의 스케일이다. 그 음량은 감상용이 아니다. 인간이 감당키 어렵고 오히려 공포를 느끼게 하는 광대함의 극치다.

그리고 나는 많은 물이 흐르는 소리와도 같고, 큰 천둥소리와도 같은 음성이 하늘로부터 울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들은 음성은 거문고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노랫가락과 같았습니다. (계 14:2, 이하 표준새번역)

이 정도의 큰 소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왕권을 잡으셨다”고 외치는 소리가 날 때 재차 반복된다.

또, 나는 큰 무리의 음성과 같기도 하고, 큰 물소리와 같기도 하고, 우렁찬 천둥소리와 같기도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전능하신 분께서 왕권을 잡으셨다.” (계 19:6)

어린 양과 함께 시온에 섰던 ‘무리’들은 이로써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받아들인 이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렇게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수용한 이들은 어린 양과 혼인하는 신부로 명명된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어린 양의 혼인날이 이르렀다. 그의 신부는 단장을 끝냈다(계 19:7).

신부의 단장
필자에게는 늘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었다. 바로 신부의 단장, 즉 예복의 문제였다. 단정적으로 말하면 너무 추상적이었다. 도대체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에스더서를 70인경 원문으로 읽던 어느 날 마침내 점 하나를 찍을 수 있었다. 그것은 에스더서의 상이본문 5장 1절이었다. 히브리 성서는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었다고만 기록했다. 그러나 70인경은 왕후의 예복(빛나는 예복)뿐 아니라 금식할 때 입었을 예복을 함께 입었다고 전한다! 비록 에스더가 왕을 알현하기 위해 궁의 예복을 입었으나 그 속에 또 한 벌 기도자의 예복이 있었던 것이다.

70인경이 전하는 바, 기도의 예복과 왕후의 예복을 겹쳐 입었다는 것은 필자의 신앙에도 큰 견책으로 존재한다. 이것을 한국교회의 상황에 비추어 보아도 간과할 수 없는 울림이 있다. 어린 양의 신부를 자처하는 우리가 입어야 할 예복은 무엇일까? 말씀과 기도 그리고 참여가 아닐까? 에스더는 민족을 향해 죄어오는 하만의 독재에 기도로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저항했다. 그녀의 저항 가득한 몸부림 속에 십자가 신학이 최초로 계시되었다.

모르드개의 십자가와 예수의 십자가(σταυρωθήτω, 에 7:9)
예수가 어떻게 자신이 십자에 못 박혀 죽을 줄 미리 알았을까? 이 질문은 회의론자들에겐 오래된 질문이다. 예수는 이렇게 예언했다. “그를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 주어서,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달아서(σταυρωσαι) 죽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날 것이다.”(마 20:19) 결국은 예언대로 되었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를,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요?” 그들은 모두 말하기를 “그는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σταυρωθήτω)” 하였다. 빌라도가 “정말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일을 하였소?” 하고 말하니, 사람들은 더욱 큰소리로 외쳐 말하기를 “그는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σταυρωθήτω)” 하였다. (마 27:22-23)

이와 유사한 상황이 에스더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 때에 왕을 모시는 내시들 가운데 한 사람인 하르보나가 말하였다. “하만이 자기 집에 높이 쉰 자짜리 장대를 세워 놓았습니다. 그것은 임금님을 해치려는 자들을 제때에 고발한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이려고 세운 것입니다.” 그 때에 왕이 명령을 내렸다. “하만을 거기(십자가)에 매달아라(σταυρωθήτω)!” (에 7:9)

예수의 예언은 사실 모르드개 사건이 재현될 것을 통찰했음이 핵심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신앙인이자 민족 해방가인 모르드개가 헬라의 부역자들 손에 죽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 본인의 운명이 평행을 달리고 있다고 호소한 것이기도 하다. 아이러니는 바사 왕 아하수에로는 모르드개를 죽이는 대신 하만을 매달았지만, 유대 백성은 ‘하만’(강도)을 살리고 ‘모르드개’(예수)를 달았다. 누가 모르드개(해방자)이고 누가 하만(권력 부역자)인지를 구분하라는 예수의 하소연은 도리어 예언이 되어 그를 나무에 달았다. 예수는 점을 친 것이 아니라 역사와 성경과 현실 앞에서 부단히 고민하고 헤아리고 분투했다. 어떤 이는 이런 말을 하면 ‘자유주의자’라 한다. 하나님이여, 당신만이 저를 아시나이다!

‘인자 같은 이’와 반(反) 천문신화(Anti Astralmythos)
시온의 ‘어린 양’(14:1-5)이 퇴장하고 구름 위의 비워진 무대 위로 ‘인자 같은 이’(14:14-20)가 오르는 동안, 천사들의 분위기 전환용(?) 찬조 출연(14:6-13)이 개진되었다. 이미 필자는 1월호(“인자 같은 이”로서의 그리스도 이해)에 요한계시록의 인자 기독론은 그리스 로마의 천문학을 오히려 역이용해 그들의 신화적 종교를 극복하는 기능이 있음을 밝혔다. 주후 4세기 중엽 로마의 종교, 행정담당 장관이었던 당대의 대 천재 수학자이며 최고 권위의 천문학자였던 마테르누스(J. F. Maternus)는 저서 《이교(異敎)의 오류에 대하여》(De errore profanarum religionum)를 통해 신격화된 물질 네 가지를 비판했다.

• 이집트 오시리스와 이시스 제의에서의 물
• 프리기어인(소아시아와 발칸반도)의 ‘대모신’(大母神)과 그의 남편 아티스 신화에서의 땅
• 앗시리아와 아프리카의 쥬노 카엘레스티스 제의에서의 바람(공기)
• 불

이제 계시록 14장을 보자.

그는 큰소리로 “너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가 이르렀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의 근원을 만드신 분께 경배하여라”하고 외쳤습니다. (계 14:7)

세계가 하늘과 땅 바다와 물 안에 존재하는 것들을 숭상하고 있던 때에 요한은 그것들과 근원을 만드신 분께 경배할 것을 요구한다. 마테르누스는 요한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다. 자기 존립의 근거를 스스로 허물고 성경을 따랐다. 그 로마제국의 거인은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으나, 자연 세계를 신으로 숭상할 짐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죽임당한 어린 양 그리스도가 온 세상에 편만한 4대 원소를 이기었다. 인간 존재와 삶의 근본 자리에 오직 ‘어린 양’과 ‘인자 같은 이’ 그리스도만 인정되었다. 요한의 글은 이방인 누군가에게는 실천적 강령으로 살아 역사했다. 그러나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요한계시록이 두꺼운 성서를 보호하는 책 뒷날개가 되었다. 심지어 그 날개를 타고 이단이 날아든다. 누구의 책임인가?

어린 양에서 인자로
마테르누스가 회심과 개종의 근거로 삼은 책은 계시록과 아울러 ‘예레미야의 편지’(속칭 바룩서 6장)다. 일찍이 이스라엘 종교는 일월성신(日月星辰) 숭배를 금기시했지만 월력을 쓰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일월성신에 관한 숭배는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때문에 예레미야의 편지는 정확하게 이 문제를 꼬집는다. “해와 달과 별들은 유용한 일을 하기 위해 빛을 내고 반짝이면서 (하나님께) 순종한다.”(59절)

계시록과 예레미야의 편지 그리고 마테르누스의 책이 함께 모이면 참 하나님과 거짓 우상이 극명하게 구분된다. 누가 진정한 하나님인가, 그야말로 치열하게 싸웠다. 계시록 7장의 144,000명은 분명히 외칠 수 있었다. 그들은 큰 소리로 “구원은 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의 것입니다”하고 외쳤다(7:10).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재차 묻는 우리 세대에게는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해와 달과 별이 오히려 경배해야 하는 대상, 즉 참 빛에 관해 계시록은 ‘인자 같은 이’라 답하고 있다. 도식화하자면 요한은 ‘인자 같은 이’를 1장에서는 진리의 태양과 별로서, 14장에서는 진리의 달로서 구상하고 설계했다.

달과 ‘인자 같은 이’
인자 같은 이(이하 ‘인자’)는 해, 달, 별 중에서 해와 (같은 얼굴) 일곱 별을 보여 주었다.

그 촛대 한가운데 ‘인자와 같은 이’가 계셨습니다. 그는 발에 끌리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머리와 머리털은 흰 양털과 같이, 또 눈과 같이 희고, 눈은 불꽃과 같고, 발은 화덕에 달구어 낸 놋쇠와 같고, 음성은 큰 물소리와 같았습니다. 또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쥐고, 입에서는 날카로운 양날 칼이 뻗어 나오고, 얼굴은 해가 세차게 비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1:13-16)

인자와 달의 관계는 14장에 배치되었다. 필자의 설명이 설득력을 가진다면 인자는 일월성신의 주인이요 본체라는 주장이 요한계시록의 궁극적 목표다. 예레미아스(Alfred Jeremias)는 《Handbuch der Altorientalischen Geisteskultur》(1929)에서 달은 신화의 아버지라고 기술하면서 달을 비중 있게 다룬다. 요한이 이를 간과할 리 없다. 일월성신을 장식품처럼 거느리고 있는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는, 꼭 이 문제를 매듭짓겠다는 요한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는데, 한 여자가 를 둘러 걸치고, 을 그 발 밑에 밟고, 열두 이 박힌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있었습니다. (계 12:1)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들은 거대한 신상과 일월성신 조각들을 보며 식민지로 전락한 유대의 하나님 야훼를 이긴 신들일지 모른다는 불신앙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하여 일월성신의 주(主)로서 인자가 바벨론(로마) 종교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는 당시 기독교의 매우 중요한 논제였다.

   
▲ 정벌 전쟁을 합법화하는 의식 아몬. 아몬 신으로부터 초승달 모양의 낫검을 넘겨받은 바로가 전쟁에 나서 승리한다. 지워진 부분은 원본에도 없는 부분. Othmar Keel, ≪Die Welt der altorientalischen Bildsymbolik und das Alte Testament≫(1972), 278쪽.

이집트 신년 제의에서는 아몬 신이 바로에게 낫(을 형상화한)검을 주면서 민족들을 정벌하라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 ‘낫검’을 넘겨주는 것이 정벌 전쟁을 합법화하는 의식이며 검을 성전에서 받은 바로는 곧 그 검을 들고 적을 치러 나가 승리하고 돌아오는 것이 이집트 벽화에 새겨져 있다. 그런데 아몬 신은 달의 신 콘스(Khons)의 아버지다. 그러므로 이는 아버지가 아들 콘스의 대리인인 바로(달의 힘을 통치 권력의 근간으로 삼은)에게 (초승)달 모양의 낫을 주면서 세상을 심판하라는 뜻이다. 예레미아스에 따르면 낫검은 신화적 상징체계에서 항상 (초승)달을 의미하며 면류관은 보름달을 의미한다고 했다.

우연은 없다! 우리는 계시록 14:14에서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인자가 금 면류관(보름달)을 쓰고 낫(초승달)을 들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인자 같은 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날이 선 낫을 들고 있었습니다. (계 14:14)

한글 성경엔 전혀 시적 장치가 보이지 않으나, 원문을 보면 시적인 구조로서 면류관과 낫이 보름달과 초승달로 대비되는 것을 잘 보여준다.

επι της κεφαλης αυτου στεφανον χρυσουν και
εν τη χειρι αυτου δρεπανον οξυ
에피 테스 케팔레스 아우투 스테파논 크루수우은(길게)       
엔    테스 케이리   아우투 드레파논 옥수(짧게)

각 단어의 두운을 맞추고 장음과 단음의 대조로 시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머리엔 금 면류관
손엔 날 세운
 
면류관과 낫은 고대 신화적 상징체계에서 보름달과 초승달을 각기 나타낸다. 이어 보름달은 죽음을, 초승달은 생명을 의미한다. 태양의 얼굴과 일곱 별을 오른손에 쥔 계시록 1장의 형상과 금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손엔 낫을 쥔 14장의 모습은 그 자체로 거대한 벽화다. 이집트와 로마, 소아시아에서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위협하던 병풍처럼 늘어선 돌로 만든 우상과 벽화, 그것들과 맞서 싸우라고 하나님이 요한에게 붓으로 지어 만들게 한 온전한 벽화다.

이로써 인자는 1장과 14장을 종합해서 해, 달, 별 모두를 가진 진정한 우주의 주인으로서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대적을 진멸하는 마지막 대심판의 주로서 자신을 온전히 계시한 것이다. 28회 등장하는 어린 양 형상에 비해 턱없이 적은 단 두 번의 ‘인자’ 언급은 1장과 14장의 치밀한 구조적 배치를 통하여 계시록 전체의 기독론을 감싸며 다른 기독론적 형상들에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인자 기독론은 요한계시록을 교회론 내지는 종말론적 관점으로 치우쳐 읽는 것에 큰 경종을 울린다.

계시록의 ‘144,000’과 ‘어린 양’ 그리고 ‘인자’는 예수를 설명하는 다양한 관점을 어떻게 상호 보완/통합적으로 이해하여 성도의 실천적 삶을 견인할지에 관해 최고의 완벽미를 자랑한다.


정재훈
대한신학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 독일 뷔르츠부르크와 튀빙겐 대학교를 거쳐 부퍼탈 신학교를 졸업(Mag.Th)했다. 10여 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한신대 신대원을 졸업(M.Div)하고 현재 용인 덕성교회에서 청년학생부를 지도하고 있다. 토요일 밤마다 대치교회 성서학당을 통해 요한문서들을 강해하고 탁상담화를 진행한다. 전공 논문은 〈요한계시록 인자 기독론〉이며, 현재는 ‘요한계시록’ ‘지혜’ ‘기독론’을 연구 중이다.

     관련기사
· ‘탕자’로 성육신한 예수· 돼지로 성육신한 예수
· 믿음 좋은 백부장, 예수를 희롱하다· “인자 같은 이”로서의 그리스도 이해
· 예수의 자기 계시와 ‘지혜’· 이기는 길과 하나님의 시간
· 날아가는 낫과 두루마리의 시간· ‘백마 탄 기사’는 누구인가?
· 사건을 통해 드러날 ‘144,000’의 비밀
ⓒ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복음과상황 기사제보 광고문의 제휴안내 오시는길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506-10 산성빌딩 104호 우)120-836 | 전화 : 02-744-3010 | 팩스 : 02-744-3013
발행인 : 김병년 | 이사장 : 박종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병년
Copyright 2008 복음과상황.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con@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