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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종을 만들렴, 난 그림을 그릴게”
-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루블료프〉(1966)
[321호] 2017년 07월 24일 (월) 17:02:40 최은 영화연구가 @

 

죽은 나무에 매일 물을 주어 3년 만에 꽃을 피웠다는 수도승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유명한 영화가 있습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The Sacrifice, 1986)입니다. 앙상한 나무 곁에 서 있는 한 사내와 쪼그리고 앉은 꼬마 아이를 아주 멀리서 길게 찍은 첫 장면이 생각나신다면, 혹은 밀짚모자를 쓴 꼬마 아이가 양동이 하나를 곁에 두고 나무 밑에 혼자 드러누워 있는 포스터 이미지가 생각나신다면, 그 영화가 맞습니다.

오래 전에 이 영화를 보신 어떤 분이 혹시 이 두 이미지만 기억하고 있다면 그것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이 좀 그렇습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영화들이라고 저는 불경한 농담을 던지곤 합니다. 많이 졸릴 수 있거든요. 하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구원이’ 주어지는 놀라운 영화들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영화는 늘 ‘복음Good News’입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와 ‘소명’

가장 유명한 타르코프스키 영화 〈희생〉은 그의 유작입니다. 무신론자였던 지식인 알렉산더가 가장 아끼던 집을 불태우고 자신을 버림으로써 지구 종말을 막게 되는 〈희생〉의 경우처럼, 개인의 희생과 인류 구원의 서사는 타르코프스키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였지요. 그의 다른 대표작 〈노스탤지아〉(1983)와 〈잠입자〉(Stalker, 1979)는 특히 ‘소명’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영화들입니다. 

   
▲ 고국인 러시아 밖에서 찍은 첫 영화인 〈노스탤지아〉에서 시인인 안드레이는 음악가의 전기를 쓰기 위해 온천지역에 갔다가 ‘광인’ 도메니코를 만납니다.

고국인 러시아 밖에서 찍은 첫 영화인 〈노스탤지아〉에서 시인인 안드레이는 음악가의 전기를 쓰기 위해 온천지역에 갔다가 ‘광인’ 도메니코를 만납니다. 종말을 대비하느라 아내와 아이들을 7년이나 집안에 가두었다는 그는 안드레이에게 뜻밖의 고백을 합니다. “나는 내 가족만 구원하려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소.” 그는 이제 인류 전체의 구원을 위해 촛불을 들고 온천을 건너는 자신의 소명을 안드레이에게 맡기려 합니다. 

〈잠입자〉의 주인공은 ‘구역’이라는 생소하고 신비로운 공간으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매우 위험하고 붙잡히면 감옥에 가야 하는 일인데다가 심지어 안내자인 스토커(잠입자) 자신은 그 ‘구역’에 들어갈 수도 없지만, 그는 단지 자신처럼 불행한 사람들이 그곳에서 행복을 찾는 것을 보고 싶다며,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동행했던 물리학자의 말이 맞을 겁니다. “스토커가 된다는 것은 일종의 소명이야.” 그런데 그의 아내는 또 이렇게 말하지요. “이제 알아차렸겠지만,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에요. 저주받은 영원한 죄수… 그게 바로 우리 운명이고 삶이에요.” 타르코프스키에게 소명은 혹시 그렇게 마냥 괴롭고 고독한 저주와 같은 것이었을까요?

중세 화가와 수도사와 종장의 ‘삼위일체’

15세기의 전설적인 화가를 다룬 전기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1966)에는 인상적인 한 장면이 있습니다.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대공의 청동 종 제작을 책임지게 된 보리스라는 소년이 루블료프의 품에 안겨 통곡을 합니다. 그는 종 제조 비법의 유일한 전수자인데, 실패하면 당장 목숨을 빼앗기게 될 거대한 프로젝트를 막 성공적으로 마친 후였습니다. 극도의 불안과 공포가 소년을 거칠고 냉혹하게 만드는 것을 루블료프는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었지요. 그러다 타종행사 후 홀로 남은 보리스가 나무기둥 아래 쓰러져 울고 있을 때 그를 찾아갔던 겁니다. 엉엉 울면서 소년은 말합니다. “노친네(부친)는 나에게 비법을 알려주지 않고 죽었어요!” 고백하자면, 이 한 장면 때문에 〈안드레이 로블료프〉는 저에게 타르코프스키 최고의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 안드레이 루블료프, 1966년 작

안드레이 루블료프(1370-1430)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이콘(icon, 주로 동방교회의 전통에서 성서나 교리 내용을 담은 성화와 성상)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세주〉(1410년대)와 〈삼위일체〉(1420년대)라는 걸작을 남겼지요.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1400년 루블료프가 다른 두 명의 수도사/화가 동료와 함께 삼위일체 수도원을 떠나 모스크바로 가는 길목에서 본격적인 그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당시 러시아는 몽고족 타르타르인의 잦은 침탈과 내전, 이교도 탄압 문제 등 국내외의 재앙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콘 화가로서 활발히 활동하던 루블료프는 점차 종교인과 예술가라는 두 가지 소명 앞에서 큰 위기와 갈등을 겪게 됩니다. 대공의 성당에 “최후의 심판”을 맡아 그리게 됐지만 신앙 양심상 일을 시작조차 할 수 없었어요. 그가 믿는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기보다는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었고, 참혹한 이미지들을 벽과 천장에 새기는 것은 민중을 겁주는 잔인한 폭력에 동참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번뇌하던 그가 결국 붓을 던지고 입까지 닫는 사건이 벌어진 것은 타르타르인이 성당까지 습격했을 때입니다. 대공의 동생인 공작이 타르타르인과 내통하여 벌인 반란이었어요. 난리 중에 ‘광녀’(타르코프스키의 다른 영화들에서처럼 그는 ‘성녀’이기도 합니다)를 겁탈하려는 러시아인을 살해한 후 루블료프는 참회의 의미로 침묵수행을 시작합니다. 자신과 러시아인들은 압제당하는 약자였고 신은 늘 그런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시는 분이라고 믿었는데, 바로 그 야만의 현장에서 루블료프는 동족인 민중의 폭력을 목격했고, 이어 자신의 폭력성에 직면했던 것입니다.

타종의 날, 루블료프가 울고 있는 보리스를 발견한 것은 그렇게 입을 닫고 붓을 놓은 지 15년만의 일이었어요. 그가 처음으로 한 말은 “울지 마라” 입니다. “온통 축제분위기잖니. 이토록 큰 기쁨을 선사하고, 넌 울고 있구나… 나와 함께 수도원에 가자. 넌 종을 만들고 난 그림을 그리자꾸나.” 영화 초반, 화가 동료들과 함께 삼위일체 수도원을 떠나온 루블료프는 종 만드는 소년과 함께 그곳으로 돌아가게 되었답니다. 폭력이 그토록 싫었던 선량한 구도자는 이제 폭력을 넘어선(즉 폭력에도 불구하고) 용서와 사랑을 경험한 위로자가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질투에 눈 먼 동료가 아니라 다시 찾은 소명과 다음 세대가 그와 동행합니다. 

타르코프스키를 다시 보며 생각합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에서, 타르코프스키에게 소명이란 자신이 거부하고 부인해 떠나온 그곳에, 먼 길을 돌아서라도 결국은 가 있게 되는 어떤 자리, 하지만 종착지라기보다는 그 과정 자체가 아니었을까 하구요. 그렇다면 그것은 일종의 순례이자 역설적으로, 궁극의 안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 "돌이켜보면, 루블료프의 품에 안겨 엉엉 울던 보리스를 처음 마주했던 그날, 저는 좀 쉬고 싶고 울고도 싶었던 모양입니다." 

돌이켜보면, 루블료프의 품에 안겨 엉엉 울던 보리스를 처음 마주했던 그날, 저는 좀 쉬고 싶고 울고도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랬겠지요. 도무지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상과 이제 갓 넘어선, 또는 당장 넘어야 할 험난한 산 아래 털썩 주저앉은 분이 있다면, 타르코프스키와 루블료프의 이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이토록 큰 기쁨을(위로를/평화를/웃음을/화해를/지혜를/믿음을/인내를/돌봄을…) 선사하고, 얘야, 넌 울고 있구나…”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이것이 저의 소명인가 합니다.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고(영화예술학 박사),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했다. 영화 연구자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와 사회》(공저),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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