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공공성 / 김근주 지음

몇 해 전 《한국교회, 예레미야에게 길을 묻다》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다. 나로서는 꽤 오래 준비한 야심작이었다. 한데 그 책이 나오기 한 달 전, 다른 출판사에서 김근주 교수의 《특강 예레미야》라는 책이 나왔다. 뜻하지 않게 경쟁하게 되었으나 처음부터 게임이 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이미 유명한 구약학자였고 나는 무명의 평신도 작가였다. 게다가 김 교수의 책이 한 달이나 먼저 나왔기에 내 책은 선점효과조차 누릴 수 없었다.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내리는 동안 내 책은 독자들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 복음의 공공성 / 김근주 지음 / 비아토르 펴냄 / 2017년

잡지 편집팀으로부터 김근주 교수의 이번 책을 읽고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악연(?)이 있던 터라 살짝 날을 세우고 읽어나갔다. 김 교수의 글은 딱딱하고 직설적이었다. 누가 성서학자 아니랄까봐 시종일관 주제와 관련된 성서 본문의 분석에만 몰두했다. ‘뭔 글을 이렇게 써? 가끔씩 예화라도 덧붙여가며 설명하면 어디가 덧나?’ 끝까지 그렇게 삐딱한 태도를 유지하려 했다. 한데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점점 그의 글에 빠져들었다. 에두르지 않고 핵심을 짚어나가는 그의 글에 자꾸 밑줄이 그어졌다.

저자에 따르면 구약은 개인의 윤리적 삶을 위한 “좋은 말 모음집”이 아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은 단독자로 살아가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신 법”이었다. 구약성서 전반에서 거듭 강조되며 나타나는 두 단어가 있다. “공의”와 “정의”가 그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그로 하여금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창 18:19) 하기 위함이었다. 즉 아브라함의 선택은 “단순한 특혜가 아니라 그 선택에 합당한 삶을 통한 열방 회복”이라는 특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예언자들 역시 여호와 신앙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한 것은 그 나라에 제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적 삶이 철저하게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제사가 아니라 정의와 공의의 회복을 통한 언약 공동체의 회복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이 어떻게 되든지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구원을 약속받았다는 식의 고백은 예언자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신앙이다. 예언자들과 무관하다면 기독교 신앙 전체와도 무관하다. ‘사적 신앙’은 근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신앙의 공공성은 어떤 식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개인 윤리 강화가 아니라 제도의 변화를 통해서다. 레위기의 성결법전처럼 공동체 내의 약자들을 보호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을 통해서다. 물론 그런 제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수와 바울이 가르쳤듯이 이웃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이 필요하다. 흔히 우리는 사랑을 개인의 윤리적 덕목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한다. 하지만 나 아닌 이웃을 전제하는 사랑은 본질상 공동체적이다. 저자는 강조해서 말한다. 기독교 신앙의 목표는 “완덕(完德)의 개인”이 아니라 “온전한 공동체”이다. 

밑줄로 가득 찬 책을 덮으며 혼잣말을 했다. “뭐, 이 정도 학자와 합을 맞춰봤으면, 그걸로 됐어.” 


김광남
숭실대에서 영문학을, 같은 학교 기독교학대학원에서 성서학을 공부했고, 책을 쓰고 번역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 《아담의 역사성 논쟁》등 다수가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한국 교회, 예레미야에게 길을 묻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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