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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욕망으로부터 소명을 해방하라
[321호] 2017년 07월 26일 (수) 13:35:51 최종원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교수 @

소명을 재고하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1302년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의 교령 〈우남 상탐>(Unam Sanctam, 하나인 거룩한 교회)의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선포에서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점이었다기보다는 내리막의 시작이었다. 1309년 프랑스 왕의 강압으로 로마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 70년 간 머무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비뇽 유수, 1309-1377). 그 후 아비뇽 교황청과 로마 교황청으로 교회가 분리되어 2인의 교황이 세워지고 심지어 3명이 서로 합법적인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흐름이 ‘그리스도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루터의 주장이 나온 배경이다. 

루터의 주장에 따르면, 구원이란 공동체가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는 제도 교회에 예속되었던 개개인을 해방하는 해방의 메시지다. 이 점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은 중세적 인간을 벗어버리고 근대적 인간상을 제시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이 동등하지 않고 사제가 더 우월하다는 사제중심주의를 허물었다. 루터의 메시지는 사제건 비사제건 모두가 자기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 즉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소명 받은 자라는 만인사제주의로 연결된다. 성속이원론의 오랜 경계를 허문 것이다.

종교개혁은 가톨릭교회에서 속되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서 출발했다. 가톨릭교회는 라틴어역 불가타 성서만을 고집했지만, 대중의 언어인 속어로 성서 번역이 이루어지고 대중들이 속어로 된 신앙서적을 읽으며 개인적인 신앙을 다져 나가게 되었다. 더 나아가 종교개혁은 속된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재해석했고, 교회에서 속되다고 판단하던 이른바 ‘부’와 ‘물질’에 대해 새로운 입장을 취하였다. 중세 교회에서 부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 구원을 받는 데 장애가 되는 탐욕의 죄로 인식되었다. 많은 세속의 귀족들과 상인들이 말년에 재산을 수도원에 기증하고 수도자의 삶으로 귀의한 것도 구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리하고 있다고 믿는 가톨릭교회는 대중들의 구원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길 곳곳에 칠성사로 대표되는 성사들을 배치함으로써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길을 제시하고 안내했다. 이 연장선에서 등장한 것이 면죄부다. 1097년 십자군 원정을 전후하여 전쟁이나 사고와 같은 상황으로 인해 제도화된 성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급박한 경우를 대비하여 면죄부가 최초 발행되었다. 그 후 면죄부는 교리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종교개혁기까지 이어졌는데,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교회 타락의 상징으로 여겨져 비판을 받았다.

‘면죄부 신학’의 폐기, 자본에 대한 시각 전환

그러나 이 면죄부를 단순히 가톨릭 타락의 핵심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까? 한 제도가 도입되어 400년 이상 지속되었다면, 그 제도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으리라고 상정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만약 면죄부가 가톨릭 유럽 전역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 핵심이었다면 루터 외에 다른 종교개혁가들이 면죄부에 대해 비판하지 않은 것이나, 상대적으로 언급을 적게 했다는 사실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면죄부 신학은 제도교회가 면죄부라는 증서를 금전을 받고 판매함으로써, 대중들의 사후 구원과 형벌에 대한 두려움을 경감해준 일종의 ‘천국행 약속어음’이다. 면죄부가 15세기부터 16세기 종교개혁 전까지 금전으로 활발하게 거래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몇 가지를 시사한다. 첫째는, 구원에 대한 작동 매개로서 면죄부는 가톨릭체제 내에 안착되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면죄부의 사회적 긍정 요소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면죄부 판매 대금은 교회가 당시 병원, 학교, 교량, 교회, 고아원 등과 같이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는 대중들이 오늘날 국채 등에 자신의 자본을 투자하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로 인한 대가는 사후에 얻는다는 점에서 부도난 어음인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셋째로, 유럽 내 현금을 매개로 한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었다. 이 때문에 면죄부가 유럽 자본주의 초기 형성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다.

가톨릭교회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개개인이 보유한 자본을 무한 긍정하지는 않았다. 자본을, 현재를 누리고 향유하기 위한 도구보다는 내세를 위해 공덕을 쌓는 도구로 활용하였다. 가톨릭체제 안에서도 교회가 매개하는 구원은 자본을 통해 이어졌다. 이는 종교적 사회주의경제, 계획경제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은 이러한 제도교회의 매개를 통해서가 아니라 개개인이 직접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개신교회의 등장으로 면죄부 신학은 폐기되었고, 자본과 구원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져야만 했다. 현존하는 자본에 대한 긍정적 수용과 더불어 구원론에 대한 획기적인 전환이 생겨났다. 이제 구원은 공동체로부터 주어지거나 공동체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개인이 추구하여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되었다. 종교개혁이 개인의 재발견이었는지, 개인성에 대한 재발견이 종교개혁을 이끌었는지에 대한 해묵은 논쟁은 뒤로 하더라도, 개신교 지역에서 개인성에 대한 긍정이 개인 욕망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진 것은 분명하다. 플랑드르의 화가 마시(Quentin Matsys)의 작품인 〈고리대금업자와 그의 아내〉(1514)는 자본에 대한 시각의 변환을 획기적으로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탐욕스런 유대인 샤일록으로 상징되는 고리대금업자가 아니다. 돈을 저울에 달아보는 고리대금업자 남편의 모습이나 그 곁에서 성인전을 읽으면서 돈을 응시하는 아내의 모습, 그리고 거울에 비친 십자가의 모습은 얼마 안 있어 등장할 금욕적이면서 경건한 개신교인 부부의 모습을 예견한 듯하다. 이미 개신교가 등장할 지역에서 ‘자본’에 대한 긍정적인 재해석이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어떠한 직업이라 하더라도, 심지어 중세 가톨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던 고리대금업이라 할지라도, ‘소명’ 받은 일일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집단으로서의 공동체가 아닌 ‘개인’에게 주어지는 종교적 역할이 증가했다. 칼뱅주의의 예정설에서 확인되듯이 개인에게 구원이 ‘예정’되어 있는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였고, 예정 받은 자, 부름 받은 자임을 확인하기 위해 ‘소명’이라는 단어가 중요하게 등장했다.

소명의 문화사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지역 내에서는 구원뿐 아니라 경건과 금욕에 대한 재해석도 이루어진다. 언뜻 보기에 자본에 대한 긍정과 개신교적 경건은 상호 모순적으로 들린다. 이 두 용어 사이의 이른바 ‘선택적 친화력’을 정확히 포착하여 제시한 것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막스 베버는 16-17세기 영국이나 네덜란드, 벨기에 등 칼뱅주의에 영향을 받은 지역의 중산 계급이 상당수 개신교도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베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땅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칼뱅주의적 직업관과 금욕적 생활양식이 유럽 내에서 번영을 가져 왔다. 교양을 갖추고, 검소하게 생활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16-17세기 네덜란드 부르주아 계급의 이미지였다. 

칼뱅주의자들은 모든 이가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선택된 자들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예정되었다고 가르쳤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어떠한 노력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교회에서 제정한 성사를 따르고, 교회의 가르침을 지킬 때 구원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가톨릭의 구원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이 더해진 것이었다. 결국 구원은 교회로부터 주어지는 안전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구원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상쇄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된 소수로서의 자신을 입증할 의무가 있었다. 선택 받았는지의 여부는 이 땅에서 자신들의 삶을 통해 증명 가능했다. 이로 인해 개신교도들은 금욕적인 삶의 태도로 노동을 하고 자본을 축적해 가는 삶을 ‘소명’으로 파악했다. 베버는 ‘직업적인 소명 안에서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선택된 자들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방편이었다고 평가했다. 노동은 단순한 삶의 수단이 아니라 구원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노동 자체가 신의 부르심, 즉 소명이 되었다. 

예배나 제사 등의 종교 의례가 아닌 실천적 금욕적 행동을 자기 삶의 무대에서 표출함으로써 개인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하나님 앞에서 구원에 대한 개인의 절대 책임을 강조하는 근대인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 결과 칼뱅주의적 프로테스탄트 세계관은 세속적인 번영을 가져왔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주의란 자기 비움으로 인한 평안보다는, 선택 받은 자로서 구원을 보증하기 위한 욕망의 표현에 따른 불안을 내포했다.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심지어 교회나 설교자도 도울 수 없는 예정과 구원의 문제 앞에 개인은 세상 속에 단독자로서 내던져진 존재가 되었다. 세속에서의 금욕적인 삶과 선행은 구원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구원 받은 자의 삶의 징표로서 해야 할 몫이 되었다. 즉, 예정과 구원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리는 하나의 수단이 된 것이다. 이렇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적인 일에 종사하면서 구원을 지향하는 ‘세속 성자’의 삶을 요구 받았다.

그런데 ‘모든 세속의 활동에 종교적 가치와 윤리적 기준을 부여하고 지켜야 한다’ ‘직업적 성공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끊임없이 재확인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강박이 되었다. 이른바 근대의 불면증이 등장한 것이다. 1597년 제작된 네덜란드 판화가 헨드릭 골치우스의 ‘법의 남용’이라는 제목의 연작 판화 중 〈소송인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작품은 17세기 부르주아 계급의 번영과 근심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림에서는 소송인의 침대 앞에 ‘쉴 수 없음’이 촛불을 들고 잠을 방해하고, ‘근심’이 채찍을 들고 ‘달콤한 잠’을 방에서 쫓아낸다. 해상 무역을 통해 16-17세기 유럽의 다른 지역보다 더 큰 번영을 누린 유럽인들의 이면을 풍자한 것이다. 심지어 부지런히 일을 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보는 17세기 프로테스탄트들은 잠을 탐닉하는 것을 부끄러운 도덕적 질환으로 보기도 하였다. 

성과 속이라는 이원론의 경계는 허물어졌지만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질수록 종교적 금욕과 세속적 욕망 사이의 불안한 줄타기는 계속되었다. 주어진 직업을 통해 예정된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소명을 확인했던 프로테스탄트들은 자유시장경제를 통해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제국주의 시대에서 또 한 번의 적극적인 종교적 탈바꿈을 경험한다. 미국의 대각성운동 시기 조지 휫필드는 잉글랜드에서 수입한 공산품을 판매하면서 신대륙에서 선교 사업을 시작했다. 무한한 자유 시장경제의 주창자로서 세속적 성취와 종교적 가치를 성공적으로 결합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는 금욕주의란 항상 선한 것을 원하지만 동시에 언제나 악을 낳는 힘이라고 했다. 자신들의 종교적 소명을 성취하기 위해 잉글랜드를 떠나 신대륙에 정착했던 청교도 공동체가 지녔던 금욕주의 에토스는 자본이 축적되어 가면서 물신주의에 굴복한다. 국가권력의 개입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고자 했던 고전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와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했다. 따라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서 개인 이익의 극대화가 미덕이 되었다. 결국, 근대 자본주의 세계의 발전 속에 등장한 프로테스탄트의 소명이라는 관념 속에는 공동체성은 자리 잡지 못했다. 면죄부로 상징되는 중세 말의 가톨릭체제는, 개인의 부를 교회의 관리를 통해 구원으로 전환해 가는 계획경제의 설계다. 반면, 세속의 부를 긍정하며 소명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프로테스탄트의 삶은 개인주의와 자유시장경제와 무한 친화성이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소명이란 개인에게 주어진 것으로 한계 지어져 버렸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소명

2차 대전 이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불황은 국가의 과도한 시장 개입 결과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나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 같은 이들이 신자유주의경제를 주창한다. 국가의 경제적 간섭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라는 용어가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제정책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이성적인 계획과 개입보다는 시장의 가치가 전체 사회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다는 극도의 효율을 중시하는 체계다. 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조는 무한한 경쟁과 약육강식을 지지한다. 

한국의 경우도 1997년 IMF 체제를 맞이한 이후 급속한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 내몰렸다. 이 시기에 오늘날 만연한 비정규직, 파견근로, 계약근로 등과 같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확대되었다. 이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체제 하에서 개인은 어떠한 존재로 내몰렸는가? 더 이상 개인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사회나 경제 구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었다. 모든 문제는 구조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었다. 그 결과 자기 인생의 가치를 스스로 개척하고 삶의 질을 발전시키는 ‘기업가적 자아’ 개념이 등장하고 자기계발 열풍이 생겨났다. 모든 것이 개인에게 내맡겨짐으로써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사회 구조의 문제는 은폐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자기계발서 중의 하나인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는 ‘관심의 원’과 ‘영향력의 원’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성공하는 자와 성공하지 못하는 자의 특성을 나눈다. 성공하는 자는 자신이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기, 주변 등 영향력의 원에 관심을 둔다. 그러나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사회 제도나 구조의 문제 등 관심의 영역에 집착하는 것은 이미 실패라고 규정한다. 

아쉽게도, 미국과 한국의 교회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제에 발 빠르게 부합하는 자아상을 제시했다. 모든 거시적인 관심을 개인에게로 환원한 것이다.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다시 말해, 또 다른 형태로 소명에 대한 강조가 생겼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나 《긍정의 힘》은 모두 더 이상 내가 손댈 수 없는 구조는 도외시한 채 하나님 앞에서 부름 받은 개인에게만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공공 영역에서 관리될 경제 구조, 사회구조의 문제 해결은 개인의 책임으로 대체되었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갖기보다, 긍정적인 자세로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서 ‘나’는 변화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 되어 버린다. 여기에 종교적인 어휘인 소명이라는 단어가 더해지면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절대성을 갖게 된다. 어느새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명이란, 주어진 사회 경제 체제 내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성공한 중심이 되어 소수와 주변을 돕는 삶 정도로 인식된다. 사회적 분배 정의를 강조하는 형제애에 바탕을 둔 정의적 평등에 관심을 두기보다, 성공한 개인의 자발적 자선에 의존하는 가부장적 온정주의적 구조를 지향한다. 세상의 제도나 구조적 결함에 대한 지적은 불필요하며, 불평등에 대한 책임은 개인에게 돌려진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논리 구조가 한국 개신교의 대형교회 체제를 긍정하고, 교회와 목회자의 급속한 양극화를 초래했다.

메시지는 구조의 산물이다. 이 자유 경쟁과 승자 독식의 구조 속에서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성찰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본질적인 구조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구조에 순응하며 구조 속에서 살아내기 위한 메시지가 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가장 종교적으로 들리는 소명이라는 단어가 가장 저열한 억압의 기제로서 오용될 수 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우리에게 소명은 무한 경쟁의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욕망을 종교적으로 합리화해주는 기제로 작용해왔을 수 있다. 이 소명에는 공동체가 없었다. 이 소명의 영역에는 타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는 없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할 뿐이었다. 그래서 소위 ‘소명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의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 공감 능력은 오히려 일반 사회의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소명을 개인에게 환원하여, 내가 무엇이 되기 위한 행동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의 성공과 성취가 소명을 완성한 증거일까? 이러한 소명이란 자기 욕망을 종교적 어휘로 채색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를 향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우상숭배의 땅에서 불러내셔서 여호와를 섬기는 ‘민족’을 이루시고, 모세를 부르셔서 압제 받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셨다. 이처럼 소명은 공동체와 타자를 위하여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을 한 아기로 이 땅에 보내신 목적도 공동체(“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이사야 9:6-7). 500년 전 루터의 종교개혁 대상이던 가톨릭교회는 1960년대 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세계 속의 타자들과 더불어 존재하며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의 증진을 추구할 교회 공동체의 소명에 대해 성찰하고 천명했다. 종교를 개인의 영역을 넘어선 공적 영역, 정치공동체 및 시민 사회에서의 역할 등으로 확대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성과 속의 경계를 허물었던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다른 형태로 표현되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는 정치체제나 국가 조직에 맞서는 저항 종교 내지 공공 종교의 길을 열었다. 

진정한 소명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와 구조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 지난 연말 연초, 촛불 집회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그 역사의 현장에 공동체로서 교회는 어디에 있었을까?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소명에 대한 메시지와 광장으로 대표되는 이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어떠한 일치점이 있을까? 사회 구조 앞에서 공동체로서 교회에 주어진 소명은 무엇일까? 진정한 소명은 이 땅에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한 타자를 위한 헌신이자 결단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잃어버린 소명의 공동체성, 공공성을 찾아 나서야 할 때다. 이제 소명을 개인에게서 해방해야 한다. 


최종원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에서 교회사와 지성사를 강의한다. 인문주의 정신의 존중이 교회 갱신의 핵심이라고 믿고, 신학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교회사 재구성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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