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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서 희망을 찾는가?
[323호 커버스토리]
[323호] 2017년 09월 21일 (목) 17:47:22 박대영 광주소명교회 책임목사, <묵상과 설교> 편집& goscon@goscon.co.kr

들어가는 글: 지극히 평범한 목사, 너무나 평범한 교회

1.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아는 게 없는 줄은 몰랐다. 알아야 할 것이 이렇게 많은 줄도 몰랐고, 알았다고 착각했던 것도 적지 않았다. 이런 줄 알았으면 시작도 못 했겠지만, 어설프게나마 시작하여 더디게라도 배워간다.

‘교회’ 이야기다. 너무 익숙했고 너무 오랫동안 내 일부가 되어 있었기에, 내 바깥에 있는 말들로 교회를 정의하고, 상(像)을 만들어가고, 당위를 세워가는 것은 낯선 작업이었다. 무슨 얘기든 들어줄 사람들이거나 듣겠다고 작정하고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면, 개척하여 섬기고 있는 우리 교회 이야기를 꺼내놓은 적은 없다. 예상대로 된 게 없었고, 지금도 이게 아닌데 싶은 게 한둘이 아니고,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뭘 근거로 이 교회가 잘 되고 있다거나 혹은 잘 안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모인 사람들의 만족도나 외부의 평판으로 보자면 5년차 개척교회는 순항 중이다. 그렇더라도 이게 무슨 주도면밀한 준비와 실행의 결과로 나온 것이어야 무슨 ‘원리’라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 본보기 가운데 하나로 삼아 보려는 이들에게 알려 줄 수 있을 것인데, 난 그저 하루하루, 한 주 한 주 목회했을 뿐이다. 준비한 대로 되지도 않았고 기대한 대로 되지도 않았다. 그러니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에도 한 방송사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왔는데 이렇게 말하며 거절했다. “이제 고작 5년입니다. 근데 교회다워 보이는 게 잘 안 보입니다. 한 10년 지나야 보일랑가 모르겄습니다. 그때도 좋은 소문 들리면 연락해주시겠습니까?” 겸손해서가 아니다. 다 읽지도 않은 소설에 대해 비평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물며 갓 시작한 이야기를 다 된 것인 양 말할 수는 없었던 거다. 사실 10년쯤 되면 크게 나아질지도 확신할 수 없다. 더 오리무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 교회처럼 해라, 이게 성경적인 교회이고 건강한 교회가 되는 비결이다, 라고 말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2.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 교회 같은 교회는 다시는 없을 것이다. 나 같은 목회자는 다시없을 거고, 우리 성도들 같은 성도들은 없을 거고, 우리가 겪었던 일 같은 일은 다시 안 일어날 것이다. 우리 교인들 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어디서 또 만나랴. 우리가 지나온 시대는 다시 안 올 거고, 우리가 밟았던 땅은 이제 더는 없을 것이다. 수많은 은혜가 있었고 기적이 있었다.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응답된 기도가 있었고, 때마침 생각나는 말씀이 있었고, 마침 보내주신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한 번도 예측하지 않았고 그래서 미리 대비하지도 못했던 숱한 일들이 일어났다. 그 모든 일의 인과관계를 나는 만 분의 일도 규명할 수 없고, 그것들이 지금껏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 알 수도 없다. 그중에서 어느 한 가지만 없었어도 오늘 우리의 교회 모습과 달랐을 것이다. 무엇이 상수이고 무엇이 변수인지 나는 모른다. 정직하게 말하면, 나처럼 누군가가 기회를 얻어서 외국에서 공부도 하고 좋은 선생님들 만나서 성경을 배웠으면, 나처럼 가까이에 존경하는 목회자들을 여럿 보고 국내외의 좋은 교회들을 직접 경험해보았으면, 나처럼 모교회가 깨어지는 아픔을 겪는 것을 보았으면, 나처럼 선량한 교우들과 듬직하고 어른다운 장로님들을 만났으면, 나처럼 기도가 응답되는 일이 잦았으면, 나처럼 좋은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났으면, 누군들 이만한 교회를 보았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나보다는 더 인품도 좋고 신앙도 깊은 분들이 태반이니 주님께서 그들을 통해 더 멋진 교회를 일구어주셨을 것이다.
지금은 우리도 사이좋게 잘 지내지만, 교회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어려움은 있을 것이고, 매달리며 간구하고 가슴을 치며 애통할 기도의 제목은 생길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는 이들도 있고 상처받는 분들도 있고 토라지는 이들도 있고 떠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여태 그래온 것처럼 품어주고 기다려주고 이해해주고 용서해주고 눈감아주고 감수해주면서 잘 지내려고 애쓸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장담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나 때문이다. 제일 예측이 안 되는 것이 나 자신이다. 작정하고 딴짓을 하면서 태연하게 목회할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게으르고 나태하고, 교만해지고, 인정받고 싶어 안달하고, 본전 생각나서 더 대접받으려고 하는 마음은 얼마든지 생길 것이다. 그때마다 교회는 나 때문에 힘들어질 수도 있고, 동료들도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니 내 목회를 따라 해보라고 말할 만큼 뻔뻔하지는 않다.

이번 주까지는 누군가에게 계란 노른자만 한 희망이라도 주고 있는 교회인 것 같아 다행이다. 그게 다음 주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음 주엔 또 그다음 주를 희망하려고 한다. 그 이상을 말할 자신은 없다. 다음 세대까지 물려줄 유산을 남기려면 이미 문화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솔직히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까마득하다. 후임 목사 한 사람이, 갓 등록한 장로 한 사람이, 말 옮기길 잘 하는 성도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을 수도 없이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세대를 이어서 좋은 신앙 유산을 물려주고 있는 교회를 못 봤기 때문에, 말은 할 수 있지만 그게 어떤 교회인지 감이 안 온다.

3. 남들이 하는 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희망을 주는 교회’를 해보려고 나름대로 비법을 찾아다닌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남다른 목회를 해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모범적인 사례로 제시되는 교회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의욕이 생기기보다 낙망이 더 컸다. 나는 그만큼 오래 기도할 줄도 모르고,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전도를 밤낮없이 열심히 할 만큼 체력도 안 되고 심지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모두 다만 하나님을 의지하였을 뿐이라고 하지만, 내 눈에는 될 사람이 목회를 하니까 잘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세미나를 들으면 사람 낙심시키려고 작정한 사람들처럼 약이 올랐다. 나는 그저 힘들고 앞이 안 보이면 엎드려 빌었고 울었다. 설교를 20년 동안 했는데 아직도 준비 시간을 줄이지 못하느냐고 아내에게 한 소리 듣는다. 그래서 이번에도 주일 새벽까지 설교를 준비하고 단상에 올라갔다. 아픈 교인 있다는 소식 들으면 찾아갔고, 같이 있다가 돌아가시면 정성스럽게 장례를 치러드렸고, 결혼할 때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주례사를 준비하려고 애를 썼다. 세례를 받는 이들은 좀 더 특별하게 축하를 해주었고, 교회 새로 오시는 분들보다 가시는 분들에게 더 마음을 많이 얹어드렸다. 그런 건 다른 교회들에서도 다 하는 것 아닌가.

남들 하는 대로 했을 뿐인데 상처받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얼마 지나지 않아 위로를 받고 치유를 받고 다시 신앙생활을 해볼 힘을 얻었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여전히 뭐가 그분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잘 모른다. 그저 감사하고 있을 뿐이다.
 
4. 다른 교회에 있는 문제 우리에게도 있다
여전히 교회 안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보이고,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일들도 많이 보이지만, 못 하고 있기도 하고 안 하고 있기도 하다. 전임 사역자가 부족하고, 내가 <묵상과 설교>(성서유니온선교회)라는 격월간 잡지의 편집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시간이 모자라 못 하기도 한다. 필요를 보면서도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너무 많다. 새벽기도 때마다 요람과 등록카드를 보면서 기도하는 덕에 장년 교인들 이름은 거의 외웠지만 아이들 이름까지는 다 못 외웠다. 일주일에 한 번만 보는 교인이 절반을 넘으니 친밀한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그런 이들을 두고 “사랑하는 가족”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하다. 다만 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잘 알아가기를 원하여 열심히 말씀을 준비하는 것으로 내 도리를 얼마만큼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교회 재정이 조금만 넉넉하면 해보고 싶은 일이 참 많은데, 늘 재정은 남지 않을 만큼만 있고 애써야 채워지는 정도로만 걷힌다. 예배가 길다(2시간), 설교가 너무 빠르다, 공간이 좁다, 비가 샌다, 어떤 집사가 상처를 받았다더라, 하는 소리도 끊임없이 들려온다. 교인들 안에는 이혼도 있고 부도도 있고 사고도 있다. 이단도 들어오고 이단에 넘어간 이도 있다. 실직자도 있고, 너무 오랜 구직자도 있다. 아픈 사람은 또 왜 이렇게 많이 생기는가? 아무리 기도해도 낫지 않는 중병도 있고, 중독자도 있고, 너무 이른 나이에 주께 불려간 이들을 보면서 기도하는 게 소용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관된 신실성(integrity)이 없이 자기모순적인 행보를 보이는 이들을 참기도 쉽지 않다. 다 알고 있고 더 배울 것이 없다는 듯 처신하는 이들도 보인다. 아무 생각 없이 지독한 성실함으로 자리를 지키는 이들도 있고, 목사를 영매쯤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말이 앞서는 사람이 있고, 행동이 앞서는 사람도 있다. 책 몇 권 읽고 신학을 다 섭렵한 듯이 종교재판을 하고 설교비평을 하는 이들도 있고, 이미지에 죽고 이미지에 사는 이들도 있다. 매번 조용히 주일 예배만 드리고 가는 사람이 절반 가까이 된다. 우리는 특별하지 않다. 다른 교회들이 겪는 어려움과 한계를 고스란히 갖고 있는 교회에 불과하다. 많이 애쓰고 있지만 공동체나 가족으로 불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는 없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준다. 그런 허물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얼굴을 감춘 채 같이 찬양하고 같이 기도한다. 그런데 그 가면을 서둘러 벗기려고 하지 않아서 감사한 교회다. 그 한계, 모자람, 부끄러움, 후회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면목 없지만 용서를 구하게 내버려 둔다. 한 사람 한 사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못난 사람들끼리 서로 봐주면서 하나님을 바라볼 만큼은 되었다. 그래서 병아리 눈물만 한 희망이라도 우리 공동체 가운데서 보고 있지 않은가 싶다. 희망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투성이인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들에게 어떤 한계가 있는지를 아는 자들이 있는 곳에, 그런 줄 알면서도 자기 허물을 생각해서 남을 수용하고 자리를 마련해주고 목소리를 갖게 해주는 곳에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내가 가진 이상적인 ‘교회상’을 실현해줄 교회는 없어도, 그런 이상을 실현할 가망이 없는 ‘나’를 받아줄 교회는 있는 것이다.

아홉 번째 수습, 세 번째 개척

나는 개척을 한 것이 아니라 개척을 당했다. 편집장을 맡는 동안 교회에서는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협동목사로 섬겼다. 그동안 어려움에 처한 교회들이나 목회자가 없는 곳에서 도움을 요청해왔다. 7-8년 동안 그런 교회들을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1개월 동안 머물면서 도와주었다. 지금까지 모두 13개 교회의 문제에 관여하여 직간접적으로 교회가 새로워지도록 도왔다. 광주소명교회도 그런 과정에서 만난 아홉 번째 교회였다.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단순한 모임이 어엿한 교회로 자랐다. 담임목사로 어울릴 것 같은 분들을 소개했지만, 교회는 한사코 나에게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6개월 동안 편집장과 강의와 번역과 집필, 그리고 아카데미 사역을 하면서 혼자 교회를 꾸려왔기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목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난 6개월 동안 진행해온 <교회론 세미나>는 개척 성도들 안에 주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보기 원하는 주체할 수 없는 열망을 심어놓았다. 이대로 도망갈 수 없었다. 감당하게 하시려거든 힘과 여건을 달라고 기도했다. 기대는 없었고 암담하기만 했다. 이미 성도들은 80여 명까지 늘어나 있었다. 그렇게 상처 가득한, 순박하고 선량하고 사랑과 정이 많은 성도들의 목회자가 되었다. 이 세 번째 개척도 지난 두 번의 개척처럼 다시 타의에 의한 개척이었다.

교회 이름은 내부 공모를 통해 ‘광주소명교회’로 정했고, 1년 반 만에 교회가 한 곳뿐인 새 마을에 신축빌딩 6, 8층 일부를 구입하여 예배당으로 꾸몄다. 당연히 은행 돈으로 했다. 한 15년 천천히 갚자고 했다. 나와 성도들은 건물을 숭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건물 없는 교회를 개혁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땅에 건물을 올리지 말자고 설득하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도심에 건축하면 더 큰 부담으로 더 적은 공간을 얻게 되고, 외곽으로 나가면 교인들이 사는 곳에서 멀어지고, 마을과 함께 하는 사역보다는 주일에만 주로 모이는 교회가 될 것 같아서다. 비싸게 지어놓고 일주일에 하루만 쓰는 건물보다는, 주중에 늘 마을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하자고 제안했고, 3개월 정도 논의한 끝에 지금의 공간을 사서 리모델링을 하였다. 공간을 나누는 것부터 업자를 선정하는 것까지 교인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다.

다시 1년 후 내가 소속되어 있던 국제장로교단(IPC)에 가입하였다. 5년 3개월이 지난 현재, 청장년 350여 명, 유아·어린이·청소년 100여 명이 모이고 있으며, 사역자로는 목사 셋, 전도사 셋이 협력하고 있다. 장년의 90% 정도가 부부 교인이고, 50대와 30대가 가장 많이 모인다. 교인들의 80%가량은 다른 교회에서 다양한 사정으로 이동하였으며, 안타깝게도 한 해 평균 4-5명이 세례를 받는 것에 그치고 있다. 전도하는 교회라기보다 교회에 관해 고민하던 성도들이 소개를 받고 이동하여 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는 교회다. 전도를 안 해도 사람들이 찾아오니 교인들이 굳이 힘들여 전도하지 않으려고 해서 걱정이다.

국제장로교(IPC)는 미국장로교(PCA)에서 유럽으로 파송한 선교사 프란시스 쉐퍼가 시작하였다. 그가 운영한 공동체 라브리를 통해서 배출된 사역자들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개척 사역을 하였으며, 그 결과로 세워진 교단이 국제장로교이다. 한국에서는 영국에서 유학 중에 IPC교회에서 사역을 하던 이들이 안수를 받고 돌아와 시작하였으며, 10여 년 가까이 임시노회로 있다가 2016년에 정식 노회로 인정을 받아 모이고 있다. 본래 장로교가 들어가 있는 나라에는 신규 노회 승인을 안 해주기로 규정되어 있지만, 한국은 예외적으로 성경적 노회 운영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너무 정치집단화되고 목사 중심적으로 된 한국의 노회를 개혁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뜻이 받아들여졌다. 대표적인 IPC 선배 멤버로는 <뉴스앤조이> 이사장 방인성 목사(함께여는교회),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박득훈 목사, 라브리 대표 성인경 목사,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초대총장 김북경 목사 등이 있다. 최근에 젊은 사역자들이 안수를 받거나 교단을 옮겨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교인들은 왜 여기서 희망을 보았을까?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데도 아직까지 우리 교회에 대하여 실망하여 떠나거나 가나안 신자가 된 사람은 없다. 반대로 가나안 신자의 삶을 청산하거나 교회와 목회자에게 크게 실망한 성도들이 찾아와 위로를 받고 희망을 보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 등록하기 전에 나는 늘 우리 교회가 갖고 있는 장점만이 아니라 단점들을 말해준다. 소문으로 들었던 것과는 달리 참아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교회라고 소개한다. 교회 바깥에서 오는 평판들은 믿을 게 못 되지만, 교회 안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잘 모르고 여기까지 온 목사에게는 적잖은 위로와 격려가 된다. 그들이 우리 교회를 다른 교회와 구별 짓게 한 것은 무엇일까?

1. 하나님 나라 복음과 묵상이 있는 설교
성도들이 자신들의 교회를 떠나 굳이 우리 교회를 찾아온 가장 큰 이유는 ‘설교’였다. 성경에서 벗어난 설교와 견고한 신학을 결여한 설교에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거다. 수준 낮은 교양 강좌에 덕담 수준의 축복 남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눈감는 종교적 담론에 불과한 소음을 더는 들어줄 수 없었던 거다. 성도들의 인내력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이제 하나님 대리자의 말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 교회’를 등질 수 없고 정든 교우들과 헤어지기 싫어 참고 또 참아가며 들어주다가도 더는 참을 수 없는 지점이 온다. 목사가 설교를 통해 자기 잘못을 합리화하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정당화하거나 자기를 반대하는 자들을 내려칠 때이다. 까탈스럽거나 부정적이거나 지나치게 비판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귀만 고급스러워졌고 순종은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20-30년 죽어라고 순종만 하고 참기만 한 사람들이다. 아무리 교회 일이 많아도, 날마다 교회 와서 이것저것 하면서 보내도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그 고단함이 눈 녹듯이 사라졌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교회가 성경공부에만 머물렀고 순종하지 않아서 문제라고 말하는 목사가 있더라. 공부 좋아하는 목사들도 있을 것이고 배우기 좋아하는 성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한국교회가 성도들에게 제대로 성경을 성경답게 전하고 가르쳐준 적이 있었는가. 신학교가 성경을 주해하고 설교를 잘 하도록 훈련하여 보내준 적이 있었는가. 쪽복음 손에 들려 길거리로 나가 전도하러 내보내지 않았던가. 교인들이 죽어라고 헌금해주고 시키는 대로 봉사했기에 교회가 세워진 것 아닌가. 그러면 최소한 목사들은 곱사등이 될 때까지, 거북목이 될 때까지 죽어라고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양질의 설교 서비스라도 제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나는 내가 좋아해서, 내 사명이라고 생각해서, 또 내 밥값 하느라고 부지런히 성경을 연구하고 공들여 설교를 준비하기도 하지만, 사실 나보다 더 힘들게 살면서 더 애써서 교회를 섬기는 분들에게 너무 고마워서 조금이라도 화답하는 심정으로 설교에 임한다. 새벽예배는 <매일성경> 본문을 따라서 20분 정도 하고, 수요예배는 주제별로 동역목사와 나누어 45분 정도 하고, 주일예배는 책별로 강해를 55분 정도 한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설교만 듣고 흩어지는 성도들이 많아서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분들과 내가 만나서 교우하는 시간은 그때뿐이다. “사랑하는 소명의 가족 여러분”이라고 말하는 내 부름에 너무 부끄럽지 않기 위해 열심히 설교를 준비한다. 거기서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보았을까?

나는 설교에서 주해와 함께 묵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그 성경말씀의 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현대적 의미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독서할 시간이 여의치는 않지만 끊임없이 인간과 역사적 현실, 우리 시대의 지배적 이데올로그와 메타 내러티브를 규명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그것이 설교에 반영되게 한다. 그것을 굳이 전인적 복음, 통전적 복음에 근거한 하나님 나라 설교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 알찬 정보를 담은 설교는 물론이고 인간 자신과 내 삶의 자리와 인간의 조건을 고민하는 설교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리하여 “보기에 심히 좋구나” 하신 하나님의 탄성을 회복하는 것이 오늘 하나님 나라를 산다는 말의 뜻이라고 자주 말한다.

2. 성도들이 참여하고 책임지는 교회
교회론에 관해 6개월 정도 토의하고, 같이 협의하여 교회 정관을 마련했다. 사실 내가 마련하고 교회의 동의를 구했다고 보는 게 맞다. 성도들은 이런 정관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상 목사가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정관을 다른 교회가 도입하도록 권하고 싶지 않다. 6개월 같이 지내보니 이런 장로님들과 성도들이면 나를 그분들에게 위임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설교와 교육과 심방을 제외하고 모든 목회계획은 다 당회와 실행위원회의 승인을 받고 또 사후 보고를 한다. 전체 1년 목회계획은 연말에 논의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월초에 논의한다. 그때 지난달 목회사역을 실행위원회와 당회 앞에 보고한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주인은 그리스도이시다. 목사가 사람 장사하는 곳이 아니다. 교인들이 위임받은 주인이고 목사도 그 교인 중 하나다. 나머지 교회 운영은 교인들이 결정하고 실행한다. 처음에는 목사가 결정해서 지시를 내려주기를 바라던 교회가 이제는 조금씩 스스로 할 일을 만들고 사람을 세워서 진행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자발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누구든 맘대로 결정할 수는 없지만, 누구든 제안할 수 있고 발언할 수 있다. 예산도 성도들이 계획하고, 관리하고, 보고하고, 감사한다. 모든 예산 사용 내역을 교회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직분도 성도들이 정한다. 주일학교 부장은 주일학교 교사들이, 성가대 대장은 성가대원들이 결정한다. 2년 임기의 나무지기(구역장)는 전임 구역장들이 모여서 정한다. 모든 직분의 임기는 2년이다. 자연스럽게 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고 갓 교인이 된 분들의 비율이 너무 높다. 하지만 열심히 하시던 분들이 오시니 금방 적응하시는 편이다. 세 살 미만의 아이가 있는 젊은 가정은 모든 봉사에서 면제된다. 물론 본인이 원하면 참여할 수 있다. 일손이 부족하면 사정을 알려서 도움을 요청한다. 일이 많은 교회는 아닌데도 일손은 늘 필요하다. 하지만 교회가 성도들을 위해 존재할 뿐, 성도들이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잊지 않으려고 한다.

책임목사인 내가 교인들에게 사역을 제안하기도 하고, 교인들이 내게 제안하기도 한다. 사역은 내가 제안해도 그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거의 그 일을 할 사람들이 정한다. 누구든 자신의 의견을 상대화 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누구든, 어떤 의견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교회이다. 어쩌면 그런 원활한 소통에서 교인들은 비로소 숨 쉴 틈을 찾았는지 모르겠다. 성도들이 꾸려가고 목회자와 함께 책임을 지는 데서 안전감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3. 수평적인 리더십, 투명한 운영
나는 목회철학이나 목회비전을 세워본 적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목회란 성도들과 함께 사는 것이고 노는 것이다. 그들 중 한 명인 내게 주신 은사로 그들을 섬기고, 그들의 은사로 내가 양육을 받는 곳이 내게는 교회다. 사람마다 성장하는 것이 다르고 그 모양도 다르듯이, 이 교회가 유기체적 생명으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불가분의 영향을 미치면서 ‘존재하게 하는 것’ 그것을 목회라고 생각해왔다. 여전히 그 생명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며,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고민하며, 그것을 위해 내가 갖고 있는 자원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진 지식도 짧고 교회운영 능력도 모자란다. 그러니 나만 믿고 따르라고 할 염치가 없고 실력도 없다. 나의 비전이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라는 확신도 없다. 나는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다른 지체들, 특히 이 교회에 보내주신 사람들 속에서 성령께서 형성하여 나가시는 뜻, 즉 소명과 사명을 분별하는 일이 내가 주의를 기울여 해오는 일이다. 잘 듣고 묻는 일을, 말하고 지시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피택장로 3명까지 포함하여 14명의 장로가 있고, 그중 당회를 구성하는 시무장로는 8명이고, 협동장로는 3명이다. 우리는 전임 책임목사(=담임목사)와 동역목사(=부목사)에게도 당회원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당회 의장(=당회장)은 당회원들이 2년마다 투표하여 선출한다. 현재 3대 당회장으로 남창희 장로가 섬기고 있다. 실행위원회는 교인 총회의 축소판이다. 교인대표 44명이 참여하고 임기는 2년이다. 여기에 당회원들은 당연직으로 들어간다. 책임목사인 나는 최대한 당회 의견을 경청하고, 실행위원회의 결정을 따르려고 한다. 나의 제안을 당회와 실행위원회가 추인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일지라도, 가능한 한 모든 사안에 대해서 당회와 실행위원회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려고 애를 쓴다.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잘 몰라서 배우려는 마음이 크다. 나는 내게 역사하시는 성령님보다 성도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결코 더 우월하거나 크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로들이 돌아가면서 당회장을 하니 책임목사인 나와 불필요한 긴장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당회장 자리를 장로들에게 돌아가게 한 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당회장 자리를 별거 아닌 자리로 만든 것이 새로운 것이었다. 그냥 당회 할 때 사회자 역할을 하면 되고, 교회 전반에 대해 책임목사 만큼이나 알고 기도하며 형편껏 목회를 공유하는 본연의 역할을 하게 하였을 뿐이다.

권위적인 이름이 거북하여 담임목사라는 말 대신에 ‘책임목사’라고 부르고, 부목사라는 말 대신에 동역목사라고 부른다. 부목사의 임기는 3년이고, 책임목사가 추천하면 실행위원회가 인터뷰하여 제청하고 또 재신임을 결정한다. 책임목사는 5년 임기이고 교인 총회에서 재신임을 결정한다. 동역전도사의 임기도 3년이고 실행위원회가 역시 임용과 재신임을 결정한다. 장로는 6년마다 신임투표가 있고, 신임투표 후에는 1년 휴무하며, 한 번 더 6년을 섬긴 후 은퇴한다. 그 전에 65세가 되면 모든 목사와 장로는 은퇴한다. 동역목사에게도 최대한 자율권을 부여한다. 행정은 최소화하고 시간 대부분을 성경연구와 그룹모임 인도, 자기 부서(어린이, 청소년, 청년) 구성원들 심방을 하도록 당부한다. 도서비와 훈련비를 지원하여 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사모’라는 공식적인 자리는 없으며, 그냥 성도 중 한 명으로 신앙생활 잘 하도록 부탁한다. 질서 안에서 너무 수직적인 리더십이 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정작 동역하는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목사와 장로 모두 말씀을 전하는 사역에 참여하고, 안수집사도 수요일 새벽설교에 돌아가면서 참여한다. 1년에 한두 차례 정도는 성도들이 주일예배 설교를 한다. 이번 온가족수련회에서도 연령별로 남녀 각각 3명의 성도가 5-7분간 주일설교를 하였다.

이렇게 하는 데 큰 결심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당연했고, 장로들과 나머지 성도들도 흔쾌히 받아주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래도 되는가 싶겠지만, 우리는 그냥 원래 그런 거로 생각해온 사람들처럼 자연스럽다. 목사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고, “목사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목사님, 설교하실 때 말을 좀 천천히 해주세요”, “목사님 설교가 너무 어려워요”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해도 무례하다고 여기지 않는 교회다. 그것만으로 위로가 된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4. 성도에 의한 성도 양육
나는 제자훈련은 긍정하지만,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늘 확신이 없다. 믿음과 사랑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 것인지를 여전히 고민하고 있으며, 제자는 어떤 ‘인간’인지가 늘 궁금하다. 그러니 어떤 영적 형성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이 성장하며 그것을 위해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 나를 확신시켜주는 이론이나 방법론을 찾지 못했다. 더구나 한 사람 한 사람 복잡한 서사를 갖춘 존재를 어떤 한 방법론적 틀 속에 넣어 ‘훈련’시킨다는 생각에서 제품을 찍어내는 것 같은 무례함이 느껴지고, 대량생산체제에 이용당하는 가축처럼 취급하는 폭력성이 엿보여서 거북하다. 그래서 교회 안에 다양한 양육모임을 만들어 운영한다. (거기에 필요한 교재들을 앞으로 5년 과정으로 계속 만들어낼 생각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영적 컨설팅을 통해 가장 필요한 훈련과 어울리는 인도자를 소개하여 양육을 받도록 배려한다. 함께 모이는 그룹으로는 목요인문학 모임, 금요직장인성경공부 모임, 주일 오후 관심사별 소그룹 모임, 청년부 모임, 그리고 1:1 그룹모임 등이 있다. 사역자들이 인도하는 곳도 있고, 성도들이 리더가 되어 한두 가지 교재로 다른 성도를 양육하게 한다. 교인들이 서로 실제적인 관계로 이어지고 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목하여, 그들에게 맞는 훈련을 마련해주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아직 남자 성도들의 참여가 저조하고, 훈련된 남자 리더가 부족한 것이 매우 아쉽다.

5. 지역과 역사 속으로
교회를 개척할 때 우리가 꿈꾼 교회는 ‘좋은 동네교회’였다. 나도 ‘동네교회의 좋은 목사’가 꿈이었다. 이 교회가 있다가 없어지면 이 마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교인들은 알아볼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그만큼 마을이 교회의 존재를 피부에 와 닿도록 느끼는, 존재감이 묵직한 교회가 되고 싶었다. 예배당 공간에 최대한 종교색을 지우고 언제든 마을이 필요하면 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예배당을 줄이고 큰 공간을 어린이도서관으로 꾸며 마을에 내어드렸다. 양질의 어린이 책 4천여 권을 갖춘 정식으로 등록된 도서관으로 이 지역에서는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며, 관공서에서도 신뢰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마을사역을 전담하는 풀타임 전문사역자를 두어 지속적으로 좋은 마을을 만드는 일을 감당하게 하였다. 교인들도 함께 참여하여 각종 공모사업을 진행하고, 마을장터를 열고, 어린이와 학부모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교인들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이 역사에 교회가 책임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예배당 안이나 주일만의 교회가 아니고, 날마다 우리가 걷는 모든 땅 위에서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역사의 현장에 가서 불의를 고발하고 정의의 목소리를 높이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군사정권에 저항한 광주정신에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금남로에 나가 촛불시위에 참여하였다. 무엇보다 세월호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의 아픔에 참여하기 위해 가족들을 모셔서 예배하고, 진도 팽목항과 목포 신항을 자주 방문하여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있다. 특히 미수습자들의 거점교회가 되어 그분들과 소통하며 아픔을 같이 견디고 있다. 물론 모든 교인이 다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으로 지지하고 기도해주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동의하는 분들만 주로 등록하시는 것 같다. 여기 광주는 이런 이슈에 대해 말하는 것이 그리 불편하거나 어렵지 않다.

6. 교회를 낳는 교회
교회를 적정 크기로 유지하는 일은 교회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단지 고려해야 할 선택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의지를 갖고 실천해야 할 필수적인 사항이다. 나는 ‘작은 교회’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교회와 ‘작음’은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 안에는 성숙한 성도부터 구도자, 관망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래서 마음이 이어지기까지 서로 견디고 기다리고 참아야 할 것들이 참 많다. 수가 적으면 운영도 어렵고 견디는 힘도 모자란다. 하지만 규모가 너무 크면 교인들은 자칫 자원으로 전락해 관리 대상에 불과할 수 있다. 성도들 상호 간에 교류나 영향력은 줄어들고 몇 명의 핵심 멤버 중심으로 큰 몸집이 유지되는 단체가 될 수 있다. 장년 200명이 넘어가면서 나도 성도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주일에 얼굴만 보고 악수만 하고 헤어지는 교인이 늘어가고 있다. 사실상 나는 그들에게 ‘설교자’에 불과하고 ‘목회자’ 역할은 전혀 못 하고 있다. 떠날 때 인사도 없이 떠나는 경우도 있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아예 정관에 “3개월 연속 장년 평균 출석이 300명 이상일 경우 분립을 추진한다”라고 명시했다. 100여 명 정도 분립하여 새로 교회를 시작하도록 지원하고, 이 교회는 더는 다른 지역으로 예배당 공간을 이동하지 않기로 하였다. 지금 추세라면 내년쯤 분립을 위한 준비를 시작할 것 같다. 문제는 사역자다. 교인들이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교회론을 수용하고 목회해줄 사역자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 목회자에 대한 성도들의 기대치가 높아졌다. 목사라고 무조건 믿지 않고 믿을 만한 것이 있어야 믿는다. 그런 사역자들을 길러내는 일은 성도들 양육하는 일보다 더 힘들다. 그게 분립의 최대 난제다.

7. 다음 세대 챙기기
아이들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애를 쓴다. 가장 어렵고 잘 안 되는 일이다. 약 100명 정도의 유아, 어린이, 청소년이 있다. 현재는 주로 주일 교육에 그치고 있지만, 교회는 한마음으로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지 않게 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있다. 아이들에게 날마다 개인성경묵상(QT)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녀가 되도록 강조하고 있다. 매달 200만 원의 차세대사역금을 적립하여 본격적인 사역을 대비하고 있다. 청소년인문학 교실을 3년여 운영하고 그들이 유럽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지를 탐방하고 돌아오기도 하였다. 담당 사역자가 다른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잠시 멈추고 있지만,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머잖아 교회와 동네 아이들을 위한 작은 방과후학교나 주말학교를 운영하여 신앙과 학습을 도울 생각이다. 아울러 부모들을 세계관적으로 잘 준비시켜 이 신자유주의 경쟁체제를 거스르는 자녀 양육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있다. 부모를 따라서 친구를 두고 새로운 교회에 온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이 교회를 자신의 교회로 여기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이제 조금은 예배 분위기가 조성되고 학생과 교사 간의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신앙적 정서적 모판이 형성되고 부모들의 합의와 자발적인 참여가 선행된 뒤에야 진전된 교육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반 다지기에 전념하고 있다.

8. 공동체는 아니지만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교회
공동체로 함께 모여 사는 교회를 보면 부럽다. 하지만 우리 교인들 중에 동네에 사는 분들은 별로 없고 다들 차량으로 10-30분 걸리는 곳에서 모인다. 멀게는 남원이나 순창에서도 오신다. 그러다 보니 자주 만나서 교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최대한 공동체성을 강화하고 성도 간에 상호작용이 많은 교회가 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특히 성도의 필요가 보이면 자기 것을 나누어 도와주고 시간을 내서 만나주고 찾아가 위로하는 삶을 잘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구제헌금이 따로 있지만, 매달 성도들이 마련한 ‘살림펀드’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기간을 정하지 않고 월급 형태로 지급하고 있다.

또 받는 사람 이름만 기록하고 주는 사람은 밝히지 않는 ‘지목헌금’ 제도를 통해 연간 2-3천만 원 정도의 헌금이 전달되고 있다. 나만 아는 성도의 필요를 모르게 채우는 이런 손길들이 우리 교회의 큰 장점이다. 앞으로 교회에 전문상담사를 두어 상담을 해주도록 할 생각이다. 나잇대별 모임이나 나무(구역)모임 혹은 숲 모임 등을 통해 가족과 가족이 만나서 교제하고 있고, 2년마다 나무(구역)를 바꾸어 다양하게 교류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교제와 모임 바깥에 있는 분들도 많아서 ‘가족 같은 교회’라는 말을 하기에는 무색하다.

9. 예전과 교제가 있는 교회
어느 교회든 마찬가지겠지만 예배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모든 성도들이 성경묵상(QT)을 하도록 격려한다. 새벽설교를 당일 묵상 본문으로 하여 교회 온라인 카페에 올려서 개인 묵상을 도와준다. 주일 1부 예배는 청소년예배를 겸하여 내가 설교하고 1시간 정도 진행된다. 2부 예배는 가장 많은 성도들이 참여해 2시간 정도 진행된다. 예배 중 충분히 교인들의 소식을 전하여 서로 교제한다. 예배 중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을 같이 낭독하고 설명을 들음으로써 탄탄한 교리적 체계를 형성하도록 돕는다. 진지함과 유쾌함이 모두 경험되는 예배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수요예배는 강의 형태로 진행되며, 주로 주제별-가령, 안식, 광야, 제자도, 언약, 지혜, 성전 등-로 동역목사와 함께 진행한다.

두 달에 한 번씩 성찬식을 진행하며, 장로교지만 올해부터 침례의 형식으로 세례를 주기 시작했다. 주일성수는 강조하지만, 그것을 율법적인 의미로 가르치지 않는다. 휴가 때나 명절에는 휴가지의 시골교회나 고향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권한다. 우리 교회보다 더 필요한 곳이 있으면 그곳에 헌금을 보내도 된다고 가르치며, 십일조는 폐지되었다고 가르쳤지만 교인들의 요청으로 그 이름의 헌금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였다. 절기는 부활절, 감사절, 성탄절 등 세 절기만 지킨다. 갓 들어오신 분들은 긴 예배와 긴 설교(55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대부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시는 것 같다. 그런데 가끔 설교가 짧을 때 지나치게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 1년에 두 차례 성경사경회가 있고(신년사경회-책임목사, 봄 사경회-외부강사) 한 번의 세계관사경회(가을)가 있으며, 감사절에는 음악회가 있다. 여름 온가족수련회는 예술과 인문을 콘셉으로 그간 판소리, 헨델 메시아, 음악의 세계, 렘브란트, 윤동주 등을 다루는 강의를 들었다. 성도들이 세상의 언어로 신앙을 진술하고 표현하는 이 같은 다양한 시도에 대해서 즐거이 반응하고 있다.

10. 개교회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 사역
광주소명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쳤으며 교인들은 이에 기꺼이 동의하고 있다. 교회의 존재 방식 자체가 선교가 될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모델하우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마을을 위한 사회선교사를 세우고, 해외 선교를 후원하며, 이제는 교회 내 목수들이 시골교회를 수리하고 세워주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교회 사역자들은 우리 교회만을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해 부름 받았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가능하면 모든 사역자들에게 교회 바깥의 사역을 하나쯤은 같이 하도록 권한다. 성서유니온 신학생 사역을 겸한 사역자도 있었고, 몽골의 신학교 사역과 외국인 노동자 사역에 참여한 사역자도 있다.

나는 <묵상과 설교> 편집장을 하면서 코스타나 타 교회 사경회 등의 외부 강의와 책 집필 사역을 하는 데, 이를 교회가 후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 지역의 목회자들과 함께 5년 전부터 ‘아카데미 숨과 쉼’을 통해 이 지역 목회자, 성도, 청년들에게 알찬 신학과 성경, 세계관을 배울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일에 교회가 후원하고 있다.(본지 308호 “지역 목회자 위한 ‘말씀 훈련’ 학교를 꿈꾸다” 참고) 광주소명교회가 알려지고 성장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이 교회를 통해서 광주의 신앙 생태계가 건강해지는 일에 기여하기를 원한다. 교인들이 그 소명과 사명을 즐거이 수납하는 모습에 감사하고 있다.

11. 관행이 없는 교회
교회가 아무 문제제기 없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관행 가운데 성경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재고되어야 할 것이 적지 않다. 광주소명교회는 그 관행들을 따르지 않고 건전한 교회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성도들과 사역자들이 나서고 있다. 목사에게 주는 돈을 ‘사례비’라고 부르지 않고 ‘월급’이라고 부르며, 노동의 강도만큼, 사역자의 필요만큼, 교회의 형편만큼 지급하고 있다. 특권을 누리는 사역자도 없고 청빈을 강요받는 사역자도 없다. 누구든 얼마를 받고 있는지 성도들이 다 알 수 있도록 연봉제를 채택하며, 소정의 도서비를 제외하고는 사택, 차량, 주유비 등 부가적인 비용은 일체 제공하지 않는다. 사역자는 결혼식과 장례식 혹은 심방 등을 통해서 일체 현금을 성도들로부터 받아서는 안 되며, 생일이나 명절을 챙기는 일도 허용되지 않는다. 원로목사제도는 없고 매달 적립되는 퇴직금 외에 다른 전별금도 지급하지 않는다. 임직을 위해 특별헌금을 강요하는 일도 금지된다. 임직식은 따로 없고 다만 주일예배 중에 서약을 받고 성도들이 마련한 선물-선배들이 직접 만든 앞치마와 책임목사가 만든 임직패-을 증정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나가는 글: ‘일’보다 ‘존재’
우리 교회의 표어는 “진리로 거룩하고 사랑으로 하나 되어 세상을 섬기는 숨과 쉼이 있는 광주소명교회”이다. 우리는 자주 이 표어를 상기한다. 이 표어는 한마디로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자”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교회보다는 좋은 사람이 많은 교회가 우리가 꿈꾸는 교회다. 교회 안에서 잘 봉사하는 좋은 장로·권사·집사·목사가 아니라, 좋은 엄마 아빠·자식·이웃·직장인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렇게 앎과 삶 사이에 간극이 없고, 주일과 주중 사이에 분리가 없는 성도가 있는 교회를 꿈꾼다.

우리 교회는 ‘노타이 교회’이다. 가능하면 아무도 양복을 입지 않고 수수하고 검소한 복장으로 예배에 오게 한다. 당연히 목회자도 넥타이를 하지 않는다. 누구든 세상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조건으로 차별대우를 받거나 차별을 당하지 않는 교회가 되고 싶다는 뜻에서 그렇게 한다. 자유와 평화가 넘실거리는 교회, 편하고 고른 숨을 쉴 수 있는 쉼의 교회, 그래서 누구든 여기서는 가장 존귀하게 대접을 받고, 목소리를 되찾고 존재가 현상되는 환대의 공동체, 그런 교회를 꿈꾼다.

물론 여전히 과정 중에 있다. 주님 오실 때까지 그 길 위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향만은 놓지 않으려고 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서로를 용납하고 참아주고 기다려줄 수 있을 것 같다. 덜된 사람들, 못난 사람들, 하지만 세상을 향해서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속없이 웃고 울고, 가진 것도 없고 잘난 것도 없는 사람들이 해맑게 명랑하게 사는 별난 공동체를 꿈꾼다. 그 존재 자체로 주님께 기쁨이 되고 ‘서로에게 복지가 되는 교회’이고 싶다. 물론 터무니없는 개꿈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실력이 없어서다. 하지만 그런 꿈이 팍팍한 이 시대에 누군가에게는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자리를 고수하는 것이 힘들지만 오늘도 이어나갈 이유가 된다.

 

박대영
〈성서조선〉을 통해 ‘성경교사’로서 소명을 가진 후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성경원문 연구에 매진하여 에스라성경연구원, 영국 Capernwray Bible School, London Bible College에서 공부했다. 광주소명교회를 개척해 책임목사로 섬기고 있고, ‘아카데미 숨과 쉼’을 통해 지역 성도들과 목회자들에게 말씀을 배우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묵상집 〈매일성경〉의 편집장을 거쳐 현재 〈묵상과 설교〉의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묵상의 여정》을 썼고 여러 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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