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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동네 교회는 어떻게 희망을 발견했나
[323호 커버스토리]
[323호] 2017년 09월 21일 (목) 18:04:47 조영민 나눔교회 담임목사 goscon@goscon.co.kr

서론: ‘그날’ 이후
12년 동안 20대 청년들을 만나고 섬겼다. 나를 늘 따라다닌 호칭 중 하나는 ‘청년사역 전문가’였다. 내 나이 서른아홉이 되었을 때, 20대 청년들을 섬기는 데 한계를 느꼈다. 청년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뭔가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다가왔고, 그들의 언어와 행동을 이해하는 데 많은 힘과 노력이 필요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다른 사역으로 부르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담임목사 청빙 제안을 받게 되었다. 지난 12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사역을 해왔기 때문에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시점이었다. 부모님께도 말씀을 드렸고, 아내와도 마음을 나눈 후였다. 연락을 해오신 장로님을 만나러 간 건, 아직 담임목회에 마음이 없다는 말씀을 정중하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만난 장로님은 적잖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카페에서 교회 상황을 말씀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목사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로님을 뵙고 단호하게 ‘아직 담임목회에 생각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기도해 보겠습니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 헤어졌다. 그날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청빙에 관해 주변의 목회 선배들에게 물었다. 대부분 말리셨다. 현재 그 교회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고, 현실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고, 청년사역과 장년사역은 너무 다르고 넌 너무 경험이 없고 어리다고, 수개월이나 담임목회자가 세워지지 않는 데는 숨겨진 이유들이 있는 거라고, 그런 식으로 목회지에 갔다가 1년도 되지 않아 사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많은 부정적인 조언을 들으며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이런 게 이 땅의 숱한 작은 지역교회들의 현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마지막 결정의 순간, 당시 섬기던 교회 담임목사님이자 목회 멘토이신 이찬수 목사님과 긴 대화를 나누었다. 역시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면서 강하게 반대하셨다.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던 내가 할 수 있었던 마지막 대답은 이랬다. “그런데 목사님, 제 심장이 그 교회와 성도들을 생각하면 두근거립니다.” 목사님은 내 얼굴을 말없이 보시더니 설득을 포기하시는 표정으로 얘기하셨다. “그래, 그렇지…. 심장이 뛰면 가야 하는 거지. 목사가 심장이 뛴다면 말리면 안 되는 거지….” 그렇게 억지 허락을 받고 11월 31일 분당우리교회를 사임하고, 하루가 지난 12월 2일 나는 나눔교회에 부임해서 사역을 시작했다.

빵집에 빵이 돌아오다
교회에 부임해서 느꼈던 첫 인상은 ‘회색빛 슬픔’이었다. 담임목사가 없었던 8개월의 기간이 주는 슬픔이었고, 전임자의 사임과 이후 청빙 과정에서 생긴 여러 갈등 그리고 그 갈등 가운데 받은 상처들로 인해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의 마음 가운데 있는 슬픔이었다. 새로운 담임목사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공존했고, 그가 앞으로 어떻게 사역하는지를 보고 거취를 결정하려는 성도도 여럿 있었다. 첫 주일예배 설교를 마치고 교회 현관 앞에 서서 성도들을 배웅하는 악수례를 할 때, 손을 맞잡지 않고 아무런 말도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지나가던 분들이 적잖았다. 예상 못한 반응에 놀랐고,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진 느낌이었다. 매주 당회가 모였고 교회가 해결해야 할 현안들을 들으면서, 왜 성도들의 첫 인상이 ‘회색빛 슬픔’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아픈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고 버거운 짐들이 너무 많았다. 꽤 오랜 시간 말씀을 잘 먹지 못했고, 양육과 돌봄을 경험하지 못했고, 힘든 싸움을 계속해 왔다. ‘힘을 내라’는 말이 얼마나 힘이 되지 않았을지 느껴졌다.

부임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목사님은 비전이 뭡니까?”였다. 그때마다 단호하게 “저는 비전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진담이었다. 담임목사 한 사람의 비전에 따라 온 교회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한국교회의 상황을 보면서, 이것이 교회가 움직이는 유일한 방식이어야 하는지 평소 의문이 있었다. 그래서 담임목사로 부임했을 때, 지난 시간 동안 하나님 안에서 이 공동체가 품어왔고 품어나가야 할 비전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비전이 아니라 ‘우리’의 비전에 나를 내어드림으로, 나의 모든 은사와 역량은 주님께서 이 공동체에 주신 비전의 성취를 위해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임 초기에 내가 말하기보다 계속 귀 기울여 들었던 이유였다. 지난 3년 여 동안이 그렇게 주님께서 나눔교회를 향해 품으신 것들을 탐색하고, 하나씩 채워온 시간이었다.

첫 주일설교 본문은 ‘룻기’였다. 빵을 잃어버린 ‘빵집’인 베들레헴에 일어난, 비운의 주인공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뒤집어 회복과 충만의 이야기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헤세드(무조건적인 사랑)를 나누고 싶었다. 나눔교회는 ‘빵 없는 빵집’이었고, 그래서 많은 이들이 빵을 찾아 떠나버렸으며, 남은 성도들도 오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예수님을 예표하는 보아스의 헤세드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날개로 덮어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회복될 수 없는 공동체가 바로 우리 교회였다. 그래서 빵집에 빵이 생기기를 구하며 룻기 말씀을 3개월 동안 주일예배 시간을 통해 온 성도와 나눴다.

매주일 울며 말씀을 받는 이들이 많았다. 굶주림이 채워지는 기쁨, 목마름이 해갈되는 감격을 성도들이 공동체적으로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빵집에 빵이 돌아왔다. 그 빵이 기근 가운데 있던 이들의 고픈 배를 채웠다. 빵의 소식은 교회를 떠났던 이들에게도 들렸고 떠났던 이들 가운데 하나씩 하나씩 이전의 자리로 돌아오는 이들이 있었다. 3개월 동안 나눈 룻기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찾아오심은 회복의 전조가 되어주었다. 빵집에 빵이 돌아오자 사람들이 살아나고 떠났던 이들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고, 따뜻하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긴 이야기의 시작이다.

말씀을 먹다
교회 안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배고팠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가장 시급한 일은 이 영적 허기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은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온 성도가 함께 모이는 주일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나는 ‘말씀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믿고,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아주 전통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내가 그 설교로 주님의 말씀을 경험했고 새로운 생명을 얻었으며, 지난 12년의 청년사역 기간 동안 말씀과 설교를 통해 끊임없이 청년들이 거듭나고 변화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일예배 때 성경의 핵심 주제들을 몇 주 단위로 묶어서 시리즈로 전했다. 반복만큼이나 좋은 교육 방식은 없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가장 주요한 주제들을 묶어서 전했다. 예수님, 복음, 하나님 나라, 하나님 은혜… 등에 관해 전하는 시간은 성도들과 함께 울며 진리 앞에 서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진리를 배우고 익히는 다른 방식이 필요함을 보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지금의 ‘나눔 아카데미’다. 가장 먼저 기독교의 중추교리를 정리하기로 했다. 최대한 기존 모임시간을 활용하여, 수요일 저녁예배 때 성도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과 성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주기도문, 성도가 살아야 하는 삶의 내용이 되는 십계명을 정리했다. 주일 오후에는 말씀 묵상과 기도, 교회론 등의 강좌를 통해 신앙생활의 기초가 되는 주제들을 정리했다. 이후 이 아카데미를 교역자들과 함께 진행하면서부터는 과목이 다양해져서 ‘소요리 문답’이나 ‘종교 개혁사’와 같은 과목도 추가했다. 신앙생활을 수십 년 했지만 이런 내용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처음이라고 얘기하시는 성도님들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인해 행복해하시는 성도들과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눔 아카데미를 통해 핵심 교리 정리 및 강의 사역과 병행하여, 귀납적 성경연구 모임과 전교인 개인경건시간을 추진했다. 온 성도의 묵상 본문을 통일하는 측면에서 말씀묵상 본문과 새벽예배 본문, 부교역자가 전하는 주중예배 설교 본문을 통일했다. 온 교회가 한 말씀 안에서 함께 듣고 함께 순종한다는 측면의 본문 통일이었다. 또 한시적으로 주일학교 부서 예배 시에도 묵상 본문과 동일한 본문으로 설교를 진행하여, 온 세대가 같은 본문을 묵상하는 흐름을 만들어 갔다. 귀납적 성경연구반 역시 주중에 개설하여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강의하고, 실제로 성경 본문을 붙들고 연구하는 모임을 병행하여 진행했다. 이 모임은 주중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서른 명 정도가 늘 함께하며 말씀의 깊이를 함께 경험하는 모임이 되었다. ‘영아부 엄마들을 위한 성경 연구반’도 개설되어 계속 회차를 늘려가고 있는데, 교회 안에서 소외감을 느끼던 젊은 엄마들이 육아라고 하는 기쁘지만 무거운 짐을 진 상태에서 교회 공동체의 양육과 말씀의 능력을 함께 체험하며 회복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눔교회 규모의 공동체가 교회 안에 이런 ‘아카데미’와 성경연구반을 운영하는 것은 사실 어려움이 있을 수 있었다. 더 시급한 것을 해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다. 조직을 만들고 더 적극적으로 심방을 하는 사역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제자훈련을 통해 리더십을 키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성도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스스로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사역자에게 의존하여 신앙생활을 해온 성도님들이 스스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렇듯 얼마의 시간을 집중하고 나니 어느덧 ‘가르치고 배우는 교회’가 나눔교회의 특징이 되었다. 아카데미 사역은 ‘나눔교회는 이런 교회구나’라는, 우리 교회만의 고유성을 만들어내고 성도들이 자긍심을 갖게 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지역과 사람을 품다
“숫자가 중요한가?”라는 질문이 있다. 나는 숫자는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하는 목사다. 성도의 숫자, 헌금의 숫자… 사실 이 숫자 이야기를 빼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 청빙을 받아 부임한 담임목사가 숫자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그 교회 공동체는 분명 실망할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나눔교회가 있는 이 동네를 연구해야 했고, 이곳에 사는 분들의 직업군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했다. 청년들은 어떤 상태며 학교는 어떻게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했다. 동네의 맛집은 어디인지, 어디서 주로 사람들이 장을 보는지 알아야 했다. 성도들과 심방을 하며 이분들이 지닌 정치적 성향은 어떠하며 경제적인 상황은 어떠한지 봐야 했다. SWOT 분석의 틀을 이용하여 우리 교회와 교회가 속한 지역 및 구성원들을 분석했는데, 장점과 약점, 기회와 위기의 네 가지 요소로 분석하는 이 방법은 여러 가지 사역에 대한 통찰을 주었다.

먼저, 잃어버린 청년들을 찾기로 했다. 부임 당시 청년들과 모인 첫 모임에 함께한 청년은 세 명이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 세 명의 청년을 위해 전임 교역자를 임명해 청년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모임 인원에 비해 과도하게 사역자를 배치했던 가장 큰 이유는 청년이 교회 역동성의 핵심이라는 나의 고집 때문이었다. 오랜 청년사역을 하며 느꼈던 일반적 교회의 정서를 보면 청년은 교회 ‘일꾼’이었다. 그동안 투자했으니 이제는 그 결과물을 내어 놓도록 요구받는 대상이 되었다는 의미다. 공급과 돌봄은 끊어지고 교회의 여러 사역에 재능봉사자로 활동하기를 바라는 그룹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많은 기독 청년들이 자신을 도구로 바라보는 교회를 떠나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며 공동체를 경험 할 수 있는 교회로 옮기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나눔교회에 청년공동체가 세워졌다는 것, 청년사역자가 있고 그 사역자를 통해 영적인 돌봄과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청년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전에 내가 가르쳤던 청년들 가운데 일부가 세워지는 공동체를 위해 한시적으로 헌신해 주었다. 대중교통으로 올 수 있는 인근 대학에 다니던 지방 학생들이 와서 정착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형제들이 숙식할 수 있는 자취집(생활공동체) 하나를 장로님 댁 아래층에 만들어 청년들의 주거문제를 도왔다. 3명으로 시작된 청년부 모임은, 3년이 되어가는 지금 매주 50여 명이 모이는 모임으로 바뀌었고, 교회 안에 다양한 청년사역 움직임들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미취학 아이들을 위한 사역도 그러한 집중 사역 중 하나이다. 숫자가 너무 적게 모여 부서를 없앨 예정이던 영아부를 아주 견고한 그룹으로 회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교회와 가장 가까운 아파트 단지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유모차 때문이었다. 건축한 지 30년이 넘은 22평형과 25평형으로 구성된 아파트 단지는 신혼부부들과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고, 그래서 아기들도 많았다. 아기와 함께 먼 곳에 있는 교회를 가기 어렵다는 점과 주변에 아기와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배려하는 교회가 별로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이들을 위한 사역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늘 돌봤던 청년들 연령대가 지금 이 젊은 부부들의 연령대라는 것도 이런 선택에 한 몫을 했다. 영아부 사역에 아내가 뛰어들었고 마음을 같이한 귀한 교사들도 동참했다. 아기들을 키우는 젊은 부부들이 교회에 계속해서 등록하기 시작했다. 젊은 부부들이 영적인 공급을 받게 되고, 교회 안에서 그 나이에 경험하기 쉽지 않은 공동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작년 성탄절에 있었던 유아세례식에는 아홉 명의 아기들을 위한 세례가 있었다. 아기들의 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시끄러운 교회, 그래서 어른들의 미소가 피어나는 그런 교회가 되어가는 중이다.

셋째, 장애인을 품었다. 교회와 가까운 곳에 구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센터가 있었다. 그리고 기존에 장애를 갖고 있는 성도들과 심방을 하는데 그분들이 나눔교회 성도가 된 이유가 분명했다. 인근에 휠체어를 타고 예배당에 들어올 수 있는 교회가 나눔교회밖에 없었다. 이 지역에서 장애인들을 섬기는 것은 나눔교회에 맡기신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 성도 가운데 안수집사를 세웠다.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을 만들고, 교회 출입구에 경사로를 만들었다. 장애인들을 위한 사역이 우리 교회를 향한 사명이라는 나눔을 한 후에 한 성도님이 자원하여 장애인 성도들을 위한 공간을 자비로 만들었다. 국가가 정한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 성도 헌신예배를 드릴 때 그분들이 주체가 되어 행사를 주관할 수 있게 했다. 지하 2층에서 드리는 예배를 마치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으로 올라오신다. 나이가 많으신 우리 권사님들은 그 두 층을 계단으로 오르는데 한참이 걸린다. 그렇게 올라오신 어르신께 “힘드시죠?” 하고 여쭈니, “나보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이 많은데요, 뭘” 하신다.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며 사랑을 나누는 귀한 우리 어르신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공동체성이 회복되다
부임 당시에는 온 성도의 마음이 조각조각 나 있는 상태였다. 교역자에 대해서도, 교회 중직자들에 대해서도 불신이 쌓여 있었고, ‘뭘 한다 한들 우리가 일어날 수 있는 걸까?’라는 학습된 무력감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소그룹이 무너졌다는 것이었다. 목자라고 불렸던 소그룹 리더들이 대거 교회를 떠나면서 생긴 문제였다. 우리 같은 동네 교회는 공동체성이 핵심이다. 교회에서 만나는 분들을 동네에서도 만난다. 성도들은 단지 교회에서 공적인 얼굴로 만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동네 곳곳에서 사적으로 만난다. 교회가 깨어질 때, 그분들의 관계도 깨어졌다. 남겨진 이들을 하나로 묶어 낼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전교인 수련회를 준비했다. 모든 것이 많이 불안할 때였기에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공동체가 하나 되는 것은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어야 하고, 함께 밥을 먹어야 하고, 함께 잠을 자야만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공동체성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이기에 불편해 보이는 관계 가운데 있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전교인이 함께 근교에 모여 말씀 듣고 기도하고 잡담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잤다. 가족과 가족으로 만났고, 함께 회개하고 사랑을 고백했으며, 어른 세대가 청소년들을 안고 함께 기도했다. 은혜가 임했고, 은혜가 우리 사이에 막혀 있던 담을 허물었다. 더불어 함께 무언가를 꿈꿀 수 있는 마음으로 바꾸시는 은혜가 있었다. 온 세대가 함께하는 예배도 정례화했다. 가족이 함께 하나님 앞에 서고, 서로의 가족이 누구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1부와 2부로 나뉘어 평소 예배 때 함께할 수 없었던 성도가 하나 되어 함께 예배하는 날이다. 신앙이 교육의 결과물이기 전에 경험이어야 한다는 것, 세대가 세대를 통해 눈에 보여야 한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었는데, 온 세대 예배를 통해 그것이 현실화될 수 있었다.

무너졌던 소그룹도 다시 세우고, 목자들도 세웠다. 3년간 여러 변화가 있어왔지만 ‘소그룹’은 반드시 우리가 회복해야 중요한 요소이다. 목자(리더)들을 훈련하고 지속적으로 목원(멤버)들을 돌보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치면서, 사랑과 자원함으로 영혼들을 섬길 수 있는 소그룹을 꿈꾸고 있다. 깨어진 마음으로 여전히 아픔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지만, 뒤로 물러서 관망하는 자세를 넘어 한두 분씩 앞으로 나아오고 있다. 그리고 이번 소그룹 개편과 함께 또 그렇게 한 걸음 나와 주실 것을 확신해 본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사는 지역 안에도 수많은 교회들이 있다. 그 많은 교회 속에서 나눔교회는 나눔교회만의 향기가 있어야 했다. 이는 주변 교회들과 다른 차별성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의 문제였다. 이 지역에 이 시기, 이 상황에 저를 불러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통해 이 지역에서 이 시기에 품으시는 독특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나와 우리 교회가 걸어야 할 길은 아주 일반적인 교회의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나눔교회가 갖는 장소적 특별함과 성도들의 특별한 구성을 보며 그 차별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나누어 봤다.

무엇보다 먼저,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기도회’를 금요기도회로 열어 유가족들의 나눔을 듣고 함께 기도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반대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이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설득했다. 가장 아파하는 이들의 아픔에 동참하여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말에 반대하셨던 분도 마음을 바꾸셨다. 반대하셨던 어르신께서 기도회를 마친 후에 다가와 말씀하셨다. “이렇게 귀한 모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너무 많이 몰랐고,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고.

둘째, 신학 세미나와 교계행사, 연합모임의 장으로 교회 공간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공공신학과 관련된 세미나, 교회개혁실천연대가 하는 종교개혁500주년기념 연합기도회, 좋은 책과 좋은 저자를 초청하여 북콘서트와 북토크 시간도 가졌다. 약소하지만 신학 세미나를 열기도 하고 성경 언어 세미나가 개최되기도 했다. 우리 성도들에게 최고의 것들을 먹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다양한 모임들을 통해, 담임목사가 가진 한계를 넘어 유익한 것들을 얻어가시는 성도님들을 보며 참 감사했다. 주중에 대부분의 시간을 공실로 비어있는 교회 건물의 공간을 활용해서 다양한 기독교 문화가 소통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셋째, 문화와 예술의 장으로 교회 공간을 나누었다. 인디밴드의 공연도 있었고, 클래식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나눔교회 성도인 사진작가의 작은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그 결과, 이 지역 안에서 우리 교회가 직접 제공할 수 없는 문화 콘텐츠를 우리 성도들과 지역주민들이 접할 수 있었다. 지역 사회에 우리 교회가 제공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매개자가 되어주는 방식이었다.

넷째, 지역 사회의 다양한 필요에 부응하여 교회 공간을 내어주었다. 보이스카우트 아이들이 주변 개천을 청소하다 쉴 곳이 필요하다 하여 카페를 내어주며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다.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할 때, 교회 건물에서 잠간 쉴 수 있느냐는 말에 좋다고 했다. 이렇게 멋진 청소년들이 교회에서 쉰다는데 막을 이유가 있을까. 아파트 재건축과 관련된 모임 장소로도 얼마간 빌려주기도 했다. 지역주민들에게 의미 있는 교회가 되는 가장 쉬운 길인데 왜 그걸 마다하겠는가. 교회 마당에서 담배를 피는 분들도 있고, 말이 조금 거칠게 나오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그분들이 교회 마당을 밟아보고, 건물 안에 들어와 보기라도 한다면 교회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눔교회가 수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장소가 되어가고 아름다운 문화가 나누어지는 공간이 되어간다는 소문은 이러한 다양함을 경험하기 원하는 이들이 교회를 찾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눈다’라는 말은 우리 안에 있었던 일들과 우리가 하려던 일들을 어떤 방식으로건 들리고 보이는 것으로 바꾼다는 의미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안의 많은 이야기들을 SNS에 올렸다. 교회의 다양한 모습이 계속해서 올라가면서 관심을 갖는 몇몇 기독교 언론에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목사로서 이런 외부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교회를 찾는 이들에게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성도들에게는 우리가 함께하는 교회가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어간다는 자긍심 차원에서 기사들을 정리하여 나누었다. 담임목사로서 그동안 참여한 소수의 대외 활동도 현재 섬기는 교회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서 진행한 것들이 많았다. 우리가 함께하는 행사 사진을 찍고, 여러 일들을 글로 정리하여 나누고, 우리가 하고 있고 하고 싶은 일들을 눈에 보이게 이미지화하여 나누는 데 힘을 썼다.

교회 부흥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다 하셨다”라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하지만 이는 지난 일들을 돌아보며 할 수 있는 말이지, 과정 중에 있는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하나님, 당신께서 다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습니다.” 솔직한 나의 고백이고 다짐이다.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한 사람이, 지역 교회의 일원이 되기로 결정하는 일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단순하게 예배에 참여하겠다가 아니라 함께 신앙생활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겠다는 선택은 오늘같이 교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일 때에는 더더욱 어렵다. 그런데 그런 선택을 권하면서, 그 선택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제대로 전해주지 않는다면 이는 교회의 직무유기 아닐까. 그래서 나눔교회는 끊임없이 교회 안에 일어난 일들과 일어날 일들을,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내부와 주변에 나누고 있다. 지상의 교회는 완전할 수 없기에 좋은 일뿐 아니라 아픈 이야기,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이야기들도 솔직하게 나눈다. 너무 많이 포장해서 나중에 실망하는 것보다는 지금 보이는 모습에서 점점 더 나아지는 그림을 보여줄 수 있는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가기를 소원해 본다.

결론: 아직도 가야 할 길
나눔교회 이야기는 과정 중의 이야기이며, 어쩌면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나눔교회는 아직 많이 아프고 여전히 풀어가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혹자는 성장통이라고 부르지만, 아픈 건 아픈 거다. 예배 인원이 많이 늘어났지만 새 가족들 가운데 아직 교회 안에 깊숙이 들어오지 못한 분들이 많다. 주일예배에 나오는 것과 공동체 일원이 되는 것은 큰 간극이 있다. 작은교회라고 부르는 소그룹 활동이 살아나야 하는데 리더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오랫동안 새로운 리더십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의 허리에 해당하는 리더들이 세워져 있지 못하다. 갑작스럽게 늘어난 30-40대가 훈련을 받기에는 너무나 바쁜 상황 가운데 있는 것도 늘 부담이 된다. 10년 전에 지은 교회 건축과 관련된 채무도 여전히 큰 짐이다. 계속 원금을 갚지 못하다가 3년 전부터 조금씩 원금을 상환하고 있기는 하지만, 매달 은행에 이자로 나가야 하는 금액과 원금의 상환은 사역을 위축시키는 큰 요인이다. 출석 인원은 늘어났지만 그 수가 예산의 증가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30-40대의 재정적 헌신이 약한 것도 있고, 늘어난 청년들 가운데 수입이 없는 청년들이 많은 이유도 있다. 재정 또한 지상 교회의 중요한 부분임을 또 확인한다.

교육부서의 인원들이 늘어나서 거의 모든 부서가 공간의 한계를 말한다. 주일에 모임 장소가 없어 목양실에서 초등부가 공과공부 모임을 하고, 이어서 첼로를 배우는 동아리 활동을 한다. 나는 주일이 되면 목양실을 들어갈 수 없어 교회 곳곳을 돌아다녀야 한다. 즐거운 비명이다. 새롭게 늘어난 성도들과 기존 성도들 간 생각의 차이도 크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 주도권이라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주인 노릇’과 ‘주인 의식’ 사이에서 고민하고 판단해야 하는 경우들도 발생한다. 갑작스럽게 변하는 여러 가지 교회 상황 앞에서 당황하는 기존 성도들도 있고, 새로 들어 온 신자들은 이전에 자신이 경험했던 공동체와 비교하거나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 공동체와 비교하며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나를 비롯해서 함께 동역하는 사역자들 가운데 누구도 이전에 이런 상황을 경험해본 적이 없고 이런 사역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사고도 많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될 때도 많다. 한 주 한 주 과도기 공동체의 불안정한 모습을 본다. 이런 점에서 시스템과 조직을 잘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다. 우리는 가 본 적 없는 길을 날마다 주저하고 의심하면서도 믿음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열왕기상 18장에는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서 만난 표적이 등장한다. “바다 위에 손 만한 작은 구름 하나”는 3년 6개월이라는 기근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작은 표적이다. 엘리야는 이 표적을 듣고 아합을 향해 큰 비가 내릴 것을, 이 긴 기근이 끝났음을 선언한다. 나는 사랑하는 나눔교회가 그런 작은 표적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 이 교회에 일어난 작은 부흥의 역사가 많은 이들에게 들리고 보이기를 원한다. 이 교회에 일어난 하나님의 일하심을 시샘하게 되기를 바란다. 나눔교회가 울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던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구하는 교회들의 소식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눔교회에 부임하고 처음 준비했던 금요기도회에서 성도들과 함께한 기도문으로 글을 맺는다.

“하나님, 이곳에 이 교회를 두신 이유를 우리로 알게 하소서. 그리고 아직도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두 눈이 보게 하소서. 그리고 하나님, 이 모든 이야기가 우리들의 즐거운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비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들려지고 보여지는 이야기가 되게 하소서. 그리고 저들로 우리 가운데 일어난 일을 시샘하여 기도하게 하소서. ‘저 회색빛 슬픔의 공동체에 하나님께서 부흥과 회복의 역사를 일으키실 수 있다면, 청빙 때문에 고통하고, 깨어져서 아프고, 교역자에게 상했고, 학습된 무기력이 있었던 저 공동체도 저렇게 다시 일으키실 수 있다면, 하나님 우리에게도 당신의 부흥의 역사를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며 함께 하나님을 구하게 하옵소서.”

 

조영민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다.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을 공부했으며, 효창교회, 내수동교회, 분당우리교회를 거치는 13년 동안 청년사역을 도맡아 했다. 현재 설교 클리닉 연구소 ‘호밀리아’ 연구위원, 기독교역사연구소 ‘히스토레’ 자문위원이며, 총회 청년교재 집필과 몇 권의 성경 묵상집 필진이기도 하다. 2014년 12월부터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나눔교회 2대 담임목사로 부름을 받아 사역 중이다. 아내 한영미와 딸 수아, 아들 원영이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걸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룻기》(죠이북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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