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호 반디마을 한몸살이 08]
열네 살 진이의 눈물
이른 저녁을 먹고 일본 애니메이션 한 편을 시청했다. TV 시청 제약을 많이 받는 아이들이라 이 시간은 모두에게 만족감이 크다. 애니메이션 내용은 학교에서 일어난 왕따와 이를 극복해가는 친구들의 노력이 담긴 가슴 뭉클한 성장 영화였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운이 길게 남아서인지 아내와 큰딸 진이는 한참을 얘기하는 듯했고, 나는 거실 바닥과 일체가 되어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내가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둘째와 셋째는 이미 잠이 들었는지 보이지 않았고, 아내와 큰딸 진이만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뿌연 두 사람의 얼굴에 초점을 맞춰 또렷이 보니 이제야 상황이 파악되었다.
진이는 빨간 눈으로 훌쩍이고 있었고, 아내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진상을 들어보니 영화에서 본 따돌림의 문제가 진이에게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진이는 홈스쿨을 하지만 우리가 해결 못 하는 몇 가지에 대해선 학원에 다니기도 한다. 피아노와 수영 같은 예체능부터 평생대학원의 제빵 과정까지 외부 배움의 과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중 피아노학원은 꽤 오랫동안 다녔고, 이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포함된 아주 기대되는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친구들과 사이가 서운해졌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하나둘 학원을 떠났다. 나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미래의 선택이 갈리면서 멀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달랐다.
저녁에 함께 시청한 영화가 진이의 과거 어떤 순간을 강하게 자극했던 것 같다. ‘별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어떤 때의 사건들이 사실은 따돌림과 무시였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진이가 학교와 관련된 얘기를 할 때 빨리 반응하지 못하는 것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자주 끊기게 되었다고 한다. 카톡으로 휴일에 놀자는 약속할 때도 엄마 아이디로 입장하는 진이가 불편했을 것이다. 엄마 아이디로 들어온 진이가 말을 걸면 아이들은 답이 없었다. 그렇게 진이는 은근히 아이들의 틈에서 떠밀렸던 것 같다. 당혹스러운 일이다. 공교육의 병폐가 싫어 시작한 홈스쿨인데 피아노학원에서 왕따를 당할 줄이야…. 심한 왕따가 아니라 은근히 따돌린 거라 별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진이의 고립감은 생각보다 골이 깊었다. 어떤 말로 위로한들 또래 친구 없는 결핍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을까. 나는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