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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상황’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평신도 설교집
[323호 3인 3책] 자유인의 하늘뜻펴기 / 향린교회 생활목회자 하늘뜻펴기 편찬위원회 지음 한울 펴냄 / 2017년
[323호] 2017년 09월 25일 (월) 11:32:07 김광남 번역가, 저술가 goscon@goscon.co.kr
   
 

종교개혁은 교회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대표적인 것이 성서 번역과 배포였다.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자신들의 모국어로 성서를 번역했고 마침 개발된 인쇄술을 이용해 번역된 성서를 배포했다. 덕분에 신자들은 성직자를 통하지 않고 직접 성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역사상 처음으로 평신도들이 직접 성서를 읽게 되었건만,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성서 해석은 전적으로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물론 이유야 있다. 성서는 신적 계시를 담고 있기에 함부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자제품 매뉴얼을 읽는 게 아닌 이상 모든 읽기에는 해석이 따른다. 사실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 읽기라면, 굳이 직접 읽어야 할 이유도 없다.

해석의 제한은 말의 제한으로 이어진다. 해석이 제한된 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발언은 결국 정답 맞추기가 된다. 정답이 아닌 말은 위험시되고 그런 말을 하는 자는 경계의 대상이 된다. 교회 안에서 성서와 관련된 말들이 그러했다. 교회의 강단은 늘 신학을 전공한 목회자들의 차지였다. 교회는 평신도에게 성서 읽기를 강조하면서도 그 읽기를 통해 얻어진 생각을 펼칠 물리적 공간은 물론이고 심리적 공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많은 교회들에서 만인사제설은 이론일 뿐 실제가 아니었다. 이미 목회자들 못지않은 지적 수준에서 자발적 사고를 하고 있는 평신도들을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교회들은, 청중의 수준에 묶어 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향린교회가 《자유인의 하늘뜻펴기》라는 평신도 설교집을 펴낸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조헌정 목사가 향린교회에 부임한 2003년부터 주일예배 때 평신도들이 행한 설교들 중 일부를 추려서 묶은 것이다. 평신도 설교자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향린교회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있고, 출석한 지 1년 남짓한 사람도 있고, 청년도 있고, 심지어 어린이까지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설교자들의 직업군도 다양하다. 설교자들은 대개 자신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성서를 해석해냈다. 복음과 상황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여러 사람의 설교를 모은 것이기에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책의 내용보다도 교회가 평신도에게 주일 설교를 맡기고 그렇게 해서 나온 설교들을 모아 교회 차원에서 평신도 설교집을 펴냈다는 사실이다. 향린교회 목회자라고 주일 설교를 평신도에게 맡기고 심방과 행정만 했겠는가? 아마도 틈틈이 평신도에게 설교할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결단은 평신도들에게 1년에 몇 차례 강단을 맡길지라도 교회가 흔들리는 일은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내게는 향린교회의 이런 모습이 철저하게 훈련받은 목회자를 통해 말씀의 순수성을 지키기겠다는 다른 교회들의 노력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줄을 잇는다. 유감스럽게도 전혀 인상적이지 않다. 오늘의 개신교회 모습을 떠올리면 살짝 민망하기까지 하다. 종교개혁의 기본적인 정신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좋겠다. 신자들이 직접 성서를 읽고 해석하고 말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에서부터.


김광남
숭실대에서 영문학을, 같은 학교 기독교학대학원에서 성서학을 공부했고, 책을 쓰고 번역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 《아담의 역사성 논쟁》등 다수가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한국 교회, 예레미야에게 길을 묻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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