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호 잠깐 독서] 《로마서》 《지극히 사적인 페미니즘》 《두 지평》

일상의 만남에서
길어올린 성찰

배움에 관하여
강남순 지음
동녘 펴냄 / 16,000원
‘스승’으로 사는 저자에겐 학교가 일상이고, 그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스승이다. 각기 다른 모습과 배경의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집중하다보면 차별과 배제의 근거로 작동하는 여러 경계와 범주들이 허물어지기에, 저자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가리켜 ‘살아 있는 텍스트’라 썼다. 자기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 태도는 저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배움’과 연결된다.

진정한 배움이란 ‘변혁적 배움’이다. 변혁적 배움은 ‘나’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일상화된 비판적 성찰의 과정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사건이다. 이 책은 비판적 성찰을 일상화하여 삶의 주변을 들여다본 내 ‘배움’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타의 배움이란 ‘자서전적’이다. 이 자서전적 배움에는 차별을 넘어서는 평등과 연대, 배제와 증오를 넘어서는 따스한 환대, 그리고 무엇보다 절망을 넘어서는 희망의 세계를 향한 나의 절절한 갈망이 담겨 있다. (9쪽)

 

 

 

새로이 시야에 들어오는
교회의 소망

로마서
칼 바르트 지음 / 손성현 옮김
복있는사람 펴냄 / 60,000원

칼 바르트의 《로마서》 제2판 전집판 정식계약본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망각하고 거짓 신들에게 미혹당한 시대를 향해 하나님의 다르심, 멀리 계심, 생소하심, 숨어 계심을 강조하며 인간과 세상의 한계를 뚜렷이 드러낸다. 바울의 로마서를 붙잡고 씨름하며, 위로부터 수직으로 치고 들어오는 폭발적인 계시의 흔적을 꼼꼼히 답사하며 우리를 진정한 불안에 노출시킨다. 거기서 새롭게 교회의 소망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성할 수 있는 긍정적 가능성과 부정적 가능성이 촘촘히 드러난다.

그렇기에 죽음 저편에 계신 하나님은 죽음 이편의 사멸적 인간에게는 전적 타자이며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계신 죽음 저편과 죽음 이편의 인간 세상 사이에는 그 어떤 관계도, 긍정적인 유비도 있을 수 없다. 이성과 윤리는 물론 믿음에서도 인간이 채워 넣은 내용은 남김없이 비워진다. 믿음조차도 “텅 빈 공간”일 뿐이다. (24쪽)

 

 

공적 무게를 지닌,
여성 4인의 사적 페미니즘

지극히 사적인 페미니즘
박소현 오빛나리 홍혜은 이서영 지음
아토포스 펴냄 / 13,500원

나이, 성장배경, 경제적 조건, 종교와 세계관, 정치적 입장까지 모두 다른 네 명의 여성이 저마다 처한 ‘지금 여기’의 삶 공간에서 경험하고 씨름해온 페미니즘을 ‘지극히 사적인’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가볍게 읽어가다 묵직한 통증으로 파고드는 그들의 서사는, “페미니스트를 자임하는 건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돌아보는 일”(6쪽)임을 확인해준다.

남편 회사에 회식이 있는 날이면 하루 종일 좁은 집에서 아기와 함께 갇혀 있던 나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전화로 언제 돌아오는 건지 중요한 회식인지를 따져 묻다가 당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경고하곤 했다. 투명 인간처럼 소리 없이 집에 갇혀 아기를 돌보아야 하는 나는 집이라는 사적 담벼락을 넘어 일의 연장선이라는 회식을 방해하며 수화기 너머로, 즉 공적 영역으로 튀어나온 몰지각한 아내였다.
사회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구분하는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가장 힘들게 하는 구조의 핵심이다. (37쪽)

 

 

 

 

성경과 해석자의
융합

두 지평
엔터니 티슬턴 지음 / 박규태 옮김
IVP 펴냄 / 35,000원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하이데거, 불트만, 가다머, 비트겐슈타인의 해석학 논의를 살피고, 이들이 성경 해석학에 기여한 바를 분석한다. 물론, 이에 앞서 해석학 분야를 꼼꼼하게 개괄하기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지평’(horizon)은 이제 해석학 이론에서 전문 용어가 되었지만, 심지어 보통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에서도 주어진 관점이나 시각이 지배하는 사고의 한계를 가리키는 은유로 사용되고 있다. 성경 해석학의 목표는 해석자 자신의 지평을 재형성하고 확장시켜, 해석자와 본문 사이에 서로 적극적이고 의미 있는 소통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다머의 말마따나 지평 ‘융합’(fusion)이 해석학의 목표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해석자는 그가 속한 역사 전통 밖으로 뛰쳐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두 지평이 완전히 일치하기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애써도 두 지평은 가까워질 뿐이지, 여전히 별개로 존재한다. … 성경은 오늘도 성경 해석자 자신의 지평을 바로잡고 재형성하고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으며 또한 말하고 있다. (‘서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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