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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익힌 하나님 나라 경제 원리
[324호 반디마을 한몸살이 10]
[324호] 2017년 10월 27일 (금) 15:37:41 정동철 ‘반디마을’ 올인 멤버, 몸된교회 전도사 goscon@goscon.co.kr
   
▲ 공동체 기반 사업인 인테리어 업체 '디자인 잇다'는 천천히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사진 속 인물은 필자. (사진: 정동철 제공)

‘만나’가 끊어진 땅에서 ‘생계’를 모색하다
2012년, 열세 해 동안 사역자로 살았던 한국기독학생회(IVF)를 떠났다. 1999년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역은 많은 아쉬움과 한계를 드러냈지만 대체로 즐겁고 감격적이었다. 물론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도요 전적인 도우심의 결과지만, 나는 헌신적으로 재정의 일부를 꾸준히 기부해주신 후원자들을 기억하고 싶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내겐 날마다 내려오는 만나와 같았다. 누구의 벌이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단순히 필요를 채우는 것 이상의 에너지원이었다.

13년 간의 사역을 마무리 했을때 ‘만나’도 끊겼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한 후 만나가 끊어졌듯이 내게도 그런 시기가 온 것이다. 이제는 매월 가시적인 노동의 결과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 시기에 나는 나의 피와 땀과 눈물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데 익숙지 않았다. 그저 매월 200만 원만 벌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온갖 일들을 닥치는 대로 했다. 돌이켜보면 목표액에 도달하지 못한 적은 거의 없었고 그 이상 벌기도 했다. 그런데도 항상 불안했다. 다음 달에도 수입이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돈을 번 일터는 울산에서 시작한 ‘카페 잇다’였다. 첫 사업이라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만 신기할 정도로 따박따박 손님들이 찾아왔다. 카페 인테리어를 맡길 돈이 없어서 스스로 망치를 들고, 아버지와 일했던 기억을 더듬어 직접 시공을 했다. 아버지는 목수였는데 공사 현장에서 추락 사고로 돌아가셨다. 만약 살아계신다면 나의 이런 발버둥을 멀리서 보고만 계시지 않았을 거다. 이제 아버지는 너무 멀리 계시고 유품이 된 아버지의 연장만이 나를 열심히 도왔다.

그렇게 뚝딱뚝딱 내 손으로 지은 카페는 새로운 손님들을 불러들였다. 인테리어 시공 의뢰가 자꾸만 생겨나는 것이었다. 이 일은 곧 나의 다음 직업이 되었다. ‘디자인 잇다’라는 인테리어 업체를 만들게 되었고 지난 5년간 일거리는 꾸준히 들어왔다. 홍보를 한 적이 전혀 없는데도 일이 끊이지 않은 것은 기적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엔 불러줘서 감사한 마음과 부족한 경험 탓에 염가로 시공을 많이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술은 자리를 잡았고 자신감도 상승했다.

그렇게 인테리어를 하다 보니 폐목재가 마당에 쌓이기 일쑤였다. 폐목재를 물끄러미 쳐다보니 또 할 만한 일들이 떠올랐다. 폐목재를 연료로 가마솥에 곰탕과 육개장을 끓여 내놓는 일이었다. 한동안 ‘진국남자’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곰탕을 택배로 배송하기도 했다. 좌충우돌. 이는 그간의 도전을 가장 잘 표현한 사자성어다. 왜 그리 많은 일들을 해보고 싶었을까? 원래 나란 존재가 그렇기도 했지만, 공동체를 염두해 둔 도전이기도 했다.

공동체는 다양한 사람이 모이게 될 터였다. 그중엔 사회적 약자도 있을 것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하려면 공동체는 적절한 기반 사업이 필요하다. 나의 잦은 전업은 공동체의 기반 사업을 모색하는 과정이었다. 실제로 현재 우리 공동체의 주 수입원은 카페 잇다와 디자인 잇다 두 사업체다. 아직은 그리 큰 돈을 만져 보지 못했고, 함께 일하려고 모인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려웠던 적도 있었지만 두 사업은 아주 천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꿈
나는 빨리 수익이 늘어서 처음 기획했던 대로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는 꿈을 꾸지만, 주변에서 나를 지켜본 이들은 사역자였던 사람이 빚을 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견하다고 격려해준다. 그들의 격려 속 전제처럼 나는 아직 사역과 사업의 경계를 모르겠다. 확실히 사업을 생각하면 내 꿈은 분배에 가까운 것 같다. 우리 재화를 능력이 아닌 존재의 가치로 분배하자는 게 이 사업의 정신인데 문제는 나눌 재화가 충분치 않으면, 즉 수익을 많이 내지 못하면 불가능한 생각이다.

어떤 분은 우리를 공산주의 아니냐고 몰아세운다. 분배의 방법만 보자면 일부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수익을 창출하는 활동에선 자유시장 경제원리를 따르고 있다. 이 모호한 줄타기 기법은 어디서 배운 걸까? 우리는 양극단의 사상과 경제원리에만 익숙한 나머지 다른 사상의 도전에는 무지하고 둔감하다. 그것이 설사 성경의 가르침이라 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때가 많다. 마치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 폐지에 반대한 남군도 기독교인이었던 것처럼, (단지) 익숙한 사회문화를 필요악이라고 정해 두고 성경적 가르침을 어기기도 한다. 이는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은 따를 만하지만 희생과 순종은 거부하는 격이다. 희생과 순종 없이는 용서와 사랑이 불가능한데도 말이다.
특히 한국적 상황 속에서 자본주의는 단순한 경제시스템이 아니라 사회주의와 대치된, 민주주의의 하부 경제원리로 이해된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시장은 그 누구도 누려본 적인 없는 자유를 누렸다. 그 결과 심한 양극화, 자본축적에 의한 갑질 문화, 과도한 경쟁 등 심각한 병폐들이 드러났다. 이렇게 제대로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대안은 없는가? 나는 성경이 이미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충분한 재원과 인원이 있음에도 성경의 가르침대로 자본주의를 수정할 의지를 가지지 못했다. 하기야 성경의 1차 독자였던 이스라엘조차 그들에게 지시한 하나님 나라의 경제 원리를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 그러나 성경적 대안은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동안 절대 피해갈 수 없는 것들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동안은 각자가 속한 국가의 운영시스템에 충실히 예속되고 그 기반인 경제시스템에 순응하다가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간 후에 하나님의 경제 원리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와 있다고 선포하셨다. 그래서 교회는 이 땅에서 발을 붙이고 사는 동안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원리를 살라고 지시받는다. 그중엔 경제 원리도 포함된다. 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는 교회는 직무유기다. 우리가 성실히 벌어서 헌금한 돈의 일부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축적된 자본, 즉 도적질한 것이 포함되었겠지만 교회는 그것을 묵인하고 무차별로 헌납 받고 있다. 또한 이를 재분배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희박하다. 교회는 선교지에 돈을 보내고 일부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분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으로 자본주의의 병폐를 바로잡아야 한다.

포도원 주인의 마음
내게 이런 생각을 심은 것은 다름 아닌 ‘성경’이다. 하나님 나라가 지금 이곳에 임하였다는 가슴 떨리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믿음의 정체도 변화되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적 동의를 넘어 이 땅에서 삶으로 따라가야 함을 안 것이다.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주인의 비유는 고뇌하던 내게 비수같이 날아들어 삶을 굴복시킨 말씀이다.

예수님이 어느 날 기묘한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셨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20:1) 천국이 한 인격 즉 포도원 주인으로 설명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그 나라의 제도와 문화와 환경들은 권위자의 습성을 그대로 닮은 것이 자명하다. 어떤 설명보다 그 나라의 주인인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리라. 그를 알고 신뢰하면 그의 나라에 대한 기대감은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유의 주인공인 포도원 주인은 갑질을 일삼는 악덕 고용주인 것 같다. 성경에 보면 세 시간 단위로, 즉 이른 아침과 9시, 12시, 오후 3시, 5시에 각각 일꾼을 데려와서 일을 시켰다. 그런데 한 시간 일한 노동자와 하루종일 일한 노동자의 임금을 동일하게 책정하여 노동쟁의가 일어나게 된다. 고용주와의 대담에서 노동자에게 돌아온 답변은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20:14-15)라는 서운한 소리뿐이었다. 협상이 안 되는 몰상식한 고용주의 전형이다.

청년 시절 나는 이 성경 본문을 보고 마음이 힘들었다. 이런 것이 하나님 나라라면 별로 기대감이 생기지 않았다. 30대에 접어든 어느 날 나는 다시 이 본문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선생님을 막다른 골목에서 만나 억지로 존경을 표하는 인사를 하듯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지나가려고 했다. 그때 이 본문과 유사한 상황이 내 경험에서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때의 첫 기억 속에도 아버지는 목수 일을 하고 계셨다. 당시에는 인력 소개소 같은 시스템이 없어서 광장에 모여 일을 찾는 사람과 일꾼을 찾는 업자가 접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새벽의 광장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아버지도 새벽 광장에서 사람을 기다린 적이 많았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라 어떤 신뢰 관계도 없는데 업자는 매서운 눈으로 기술자를 단박에 알아보고 차에 태운다. 나도 이 분야에서 5년쯤 일을 하다 보니 그런 게 눈에 들어온다. 철거를 하려고 사람을 데리러 왔다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중 어깨 넓이와 팔뚝을 보면 된다. 힘 좀 써 본 사람은 체격과 근육이 남다르다. 미장을 해야 한다면 몸집이 작고 날렵한 사람을 데려가야 한다. 좁은 공간에서 하루종일 일을 하고 방금 바른 타일 위를 걸어다니기도 해야 하니 말이다. 목수를 데리러 왔다면 눈을 봐야한다. 의욕, 통솔력, 꾀가 눈에 맺혀 있다. 목수일은 전체를 조율하며 일머리를 터주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을 뽑아가고 해가 뜨면 인력시장도 파장된다. 더 이상 사람을 데리러 오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유 속의 포도원 주인은 주기적으로 거리로 나가 일꾼을 찾는다. 심지어 오후 6시에 일이 끝나는데 오후 5시에도 사람을 데리러 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대목이다. 오후 5시에 온 일꾼은 업무에 적응할 겨를도 없이 농장의 업무가 마감되어 일당을 받았다. 그가 받은 일당 때문에 노동자들은 술렁였을 것이다. 한 시간 일한 댓가로 1데나리온(당시 이스라엘의 하루 일당)을 받는다면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은 도대체 얼마를 받게 될까 하는 기대심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이가 1데나리온을 지급받았을 때 상황은 거칠어졌다. 이른 아침에 온 일꾼들은 부당하다는 입장이지만 주인은 계약서를 들이댄다. “당신, 1데나리온 받기로 계약했잖소?” 할 말이 없는 대목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후에 온 사람들의 일당인데 그들은 모두 “상당하게 주리라”는 추상적이고도 주관적인 조건으로 계약이 되었다. 이런 조건은 하루를 공친 노동자들을 구제할 때 제시하는 조건이다. 그들은 모두 기대 이상을 받았고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누구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았지만 그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형평성의 논리 때문이었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20:12)라고 말한, 이른 아침에 온 노동자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분배의 문제만이 아니다. 주인의 깊은 속내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주인은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라고 항변한다. 의무와 조건을 충족한 후 내린 조치들은 선행이었다고 자평을 하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사회적기업을 시도했다는 것인데 사회적기업은 빵을 팔기 위해서 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위해 빵을 만드는 것으로 간단히 설명된다.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려는 분배 시스템이 특징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한 시간 일한 노동자와 주인의 대화에서 주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이 드러난다.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20:6-7). 그들이 하루종일 기다렸으나 일감을 얻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더 이상 찾는 이 없는 인력시장에서 하루종일 기다려야 했던 절박함은 또 어떠했을까? 아마도 그들은 포도원에서 단순 노동을 하기에도 적합치 않은 장애를 가진 이들은 아니었을까? 이런 이들에게도 1데리온을 주고 싶었던 주인의 마음이 반영된 포도원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고 비유는 설명한다.

나는 오랫동안 이른 아침에 온 노동자들 편에 서서 주인을 노려보며 씩씩대고 있었다. 확실히 내 앞길만 중요했던 젊은 시절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민과 배려의 마음, 공적 시스템과 경제구조의 문제 등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다시 보니 이 주인의 포도원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런 나라라면 나를 새롭게 인식하고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의 선행 앞에서 나의 공평과 정당함은 편협하고 악한 것이 되어버린다. 나는 염치불구하고 그 나라에서 살고 싶다.

우리를 부르는 소리
눈을 슬쩍 내리깔고 지나치고 싶었던 이 성경 본문이 이제는 내 삶에 가장 중요한 말씀이 되었다. 그의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간절히 갈망하던 나에게 그간 눈에 띄지 않던 의문이 생겼다. 주인의 임금지급 순서에 대한 것이다. 그는 왜 한 시간만 일한 일꾼부터 먼저 지급하여 다른 노동자들을 분노하게 하였을까? 지혜로운 자라면 계약조건이 분명한 이들에게 우선 지급하여 돌려보내고 나머지는 조용히 해결했을 것이다. 또 포도원 주인의 방식은 선행을 비밀리에 행하라는 예수님의 정신에도 위배된다. 그래서 다분히 의도적이다.

포도원 주인은 지금 자기 포도원의 운동가를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포도원 주인과 같은 마음으로 저잣거리를 거닐고 약자의 서툰 몸짓을 배려하며 후히 나눔에 보람을 느끼는 이들을 찾고 있는 중은 아니었을까? 이 본문을 대하는 나의 감정은 처음엔 화가 났다가 다음엔 부끄럽다가 이제는 비장해진다. 반디마을 공동체의 분배 정신은 이 분노와 부끄러움과 비장함 위에 놓여 있다. 우리는 그냥 한번 이렇게 해보고 있는 게 아니다. 그분의 부르심과 보여주신 본을 따라가려고 신발끈을 다시 묶고 일어 선 것이다. 또한 이렇게 살아보자고 함께 부르는 몸짓이다.

 

정동철
1971년생으로 울산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뒤 IVF(한국기독학생회) 캠퍼스간사로 14년 동안 섬겼다. 지금은 ‘디자인잇다’ 대표로 일하면서, 몸된교회 전도사로 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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