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역사와 만나다 / 야로슬라프 펠리칸 지음

성서, 역사와 만나다 / 야로슬라프 펠리칸 지음 / 김경민·양세규 옮김
비아 펴냄 / 20,000원

                                 
태초에 ‘말씀’이 있은 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성서를 어떻게 대해왔는지 다룬 역사서. 워낙 방대한 시기를 다룬 책이기에 백과사전처럼 보려고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굳이 다시 꺼내 읽었다. 한창 ‘빅 히스토리’의 매력에 빠져 있었기 때문.  
 
거대사 관점의 《총, 균, 쇠》 《사피엔스》 등을 읽다 보면 일간지의 핫한 이슈가 무척 하찮게 느껴지고, 인류사의 작은 독립 변수도 될 수 없는 ‘나’의 보잘것없음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작은 차이가 가져온 재앙의 역사를 보노라면, 결국 ‘오늘 이 순간’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함을 깨닫는다. ‘빅 히스토리’가 주는 독특한 매력인데, 이 책 역시 읽는 내내 관점의 전환을 경험케 한다. “오직 성서!”를 외쳤던 ‘종교개혁’에 이르러서는 더 그렇다.

“이 시기 성서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한 학문적인 이견은 이내 교회의 갈등으로 이어졌으며 나아가 교회의 분열을 가속했다. 성서가 가진 유일한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사실상 특정 교회의 특정 성서 해석이 갖는 권위를 무비판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뜻했다.”(262쪽)

인류 역사상 성서가 가장 널리, 깊이 읽혔던 20세기는 어떤가?     
   
“그러나 유례없이 성서를 열심히 읽은 이 시대에 두 차례에 걸쳐 세계 대전이 일어났으며 박해가 만연했고 집단 학살이 빈번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341쪽)

책의 원제는 ‘성서는 누구의 것인가?’(Whose Bible is it?)인데, 인류사를 관통한 성서는 유대교, 그리스도교를 막론하고 누구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됨을 일깨워준다. 오히려 ‘나’의 보잘것없음을 깨닫는 것이 성서에 가까이 가는 문이다.

“그러므로 성서와 만날 때, 좀 더 정확하게는 성서에 담긴, 성서가 증언하고 고백하는 하느님의 말씀과 만날 때 (성서를 읽는) ‘나’는 주체가 아니라 객체다.”(378쪽)

저자는 55권으로 구성된 《루터 저작선》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종교 항목을 편집한 그리스도교 역사학자다. 이 책은 그의 생애 마지막 저작으로, 객관적 서술에 공을 들이다가 후반부(특히 마지막 12장 ‘성서 안에 있는 낯선 신세계’와 ‘나가는 말’)에는 성서에 대한 애정을, 아니 성서를 읽는 인류에 대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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